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12월 22일 서울 강동의 예식장.
한송이와 배혁민의 결혼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결혼식 30분 전에 예식장에 도착한 윤재.
화장실에서 반가운(?) 인물을 만났다.
소변을 보고 있는데, 누가 윤재 옆 변기로 다가온 것이다.
한 때 윤재의 입사 동기들 사이에서, 고문관으로 유명한 황성호였다.
“여~ 고졸신화! 김윤재 아냐?”
“반갑다. 도박장이 황성호. 밥은 먹고 다니냐?”
“푸핫!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니? 나 이제 완전 손 씻었다.”
개는 똥을 끊지 못하고 오입쟁이는 그 짓을 끊지 못하고, 도박장이는 노름 못 끊는 법이다.
황성호나 오진탁이 참 징글징글한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이 배가 조금 나온 것 같던데?”
“응. 나도 봤다.”
임신 4개월인 상태에서 예식을 올리고 있는 한송이와 배혁민.
요즘 세상에 흉이 될 얘기도 아니었다.
문제는 황성호의 입에서 튀어나온 다음 한 마디였다.
“푸하핫. 혹시 윤재 너 애는 아니지? 송이 고것이 한 때 너 아니면 죽고 못 살았잖아. 컥!”
윤재가 황성호의 멱살을 잡았다.
엄청난 힘과 악력이었다.
두 발이 화장실 바닥을 떠난 채 황성호가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성호야! 우리가 20대 때처럼 싸울 수는 없잖아? 강냉이 다 털린 다음에, 틀니 할 생각 아니면, 입 좀 조심하고 살아라.”
이제는 제법 큰 규모의 회사를 여럿 운영하고 있는 윤재.
황성호 같은 똥은 피하는 게 좋았다.
마음 같아서는 화장실 바닥에 꽂아 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멱살을 놓아주는데 화장실 문 옆 사각지대에 있는, 밀걸레가 눈에 들어왔다.
“컥! 컥! 짜식! 무슨 힘이 이리 쌔! 친구 사이에 농담도 못하냐? 발끈하는 것 보니까, 진짜 송이하고.... 헙!”
윤재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황성호를 제압했다.
오래전에 윤재에게 탈탈 털린 트라우마가 있는 황성호.
눈빛만 봐도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송이랑 혁민이 형 결혼식이잖아. 성호 너 장례식까지 겹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곱게 가자. 응?”
“아. 알았어. 조용히 있을게.”
화장실 문을 나가면서 윤재는 순식간에 밀걸레가 걸려있는 양동이를 걷어찼다.
워낙 스피드가 빠르다 보니, 황성호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철푸덕!
밀걸레가 황성호의 양복 상의를 강타했다.
“아 짜증나! 재수가 없으려니. 내 톰 브라운 양복!”
황성호의 남색 톰 브라운 양복에 누리끼리한 뭔가가 묻어 있는 게 보였다.
◈ ◈ ◈
기념촬영까지 모두 마친 윤재는 오랜만에 뷔페에서 동기들과 식사자리를 가졌다.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냐?”
연수원 시절 같은 조에서 활동했던 조남군이 불만을 터뜨렸다.
그 역시 친 윤재 List에 포함돼 고생 아닌 고생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푸드가 찬밥 신세라지만, 직원 결혼식에 화환도 보내주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대기업 중에 이런 비열한 짓 하는 곳은 우리 회사 밖에 없을 거다.”
오진탁의 비열함이 이 정도였다.
빈데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짓도 서슴지 않고 자행했다.
친 윤재 List에 있는 한송이의 결혼식에 축하화환을 보내지 않으려, 복리후생 규정을 바꿀 정도로 집요한 인간이었다.
“이게 다 노동조합이 없어서 그런다니까! 윤재 너는 어떻게 생각해? 설마 사장됐다고 생각 달라진 거 아니지?”
“야! 윤재한테 괜히 신경질이야? 지난번에 윤재 쪽 회사 만났는데 완전 다르더라. 깜작 놀랐다니까!”
역시 연수원 시절, 같은 조였던 강동호가 끼어 들었다.
그는 베이컨이나 햄, 소시지 등을 주로 생산하는 공장의 구매부서에서 근무했다.
“윤재 회사 중 하나인 52 Farm 알지? 저번에 전남 함평에 있는 52 Farm 공장에 갔다 왔거든.”
“52 Farm이 요즘 Hot 하긴 하지.”
아무래도 식품회사다 보니, 다들 52 Farm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업계에서 52 Farm의 농산물과 고기는 웰빙으로 유명했다.
“거기 직원들 만족도가 장난 아니더라. 살짝 과장하면 CEO와 윤재를 거의 신처럼 믿는 분위기야!”
“정말? 대체 뭘 했기에 그 정도지?”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이 일제히 윤재를 바라봤다.
동경과 선망의 눈빛이 가득 차 있었다.
“그 공장이 하몽과 소시지를 주로 만드는 공장이거든.”
스페인 알리멘따리아 박람회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52 Farm.
2004년 말에 함평에 공장을 설립했고, 발효와 숙성에 2년 가까이 걸리는 하몽 시제품이 막 출시되고 있었다.
“와! 대단하네. 우리나라에서 하몽을 만들고 있었어?”
다시 동기들의 시선이 윤재에게 쏠렸다.
윤재의 참전을 바라는 눈빛들이었다.
“건강하게 키운 돼지. 52Farm 직원들의 노하우. 거기다 서해안의 천일염이 만난 제품이야. 나도 몇 번 먹어봤는데, 스페인 하몽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이야~ 정말 대단하다.”
윤재의 얘기에 동기들이 진심 부러운 표정이 됐다.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황성호만, 똥 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함평공장 직원이 그러더군. 냉장실에서 주로 근무하니까 항상 춥고, 손도 곱는다는 거야. 그런데 공장 내부에 바닷물을 끌어다 해수탕을 만들어 줬다는 거야. 직원들 퇴근하기 전에 몸을 따듯하게 만든 뒤 퇴근하라고 했다던가?”
“우와~ 완전 저 세상 복리후생이네!”
“그니까! 완전 맞춤형 복지네!”
동기들이 또 윤재를 바라봤다.
“하하하. 내가 한 건 아니고. 거기 CEO가 한 일이지. 하몽이나 소시지를 취급하다 보면 냄새가 많이 나잖아. 마침 공장도 바다 근처이다 보니, 해수탕을 만들게 됐다고 하더라.”
“우와...”
동기들은 저절로 박수를 쳤다.
옹졸한 복수심 때문에, 직원의 결혼식에 화한 하나 보내지 않는 오진탁과 극명하게 비교됐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윤재야! 진짜 하몽 4Kg에 100만원 넘어?”
“응. 중국과 일본에 거의 전량 수출하고 있거든. 슬라이스 형 완제품으로 수출하고 있어서 좀 다르긴 한데, Kg으로 따지면 4Kg에 그 정도 가격 나가지.”
“미쳤다! 돼지 뒷다리 10Kg에 5,000원도 안 나가잖아?”
“응. 10Kg 뒷다리를 2년간 숙성, 발효시키면 3.5 ~ 4Kg으로 줄어들어. 하지만 원가의 20배 정도에 팔리니까,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거지.”
구제역 문제로 해외 수출길이 막힌 국내산 돼지.
삼겹살과 목살, 앞다리 살은 인기 부위라 국내에서 전량 소비할 수 있다.
하지만 뒷다리 살과 등심은 사용처가 없어 냉동고에서 2년 보관한 뒤, 구매자가 나오지 않으면 전량폐기 되는 신세였다.
“대부분의 뒷다리 살이 냉동고에서 2년 있다가 폐기되지만, 우리 52Farm은 똑같은 2년을 다르게 쓰고 있는 거야. 물론 2년 동안 거기 직원들이 엄청 고생해. 그냥 뒷다리 살 걸어 놓는다고 하몽이 되는 건 아니거든.”
염장. 근육과 피 제거. 세척. 숙성. 1차~2차 발효 등.
10kg이 넘은 뒷다리 살을 하몽으로 만드는 과정은 엄청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다.
“윤재 말대로야. HACCP인증도 받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에서도 적격판정을 받았대. 함평 52 Farm 가면 중국사람, 일본사람 자주 만날 수 있어. 말 그대로 ‘줄을 서시오’지 뭐야!”
동기 강동호 덕분에 대화의 주제가 52 Farm이 돼 버렸다.
“전국 농과대 출신들이 정부산하기관 다음으로 좋아하는 직장이 52 Farm이라던데?”
“나야 거기까지는 모르지만, 요즘 형편이 좀 나아지긴 한 모양이더라. 만년 적자사업장이었는데, 최근에 적자폭이 많이 줄어들긴 했어.”
“와! 진짜 윤재 너 대단하다. 대단해!”
“하하하. 내가 한 게 아니라, 거기 CEO가 한 거라니까.”
“니가 최대주주라며?”
“응. 그렇긴 한데... 경영은 CEO가 하는 거라.”
윤재는 겸손을 표했지만, 동기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52 Corp의 관련 회사들 전체가 업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실제 52 Farm도 최근 상황이 계속 좋아지고 있었다.
회사가 세운 가이드라인에 동의한 농가들을 회원사로 받아들이며 사세를 키워나갔다.
건강한 식자재. 철저한 방역. 함평공장의 해수탕 같은 맞춤형 복지. 스마트 Farm 등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했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래서 대빵이 중요하다니까. 우리는 오진탁 그 인간 때문에 언제까지 찬바람 맞으며 살아야 하는 거니? 답답하다. 답답해!”
동기들의 마음이 요동치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윤재와 52Corp의 성공에 부러움을 느꼈고, 오진탁과 회사의 현실에는 절망감이 교차했다.
“근데 아까부터 약간 구린 냄새 나지 않아? 똥냄새 같은 거 말이야!”
황성호 옆에 앉아 있던 조남군의 얘기에 시선이 그 쪽으로 쏠렸다.
“남군이 너만 느낀 게 아니구나. 나도 아까부터 똥냄새가 나서 자꾸 거슬렸거든.”
이젠 다들 황성호와 그의 양복상의를 바라봤다.
화장실에서 닦는다고 닦았지만 여전히 황성호의 톰브라운 재킷에 누리끼리한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 ◈ ◈
한송이 백현민 커플이 한복으로 갈아입고 뷔페로 찾아왔다.
결혼축하가 메인이었지만, 오진탁과 윤재에 대한 얘기 역시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태우건설 때문에 회사 거덜나게 생긴 판국에, 한국통운 인수라니. 우리 회사 M&A하다 망하는 거 아니냐?”
“한국통운 자체야 좋은 회사지. 문제는 태우건설 주가하락이야. 오진탁 사장이 바이아웃 옵션가를 32,000원으로 해 줬잖아.”
“맞아. 건설업종들 연일 폭락인데... 큰 일 났다. 큰 일 났어!”
지난달 O2그룹은 국내 최고의 육상운송 회사인 한국통운의 인수자로 선정됐다.
태우건설 때와 똑같은 패턴이었다.
윤재를 포함해서 국내외에서 10곳 가까운 업체들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고, 오진탁은 닥치고 인수 신공을 펼쳤다.
그 덕에 2위와 1천억 차이 나는 금액으로 한국통운을 품을 수 있었다.
태우건설과 한국통운 인수에 10조 넘은 베팅을 한 것이다.
“주식가격이 가장 정직하다고 보면 돼. 우리 그룹 주가 연일 떡락하고 있잖아.”
“맞아. 승자의 저주라고 난리도 아니더라.”
결혼식장인지 오진탁 성토대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윤재는 신혼부부에게 너무 어두운 얘기만 해주고 싶지 않았다.
“자! 우리 송이랑 혁민이형 결혼인데 좋은 얘기 합시다.”
윤재의 노력한 덕에, 간신히 오진탁 성토대회가 끝났다.
신혼살림집. 신혼여행지. 2세 계획 등으로 화제가 전환될 수 있었다.
“윤재 오빠! 나 신혼여행 갔다 와서 52 Cafe 좀 찾아갈 생각인데. 괜찮지?”
“왜 무슨 일 있어?”
“응. 나도 오빠네 회사 커피 애호가거든. 요새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연구소에서 커피 연구하고 있거든.”
O2 푸드에 대한 홀대로, 연구소 직원들의 신제품 연구는 몇 년째 올 스톱 상태였다.
업계 1위로 신시장을 개척하던 O2 푸드의 위상과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52 Cafe 시그니처 음료인, 아이스 큐브 돌체 라떼를 실험실에서 추출해 봤거든!”
한송이가 말하는 추출은 에스프레소도, 드립도, 콜드브루도 아닌 분자추출이었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아큐돌라(젊은이들은 아이스 큐브 돌체 라떼를 이렇게 불렀다)를 슈퍼나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다는 얘기야. 52 카페에 가지 않고도 아큐돌라를 마실 수 있는 거지.”
아큐돌라를 공산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내 입 맛에는 맛과 향이, 아큐돌라랑 똑 같더라.”
“야~ 좋은 생각이네. 신혼여행 빨리 다녀와야겠는 걸?”
동기들이 술렁거렸다.
윤재는 자신이 스타트 업의 대표였지만, 유명한 벤처 캐피탈 중의 한명이기도 했다.
“송이 너 잘 돼서 대박치는 거 아냐?”
“맞아. 윤재네 회사에 아이디어 상품으로 로열티 받는 사람들이 꽤 있다던데.”
사람들이 다시 윤재를 바라봤다.
성공 가능성을 묻고 있는 것이다.
“회사 내부든 외부든 괜찮은 아이디어라면, 내가 직접 투자하기도 하고 벤처 캐피탈을 소개해 주기도 해! 성공사례는 제법 많은 편이야. 연간 억대 로열티를 받는 사람도 있으니까!”
윤재의 얘기는 모두 팩트였다.
이미 테헤란로와 분당에서 윤재는 벤처 업계의 허브로 불리우고 있었다.
그때 똥 묻은 재킷의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재야! 그럼 나도 아이디어 있으면, 너한테 투자 받을 수 있니?”
“물론이지. 나는 아이디어를 볼 뿐이야. 사람은 보지 않아! 성호 너도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얼마든지 찾아와라!”
똥 묻은 재킷의 주인공이 괜찮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올 확률은, 똥개가 똥을 끊을 확률만큼이나 희박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