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64화 (164/196)

로열티 & 로얄티

다시 해가 바뀌어 2007년이 시작됐다.

한 살을 더 먹고, 한 해가 시작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윤재는 그저 하루를 열심히 살면서, 미래를 준비할 뿐이었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응. 어서 와. 허팀장!”

윤재는 사장실로 디자인팀을 책임지고 있는 허수정을 호출했다.

사장실에는 윤재 외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3명이나 앉아 있었다.

“인사 하시죠. 이 아가씨가 52 소프트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허수정 팀장입니다.”

“어머! 놀랐습니다. 52 소프트의 디자인 팀장이라고 해서 40대는 됐으리라 생각했는데, 엄청 젊은 아가씨로군요?”

허수정과 낯선 사람들이 명함을 주고받았다.

52 소프트를 찾아온 낯선 사람들.

한국 최고의 패션 회사 중 하나인 NC패션의 관계자들이었다.

“사장님께는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만, 저희가 찾아온 이유는 52 소프트와 콜라보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콜라보요?”

허수정의 질문에 NC패션 관계자들이 오이 메신저와, 대표 캐릭터에 대한 칭찬릴레이를 펼쳤다.

“네. 요즘 오이 메신저가 워낙 잘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피클 캐릭터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입니다.”

“이렇게 원작자인 허수정 팀장님을 뵙게 돼 영광입니다.”

폭풍 칭찬을 끝내고, NC패션 팀장이란 사람이 말했다.

“현뭉. 배코. 청횽이. 주자기. 새로 추가된 4개의 캐릭터는 거의 디즈니 수준의 인기라 생각합니다.”

52 소프트는 2006년 말, 기존 ‘피클’ 캐릭터를 확장했다.

현무. 백호. 청룡. 주작을 젊은 취향에 맞게 재탄생 시킨 캐릭터가 [현뭉, 배코, 청횽, 주자기 ] 였다.

기존의 오이 캐릭터 ‘피클’에 4신(神)을 접목시킨 캐릭터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52 소프트와 NC패션은 서로 잽을 날리며 탐색전을 마쳤다.

이제 본격적인 협상을 진행할 차례였다.

“NC패션에서 말씀하신 내용은 저희 지향 점과 살짝 다릅니다.”

“예? 어떤 부분이 다르신가요?”

“저희 피클이와 4신 캐릭터는 ‘젊음’, ‘자유분방’과 같은 이미지를 지향합니다. 허수정 팀장이 디자인 할 때부터 5개의 캐릭터는 이름과, 지향점, 성격 등을 갖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윤재의 지적에 허수정이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주자기’는 일종의 사기꾼 캐릭터죠. 호탕한 웃음. 농담인지 거짓말인지 헷갈리는 말을 구사하지만, 그렇다고 악당은 아닌 그런 캐릭터입니다.”

허수정은 그런 식으로 피클이부터 현뭉, 배코, 청횽, 주자기의 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각 캐릭터의 디자인 역시, 그런 특성에 맞게 제작되고 있습니다.”

허수정의 말이 끝나자, 다시 윤재가 바통을 넘겨받았다.

“반면 NC 패션에서 말씀하신 내용은 너무 정통 스타일이다는 겁니다.”

“사장님! 말씀 듣고 보니 일리 있는 지적이시네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52 소프트의 대표로서 NC패션과의 콜라보에 찬성입니다. 다만 캐주얼 옷일지, 아웃도어를 만들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컨셉은 캐릭터에 맞춰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네. 최대한 캐릭터의 특성을 살리도록 해보겠습니다.”

국내 1~2위를 다투는 NC패션이 자세를 낮춰야 할 정도로 오이 메신저의 인기는 대단했던 것이다.

“저는 패션을 잘 모릅니다만, 레트로(Retro) 컨셉에 대해서도 검토해 주시면 좋겠군요.”

“레트로 컨셉이요?”

“네. 일부러 옛날식으로 튀는 옷을 만드는 거죠.”

“사장님! 아까는 정통 스타일은 곤란하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NC패션 제휴사업팀장의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역시 어느 회사나 그냥 리더가 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정통스타일과 제가 생각하는 레트로는 조금 다릅니다. 일부러 낡고 촌스럽게 만드는 거죠. 일종의 B급 정서를 자극하는 겁니다.”

윤재는 자신의 견해를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밝혔다.

한번 터지면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핵 이빨’은 여전히 위력이 대단했다.

“B급 정서를 담은 레트로에, 추가적으로 리미티드 에디션 개념을 도입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주자기] 캐릭터가 어깨에 박힌, 바람막이 자켓을 3,000장 한정으로 출시하는 거죠.”

[배코] 캐릭터를 중앙에 박은 모자. 버클이 [청횽이] 모양인 벨트 등.

윤재는 예시를 들어가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사장님! 솔직히 사장님 견해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대량생산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단가를 낮출 수 있고, 판매마진도 극대화할 수 있죠.”

“하하하. 저는 팀장님 생각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군요. 이번 콜라보에 대한 견해 차이가 바로 그 지점입니다.”

윤재의 주장은 단순했다.

돈을 보고 콜라보레이션을 하지 말자는 것!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활동하는 것 아닌가요?”

“하하하. 맞습니다. 하지만 눈앞의 돈을 보지 말자는 겁니다. 이번 콜라보로 52 소프트가 얻을 이익을 생각해 보십시오. 52 로고와 캐릭터에 대한 로열티 받아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윤재의 주장대로 리미티드 에디션을 판매한다면, 로열티는 더욱 미미할 것이었다.

계속해서 핵 이빨을 가동시켰다.

“NC패션이 이번 콜라보를 통해 얻을 지점은, 젊고 발랄한 이미지입니다. NC패션도, 오성패션도 너무 진지하고 정통스타일 아닌가요?”

부인할 수 없는 지적이었다.

잘 나가는 옷은 양복 같은 성인복이 대부분이었고, 젊은이들이 입는 아웃도어는 노스페이스 같은 회사에 형편없이 밀렸다.

“52 캐릭터 들어간 옷을 50~60대 어른들은 어차피 안 삽니다. 하지만 10대나 20대는 다를 거에요. 게다가 리미티드 에디션 아닙니까? 저희와 콜라보한 제품을 보면서 젊은이들이 생각할 겁니다. NC패션이 생각보다 올드하지 않다고. 젊은 감성이 있다고 말이죠.”

“!!”

“저는 NC패션이 꼭 저희와 독점적으로 콜라보 해 주기를 희망하지 않습니다. 젊은 고객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콜라보할 아이템들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지금 10대가 NC패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간직한 채, 성인이 되는 겁니다.”

3명의 NC패션 직원들이 드디어 핵 이빨에 완전히 넘어간 표정이었다.

“이미 NC패션은 정통 패션에서는 강자입니다. 더 젊어지고, 더 힙 해지자! 그게 이번 콜라보의 의미가 아닐까요?”

거의 윤재의 강의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허수정이 디자인한 [52] 로고와, 캐릭터의 인기에 편승해 반짝 매출을 기대하고 왔던 사람들은,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한 셈이었다.

“사장님!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왜 52 소프트와 오이 메신저가 잘 나가는지 이유를 알 것 같군요. 말씀하신 내용 검토해 제안서를 들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NC패션 관계자들이 들뜬 얼굴로 사장실을 빠져 나갔다.

사장실에는 허수정과 윤재만이 남게 됐다.

“오빠!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가면 진짜 저희는 남는 게 없잖아요?”

허수정은 단둘이 있을 때는 윤재를 오빠라 불렀다.

태화정밀에서 온갖 일을 다 하던 허수정.

그녀를 후원해서 키우다시피 한 사람이 윤재였다.

허수정은 52 소프트에서 윤재와 사담을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였다.

“하하하. 수정이 네 말이 맞아. 콜라보로 돈 벌 생각 없다.”

“그럼 뭐 하러 추진하는 거에요?”

“나는 NC패션만이 우릴 찾아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 문구용품. 팬시용품. 컴퓨터 마우스나 이어폰 같은 업체. 심지어 선크림이나 화장품 업체도 우릴 찾아오게 될 거다. NC패션은 시작일 뿐이야!”

허수정은 윤재의 말귀를 알아챘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번에도 윤재의 예언이 맞아 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수많은 회사들이 우리와 콜라보를 희망하게 될 거다. 그럴수록 우리의 브랜드 파워는 쌔지는 거야. 그것이 바로 디자인의 힘이야. 내가 NC패션과의 콜라보를 오케이한 이유이기도 하고.”

“정말... 오빠는 무서운 사람이야. 끝이 가늠이 안 돼!”

“하하하. 칭찬이지? 고맙다.”

허수정의 얘기처럼 아직 끝이 아니었다.

“수정이 너한테도 좋은 소식이 있어.”

“뭔데요 오빠?”

“콜라보에서 나오는 로열티는 모두 너와 디자인팀, 그리고 직원들에게 돌아갈 거다.”

“오.... 오빠.....”

“설마 닭똥 같은 눈물 흘리는 거 아니지?”

“진짜. 감동 파괴자라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허수정은 진심으로 윤재가 고마웠다.

태화 정밀에서 일 할 때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52 소프트로 온 뒤로 신분상승이 된 기분마저 들었던 그녀다.

“우리한테 다 주면 오빠는 뭐로 돈 벌 거야? 52 소프트에서 연봉도 안 받고 있잖아?”

“하하하. 내 걱정 마라. 나는 돈 나올 곳이 겁나게 많아!”

콜로보가 진행될수록 로열티(Royalty) 역시 커질 것이었다.

규모가 커질수록 로열티도 커질 수밖에 없다.

몇 억 단위가 될 수도 있었다.

윤재에게 3~4억은 의미가 없지만, 허수정과 직원들에게는 큰 의미가 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윤재가 사람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자발적인 로얄티(Loyalty)를 끌어내는 방식이기도 했다.

◈          ◈          ◈

2007년 1월7일.

아침부터 작은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잘 계시죠? 동재는 신혼여행 잘 다녀왔어요?”

“응. 잘 다녀왔지. 니 선물이다 뭐다 바리바리 사 왔더라. 언제 안 내려 오냐?”

“설에나 가야지요.”

“그나저나 내가 전화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고....”

기쁨인지 두려움인지 알기 어려운 작은 엄마의 목소리.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건 이유가 있었다.

2006년 12월1일부터 페레레와 제휴한 FMM이 신제품을 출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첫 달 매출만 30억을 찍었다.

우리 돈으로 대략 1천원 짜리 몬스터 초콜릿과, 몽블랑 초콜릿을 판 금액으로, 대략 300만개의 제품이 팔린 것이다.

“윤재야! 첫 달 스코어는 예상을 훌쩍 뛰어 넘었다. 고맙다.”

2006년 12월 매출을 확인한 올리버 역시, 얼마 전 축하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비로소 올리버는 아버지 앞에 내세울 만한 업적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1월 6일 저녁.

작은 엄마의 통장에 몬스터 초콜릿과 몽블랑 초콜릿 로열티가 입금됐던 것이다.

“갑자기 뭔 돈이 300만원이 찍혔어야. 입금자가 FMM이던데, 니가 아는 것 같아서.”

“하하하. 올리버랑 베트남에 회사 만든 거 아시죠?”

“못난이 초콜릿 만든다 던 그 공장?”

“하하하. 네. 맞아요. 작은엄마! 거기 첫달 매출액에 대한 작은 엄마 로열티에요.”

“세상에나! 그럼 이것이 그 과자 로열티란 말이냐? 300만원씩이나? 세상에!”

제품의 원작자로 권한을 갖고 계신 작은엄마.

그녀가 FMM에서 받기로 한 로열티는 0.1%였다.

“하하하. 작은 엄마! 얼른 세무사 알아 보셔야 할 겁니다.”

“세무사? 왜? 나 잡혀 가냐?”

옛날 어른들은 ‘사’자라면 일단 어려워했다.

“하하하. 잡혀가긴 왜 잡혀가요? 첫 달이라 300만원이지만, 매달 로열티 찍히는 금액 올라갈 겁니다. 그러니까 소득세 신고도 대신해 주고, 절세방안도 찾을 겸 세무사 알아보라고 한 얘기에요.”

광주 52Cafe 1호점에서 근무하면서 받는 소득에, 로열티까지 늘어나면 작은 엄마의 연봉은 1억을 훌쩍 뛰어넘게 될 것이었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이거 황송해서 어쩌냐? 윤재야! 진짜 고맙다. 니가 우리집안 복덩이다. 니가 복덩이여!”

“아네요. 작은 엄마! 정당한 대가를 받으시는 걸요. 그리고 작은 엄마 초콜릿 때문에, 저도 부자 됐어요. 제가 작은 엄마께 감사드리죠.”

FMM 법인의 신제품은 성공을 보장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

올리버와의 관계는 이로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몽블랑에서의 인연. O2와의 제휴. 에밀리의 대성공에 결정적인 기여.

윤재가 올리버와 에밀리에게 베푼 공덕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슬슬 올리버가 내게 빚진 은혜를 갚기 시작할 것이다.’

해외 파트너 중 1호와 2호 파트너인 올리버와 에밀리가 역할을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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