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광고판
2007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해 윤재는 O2 시절 동료였던 조영우 팀장과 오나영 팀장을 만났다.
장동석을 포함한 광주 멤버들.
한송이, 백현민 같은 동기들과 윤재는 지속적인 접촉을 유지해 왔다.
“두 분 팀장님은 제게 스승님 이십니다.”
윤재는 조영우와 오나영에게 카네이션과,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뭔지 모를 복잡한 심정이네.”
조영우와 오나영이 동시에 멋쩍게 웃었다.
“왜요?”
“시총 1조가 넘는 52 카페의 대주주이자, 잘 나가는 52 소프트의 대표인데 우리를 스승이라고 하니까 그렇지.”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오진탁의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O2 푸드는 찬밥신세인데 반해, 윤재의 승승장구는 끝없이 이어졌다.
카페. 소프트. 피자. F&B까지 줄줄이 히트를 친 덕에, 윤재는 O2 푸드에서 스타 대우를 받고 있었다.
“윤재야! 이건 뭐니?”
오나영이 어색한 침묵을 깨며 물었다.
선물상자의 내용물이 뭔지 궁금해서가 아니라, 어색함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저희 회사에서 만든 어묵 선물 셋트입니다.”
“어묵 선물 셋트?”
오나영이 선물포장을 뜯었다.
그 안에 어묵 베이커리 ‘새참’의 인기 어묵 30가지가 예쁘게 담겨 있었다.
“어머! 진짜 곱기도 해라. 이게 요즘 52 F&B 홈페이지 마비시킨다는 그 세트구나?”
“네. 팀장님! 애들 튀겨 주면 아마 좋아할 겁니다.”
대전 1호점에 이어, 준비해 둔 서울 2호점이 개업했을 무렵.
어묵 베이커리에 대한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오나영의 얘기처럼 52 F&B의 어묵 세트는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중이었다.
강대용 같은 칼럼니스트와 기자들이 앞 다퉈 기사를 써줬고, 네티즌들은 카페 같은 곳에서 활동하며 홍보요원을 자처하고 있었다.
“갑자기 답답하다.”
조영우는 갑자기 입맛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윤재 네가 삼오어묵을 기가 막히게 어시스트 해 줬는데, 오진탁 부사장이 똥 볼을 차 버린 격이니!”
오나영도 그 부분이 쓰라리기는 마찬가지.
“윤재씨 폄하하는 건 아니고, 52 F&B는 어쨌든 중소기업이잖아. 그 쪽으로 간 숙련노동자들도 원래는 우리 소속이었고.... 복을 발로 걷어 찬 거지 뭐.”
“물론 우리가 어묵 베이커리 같은 발상의 전환을 하지는 못했지. 그건 인정해!”
윤재와 좋은 의도로 만나고 있지만 최근의 O2 푸드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조영우와 오나영은 그 부분이 안타깝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윤재 너한테는 미안하다만, 우리 신사업 부문에서 어묵 베이커리 시장 진출을 건의했다. 일종의 Me Too 전략인 거지. 우리는 자금력과 유통망이 있으니까, 52 F&B보다 먼저 전국화를 해버리자. 그럼 우리가 어묵 베이커리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말이야.”
“조팀장님 팀에서 건의했는데 보기 좋게 까였지 뭐야.”
신사업부문은 물론이고 O2 푸드 전체가 마찬가지였다.
O2푸드는 완전히 오진탁의 눈 밖에 났고, 그 덕에 일을 진척시키지 못했다.
윤재가 회사를 떠난 지 만 3년이 넘었지만, O2 푸드가 내놓은 신상품이나 서비스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신사업부문은 부문이 공중 분해될 지경이었다.
“요새 오진탁 부사장이 얼마나 기고만장한지 몰라.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갔다니까!”
“50년 넘은 우리 회사보다, 작년에 인수한 태우건설을 더 인정해주니. 이건 뭐 의욕 떠....”
조영우는 차마 ‘의욕 떨어져 회사 다니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한참 후배인 윤재에게 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오재준 회장님 건강은 좀 어떻다고 하던가요?”
2006년 제주도에서 골프를 하다가 쓰러진 것으로 알려진 오재준 회장.
지병에 뇌출혈이 겹쳐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룹 승계 1순위인 오진탁이 경영을 위임받았다는 것 외에, 세간에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었다.
“회장님 가신들은 철저히 배제된 상태라, 가족과 미래전략실 핵심 팀장들 외에, 회장님 동태를 아는 사람이 없는 형편이다.”
“그룹 경영위원들도 회장님 공백이 길어지다 보니, 오진탁 부사장 눈치보고 있다는 소문이야.”
아이러니가 따로 없었다.
오재준 회장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큰 아들 이건만, 오재준 공백의 가장 큰 수혜자가 오진탁이었다.
“3개월에 한 번은 만나야 하는데, 시간 내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네요.”
“윤재씨! 우린 괜찮아. 자기가 하는 일이 어디 한 두 가지인가? 잊지 않고 찾아준 것만 해도 고맙지.”
“그래. 오늘 우리가 시간 너무 많이 뺐었다. 다음 모임 때 만나자. 그때는 신사업부문원들 더 많이 데리고 오마.”
윤재와 헤어진 뒤, 조영우의 차로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
조영우와 오나영은 쓸쓸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눴다.
“이러다가 인재들은 다 빠져나가고, 회사에 쭉쟁이들만 남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암흑기가 길어지면 너무 길어지면 안 되는데. 당장 젊은 직원들 동요가 많은 모양이에요.”
실제 대학 졸업생들의 O2 푸드에 대한 입사선호도가 떨어지고, 젊은 직원들의 이직률은 높아지는 악순환이 시작되고 있었다.
“인수한 삼오어묵의 숙련노동자들보다 더한 인재를 잃었으니....”
“어쩌면 윤재한테는 회사 그만둔 게 다행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회사 그만두더니 펄펄 날아다니잖습니까?”
“조팀장님! 팀장님이나 저나 회사 덕 많이 봤지 않습니까? 우리라도 정신 차리고, 다시 회사를 살아 숨 쉬는 조직으로 만들어 보죠?”
“그럼요. 저희가 다닐 회사이고, 우리 후배들이 앞으로 20년 30년 다닐 회사 아닌가요? 저는 절대 회사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하하핫. 제가 이래서 조팀장님을 좋아 한다니까요.”
위기가 닥치면 사람의 진면목이 보인다고 했다.
앞으로 불어 닥칠 O2푸드와 그룹차원의 위기.
장동석. 조영우, 오나영 같은 사람들이 버티고 있다는 것은, O2푸드와 오재준 회장에게 큰 축복이었다.
◈ ◈ ◈
태우건설을 품에 안은 O2 미래전략실.
최근 몇 달은 오진탁이 가장 자신감 넘치고, 파이팅 넘치는 시기였다.
“것 봐! 내가 된다고 했잖아. 1분기도 영업이익이 1천억을 돌파했어.”
“부사장님은 단순한 오너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십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런 소리 하던 사람들 입이 쏙 들어가겠군요.”
“와하핫! 최팀장 자기 말 잘 하네. 어떻게 내 기분에 쏙 드는 말만 골라서 하나?”
“저는 부사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 딸랑!”
회의석상이나 기분이 나쁠 때, 이런 노골적인 아부를 하다가는 찍히기 십상.
하지만 요즘 오진탁의 기분은 최고조였다.
원래 싫은 소리를 잘 못 듣는 성미이기도 했다.
‘아버지 보고 계십니까? 혼자서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룹을 매출 100조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키고, 당당하게 오성과 경쟁하겠습니다. 오성그룹의 적손이 저희 집안임을, 제가 입증해 보이고 말겠습니다.’
본래 산업재 시장 진출을 통한 그룹의 성장을 꿈꿔왔던 오진탁이다.
그는 태우건설 인수 성공 후, M&A를 통한 성장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태우건설 주가가 처음으로 3만원을 돌파했어. 창립 30년 넘도록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지.”
“그렇습니다. 재무적 투자자에게 약속한 바이아웃 금액을 맞추고 있습니다. 가장 큰 Risk를 해소한 것입니다.”
6조를 훨씬 넘게 인수했기에, O2는 무리수를 남발했었다.
일부 재무적 투자자에게는 연 8% 이익을 보장했고, 일부 투자자의 지분은 3만원에 O2가 되사주는 바이아웃 옵션 조항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가능성 1도 없는 얘기 그만하고, 태우건설 광고 얘기나 좀 합시다. 오성 내미안. NS 차이. 형제건설 힐스테이션을 넘어서야 하지 않겠소?”
IMF를 지나며 그룹 해체를 겪은 태우그룹.
그 여파로 국내 아파트 브랜드 순위에서 뒤쳐져 있었다.
브랜드 평판이라는 게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거늘.
오진탁은 광고 한 번 잘하면, 아파트의 값어치가 껑충 뛰어 오른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오하루 실장에게 국내 톱클래스 여배우를 섭외하도록 지시하시오.”
“알겠습니다.”
O2 엔터테인먼트에서 활약 중인 오하루는 2007년 인사에서 실장(상무보)으로 승진했다.
그녀는 여전히 대내외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광고 모델료도 탑클래스 플러스 알파로 지급하면 될 겁니다. 그리고 말 잘 듣는 애로!”
“알겠습니다. 부사장님!”
아버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오진탁.
최근 들어 억눌러 왔던 그의 본능과 습관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엔터 계열사에 측근을 심어놓고, 힘없는 신인 연예인을 별장에 들인다는 소문이었다.
◈ ◈ ◈
같은 시기.
윤재는 52 소프트 분당 사무실에서 최동진 실장, 박준 영업팀장과 얘기를 나눴다.
“마케팅 부문장이요?”
“네. 사장님! 회사가 제법 커졌습니다. 영업. 광고 등을 총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적임자를 찾아 주십시오. 사내 진급을 1순위로 하되, 마땅한 사람 없으면 외부에서 영입하는 걸로 하시죠.”
내부 승진으로 결정되면 1순위는 박준 영업팀장이었다.
능력 있고 성실한 친구였다.
“나모애드에 절친이 있는데, 저희 광고를 수주하고 싶다고 자꾸 연락 옵니다.”
나모애드는 대기업 계열사를 제외하면, 국내 최고의 광고 대행사 중의 하나였다.
“제 친구가 오이 메신저를 자주 쓰고 있다고 합니다. 채터의 광팬이기도 하구요. 자기한테 맡기면 인지도가 급상승 할 거라고 하더군요.”
“박준 팀장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광고도 좋아하지 않지만, 나모애드는 조금 불편합니다.”
나모애드의 대표적인 광고들은 모두 톱스타가 출연하는 광고들.
연예인을 홍보하는 것인지, 제품과 서비스를 홍보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광고들이 많았다.
‘얼굴도 못생긴 게 잘난 척 하기는!’
유명 개그맨의 유행어를 광고에 차용했는데, 기억에 남는 건 유행어와 개그맨의 얼굴뿐이었던 광고도 있었다.
“이미 회사는 충분히 대중들에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는데 말이죠.”
해운대의 대관람차 Vast Eye.
52 F&B의 히트상품 새참만두 시리즈와 어묵 베이커리.
국회의장이 줄서서 먹는다는 피쩨리아.
2007년 1월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때에도, 52 Farm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제 52 Farm은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건강한 먹거리’로 자리 잡아 가는 중이었다.
TV. 인터넷. 신문 등 어떤 광고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 52 Corp의 계열사 이름 하나 들어보지 않은 시민들은 없을 정도였다.
“우리에겐 LPGA대회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지은 프로가 있습니다. 그녀는 움직이는 광고판이죠. 다들 에밀리 캠벨 아시죠? 작년 해운대 Vast Eye 축하공연 대박 났잖습니까? 에밀리의 행보에 52 Corp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피겨 요정 김현아. 마린보이 박태완 다들 아시죠?”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청춘스타인데 모르면 간첩이죠!”
“제가 우연히 김현아 선수와 박태완 선수 출정한 방송을 봤습니다. 경기 끝나고 퇴근하는 2명의 선수들 손에, 52 Cafe의 텀블러가 들려 있더군요. 저희 52로고가 아주 큼지막하게 클로즈업 됐습니다.”
“정말요? 김현아, 박태완 2명 모두 52 카페 텀블러를 이용한다 구요?”
“네. 인터넷 검색해 보세요. 쉽게 볼 수 있을 겁니다.”
박준과 최동진은 윤재가 의도하는 바를 알아챘다.
수억 원을 주고 광고하는 것보다, 생활 속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녹여내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 윤재의 스타일이었다.
김현아. 박태완 같은 핵인싸들이 자발적으로 들고 다니는 제품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 오이 메신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광고해서 잘 나가는 것이 아니에요. 제품 자체가 경쟁력이 있으니, 유저들이 알아서 소문을 내주지 않습니까?”
돌이켜 보면 윤재가 관여된 회사들의 제품과 서비스는 모두 그런 방식으로 작동했다.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 출시.
유저들의 폭발적인 반응.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내주는 사람들과 인플루언서.
“물론 필요하면 광고도 하고, 마케팅 비용도 지출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더 근원적인 것에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거 아시죠? 소비자들은 자기들이 지출하는 돈보다 더 큰 효용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자발적인 광고 대행사가 됩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나모애드가 워낙 잘 나가는 회사다 보니, 제가 잠시 본질을 놓쳤습니다.”
오이 메신저를 TV로 광고하는 안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이지은 프로. 에밀리 캠벨. 조혜진과 김선희. 안수애 아나운서. ‘리스타트’ 매거진의 변동혁과 ‘맛과멋’의 나대용에 이르기까지.
52 Corp를 빛내줄 셀럽들은 이미 넘쳐났다.
또 하나의 중요한 셀럽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어느새 4년차.
카페. 피자. 스타트 업 등 숱한 성공신화를 써 나가고 있는 윤재 자신의 인기가 치솟았다.
최근 들어 TV, 신문, 잡지 등에 자연스럽게 노출빈도를 늘려가는 윤재.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윤재 자신이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변신해 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