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83화 (183/196)

52 메카닉

보통의 직장인들이 여름휴가를 다녀오는 8월 1주~2주가 지났을 무렵.

윤재는 한송이, 백현민 부부를 만났다.

“윤재 오빠! 딸은 잘 크고 있어?”

“하하하. 혜진이 배가 남산만 하게 나왔다. 이제 3개월 정도 지나면, 딸의 얼굴을 보게 될 것 같아.”

“윤재야! 딸이 혜진씨 닮았으면 좋겠다. 엄청난 미인이 될 거야.”

“현민 오빠가 뭘 모르네. 윤재 오빠 닮아도 굉장한 미인일 걸?”

한송이가 고안한 분자추출 방식으로, 52 Cafe는 카페가 아닌 슈퍼나 편의점에서도 52 Cafe를 즐길 수 있는 상품을 출시하는데 성공했다.

오늘의 회동은 음료출시의 성공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윤재야 고맙다. 덕분에 우리 부부가 든든한 연금을 확보하게 됐어.”

“하하하. 형! 아네요. 송이가 피나는 연구를 했기 때문에, 52 카페도 외형을 넓히게 된걸요. 당연한 보상이라 생각합니다.”

윤재와 같은 편에 선 사람들은 모두 유, 무형의 보상을 받았다.

앞으로 송이는 연간 억 단위의 로열티 수입을 얻게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윤재 오빠! 황성호가 오빠한테는 연락 안했지?”

“응. 저번에 얼굴 본 뒤로 연락 없었는데. 무슨 일 있어?”

“황성호 그 인간이 동기들 찾아다니면서, 돈을 꿔달라고 하고 있어. 나랑 오빠한테도 천만 원씩 빌려달라고 했다니까!”

“그래서 빌려줬어?”

“미쳤어? 그 인간한테 돈을 빌려주게.”

황성호와 돈 얘기가 나오자 백현민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윤재는 촉이 뛰어난 사람.

천만 원 까지는 아니어도, 기백만 원을 황성호에게 빌려준 것 같은 눈치였다.

잊을만하면 나타나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존재 황성호.

여전히 도박을 즐겼고, 하다하다 안 되니까 이제는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민폐를 끼치는 모양이었다.

“황태준 의원도 최근에 구설에 오르더니... 그 집안은 왜 그러나 모르겠다. 그 많다는 돈 어찌 하려고 아들놈을 그리 놔두는지.”

“내 말이. 현민 오빠! 국회의원도 아닌 사람이 청탁과 외압을 행사하는데, 현직에 있을 때는 오죽했겠어? 하여튼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니까.”

백현민의 얘기처럼 최근 황태준 전 의원이 뉴스를 탄 적이 있었다.

공기업에 자신의 아들인 황성호의 취업을 청탁했다는 뉴스였다.

그 외에도 황태준 전 의원을 둘러싼 구설은 잊을 만 하면 방송에 나왔었다.

“얘기 들어보니까 우리 동기들 20명 정도가, 적게는 4~50만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 넘게, 황성호에게 뜯긴 모양이야.”

“빌려준 사람들도 답답하긴 하다.”

“윤재 오빠! 황성호가 나 찾아와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기가 막혀서.”

“뭐라고 했는데?”

“돈 없다고 했더니, 자기 아빠 강남 건물이 3~4천억 나가는데, 그까짓 천만 원 떼먹겠냐고 하더라고. 정 안되면 나를 건물 관리인으로 취직시켜준다나? 어이가 없어서.”

이미 윤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락에 떨어진 황성호였다.

인생이 불쌍해서 잊고 지내려 했건만.

가만 놔두니 부자지간에 패악질을 되풀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민이 형! 황성호한테 얘기 좀 전해줄래?”

“무슨 얘기?”

“돈 급하면 나 찾아오라고 해. 내가 명색이 한국 벤처업계의 허브로 통하는 사람이잖아. 옛정 생각해서 황성호한테 투자 좀 해볼까 싶어서 말이야.”

황성호와 황태준을 동시에 설계할 수 있는 괜찮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오빠! 바쁜 사람이 황성호 만나서 뭐 하려고 그래. 그냥 무시해 버려.”

“송이야! 너무 걱정 마. 내가 안전장치도 없이, 황성호에게 투자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          ◈          ◈

8월 20일 윤재는 군산 태화정밀 공장 증설 현장을 찾았다.

빅애플의 스티브홉스에게 받은 디자인특허 매각대금 4천억.

윤재가 ETF와 주식투자로 벌어들인 돈 1천억.

5천억이 넘는 돈을 모두 군산 군장산단에 때려 박았다.

윤재가 단행한 투자 중 단연코 최고이자 최대의 투자였다.

“내년 5월에 3공장, 4공장 모두 상업가동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응. 나도 현장 책임자에게 보고 받았다.”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회사인 제이콥과 한국 NC건설이 공동 수주한, 태화정밀의 3공장과 4공장 증축 공사.

김민기 사장. 조철규 부사장. 안드레 부사장을 포함해 10여명의 사람들이, 전동 카트에 나눠 타고 공사현장을 둘러봤다.

이제 태화 정밀은 더 이상 매출 1~20억 짜리 중소기업이 아니었다.

3공장과 4공장이 완성되는 2009년이면, 태화정밀은 3개의 주력사업을 갖게 된다.

“민기 형님은 2공장에서 국내 스마트 팩토리 사업을 더욱 강화해 주십시오.”

“응. 알았다.”

텀블러, 매직홀 용기, 여성용 콤팩트 쿠션은 이미 안정적인 수요처와 마진을 확보한 상태.

지난 3년 동안 태화 정밀 2공장은 3만평 규모의 스마트 팩토리 공장으로 거듭나 있었다.

“현재는 52 Corp 중심으로 수요처가 치우쳐 있어요.”

“응. 이제 2공장도 완공됐으니, 영업활동을 더 강화할 생각이다.”

태화 정밀의 전통 사업부문인 정밀기계 사업은 김민기 사장이 각자대표로서 계속 이끌게 된다.

공정율 40%의 3공장은 15,000 평의 규모.

NC화학과 합작 법인으로 중소형 배터리를 생산하게 될 곳이었다.

“현존하는 최첨단 기술력이 응집된 팩토리가 되겠군요!”

NC화학 출신으로 3공장 경영을 맡게 될, 조철규 부사장이 말했다.

“부사장님만 믿겠습니다.”

“하핫! 아닙니다. 제가 사장님을 믿어야지요. 사장님께서 계셔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저는 사장님의 비전과 실행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V 차량에 쓰일 대용량 배터리에 NC화학이 집중하고, 중소형 배터리는 태화정밀 3공장이 담당하자는 전략은 신의 한수라 생각합니다.”

미래 먹거리로 전기차용 배터리에 투자하고 있는 NC화학.

윤재는 NC화학을 찾아가, 대용량 배터리와 소형 배터리의 분리를 제안했다.

“우리 공장부지와 자본력에, NC화학의 기술력과 인력이 융합했습니다. 실패할 수 없는 프로젝트죠.”

“맞습니다. 김사장님! 이번 분리 전략으로, 양사가 모두 성공하게 될 겁니다.”

3공장은 노트북. 핸드폰. 게임기 등에 필요한 소형배터리와 드론 등에 이용될 중형 배터리를 제조하게 된다.

구미. 파주의 NC화학 배터리 라인 중 일부는, 태화정밀 3공장에 지위를 내주고 대형 배터리에 올인하게 될 것이었다.

“저희 부회장님께서 김윤재 사장님을 어찌나 극찬 하시는지!”

매달 1회 개최되는 NC화학 임원 포럼.

윤재와 합작이 성사되기 직전, NC화학은 임원진 포럼에서 52 Corp의 성공사례를 발표한 적 있었다.

‘고졸 샐러리맨 출신의 세계적 벤처 사업가.’

NC화학 포럼에서 윤재에 대해 설명한 키워드였다.

“2007년 10대 히트상품 중 하나가 된 오이메신저, 전국 명소에 가면 빠지지 않고 볼 수 있는 52 Cafe. 초대형 사이즈 피자까지.... 모두 놀라운 제품과 서비스였습니다.”

조철규의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배터리 관련 업무를 10년 가까이 담당하다 보니, 저는 사장님과 콩고민주공화국의 관계에 제일 놀랐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고순도의 망간. 니켈. 코발트를 김사장님보다 저렴한 비용에 수입할 수 있는 회사는 없을 겁니다.”

“하하하. 과찬의 말씀입니다.”

“아닙니다. 저도 NC화학과, 사장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미 숱한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윤재.

그 자체로도 NC화학을 설득하기에 충분했지만, 콩고민주공화국과의 강력한 연대에 NC화학 경영진은 완벽한 윤재 편이 될 수 있었다.

배터리 사업의 핵심 원료를, 저렴한 비용에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효했던 것이다.

이로서 중소형 배터리 사업에, 로열티 높고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게 됐다.

◈          ◈          ◈

전생에서 매출액 10~20억의 소규모 공장에 지나지 않았던 태화정밀.

이젠 군산시에서 가장 큰 공장 부지를 확보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평당 20만원으로 저렴한 땅이지만, 태화정밀보다 더 큰 땅을 갖고 있는 군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공장은 드론을 생산하기 위한 곳!

프랑스 Farrot사(앵무새를 뜻하는 패럿의 첫 글자를 바꿔 Farrot이라 이름지었다)와 합작으로, 상업용 드론을 생산할 예정이었다.

배터리 공장인 3공장과 마찬가지로, 공정률은 40% 수준.

2009년 3분기 내 첫 번째 모델을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 목표였다.

패럿 출신인 안드레가 각자대표를 맡게 된다.

정밀 기계의 김민기 사장.

중형 배터리의 조철규 부사장.

상업용 드론의 안드레 부사장.

이로서 태화 정밀은 강력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회사로 거듭나게 될 것이었다.

“파리에서 당신과 줄리앙를 만난 지 벌써 3년 가까이 지났군요.”

“그러게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처음 윤재 당신을 만났을 때는 사기꾼인지 알았어요.”

“하하하. 저 같이 생긴 사기꾼도 있나요?”

“김 사장이야 말로 사기꾼의 모든 것을 갖췄지요. 매력적인 용모. 화려한 언변. 그럴듯한 얘기까지!”

“듣고 보니 일리 있네요.”

2005년 태화정밀에서 제반 특허를 취득하던 시절부터, 윤재는 패럿과 합작해 군산에 드론 공장을 설립할 꿈을 키워왔다.

그리고 속칭 ‘둥근 모서리’ 로 알려진 디자인 특허가 완성됐을 때, 파리에 있는 패럿 본사를 찾아가 대표자인 줄리앙 세이두와 안드레를 만난 바 있다.

“이게 정말 당신 회사에서 하고 있는 활동이요?”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미국에 있는 저희 52 소프트 팀이, MS사 빌 게이트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놀랍군! 그래서 저 아이들이 정말 효과를 보고 있나?”

“프로젝트가 3개월 뒤에 끝나는데, 아이들이 오로지 컴퓨터만 가지고 일상적인 영어회화와,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수학을 터득하는데 성공했어요.”

패럿의 창립자 줄리앙 세이두.

그는 프랑스 미디어 재벌의 아들이었고, 007 본드 걸로 유명한 세이두의 아버지였다.

태어날 때부터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났지만, 줄리앙은 테슬라의 엘런 머스크와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하는 군.”

아르리카의 해맑은 아이들을 보며, 줄리앙이 눈시울을 붉혔다.

“울고 싶을 때는 우는 게 건강에 좋다고 하더군요.”

줄리앙 세이두는 어렸을 때, 난독증. 주의력 결핍증과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태어났지만, 재벌이자 귀족가문인 세이두의 어른들은 그런 줄리앙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런 이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52 소프트 미국 지사의 활동은 줄리앙 세이두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이어서 윤재는 52 카페. 피자. 소프트웨어. Farm 등에 이르는 인생여정을 영상과 함께 설명했다.

빌 게이트. 워렌 버핀. 에밀리 캠벨, 올리버 페레레 같은 명사들이 중간 중간 등장했다.

누가 보더라도 반할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줄리앙! 나는 당신 회사와 손잡고, 드론 시장을 개척할 생각입니다.”

“왜 드론이고, 왜 하필 패럿인가?”

“제 궁극적인 비전은 세계 최고의 푸드 테크 회사를 만드는 겁니다. 드론 산업은 푸드 테크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구요.”

윤재는 자신의 구상을 가감 없이 들려줬다.

음향기기. 전자기기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던, 패럿은 2000년대 중반부터 드론 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줄리앙 당신과 손잡고, 배송용 드론 사업의 1인자가 될 생각입니다.”

“배송용 드론?”

“예. 군사용. 촬영용. 관제 등 다양한 용도가 있지만, 제가 구상하는 푸드테크는 드론을 통한 배송이 필수거든요.”

독특한 성격의 천재를 설득하는데, 진실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는 법이다.

미리 준비해 간 드론 사업계획서를 바라보는, 줄리앙의 눈동자가 자꾸 커졌다.

“다른 회사들도 있을 텐데?”

“올해 중국 선전에 DJI라는 회사가 창업한 것 알고 계시죠?”

“왜 모르겠나?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미국 3DR을 따돌리는 것이네. 중국이야 내수 수요만으로도, 대기업이 될 수 있는 나라 아닌가? 비 중국 시장의 넘버 1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네.”

2006년 4명이서 중국 선전에 창업한 DJI가, 10년도 되기 전에 드론 업계를 평정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2015년 이후 DJI에 밀린 패럿은 끝없이 추락을 거듭한다.

“당장 계약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내년에 제가 한국 군산에 25만평의 땅을 확보할 생각입니다. 그 뒤에 다시 찾아뵙죠.”

“25만 평?”

“중국과 싸우려면 25만평 정도는 있어야, 스케일에서 밀리지 않을 테니까!”

“나보다 더 특이한 젊은이는 자네가 처음일세.”

1년 뒤 윤재는 스티브 홉스에게 받은 디자인 특허료로, 군장산단에 25만 평의 땅을 사들이는데 성공했고 패럿과 합작법인 설립에 이르렀다.

“윤재! 나는 당신이 진짜 서해안에 25만평의 땅을 사들일 거라 생각 못했소.”

“하하하. 땅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에겐 넓은 땅과, 워렌 버핀, 빌 게이트 같은 투자자가 있어요. 그리고 줄리앙 세이두와 패럿의 기술력이 있습니다.”

“실패하기 힘든 조합이죠.”

“5년 뒤 우리가 만든 드론이 하늘을 덮을 겁니다. 중국산 제품들이 아니라...”

김민기. 조규철. 안드레와 함께 4공장까지 모두 돌아봤다.

2공장 회의실로 돌아가는 카트에서 윤재는 묵직한 어조로 선포했다.

이미 김민기의 승인을 득한 상태.

스마트 팩토리. 배터리. 드론의 3각 편대를 구축한 태화정밀은 52 메카닉으로 거듭날 예정.

조금 늦어졌지만 2010년 코스피 시장 입성을 목표로, 재도약에 나서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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