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2006년 M&A 시장 최대어 태우건설.
론스타 컨소시엄에 조기에 나가떨어진 뒤에도, 접전은 계속됐다.
자금. 정보. 인맥!
O2 그룹과 금오가 모든 것을 걸고 펼쳤던 피 말리는 접전 끝.
결국 승리의 여신은 오진탁의 손을 들어줬다.
인수전이 치열했던 만큼 전생보다 1개월가량 지연됐고, 최종 결정은 2006년 12월이 돼서야 이뤄졌다.
- 재계 20위 밖 O2! 태우 건설 인수로 단숨에 15위권 진입!
- 황태자! 오진탁. 부친 투병 중에 시공능력 1위 건설회사 품어!
- 오진탁 실장!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확실한 한 방 보여줘!
언론들이 뽑은 헤드 카피는 주로, 오진탁과 O2 그룹을 띄우는 내용들이었다.
인수가액 6조 4천 5백 억!
너무 높은 인수금액을 지적하는 기사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대세는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이익창출력을 보유한, O2 그룹이 잘 했다는 내용이 메이저를 이뤘다.
태우건설 인수 본 계약을 체결한 날.
O2 그룹 미래전략실은 샴페인을 터뜨렸다.
축제의 분위기였다.
“와하하하핫! 금오와 단돈 200억 차이야! 내가 뭐라고 했나? 6조 4천 5백억 이상은 질러야 한다고 했지?”
최근 몇 년 오진탁의 표정 중 가장 밝은 얼굴이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재무팀 의견대로 6조 4천억을 상한선으로 정했으면, 225억 차이로 떨어질 뻔 했잖습니까?”
“부사장님은 역시 대단한 혜안을 가지셨습니다. 금오 그룹은 지금쯤 똥 씹은 표정들을 하고 있겠군요.”
끝도 없는 아부와 용비어천가가 이어졌다.
“3분기 태우건설 이익 발표 봤지?”
“분기 1,400억! 사상 최고치 갱신이었습니다.”
“내가 뭐라고 했어요? 6조 이상의 값어치가 충분하다니까!”
전혀 터무니없다고 볼 수 없는 분석.
문제는 오진탁의 선택이 전형적인 상투였고, 태우건설은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의 폭풍전야에 있다는 점이었다.
승자는 승리의 기분을 느낄 자격이 있다.
오진탁의 당당한 설레발은 계속됐다.
“서울역 앞 태우건설 본사 당장 매각 추진합시다. 현금 최대한 동원해서, 다음 매물 인수전에 뛰어 들어야 합니다.”
오재준의 매출 100조가 아니라 오진탁의 매출 100조 플랜이 첫 단추를 꿴 것이다.
태우건설의 현금과 재무적 투자자를 모집해, 한국통운을 인수하고 이어서 태우조선해양까지 인수하는 시나리오.
그렇게만 된다면 매출 100조는 더 이상 꿈같은 얘기가 아니었다.
“재무팀장! 2개월 전에 중도 탈락한 론스타 컨소시엄이 얼마에 응찰했다고 했지?”
“3조 5천억이었습니다. 부사장님!”
“와하하핫! 김윤재 그 머저리가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근본 없는 놈이라, 배포가 밴댕이 수준이라니까!”
“아무렴요. 오성그룹 적자 혈통이신 부사장님과 비견이 되겠습니까?”
“와하하핫! 그렇지. 나 아니면 누가 있겠는가? 오늘은 기분도 좋은데, 어디 가서 거하게 한 잔 합시다. 승리의 축배를 들어야 지요!”
“부사장님! 이번 인수전에 미래전략실 직원들이 고생 많았습니다. 몇 달 동안 집에도 못가면서 철야를 해 왔습니다. 미전실에 금일봉이라도 하사하시면 사기 진작 효과도 있고...”
“와하하핫! 내가 미전실 고생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적정 수준에서 안 짜 보세요.”
O2 그룹 미전실과 오진탁 실장의 마지막 영광의 순간이었다.
◈ ◈ ◈
O2 그룹이 태우건설을 품던 날.
론스타의 데이비드 리는 윤재를 찾아 왔다.
그는 이번에도 마르게리타를 공짜로 처묵처묵 하고 있었다.
“내 자네의 촉은 인정하네! 예상대로 O2가 태우건설을 먹었어!”
“지피지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에요.”
본 입찰 직전까지 6조 이상 베팅할 것처럼 액션을 취했던 론스타와 윤재.
거기에 워렌 버핀까지 한국에 등장시켜 분위기를 조성한 적도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나?”
“내년부터 몇 년은 아주 혹독한 시절이 올 겁니다.”
데이비드 리가 마르게리타를 처묵하다 윤재를 응시했다.
론스타는 2003년에 인수한 극동건설 처분 작전에 돌입한 상황.
윤재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예민해져 있는 것이다.
“근거가 있을 것 아닌가?”
“저야 뭐 어디까지나 [촉]으로 먹고 사는 사람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하지? 우리 사이가 어디 하루 이틀 만난 사이인가?”
“알았어요. 태우건설 인수전에서 도움을 받았으니, 근거를 말씀 드리죠.”
데이비드 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2006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대출은, 미국 전체 대출의 20% 수준으로 증가했습니다. 규모만 600조가 넘어요.”
“자네 미국 GDP가 얼마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600조 정도야 GDP의 5%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역시 세계적인 사모펀드의 아시아 태평양 총괄책임자 다운 배포와 정보력이었다.
하지만 주로 일본 등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해서인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파급력을 모르고 있었다.
“닷컴 버블 붕괴가 불과 6년 전의 일입니다.”
“그거야 버블이 워낙 심했으니까 그런 거지. 야후 따위가 주당 300불을 넘겼으니....”
“베어스턴스가 올해 취급한 모기지 관련 거래액만 무려 300조입니다.”
“뭐? 얼마? 자네 환율 때문에 헷갈린 것 아니지?”
“하하하. 생각해 보세요. 베어스턴스가 미국 몇 위 투자은행인지? BNP 파리바! UBS, 크레딧스위스 등 유럽 투자은행들이 있습니다. AIG 같은 보험업까지 생각해 보세요.”
“헙!”
데이비드 리의 머리에서 ‘윙’ 하며, 뇌가 풀가동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바닥에서 20년을 굴러먹은 사람답게, 그는 윤재의 얘기를 금방 이해했다.
“차라리 론스타가 그 잘난 투자은행들 보다 낫군!”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 무너질 것을 직감한 데이비드 리.
그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음을 직감했다.
“서둘러서 극동건설을 팔아 치워야 겠군! 고맙네! 고마워.”
데이비드는 긴장한 와중에도, 피자는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윤재는 그의 뒤통수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처묵처묵할 때 많이 처묵어라. 너랑 론스타도 골로 갈 날 얼마 안 남았으니까.’
◈ ◈ ◈
태우건설 인수 후 요란하게 샴페인을 터뜨린 오진탁.
윤재는 오진탁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2006년을 정리해 나갔다.
언제나 그렇듯 풍성한 1년이었다.
2006년 12월 23일.
사촌동생 동재의 결혼식을 위해 고향으로 내려갔다.
“형! 이 맛에 돈 버나 봐! 그치?”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남창진이 호들갑을 떨었다.
“스타렉스 렌트하니까 고속도로 전용차선도 타고 좋잖아.”
수도권에 있는 윤재 일행 중, 동재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내려가는 사람은 모두 8명.
창진이 말대로, 돈 버는 재미라는 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고속도로를 함께 달리며 지난 1년을 반추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다.
“혜진이 너는 어때? 아들 키우는 것 힘들지 않아?”
“힘들긴. 밖에서 일 하는 윤재 오빠가 힘들지.”
“윤재 형! 돈 벌어서 뭐 하려고 그래. 보모도 좀 들이고 해라.”
“창진 오빠!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마. 누가 뭐래도 강산이는 강하게 키울 거야.”
윤재는 저런 혜진의 모습이 좋았다.
사실 작은 집이기 때문에 소홀할 수도 있었지만, 혜진은 작은 아빠나 작은 엄마를 시부모 대하듯 처신했다.
그녀는 항상 처갓집 경조사 보다, 윤재네 집 경조사를 우선했다.
생활력도 강했고, 현명한 여자였다.
“장식이형! 나 올해도 윤재형 따라 하기로 2장정도 벌었다!.”
“2장? 2억?”
“형! 왜 이래? 윤재 형 따라 해서 2억 벌었으면 흉년이지. 올해 20억 벌었다니까!”
창진은 ETF 와 펀드상품을 적극 팔아 대진증권을 업계 5위권으로 성장시켰다.
회사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직원이었고, 개인적으로도 큰돈을 벌었다.
“신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집에 가훈 족자해서 걸었어!”
“이야~ 정말? 창진이 너! 이제 별걸 다 하네? 가훈이 뭔데?”
“다들 우리 집 가훈 따라 해! 그러면 부자 될 거니까.”
“아! 가훈이 뭐냐고?”
선희가 빽 하고 신경질을 냈다. 예나 지금이나 창진과는 으르렁거리는 사이였다.
“불신 지옥! 윤재 천국!”
“미친 놈. 진짜 그걸 가훈으로 걸어 놨다고?”
“아! 진짜라니까!”
창진의 진담(?)에 스타렉스 안이 빵 터졌다.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것은 장식도 마찬가지.
“Tour1st 할 만해?”
“응. 나는 이 일이 체질에 맞나 봐.”
“그럴 줄 알았어. 형!”
“따지고 보면 나도, 윤재 따라 하기로 재미 보고 있는 거지.”
투어리스트는 장식이 다니던 원 투어와 윤재가 지분 투자해 만든 회사였다.
기초적인 컨셉과 아이디어는 모두 윤재의 머리에서 나왔다.
“요즘 외국인들을 계속 뽑고 있다. 회사 직원들 중 외국인이 거의 절반에 가까워!”
“역시! 이래서 내가 형을 투어리스트 대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거야!”
“윤재 너는 역시 척하면 척이구나!”
윤재는 장식이 외국 사람들을 채용하는 이유를 단번에 알아챘다.
투어리스트는 한국 관광 상품을 만들어 외국에 소개하는 일과, 외국 여행 상품을 한국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일을 했다.
서울 ? 부산 관광 상품을 러시아 사람들에게 판매하려면, 러시아어 페이지가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법.
그러기 위해서는 러시아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었다.
“현지 언어로 관광 상품을 소개한 뒤로, 확실히 페이지 뷰나 내방객수가 증가하고 있어. 방문자수와 클릭수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는 상품이 뭔지 알아?”
“오빠!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겠수? 제주도 아냐?”
“하하. 물론 제주가 잘 팔리긴 하지. 하지만 부산 자유여행 상품이 잘 팔린다. 그 중에서도 Vast Eye 에 대한 수요가 아주 많아.”
내국인과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 Vast Eye.
덕분에 중국인이나 일본 사람 등,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부산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었다.
“해운대 Vast Eye에 입점한 52 카페는 커피 매출은 서울에 있는 매장보다 작아. 하지만 텀블러나 머그컵 등 기념품은 전국 최고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52 카페와 Vast Eye 얘기가 나오자, 고도윤이 끼어 들어 깨알 같은 자랑을 했다.
고도윤의 등장에 창진이가 특유의 호들갑을 떨었다.
머니해도 2006년의 주인공은 52 카페의 상장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52 Cafe가 올해 시가총액 1조원을 돌파했습니다. 모두 윤재형과 도윤이 형의 능력 덕분입니다. 자축하는 의미에서 박수 한 번 쳐주세요!”
광주까지 내려가려면 어차피 4시간 이상 걸린다.
이제 본격적인 논공행상이 펼쳐질 모양이었다.
카페. 팜. 엔젤투자. 소액신용대출. 52 소프트. 만두. 어묵. 피자 등!
문어발식으로 확장해 온 관계로, 모두 얘기하려면 전국팔도를 빙빙 돌아야 할 판이었다.
“올 해 52 Cafe를 상장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뭔지 알아요?”
이번에는 고도윤의 아내 송진영이 끼어 들었다.
어느새 그녀는 윤재의 아들을 품에 안고 있었다.
강산이는 낯을 가리지 않고 송진영의 품에서도 잘 잤다.
분명 크게 될 놈이었다.
“상장 기념으로 김사장님이 52 카페는 물론이고, 52 Corp 관련된 모든 직원들에게 주식을 지급했어요.”
“우와! 부럽다! 진짜? 얼마나 줬어요?”
선희가 부러운 눈초리로 송진영을 바라봤다.
“임원진들 제외하고 사원들 전원에게, 52 카페 주식을 52주씩 일괄 지급했습니다. 사장님께서 인당 400만 원정도 푸신 겁니다.”
52 Corp의 직원들이 받은 주식대금은 총액 20억 수준이었다.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지만, 의미 있는 주식 상여금 지급이었다.
“진영 누나. 직원들에게 꼭 말씀 전해주세요. 지금은 비록 400만 원 정도의 가치이지만, 52 카페 주식은 장기적으로 계속 올라갈 겁니다.”
창진이 전문가다운 포스를 뽐내며 조언을 했다.
“주식 얘기 나오니까 애 건방 떠는 것 좀 보소.”
“나 정도면 건방 좀 떨어도 돼!”
다시 창진과 선희가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6년을 회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스타렉스 안은 고향으로 내려가는 내내 박수와 환호성이 넘쳐났다.
6조원을 넘나드는 회사를 사들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2006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