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76화 (176/196)

조력자들

2008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52 소프트 미국지사.

윤재는 홍도현 나란희 부부와 함께 미국지사의 사업현황을 점검했다.

“링키드인의 레이버후드(Laborhood) 인수 제안은 사장님 말씀대로 거절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느낌으로는 인수금액을 올려서 다시 찾아올 것 같았습니다.”

“하하하. 또 거절하시면 됩니다.”

“2억 달러를 거절했는데, 또 거절 해요?”

구인자와 구직자들을 위한 소셜 서비스인 링키드인.

링키드인이 화이트칼라 기반이라면, 레이버후드는 블루칼라를 위한 SNS로 최근 이용자수가 3천만 명을 돌파하며 링키드인 이용자수를 앞서버렸다.

중개수수료가 링키드인의 30% 수준인 관계로, 여전히 적자상태였지만 이용자수 추월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2억 달러의 파격적인 인수액을 거절했다는 얘기에, 간담회에 참석한 직원들의 눈동자가 떨렸다.

반면 레이버후드 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더없이 뿌듯한 표정이었다.

“가입자 수가 결국 돈입니다. 이 추세면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 레이버후드 가입자수는 1억 명을 돌파할 겁니다. 그 때는 부르는 게 몸값이 될 거에요. 유럽과 남미시장 서비스 안정화에 조금만 더 힘써 주십시오.”

“네. 사장님!”

레이버 후드의 성공을 의심했던 직원들.

그들은 마찬가지로 나란희 팀의 교육용 소프트웨어 ‘산타!’ 시리즈의 성공도 의심했었다.

하지만 미국지사에서 윤재의 얘기를 의심하는 사람은, 이제 한 명도 없다.

“오이 메신저 현지화 작업은 어떤가요?”

“온 고잉 상태입니다. 베타 테스트 중이고, 상반기 안에 안정화 끝낼 겁니다.”

“좋습니다. 애드가(AdGa)는 어떻습니까?”

애드가는 미국지사가 2년 전 개발한 광고 서비스였다.

인터넷 페이지에 배너광고를 올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핵심 사업영역이었다.

“수익 측면에서는 레이버후드보다 양호합니다. 세가나 징가 등 기존고객은 물론이고, 요즘 저희를 찾는 회사들이 줄을 잇고 있어요.”

“하하하. 좋군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모바일 시대가 멀지 않았어요. 오이 메신저. 애드 몹. 레이버 후드 등 우리 서비스는 올해부터 퀀텀 점프하게 될 겁니다.”

이제는 윤재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이미 홍도현 부부는 아프리카에서 윤재의 능력을 충분히 목격한 바 있다.

에밀리 캠벨. 빌게이트와 워렌 버핀은 물론이고, 아프리카의 대통령까지 주물거리는 솜씨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애드가(AdGa)는 매각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 중의 하나.

MS, 빅애플에 이어 구글을 타겟으로 개발한 서비스였다.

‘인류 역사상 미국 IT 빅3 모두에게, 슈킹한 인물은 나 밖에 없을 거다!’

윤재는 자신의 하이폰 1세대를 꺼냈다.

52 소프트 직원들 전원은 하이폰 1세대를 세컨드 폰으로 이용했는데, 윤재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바일 시대를 준비하라며 회사에서 지급한 것이다.

윤재가 하이폰의 사파리를 터치하자, 하단에 징가의 배너가 보였다.

애드가 서비스를 통한 광고였는데, 깔끔하게 작동하는 것 같아 기분 좋았다.

“아주 좋네요. 모두 최고의 상황인 것 같습니다. 다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계속해서 미친 서비스로, 세상을 놀라게 합시다.”

◈          ◈          ◈

미국지사 직원만 거의 100명에 육박할 정도로 조직이 커졌다.

일정을 모두 소화한 뒤, 윤재는 홍도현 부부와 미국지사 HR을 담당하고 있는 니콜과 티타임을 가졌다.

“사장님! 콩고에서 보내 온 엽서들 한번 보시겠어요?”

나란희는 자신이 받은 엽서와 사진을 보여줬다.

직원이 후원하는 금액만큼 회사가 같은 금액을 후원하는 매칭그랜트.

52 소프트는 미국지사까지 전 직원이 매칭그랜트에 참가하고 있었다.

“애들이 벌써 이렇게 컸던가요? 참 세월이 빠르긴 빠릅니다.”

문맹이었던 아이들이 산타 잉글리시를 통해, 언어를 습득하고 엽서까지 직접 쓸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나란희 팀의 쾌거였다.

게다가 최근 산타 수학과 산타 영어는 중고등 학생 수준의 패치를 추가로 발표했고, 세계 각국의 부모들과 학생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요즘 실리콘 밸리에 매칭 그랜트가 유행이에요. 저 역시 나란희 이사님의 소식을 듣고 52 소프트에 지원하게 됐구요.”

52 소프트를 넘어, 나란희 팀의 열정이 실리콘 밸리에 전염되고 있었다.

아들문제부터 시작된 지난날들이 떠올랐는지, 나란희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사장님!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아니에요. 제가 감사드리죠. 두 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그냥 돈 많은 사업가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가능하면 공로를 동료들에게 돌리는 일은, 윤재가 잘 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홍도현과 나란희는 동시에 감동받은 얼굴이 돼 있었다.

“니콜! 조직이 많이 커졌는데, 어려움은 없어요?”

“호호호. 그런 일 하라고 저 뽑으신 거잖아요.”

미국지사는 70% 넘는 직원들이 미국인들.

흑인 여성인 니콜은 인사관리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밝고 쾌활했으며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다.

가장 큰 미덕은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듣는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강조하는 건데, 자기만의 회사를 차려서 나갈 수 있다는 자세가 중요해요.”

“네. 알겠어요. 그런데 사장님! 저도 그렇게 해도 되는 거죠?”

니콜의 농담 섞인 진담에 다 같이 웃었다.

‘레이버 후드를 맡아서 운영하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겠어!’

자꾸 방대해진 조직을 모두 끌고 갈 수는 없는 일.

레이버후드. 애드가. 채터. 스타그램 등은 엑시트(Exit)가 불가피한 서비스.

이왕이면 52 소프트의 직원들이 차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었다.

Tea Time 이 끝나갈 무렵 홍도현이 물었다.

“그런데 요즘 오재준 회장님은 어떠십니까?”

“오재준 회장님이요?”

교육용 타이틀 ‘산타’ 시리즈를, 환자용 재활프로그램으로 개선한 소프트웨어가 ‘산타 케어.’

윤재는 오하루를 통해, 산타케어를 오재준이 사용토록 했다.

의료진의 치료에 산타 케어가 더해지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었다.

경영 복귀 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적 의사소통은 가능해 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던 순간.

태우건설 인수에 따른 피해가 알려지며, 오재준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고 말았다.

“저희 프로그램 문제는 아니에요. 그러니 상심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괜히 미안하군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는 산타 시리즈가 일으키고 있는, 기적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문맹의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환자들의 재활치료를 돕는 산타 시리즈.

나란희 팀이 보여준 성과는 아직 미미했지만 눈부신 것이었다.

“저는 홍이사님. 나이사님. 니콜 같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한 단계 진일보 할 수 있다 믿습니다. 세상의 모든 모순을 저희가 해결하진 못할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사장님도요!”

니콜의 얘기에 분위기가 다시 밝아졌다.

윤재와 알고 지낸지 1년 밖에 안됐지만, 니콜이 보기에도 윤재는 훌륭한 사장이었다.

“맞아요 사장님! 사장님도 그런 분이에요. 우리 함께 하나씩 해결해 나가요.”

윤재는 나란희 부부, 니콜과 손을 맞잡았다.

◈          ◈          ◈

워싱턴주에 있는 빌 게이트의 집은 약 2천 평의 면적을 자랑한다.

2천 평 대 저택에서 윤재는 워렌버핀과 함께 빌 게이트를 만났다.

“집이 워낙 넓어서 지도 없으면 길 잃겠어요!”

“하하핫! 자네 농담은 여전하구만!”

이미 몇 차례 빌 게이트의 집에 초대받은 적 있는 워렌버핀도 조크로 응수했다.

“저번에 왔을 때 방과 방 사이에, 기차 길을 깐다더니 어떻게 공사는 끝났나?”

“하하핫! 우리 조크는 그만 하고 어서 들어갑시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들의 농담을 들으며, 빌 게이트의 서재로 이동했다.

빌의 서재는 서울시 구청들이 운영하는 미니 도서관보다 훨씬 크고 좋았다.

“그래. 무슨 좋은 소식이 있기에, 이 먼 곳까지 찾아 오셨는가?”

“빌, 워렌! 당신들과 기브 앤 테이크를 하고 싶어요.”

“기브 앤 테이크?”

“먼저 빌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빌과 워렌은 운으로 세계적인 부호가 된 사람들이 아니다.

윤재의 진지모드에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당신 친구이자 MS CEO인 스티브 팔머가, 최근 야후(Yahoo)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회사의 주인인지라 빌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도 나름 듣는 귀가 있으니까요. 뭔가 CEO로서 업적이 필요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야후를 50조 가까이 주고 사는 건 미친 짓입니다.”

빌 게이트가 커피를 마시다, 기침을 계속했다.

핵심 기밀인 인수금액까지 맞춰버리자 사래 걸린 것이다.

“검색은 구글에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엉망이고, 포털서비스로 내세우기에는 미국의 인터넷 속도가 받쳐주질 못해요. 그러다 보니 광고수입도 형편없죠. 냉정하게 야후는 10조의 가치도 없는 회사에요.”

빌 게이트는 친구이자 CEO인 스티브 팔머로부터 이미 몇 차례 보고를 받은 바 있다.

50조라는 천문학적인 인수조건을 제시했지만, 야후의 제리 양은 몸값을 더 올리려고 콧방귀를 끼고 있다고 했다.

“50조 날릴 뻔 했는데 살려줬으니, 이 정도면 엄청난 기브(Give) 아닌가요?”

당시 빌 게이트 역시 야후 인수에 적극적인 찬성파였다.

구글을 견제하기 위해, 검색과 포털을 갖고 있는 야후가 너무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훗날 MS의 50조 인수를 거절했던, 야후는 버라이즌에 5조 남짓한 금액에 매각된다.

스티브 팔머가 애타게 제시한 금액의 10분의 1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그때가 되면 빌 게이트는 윤재를 생명의 은인 버금가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조금 충격적이군! 다른 건 몰라도 인수금액은 극비사항인데....”

“긍정적인 전망 말고, 부정적인 레포트도 좀 받아 보세요. BCG, 맥킨지, 베인, 아서앤더슨 등 조언을 해줄 사람들 많잖아요.”

“알았네.”

빌 게이트는 속이 타는지 커피로 목을 축였다.

어쨌든 윤재의 충격요법은 통한 것 같았다.

야후에 꽂힌 콩깍지가 조금은 벗겨진 표정이었다.

이제 워렌 버핀의 차례였다.

“작년에 제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가져올 충격파에 대해 얘기했죠?”

“그랬었지.”

전략적 동반자가 된 이후, 윤재는 워렌 버핀과 아낌없이 의견을 교환했다.

“제 예언대로 베어스턴스는 파산하고 말았어요. 리만과 메릴린치, AIG도 위험합니다. 리만은 파산이 확실하고, 메릴린치 AIG도 위험합니다.”

다시 들어도 충격적인 얘기였다.

더 놀라운 것은 윤재의 예언이 자꾸 현실이 된다는 것.

이 얘기를 처음 듣는 빌 게이트의 충격은 더욱 컸다.

리만 브라더스와 메릴린치 같은 Big 5 투자은행이 파산한다는 얘기에, 빌 게이트는 다시 기침을 해댔다.

“자네 조언 덕분에 서브 프라임 발 금융위기를 무사히 견뎌내고 있어. 고맙네!”

링키드인 지분 투자 때 시작된 인연 덕분에, 워렌버핀은 2007년부터 주식 비중을 현저하게 축소시켰고, 그 덕에 수십조에 달하는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물이 빠지면 누가 빨개 벗고 수영했는지 알 수 있다는 워렌의 말을 저는 좋아해요. 올해 말에 빨개 벗은 회사들을 주워 담을 수 있을 겁니다.”

윤재나 워렌버핀 같은 투자자들에게 위기는 곧 기회였다.

자신과 생각이 너무나 비슷한 젊은이를 보는, 워렌 버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Give에 대한 얘기는 대충 나온 것 같군. 그럼 자네는 무얼 Take 할 것인가?”

윤재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빌과 워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빌! MS에서 받은 50만 달러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어요. 워렌! 어려울 때마다 금전적 지원과 후원해 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빌과 워렌은 윤재의 감사에 손사래를 쳤다.

그럴 만 하기도 했다.

윤재가 2명의 노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투자자에게 최고의 수익률을 안겨 줄 푸드 테크 회사를 기획중이에요. 그런데 아쉽게도 자본력이 달립니다. 빌과 워렌이 투자해 줬으면 좋겠어요.”

빌과 워렌은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 표정이었다.

뭔가 엄청난 요구인지 알았는데, 의외로 너무 쉬운 요청이었다.

이미 그들은 차고 넘칠 정도로, 윤재의 역량을 검증한 사람들이다.

윤재가 세계 최고의 푸드테크를 계획하고 있다면, 도시락을 싸들고 쫒아 다니면서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윤재는 그렇게 자신의 아군 진영을 자꾸 넓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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