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61화 (161/196)

콩고와 짐바브웨(1)

2006년 M&A 시장을 달군 최대어는 단연코 태우건설.

매력적인 아파트 브랜드를 갖고 있는데다, 30년 넘게 다져온 해외 사업의 강점.

무엇보다 태우건설은 건설업과 증권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유능한 인재가 많았다.

문제는 인수금액.

인수전을 공식 선언한 기업만 해도 국내에는 금오그룹과 O2그룹이 있었고, 해외에는 론스타 컨소시엄 등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방의 토호 건설사 몇 곳도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 들여, 태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든 상황.

자연스럽게 인수가는 올라갔다.

“윤재! 자네만 믿고 블러핑을 하고 있긴 하네만.... 이러다 정말 우리가 낙찰자로 선정되는 거 아닐까?”

“왜요? 무서워요?”

“무섭다니? 나 데이비드 리야! 외국환은행을 물먹기 전까지 M&A에서 물 먹은 적이 없는 불패의 승부사지!”

“걱정 말아요. 태우건설 본사 건물만 팔아도 6,000억 이상 조달할 수 있습니다. 해외 채권이나, 보유 현금 등 빼먹을 자산 많아요. 매년 4~5,000 억 순이익도 낼 수 있고. 특별 배당 때리면 쉽게 돈 빼 먹을 수 있어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 같은데? 자네 나 지금 비꼬는 건가?”

“왜요? 찔리는 것이라도 있어요?”

IMF를 틈타 한국에 들어온 론스타가 돈을 빼먹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알짜 자산을 매각하고, 돈 되는 것은 닥치는 대로 팔아먹고, 미래에 대한 투자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도, 파격적인 배당으로 현금을 빨아 먹는 방식이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만 없었다면, 태우건설은 5조원 이상의 값어치를 하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나도 몸 달은 바 없고, 데이비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니 적당히 허장성세를 보여주면 됩니다. 그럼 O2와 금오가 서로 치고 받고 싸우면서 인수가를 올릴 겁니다.”

윤재가 론스타 한국 대표와 절친이라는 것은, 금오와 O2 모두 주지하고 있는 사실.

문제는 워렌 버핀의 등장이었다.

2006년 10월 20일.

버크셔 해서웨이의 대표 워렌 버핀이 오른팔인 크랙 아담스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론스타의 데이비드 리.

52 Corp를 대표한 김윤재.

그리고 버크셔 해서웨이의 간판인 2명의 미국인이 하나의 앵글에 포착된 것이다.

공항에서부터 구름 기자단을 몰고 다닌 워렌 버핀.

“투자에 관한 사항이라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워렌 버핀은 약속한 멘트만 되풀이하며, 윤재와 함께 공항을 빠져 나왔다.

목표는 언론에 노출되는 것.

충분한 플래시 세례를 받은 만큼, 윤재와 워렌버핀은 데이비드 리와 헤어져 따로 일정을 소화했다.

2006년도의 유일무이한 유니콘인 52 카페를 상장시키고, 스타가 된 김윤재.

거기에 악명 높은 론스타와, 전설적인 투자자 워렌버핀의 만남!

언론이 좋아할 만한 조합이었다.

이들 3명의 등장에 오진탁과 미래전략실은 패닉에 빠졌다.

“부사장님! 단순한 루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음.... 김윤재 그 미친놈이 진짜 인수전에 뛰어 들 생각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워렌 버핀 같은 사람이 한국에 올 일이 없잖습니까?”

“나도 알아. 베팅액을 결국 6조 이상을 질러야 한단 말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인수예상액은 자꾸 올라만 갔다.

윤재도 윤재지만 O2 그룹보다 현금동원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금오 역시 문제였다.

금오그룹이 6조 이상을 베팅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것이다.

“부사장님! 태우건설은 분명 매력적인 매물입니다. 하지만 회장님 깨어나신 이후에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아버지 상태 몰라서 하는 얘기에요?”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

아첨꾼으로 가득한 미래전략실의 마지막 충신이었건만.

오진탁은 충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태우건설 인수. 한국통운 인수. 거기에 태우조선해양까지! 이 3가지만 M&A에 성공하면 우린 당당한 재계 6위의 기업으로 발돋움 합니다.”

“부사장님....”

미전실 팀장들의 눈이 떨렸다.

너무 원대한 포부에 두려움이 밀려온 것이다.

“나는 꿈을 꿉니다. 태우건설이 이란이나 사우디의 정유 플랜트를 수주하는 모습을. 태우조선해양을 통해 해양 플랜트를 수주하는 모습을. 육상과 해상의 모든 플랜트를 석권하는, 국내 유일한 회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물류를 담당하는 한국 통운을 생각해 보십시오. 벅차지 않습니까?”

원대한 포부임에 분명했다.

성공한다면 설탕, 밀가루를 만들어 파는 소비재 기업에서, 산업재 기업으로 탈바꿈 하고도 남을 플랜이었다.

어디까지나 성공한다면 말이다.

◈          ◈          ◈

워렌 버핀은 윤재의 블러핑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일까?

그는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실제 한국까지 날아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국에서 하루 쉰 워렌 버핀은 윤재와 함께 카타르 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곳에 MS의 빌 게이트와 아델라가 윤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52 소프트가 MS 챌린지에서 우승했다는 게 사실인가?”

“그래요 워렌! 우리가 당당히 1등을 차지했고, 우승상금 500만 달러를 수상하게 됐습니다.”

“윤재 이 친구는 볼 때마다 놀라워요. 미국시장에 레이버후드도 소프트랜딩에 성공했어요. 못하는 게 없는 친구입니다.”

크랙 아담스의 얘기가 맞았다.

블루 칼라용 링키드인이라 할 수 있는 레이버후드.

서비스 개시 후 미국에서 가입자수를 계속해서 늘려가는 중이었다.

“창업한지 3년도 안 돼 굵직한 프로젝트를 몇 건이나 성공시킨 건가?”

“그러니까 저희에게 투자하세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허허허. 알았네. 알았어.”

나란희 이사가 무려 18개월 가까이 매달린 Software For Children Project!

오로지 컴퓨터 소프트웨어 만으로, 문맹인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전 세계에서 50개가 넘는 스타트 업들이 MS의 사회공헌활동에 출사표를 던졌고, 현재까지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란희, 홍도현 부부만큼 절박한 사람은 없었다.

타고난 능력과 엄청난 노력에 절박함까지 더해진 결과, 52 소프트 미국지사는 1등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름이 산타 매쓰(Math)와 산타 잉글리시(English)라고?”

“네. 아무래도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눈을 볼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눈과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산타(Santa)를 사용했습니다.”

대상 국가인 콩고는 기독교도인이 다수파였고, 짐바브웨도 기독교인이 제법 많았다.

52 소프트의 나란희 이사는 2006년도 내내 아프리카를 오가며 개발과 프로젝트를 병행했다.

자신의 아이도 돌봐야 했음에도, 용기를 내준 나란희 이사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빌과 자네 팀이 정말 좋은 일을 했군.”

“저야 뭐 한 일이 있나요. 나이사 팀이 가장 고생했죠. 프로젝트용 컴퓨터를 모두 제공해준 빌 게이트 공로도 아주 큽니다.”

52 소프트 팀은 콩고 민주 공화국과 짐바브웨 2개국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구형 컴퓨터였지만 빌 게이트 재단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총 15만대의 컴퓨터를 기부했다.

나란희 이사 팀도 1만대의 PC를 지원 받았다.

컴퓨터 값만 1천억, 전기설비 등을 위해 1천억 정도가 지원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조용히 듣고 있던 크랙 아담스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벌써부터 중국에서 공식 발매를 요청하고 있다고?”

“하하하. 이게 잘 된 일인지, 부작용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친구야! 그게 왜 부작용인가? 잘 된 일이지.”

“우리나라도 그런데 중국도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장난 아니더군요. 인생 역전은 교육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나라와 닮았습니다.”

문맹인 아이들도 쉽게 수학의 개념과,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산타 매쓰와 산타 잉글리시.

중국 측 참여자를 통해 소문을 전해 들은 중국 업체들.

그들은 글로벌 퍼블리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란희 이사와 홍도현 이사에게 투자할 때 고려한 요소임은 분명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좋은 반응이었다.

물론 윤재가 2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은 어디까지나 선의였다.

그리고 그 선의가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결실을 맺어가는 중이었다.

MS에서 받을 상금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넨 좋겠군. 개도국의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무료 버전을 업그레이드 하면, 충분히 유료화도 가능하니까!”

“그렇지 않아도 나란희 이사와 그 부분도 협의하고 있습니다.”

나란희, 홍도현 부부 영입은 1석 5조 정도 되는 대박이었다.

우승 상금. 지명도 상승. 조직 문화 개선. 경제적 이익에 아프리카 진출까지.

앞으로 그들 부부가 이뤄낼 성과까지 생각하면, 진짜 로또를 계절에 1번씩 로또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결정적 대박이 윤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워렌 버핀이 한국과 카타르를 거쳐 콩고까지 날아가는 진짜 이유이기도 했다.

◈          ◈          ◈

교육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

카타르 도하에서 MS가 주관한 프로젝트의 시상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당연히 52 소프트와 나란희 이사였다.

“저와 남편은 52 소프트에 합류하기 전 게임회사를 다녔습니다. 게임을 할 때는 정말 몰입을 하는데, 공부는 왜 그렇지 못할까?”

당당하게 1등을 수상한 나란희 이사의 소감이 이어졌다.

“저희 소프트웨어의 대상은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입니다. 그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고민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게임의 요소를 많이 도입했습니다. 그게 가장 주효했던 것 같네요.”

게임의 보상과 성장 방식을 접목했으며, 미션을 클리어 해 나가는 방식으로 설계한 산타 매쓰는 그렇게 탄생했다.

“아프리카의 6살부터 10살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6개월을 테스트 했습니다. 1,2,3 의 개념도 없었던 아이들이 6개월 만에, 4칙 연산을 쉽게 하는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산타 수학과 영어의 효과는 1등을 차지할 만 했다.

2개국에서 각기 2개조로 나눠서 테스트 한 결과, 50개 참가팀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보인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해 주신 MS와 빌 게이트 회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그의 원대한 프로젝트에 1년 6개월 동안 함께 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장내에 터졌다.

빌 게이트도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끝으로 아무도 저희 부부에게 투자하지 않던 시기, 흔쾌히 200만불을 투자해 준 52 소프트의 대표인 김윤재 사장님께 감사말씀 전합니다.”

나란희 이사는 빌 게이트가 수여하는 트로피와 500만 달러가 인쇄된 증서를 받았다.

악수하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수여식이었지만, 빌 게이트도 나란희 이사도 더없이 행복한 얼굴이었다.

50개 팀 중 불참자를 제외하고 약 100여명이 모인 행사.

행사의 마지막 순서인 리셉션에서 윤재는 빌 게이트를 만났다.

“나란희 이사는 이 친구와 저의 인연을 모르실 겁니다.”

빌 게이트의 장난기 섞인 미소에, 나란희와 홍도현이 깜작 놀라는 게 보였다.

자신들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 이미 빌 게이트와 구면이라니?

놀라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김윤재 이 친구가 5년 전에 500만 달러. 이번에 다시 500만 달러! 총 1천만 달러를 슈킹해 갔군요. 아주 대단한 친구에요. 반하지 않을 수 없죠.”

빌 게이트가 전해주는 윤재와의 일화를 모두 들은 나란희와 홍도현.

“사장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훌륭한 분이셨군요. 정말 놀랐습니다.”

오피스 관련 서적과 지적재산권을 이용해, 2001년도에 이미 빌 게이트를 홀렸던 윤재였다.

게다가 언론에 워렌 버핀과 함께 등장하기도 했으니.

20대 후반의 나이에 세계적 거물들과, 친분을 맺어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홍도현 부부는 이미 윤재에게 푹 빠져 있는 상태.

능력. 배포. 마음씨.... 뭣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 이들은 더욱 더 그들의 보스에게 충성을 바치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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