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66화 (166/196)

울산어묵의 대변신

2007년 2월 24일 중국 상하이 지수가 8% 넘게 폭락했다.

24일부터 25일까지 아시아는 물론, 세계 증시가 동반 하락했다.

당국이 주식시장에 몰려드는 투기자금에 대해 단속할 수 있다는 루머가 퍼지며, 투매가 이뤄진 탓이었다.

“형님! 이젠 뭐 놀랍지도 않아! 진짜 나 모르게 어디에 타임머신 숨겨 놓은 거 아냐?”

남창진이 혀를 내두르며 얘기했다.

매일매일 주가를 맞추지는 않아도, 연간단위로는 완벽에 가까운 예측을 해내는 윤재.

이미 윤재는 창진에게 신앙의 대상이었다.

“어떻게 알았니? 나 사실 미래에서 왔고, 과거를 맘대로 오간다.”

“헐... 이! 형! 진짜였어.”

“어제는 7년 전 과거로 돌아갔다 왔거든. 너 완전 백화점 수신호 알바 중에서 호구.찐따.진상이더라.”

“크윽. 이 형이 아픈 곳을 찌르네......”

“하하하. 걱정 마. 내가 7년 뒤 미래도 보고 왔거든. 너 미래에는 완전 용 돼 있어. 펜트 하우스에 살고, 벤틀리 타고 마트에 물건 사러 다니더라. 목포에 요트도 정박시켜 놓고 살던 걸?”

“크하하하. 생각만 해도 즐겁네.”

중국발 주가 폭락으로 증권사와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 있었지만, 윤재와 창진은 이렇게 웃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근무 시간 중에 사무실을 빠져나와, 망중한을 즐기는 중이다.

“올해와 내년은 쉬어가는 분위기로 투자하는 게 좋다고 했지? 쉬는 것도 투자다! 잃지 않는 것도 따는 거고!”

“캬! 형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워렌 버핀이고, 조지 소로스고, 짐 로저스요! 세계 3대 투자가는 세계 4대 투자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이 연사 주장합니다.”

매년 새해 투자계획과 포트폴리오를 공유해온 윤재와 창진.

윤재가 제시한 2007년의 키워드는 ‘쉬는 것도 투자다!’ 였다.

2007년 KOSPI는 사상 최초로 2,000을 돌파한다.

하지만 중간 중간 지뢰가 많아, 방망이 짧게 잡고 대비할 시기였다.

윤재의 조언에 따라 창진은 연초부터 주식비중을 줄여왔고, 고객들도 그렇게 유도했다.

남창진이 대진증권에서 상사들과 고객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였다.

“증권가는 패닉에 빠져 있는데, 나는 형이랑 이렇게 북한산길을 걷고 있으니 좋다!”

“하하하. 1년 365일 죽어라 일만 하는데, 오늘 같은 날도 있어야지.”

남창진은 윤재와의 인연이 새삼 고마웠다.

일단 윤재 때문에 엄청난 부자가 됐다.

오늘 같은 날 윤재가 없었다면, 고객들 항의전화 때문에 혼이 빠졌을 것이었고, 퇴근 후 쓰린 속을 술로 달랬을 게 뻔했다.

“창진아! 중국 당국 투기 단속은 트리거일 뿐이다! 너도 미국 주택담보대출 상황 안 좋다는 뉴스 봤지?”

“응. 봤지. 코쟁이 놈들. 선진금융기법이니 뭐니 하더니 완전 구라였어. 금융시장이 아니라 폭탄 돌리기 시장 아니냐고.”

“유가 등 원자재 값 급등.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거라고 본다. 거기에 중국 발 루머가 겹치며,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거지.”

“놀랍도록 탁월한 분석 보소!”

“너무 비관할 필요 없어. 진정한 고수는 폭락장에서도 희망을 찾는 법이다.”

“믿습니다! 아멘!”

“내려가서 밥 먹고, 우리 카페 가서 커피나 한잔 하자!”

“나도 52 카페 가서, 아인슈페너나 한 잔 할 생각이었는데! 형? 타임머신 타고 내 머릿속 들어갔다 나온 거 아니지?”

2007년 2월 52 Cafe의 매장 수는 전국 330개를 돌파했다.

명실상부한 토종 커피 전문점 중 부동의 1위였다.

◈          ◈          ◈

윤재가 남창진과 망중한을 즐기며 다음 타겟을 노리고 있는 사이, O2그룹 미래전략실은 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부사장님!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하핫! 최팀장 너무 민감한 거 아닌가요?”

상하이 증시 폭락에 이은 한국 증시 폭락.

미국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조금이라도 감이 있는 사람들은,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각이 있었다면 오진탁은 오진탁이 아닌 것이다.

그의 무사태평은 강철 멘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개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작년 태우건설 순이익이 4,500억이요. 사상 최대치라고! 괜한 얘기해서 부정 타게 하지 맙시다.”

“하지만 실장님....”

“아마추어 같은 소리 하지 좀 마! 중국이 성장률이 좀 죽었다지만 6%야! 6%! 중국거품론 이런 얘기는 애들이나 하는 거라고!”

어느새 반말 투로 변한 오진탁의 말투.

분위기가 싸해지기 시작한다.

최경식 팀장의 똥씹은 표정을 본 오진탁.

나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태우 건설 인수로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이런 노력도 나오는 것이다.

“어허~ 최팀장. 재무팀장의 역할 잘 해오고 있는 것 알아요. 하지만 최팀장은 너무 예민해서 탈이야. 사람이 조금은 릴렉스도 하고 살아야 해!”

이 분위기에서 더 이상 입바른 소리를 하면, 눈치 없다는 소리 듣기 십상.

최경식 팀장은 결국 입을 닫고 말았다.

“이제 태우건설 먹었으니, 한국통운 따 먹으러 갑시다. 이거 왠지 따 먹자고 하니, 군침이 도는 걸! 나만 그런가?”

유머라고 하기에는 참 저급한 유머였다.

하지만 미래전략실 팀장들은 일제히 배꼽을 잡으며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망하는 집구석의 표본이었다.

◈          ◈          ◈

2007년 3월.

윤재가 이끌고 있는 식품관련 회사들에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첫 번째 변화의 주인공은 울산어묵이었다.

2007년을 맞아 만두로 유명한 ‘내일 식품’ 과 ‘울산어묵’을 합병시켰다.

통합 합병 법인의 이름은 52 Food&Beverage! 줄여서 52 F&B라 명명했다.

52 F&B로 회사이름 바꾸고 개시한 첫 번째 사업은 ‘어묵 베이커리!’ 였다.

“사장님! 대전광역시와 어묵은 왠지 잘 안 어울리지 않습니까?”

“어묵에 어울리는 도시가 따로 있나요?”

“아무래도 부산이나 울산어묵의 본산인 울산 같은 바닷가가....”

쓰레기 만두 사태 이후 윤재와 함께 하고 있는 서영호 사장의 근심어린 질문이었다.

“하하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두는 잘 나가는데, 어묵은 역시 전공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두 사람들 먹고 사는 음식입니다. 그리고 서 사장님은 먹는 음식에 항상 진심이시잖아요?”

윤재를 자기 자신보다 믿었지만, 어묵베이커리는 왠지 자신이 없는 서영호였다.

만두시장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어묵 분야는 1년 넘게 준비만 해왔던 게 미안한 것이다.

“삼오어묵 최고의 장인들이 저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누님들이 만든 어묵을 보고 있으면, 너무 예뻐서 먹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그렇긴 하죠.”

O2 푸드와의 마찰로 삼오어묵의 숙련공들을 52 F&B에 합류시킨 지 벌써 1년 6개월.

그동안 울산어묵은 2가지 사업에 집중해 왔다.

하나는 시장상인들이나, 자체 식당을 보유한 곳에 어묵을 납품하는 일이었다.

마진은 박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매출처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어묵 베이커리 사업이었다.

내일식품의 만두 브랜드인 ‘새참’을 어묵베이커리에서도 똑같이 이용키로 했다.

“제가 왜 대전 둔산동에 1호점을 내자고 한지 모르시죠?”

“대전이 우리나라 한 복판이니까 그러신 거 아닙니까?”

“비슷해요. 어묵 베이커리 새참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둔산 1호점 성공 확인하면, 바로 서울과 나머지 광역시에 직영점 출점시킬 생각입니다. 제가 52 카페 성장시키는 거 보셨죠?”

“그럼요.”

과거 삼오어묵에서 15년 이상 어묵만 만들어온 숙련공들이 있었다.

어묵 베이커리 새참에서는, 그 사람들이 어묵을 직접 튀겨줬다.

성공의 제 1요소가 바로, 이 숙련공들인 것이다.

일단 맛이 아주 좋았고, 무엇보다 예뻤다.

매장 배열마저 베이커리처럼 구성했기에, 싸이월드나 블로그 하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소재이기도 했다.

“갤러리 백화점 직원들도 저희 매장을 보게 될 겁니다. 제가 자신하는데, 6개월 안에 백화점에서 입점시키자고 찾아올 겁니다.”

대도시 위주로 직영점을 늘려 나가고, 백화점 식품 코너에 어묵베이커리 새참을 입점시킬 계획이었다.

때마침 젊은 여성 4명이 어묵 베이커리 ‘새참’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어묵 베이커리 새참입니다.”

오랜 사업 때문에 서영호는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대표이사인 그가 직접 4명의 고객들에게 달려갔다.

4명의 젊은 여성들은 서영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매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맘에 드는 어묵을 골라, 테이스팅 코너에 올려 주시면 즉석에서 조리해 드립니다.”

“정말요? 신기하다!”

여자들이 쟁반에 위생지를 깔고 그 위에 어묵들을 담기 시작했다.

“얘! 이것 좀 봐. 어묵 고로케? 이거 너무 예쁘지 않니? 발상이 신기하다. 어묵 고로케라니!”

“나는 이게 마음에 든다. 감자 어묵이라는데, 감자가 아니라 잘 깍은 밤톨처럼 예쁘게 생겼지 않니?”

“꺅! 진짜 빵집 같아. 떡말이. 새우말이 다 먹어보고 싶다. 너무 예쁘고 맛있어 보여서 결정 장애 올 지경이야.”

“부디 맛도 좋아야 할 텐데.”

“너는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뜻도 몰라?”

4명의 여성은 매장을 돌아보며 나무 쟁반에 어묵을 담기 시작했다. 40개가 넘는 제품들이 모양도, 색깔도, 맛도 다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느새 어묵을 수북하게 담아, 맛보기 코너로 이동한 여성들.

“어머! 만두도 파나 봐? 응? 새참 어묵이네?”

“아하.. 그래서 어묵 베이커리 이름이 새참이었구나!”

만두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새참’ 만두를 깨달은 것이다.

“우리 이것도 좀 먹을까?”

“어우 야! 이러다 살 쪄~”

여성 고객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스타일로 인테리어를 한데다, 한눈에 보기에도 예뻐 보이는 어묵들이 그녀들을 들뜨게 만든 것이다.

맛보기 코너의 누님이 튀겨준 어묵과 만두를 들고, Tasting Zone의 테이블로 이동한 여성들.

곧 이어 탄성이 들려왔다.

“어머! 무슨 어묵이 이렇게 맛있어.”

“대박! 겁나 쫄깃쫄깃 해!”

“새우말이 어묵 완전 내 취향!”

“나 이거 찍어서 미니홈피에 올려야지!”

“나도. 나도...”

“어우 야! 예쁘게 나오게 찍어야지. 각도가 그게 뭐야?”

몇 명의 사람들이 추가로 어묵 베이커리로 들어왔다.

백화점 쇼핑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온 딸.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구경하기 위해서 찾아온 손님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어묵 들을 보며 신기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때요? 서사장님! 반응 좋죠?”

“확실히 우려했던 것 보다는 반응이 훨씬 좋아 보입니다.”

“한 달만 기다려 보세요. 입소문 타고 구름 손님들이 몰려들 거니까!”

“하하. 이거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군요.”

비로소 서영호 사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묵 베이커리 새참 1호점 오픈을 위해, 지난 1개월 동안 밤잠을 설친 사람이었다.

“베이커리에서 어묵 만들고, 튀겨주기도 하는 저 분들 가슴에 파티쉐 명찰 달게 하면 어떨까요?”

“파티쉐요? 그게 뭡니까?”

“파리 같은 곳에서 빵이나 과자 굽는 사람을 파티쉐라고 해요. 우리 어묵 베이커리도 전문성을 갖췄습니다. 파티쉐라 명명해도 손색없다고 생각해요.”

“네. 좋은 말씀입니다. 당장 검토해서 실행하겠습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는 오뎅.

아니면 반찬이나 오뎅탕에 들어가는 재료 정도로 생각했던 어묵.

기존의 어묵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첫 번째 작품, 어묵 베이커리 새참!

윤재와 서영호는 소비자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보며 성공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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