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특허
2007년 1월 9일 화요일.
윤재는 다시 출장길에 올랐다.
군산의 태화정밀 등을 방문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동생도 보기 위해서였다.
“배달하는 거 재밌니?”
“예. 형님! 하루하루 나쁜 짓 하지 않고도, 돈벌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자식! 사람 다 됐네.”
생일은 9개월 정도 차이 나지만 엄연히 동갑.
그럼에도 윤재를 깍듯하게 ‘형님’으로 모시는 김삼식을 만나는 중이었다.
윤재의 테스트에 합격한 김삼식은, 1년 반 정도 트럭을 몰았다.
그가 주로 배송하는 품목은 파프리카 같은 시설 농작물이었다.
“배송만 하는 게 아니라 하화작업까지 하니까 제법 돈이 됩니다.”
“힘들 텐데?”
“아닙니다. 할 만 합니다.”
“단말기는 잘 작동하니?”
“뭐. 그런대로요.”
52 Farm 산하의 사업단으로, 물류 업을 꾸린지 18개월이 조금 지났다.
소속 차량은 15대 정도로 아직은 미미한 규모였다.
특이한 것은 배차담당을 포함해, 20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전용단말기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팬택에 외주를 줘서 제작한 단말기는, 대당 200만원이나 들어간 고가의 제품이었다.
“제가 이런 기술에 워낙 문외한이라....”
“쓰는데 불편한 건 없고?”
“네. 기존에 전화로 하는 것 보다는 훨씬 편리합니다. 그리고 디자인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다 좋으면 안되는데!”
“예?”
“너랑 네 팀이 할 일은 불편한 점과 개선할 점을 찾는 거라고 했잖아.”
“아하하. 물론 그 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김삼식은 완전 회개한 젊은이가 됐다.
15명이서 배달 전용 단말기의 문제점과 개선점에 대한 보고서를 매달 작성해서 보내왔다.
인내심에 이어 성실함을 증명한 것이다.
“테스트 기간이 너무 길었지?”
“아닙니다. 형님! 형님 밑에서 떳떳하게 일하며 돈 버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김삼식이 윤재 밑에서 숙제를 해온지 벌써 4년 가까이 지났다.
“작년에 내가 피자사업을 확장했다.”
“네. 김남재 사장님께 들었습니다.”
김삼식의 입장에서 보면 윤재네 식구는 로얄 패밀리.
삼식이보다 나이가 어린 남재를 깍듯하게 사장으로 대우했다.
“남재한테 얘기할 테니, 52 Farm에서 52 피자로 이동해라.”
“네?”
“한 단계 진급시켜 옮겨줄 테니, 피자회사로 들어 가. 그곳에서 오토바이 배달 사업을 해 보는 거야.”
“혀. 형님!”
“거기서도 전용 단말기를 이용하게 될 거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열심히, 성실하게 해 봐!”
“감사합니다. 형님!”
건강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편하게 즐긴다!
윤재가 생각하고 있는 푸드 테크의 궁극적인 비전이었다.
편리한 식생활의 한 축에 배달과 물류가 있었다.
김삼식이 진행하고 있는 숙제는, 배달 인프라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찾아내는 것!
작년 피자 킹 갑질 사태로 기회를 잡은 52 피자.
2006년 동안 피자 킹 해지 가맹점 100개를 포함해, 150개의 가맹점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어느 정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52 피자!
그곳에서 김삼식이 할 일이 있었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윤재의 숙제를 묵묵히 수행했다.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었고, 52 소프트와의 시너지도 극대화 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 ◈ ◈
윤재는 삼식이와 헤어진 뒤, 52 Farm을 맡고 있는 남재를 만났다.
2006년 1년 동안 52 Farm은 한 단계 또 성장했다.
농림부에서 주관하는 청년영농인 지원사업에 적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마치 CEO인 남재가 그랬던 것처럼, 농대를 나와 농업발전을 꿈꾸고 있는 젊은이들이 52 Farm에 대거 합류할 수 있었다.
시설농가. 양계농가. 양돈농장에 도입하고 있는 그린&스마트 팜 시스템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직접 경영하는 농장 외에도, 노하우를 배워가거나 52 Farm의 일원이 되길 희망하는 농가들이 꾸준히 증가했던 것이다.
“윤재 형! 1월에도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유행하고 있어.”
“그러게 말이다. 잊을만 하면 강남제비처럼 되풀이 되니....”
“그래도 우리는 건강하게 키우고, 방역을 철저히 하니까 다행이야.”
2007년 1월 시작과 함께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유행했지만, 52 Farm 산하의 양계농장들은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남재는 1년 동안 있었던 일과, 최근 조류독감을 피해간 점을 자랑 했지만,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윤재 형! 항상 미안하네.”
“뭐가?”
“다른 사업들은 돈도 잘 벌고 있는데, 우리만 자꾸 돈 먹는 하마인 것 같아서.”
카페만 해도 상장으로 대박을 쳤고, 다른 사업들도 모두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남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52 Farm은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하하하. 남재야 괜찮아. 나는 전혀 급하지 않다. 백년보고 시작한 일이니까, 조급해 하지 말자.”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형!”
여전히 적자였지만 나름 의미 있는 성과들을 창출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렵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52 Farm이 갖고 있는 부동산들이 역할을 하는 날이 올 거다.”
영농법인인 52 Farm.
전국에 엄청난 부동산을 확보해가는 중이었다.
직접 농사를 짓는 용도 외의 부동산도, 모두 목적이 있어 매입했던 것.
푸드 테크의 비전 실천에 필요한 땅들이었다.
“우리의 비전은 건강한 먹거리를, 맛있게 만들어서, 편하게 먹는 거다!”
“응. 명심할게.”
“너도 얼른 연애도 좀 하고 그래. 형들은 다 가정을 이뤘잖니.”
남재를 포함한 52 Farm에 합류를 결심한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52 Farm의 성공은 아주 중요했다.
결혼. 교육. 먹고사는 문제 등의 이유로 황폐화 되고 있는 농촌.
52 Farm이 전국적인 성공을 거둔다면, 꽤 많은 농촌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 ◈ ◈
작은 집에서 하루 밤을 보낸 윤재는, 1월 10일 점심시간 즈음에 군산에 도착했다.
윤재의 자동차 뒷좌석에는, 아들 강산이의 옷가지가 많이 담겨 있었다.
사촌 동생 동재가 신혼여행길에 사온 선물이었다.
태화정밀에 도착하자 김민기 사장의 부인이 윤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요. 나 윤재씨 기다리느라 눈 빠지는 줄 알았어.”
윤재는 김민기 사장 내외를 따라, 공장 직원들이 이용하는 식당으로 갔다.
“아니 형수님! 뭘 이렇게 많이 준비 했대?”
직원 식당에는 돼지 주물럭이며, 쌈 채소 등이 푸짐하게 준비돼 있었다.
“내가 윤재씨 온다고 해서, 실력 발휘 좀 했지.”
“이 사람아! 김사장이라고 하라니까!”
“하하하. 형님! 괜찮아요. 정겹고 좋은데 뭘 그래요?”
김민기 사장 내외의 티키타카를 보면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언젠가 그녀가 위암에 걸려 있을 때, 윤재는 그녀에게 금일봉과 쾌유를 기원하는 편지를 쓴 적이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늘 말도 곱다고 했다.
사촌동생 동재가 신혼여행 길에 조카 선물을 사온 일.
김민기 사장의 부인이 윤재를 위해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일.
모두 과거에 윤재가 뿌린 씨앗들이, 과실을 맺어 돌아온 것이다.
세월이 좀 필요하지만, 음지에서 덕을 쌓으면 양지에서 보상 받는 법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윤재는 김민기 사장과 비즈니스 모드로 변신했다.
“윤재야! 너는 정말 내 삶의 은인이다.”
“서로 은인이죠. 형님 도움 덕분에 저도 사업이 잘 되고 있으니까!”
“아냐. 연 매출 20억 찍던 우리 회사가, 이렇게까지 크게 된 건 다 네 덕이야.”
“하하하. 형님 아직 갈 길 멀어요.”
52 카페에 납품하는 각종 굿즈부터, 내일식품이나 52 Farm의 자동화 설비에 이르기까지.
태화정밀은 6년 전과 비교하면, 완전 다른 회사가 돼 있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특허에서 발생하는 이익이었다.
그 덕에 태화정밀은 6년 전보다, 100배 넘는 고속 성장을 이뤄냈다.
“2개월 전에 디올하고 입생로랑 애들 다녀갔는데, 내가 큰 소리 좀 쳤다.”
“하하하. 뭐라고 큰 소리 쳤어요? 형님.”
“다음에 올 때는 여자들 주게 가방이라도 좀 가지고 오라 했지!”
“우와 우리 형님이 이제 코쟁이들 데리고 노시네. 그나저나 챙겨줄 여자가 있어요?”
“왜 없어? 우리 마누라는 안 챙겨도, 혜진이랑 수정이는 내가 챙겨야지.”
김민기 사장 역시 음덕양보(陰德陽報)를 몸소 실천하는 중이다.
가방 때문이 아니라, 김민기의 마음씨 때문에 뿌듯한 것이다.
여성용 콤팩트 케이스와 분첩에 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태화정밀.
2006년도에 2개사가 무려 650만개의 케이스를 구매했다.
만듦새 자체가 업계 최고 수준의 퀄리티를 자랑했고, 특허까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디올과 입생로랑이 피해갈 수 없었다.
케첩, 마요네즈 등의 용기로 쓰이는 매직 홀.
콤팩트와 쿠션관련 제품의 특허.
2가지 특허와 관련된 국내외 매출은 연간 1,500억 수준이었다.
“오늘 아침에 빅애플의 스티브 홉스가 하이폰이라는 제품을 발표했습니다.”
“그래? 그 양반이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했다는 그 사람 아니냐?”
“맞습니다. 그리고 형님과 저에게 상상도 못할 큰돈을 벌게 해줄 사람이기도 합니다.”
“정말?”
“네. 올해 안에 돈 보따리를 안겨줄 겁니다.”
김민기 역시 윤재의 광신도이자 열렬한 팬.
그는 이번에도 윤재의 얘기대로 실행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형님!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 군장산단 부지는 나오는 대로 계속 매입해 주세요.”
“응. 알았다.”
4년 전 윤재는 태화정밀의 지분 25%를 인수했었다.
매직 홀 용기와 콤팩트 케이스의 특허를 추진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을 더 사들였다.
그럼에도 김민기 사장과 큰 마찰이 없었다.
윤재의 능력과 처신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태화정밀은 김민기 사장 부부가 과반의 지분을, 윤재가 대략 30%의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앞으로 태화정밀은 20만평의 대형 캠퍼스가 될 겁니다.”
“2....20만 평?”
“네. 그니까 형님! 이 꽉 깨물고 함께 갑시다. 갈 길이 멀어요.”
“다 좋은데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조달하려고 그러냐? 수천억이 들어갈 텐데!”
“스티브 홉스가 돈줄이라니까요. 작년에 저희가 취득한 특허가 최소 3~4,000억 짜리에요.”
“내가 네 얘기는 웬만하면 다 믿는데, 이번 얘기는 도저히 못 믿겠다.”
MS의 빌 게이트가 2번에 걸쳐, 윤재에게 1,000만 달러를 갖다 바친 것은 애교에 불과했다.
빅애플의 스티브 홉스는 윤재에게 수천억을 바치게 될 것이었다.
회귀할 때 윤재와 함께, 세상의 빛을 본 하이폰 3GS.
2006년 윤재는 태화정밀을 통해, 하이폰 3GS를 바탕으로 국제 디자인 특허를 취득했다.
둥근모서리와 홈 버튼을 특징으로 한 디자인 특허였다.
길이. 곡률. 면적까지 세밀하게 한국, 일본, 미국, 유럽에서 특허를 득했다.
게다가 김삼식이 일하고 있는, 52 Farm 물류사업부에서 시제품을 이용하고 있었다.
물론 운영체제. 기능 등은 뒤처지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디자인!
디자인 특허로 2세대 하이폰을 옭아맬 생각이었다.
“형님! 목돈 곧 들어오니까, 다시 한 번 도약할 준비 합시다.”
“아. 알았다.”
김민기 사장과의 용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2008년이 가기 전에 2번째 유니콘 탄생시킨다.’
윤재는 태화정밀을 성장시킬 복안을 이미 구상해 놓은 상태.
이미 10가지를 훨씬 넘은 사업에 손을 댄 윤재.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재벌을 꿈꾸는 것이 아니었다.
‘링키드 인이나 레이버 후드는 매각해서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 목적. 반면 태화정밀 같은 곳은 푸드 테크를 위해 끝까지 성장시킨다.’
음덕양보를 실천하고 있는 수많은 파트너들과 함께, 윤재의 플랜들이 시계태엽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