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마켓 시대를 준비하자.
대전 둔산동 번화가에 입점한 어묵 베이커리 1호점.
개업 1개월 만에 1일 매출 180만원을 기록했다.
더 고무적인 것은 매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매장은 직원들에게 맡기셔도 충분할 것 같네요.”
“네. 사장님! 저도 기쁜 마음으로 충주로 올라가겠습니다.”
어묵 베이커리의 컨셉부터 메뉴, 인테리어, 직원배치 등에 이르기까지, 윤재와 서영호는 지난 18개월 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1호점 개점 이후 서영호는 일주일에 3일은, 매장에서 고객들을 직접 만나며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일을 진행했다.
엄청나게 타이트한 일정이었다.
“오늘 아침 사장님 예언대로 갤러리 백화점에서 새참을 찾아왔습니다.”
윤재의 예측은 이번에도 한 치 오차 없이 적중했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전국 백화점 푸드 코너에 어묵 베이커리 입점을 제안 하더군요. 자기네 백화점과 독점 계약을 하자는 것 역시 사장님 예측대로였습니다.”
“거절하셨죠?”
“네. 사장님! 일단 거절했습니다. 매장운영하기도 바쁘고, 2호점 출점 준비하느라 정신없다고 둘러 댔습니다.”
“하하하. 잘 하셨습니다.”
둔산동 갤러리 백화점 코앞에 위치한 1호점.
트렌드에 민감한 백화점답게, 어묵 베이커리의 성공 가능성을 눈치 챈 것이다.
하지만 이제 사업 초창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묵 베이커리의 인기는 올라간다.
기다리면 뉴월드. 형제. 로테 등 백화점들이 몸이 달아 찾아올 것이었다.
몸값이 오른 상태에서 협상을 하면 제 값 받기가 수월해 지는 법이다.
그때가 되면 전국 백화점 푸드 코너에서, 어묵 베이커리를 보게 될 것이었다.
“서영호 사장님!”
“네?”
“그동안 너무 무리하셨어요. 일주일만 좀 쉬셔요. 제발 부탁입니다.”
52 Corp에 다양한 회사들과 수많은 직원들이 있지만, 서영호는 52 소프트 미국지점의 나란희와 더불어 워커홀릭으로 쌍벽을 이뤘다.
“쉴 때 편하게 쉬고, 놀 때 재미나게 놀고, 맛있는 것 사먹고, 좋은데 구경 가고... 뭐 그러려고 일 하는 거 아닙니까? 형수님이랑 연애도 좀 하시구요. 다음 주 한 달은 남쪽으로 벚꽃구경이라도 다녀오세요. 아셨죠? 부탁드릴 때 좀 쉬세요. 그러지 않으면 명령을 내리게 될 겁니다.”
“하핫. 알겠습니다. 사장님! 며칠 머리 좀 식히고 오겠습니다.”
윤재는 보통의 대주주와 다른 존재.
그 자신이 사실상 경영을 함께 하는 파트너 같은 주주였다.
때문에 그의 한마디에 묵직한 힘이 실리는 것이었다.
서영호는 며칠이나마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하게 될 것이었다.
“김 사장님! 깜박 잊을 뻔 했습니다. 어제 월간지 맛과 멋에 푸드 칼럼니스트 강대용씨가 어묵 베이커리에 대한 칼럼을 쓰셨습니다. 잡지는 우편으로 보내드리고, 홈페이지 칼럼은 사장님께 포워드 해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그 양반 독설로 유명한 사람인데, 저희를 어찌 평가하셨을지 궁금하긴 하군요.”
“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휴가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서영호와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윤재는 서영호가 메일로 보내준, 월간지 맛과 멋의 칼럼을 읽기 시작했다.
-겨울이면 동네 어귀의 포장마차에서 어묵꼬치를 먹었던 기억.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그런 기억이 있을 겁니다.
강대용의 칼럼은 대표적인 서민들의 길거리 음식인, 어묵에 대한 추억을 회상시키며 시작했다.
평소 맘에 들지 않은 음식점이나, 요리에 대해서 혹평을 서슴지 않는 푸드 칼럼니스트 강대용.
그가 쓴 칼럼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호평일색이었다.
최근에 대전에 1호점을 개업한, 어묵 베이커리 ‘새참’을 아십니까? 고추말이 어묵. 감자어묵. 김말이 어묵. 핫도그 모양의 꼬치 어묵에서부터, 시그니처 메뉴인 어묵 고로케까지. 어묵 베이커리 새참에는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는 40여 가지의 어묵들이, 예쁘게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식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칼럼니스트답게, 그의 글과 사진은 독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맛과 멋이라는 우리 잡지에, 잘 어울리는 음식이 어묵 베이커리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싸구려 음식 취급받던 어묵을, 고급 음식으로 격상시킨 발상의 전환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강대용은 무려 6 페이지에 걸쳐 어묵 베이커리에 대한 찬사를 늘어놨다.
그의 칼럼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 혁명보다 어려운 게 혁신이라는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어묵이라는 낡은 음식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해 베이커리를 차린 52 F&B! 저는 대전 어묵 베이커리 1호점에서, 따듯하게 튀겨준 어묵들을 먹으며, 이들이 한국 요식업계의 새로운 혁신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 ◈
서영호 사장과 통화를 끝내고 윤재는 52 소프트 경영진과 회의를 가졌다.
매주 1회 열리는 간부진 회의 시간이었다.
52 소프트를 설립한지 어느덧 3년.
그동안 글로벌 마인드를 강조한 덕에, 52 소프트의 전 직원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됐다.
“ESPT(영어말하기 자격시험) 이번에 500점 넘은 직원들 누구누구죠?”
“네. 작년 12월 시험에서 허민영 사원을 포함해, 25명의 직원들이 500점을 넘겼습니다.”
“잘 됐네요. 최실장님! 500점 커트라인 통과한 직원들 포상방안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기존 포상 안을 기준으로, 준비해 보겠습니다.”
52 소프트는 설립 초기부터 영어를 강조했다.
무작정 공부만 하라는 것도 아니었다.
전화 영어 비용이나, 학원 수강료 등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리고 ESPT나 토익 같은 시험의 기준치를 충족시키면, 기대이상의 포상을 실시했다.
윤재가 사대주의에 쩌든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프로그램 언어는 영어 기반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영어 때문에 다들 얼마나 불만 많았습니까?”
“그러게요. 다들 2년 정도 정말 힘 들었죠. 그런데 해보니 알겠더군요. 왜 사장님께서 영어를 강조하셨는지 말입니다.”
한국 시장만이 52 소프트의 무대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윤재의 오랜 지론.
최근에는 52 소프트 직원들이 작성한 보고서 템플릿을, 받아 보고 싶다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라, 그 동안의 직원들의 고생과 노력이 축적된 결과였다.
영어 점수 미달자들의 합격 소식에서 시작된, 직원들 처우 개선 문제 등에 대한 얘기가 1시간 정도 이어졌다.
사내 문제에 대한 논의가 끝나고,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요즘 채터(chatter)는 어떻습니까?”
“서비스 6개월째인데 마니아는 제법 생겼지만, 대중화에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마니아층이 생겼다는 것은 고무적 소식이군요.”
채터는 소위 말하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152글자만 허용되는 단문 SNS 였다.
‘재잘 거리다’는 뜻처럼 쉽고, 간편하게 생각과 일상을 공유하는 서비스였다.
“페이스 북이 에세이 개념이라면, 채터는 쪽지나 포스트잇을 주고받는 컨셉입니다. 유지비용 걱정 마시고, 서버 지속적으로 증설하십시오. UI도 사용자 친화적으로 계속 업그레이드 해 주시구요.”
“알겠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윤재가 강조할 포인트는 모바일 시대를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2007년 1세대 하이폰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빅애플의 하이폰 발표 어떻게 보셨습니까?”
2007년 1월 빅애플의 키노트를, 인터넷에서 찾아볼 것을 주문한 상태.
그에 대한 감상평을 공유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미국에 산 경험이 있고, 개발경력이 가장 오래된 홍도현이 먼저 답했다.
“스티브 홉스 스스로 1천만대의 하이폰을 팔겠다고 했습니다. 시장 영향은 미미하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홍도현 이사 역시 하이폰의 파급력을 정확히 꿰뚫어 보지 못했다.
하긴 MS의 스티브 팔머 같은 사람은, 하이폰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던 시절에도 그 파급력을 애써 무시했을 정도였다.
“허수정 팀장! 디자이너 입장에서 바라본 하이폰에 대한 소견 얘기해 보세요.”
“MP3 하이팟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던 아이브의 미니멀리즘 정신이 잘 묻어난 디자인이라 생각합니다.”
디자인 감각을 타고난 허수정의 평가가 조금 다를 뿐, 다른 직원들의 반응은 홍도현과 비슷한 것이었다.
“내년 하이폰 2세대 모델이 나오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핸드폰 시장은 스마트 폰 시장으로 급속도로 재편될 겁니다.”
이제 오늘 회의의 주 목적을 논의할 차례였다.
특히 모바일은 승자독식의 시장.
먼저 준비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제가 빅애플의 CEO라면 스마트폰을 플랫폼으로 이용할 겁니다.”
“플랫폼이요?”
“MS오피스. 각종 게임. 사진 편집도구. 날씨. SNS 등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장터에서 구입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려면, 회사의 개별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운로드를 받거나 CD를 구입해 PC에 깔던 시절이었다.
“만약 가능하게 된다면? 소프트웨어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겠죠?”
“!!”
윤재의 얘기와 같은 세상이 도래한다면, 파급력은 무시무시한 수준이 될 것이었다.
“올해 여름이면 하이폰 1세대 실물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지사에 구입을 지시했어요. 여기 계시는 경영진과, 개발자들에게 나눠드릴 계획입니다. 물론 목적이 있어서 하는 일이지요.”
“?”
“먼저 저희의 서비스 들을 모바일 버전으로 컨버전 하는 겁니다. 아울러 모바일 용 소프트웨어와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윈도우 PC 중심의 서비스를 해온 52 소프트에게 모바일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원들의 표정에 ‘이제 다 죽었다!’ 와 같은 표정들이 스쳐지나갔다.
“오이 메신저. 52 Cafe. 부산 Vast Eye. 52 피자. 52 골프. 산타 수학과 산타 영어. 채터. 레이버후드(Laborhood) 등 우리가 서비스하고 있는, 모든 소프트웨어와 페이지를 모바일 버전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꿀꺽!”
다들 놀란 얼굴로 마른 침을 삼켰다.
원래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와, 업계 최고 수준의 노동강도를 자랑하는 52 소프트였다.
윤재가 뭔가를 몰아 칠 때면, 노동강도가 훨씬 빡쌔진다는 것을 다들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늦어도 2008년이면 앱 마켓 시대가 도래 합니다. 저희는 분명 작지만, 우리만큼 준비된 회사도 드뭅니다. 모바일 시대의 강자는 우리가 될 것입니다.”
회의를 마무리하기 직전 윤재는 홍도현과 최동진을 불렀다.
“네. 사장님.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5명짜리 프로젝트 팀이 필요합니다. 필요하면 충원을 해서라도, 개발팀 꾸려 주십시오.”
“새로운 서비스 기획하고 계신가 보군요?”
“채터나 페이스 북과는 또 다른 SNS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사진과 짧은 동영상 등을 함께 공유하는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페이스 북이나 채터도 사진, 동영상 공유 가능합니다만....”
“조금 달라요. 텍스트 위주가 아니라, 사진이 위주가 되는 서비스가 될 겁니다. 이름도 생각해 뒀어요. 가칭 스타그램입니다.”
“스타그램이요?”
“인스턴트 카메라 텔레그램을 섞은 이름입니다. 뭐로 할까 고민하다 스타그램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유명한 셀럽들이 우리가 만들 스타그램을 이용한다면, 서비스의 성공은 의외로 쉬워질 수 있습니다.”
“조금은 감이 오는군요.”
52 소프트가 개발하는 서비스는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푸드 테크의 성공을 위해 지속적으로 함께 성장해 가야할 서비스.
오이 메신저. 카페. 피자. 어묵 베이커리나 만두. 52 Farm 과 관련된 서비스가 이 영역에 속했다.
두 번째는 완성도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 재빠르게 엑시트 할 서비스.
윤재가 투자한 링키드인이나 유튜브. 레이버후드. 채터. 스타그램 같은 서비스들이었다.
엑시트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그 돈으로 푸드 테크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생각이었다.
스타트 업을 통한 푸드 테크의 선순환 구조의, 한 축을 52 소프트의 서비스 개발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야후! MS! 마크 저커버그. 손정의 등. 우리의 서비스를 비싼 값에 사주기 위해, 돈 보따리를 싸들고 찾아오게 될 것이다.’
빅애플과 구글 안드로이드의 앱 마켓 플레이스 시대가 멀지 않았다.
52 소프트의 몇몇 서비스는 말 그대로 황금 알을 낳는 거의가 돼 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