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59화 (159/196)

유니콘 1호

2006년 8월 초.

대진증권 IPO팀의 보고서가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 Big Wheel & Vast Eye Must go on! ] 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3명의 애널리스트와 1명의 직원이 공동작성한 보고서였다.

연구원이 아닌 1명은 바로 윤재의 파트너인 남창진 팀장이었다.

보고서는 주요 내용을 쉽게 풀어냈고, 덕분에 일반 투자자들에게 더 인기 있었다.

한국 토종 커피 전문점으로 증권시장에 1호로 기업공개를 하게 된 52 Cafe. 과연 52 Cafe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아이스 큐브 돌체 라떼와 앰플 콜드브루의 소비자 선호도 우수.

전국 360개의 직영 체인점은 한국 내 압도적 1위! 뿐만 아니라 모든 점포를 직영방식으로 운영해 수익성이 업계 평균을 상회함.

디저트 몬스터 초콜릿과 몽블랑 초콜릿의 여성고객 선호도가 높고, 52 Cafe의 디저트는 제품경쟁력을 바탕으로, 페레레 그룹과 제휴할 수 있었음.

부대사업으로 셀프세차장, 애견카페 등을 지속 확장하고 있어 관련 매출액 증가 추세임.

카페 창출 이익, FMM 지분가치. Vast Eye 자산가치 및 영업이익을 반영 하고

멀티플 20배를 적용해 공모가를 51,000 으로 결정함.

8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요약하면 위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은 남창진이 작성한 것이었다.

52 Cafe IPO 주간사로 상장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제 손에는 아이스큐브 돌체 라떼가 들려 있었습니다. 정말 맛있는 커피라 생각합니다.

IPO팀은 지난 7월 29일 해운대에서 Vast Eye 오프닝 쇼를 직접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커피 회사가 주최한 행사라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쇼였습니다. 앞으로 52 카페의 성장이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52 Cafe의 상징물은 콜드 브루를 추출하며 24시간 돌아가는 Big Wheel입니다. 필자는 Vast Eye의 오프닝 쇼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Big Wheel이 돌아가고, Vast Eye가 멈추지 않는 한, 52 Cafe의 성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IPO 팀이 생각하기에 52 Cafe는, 이제 막 성장의 한 바퀴를 돌았을 뿐입니다.

대진증권 IPO팀은 자신 있게, 52 Cafe에 대해 Strong Buy 의견을 올립니다.

대진증권 홈페이지 기업분석 란에 보고서가 게시됐다.

이례적으로 대진증권 회원은 물론 일반인들의 댓글이 2,000개가 넘게 달렸다.

역대 한국 증권사 홈페이지에 달린 댓글로는 단연코 최고 기록이었다.

=> 52 Cafe 아메리카노 부터 콜드 브루 까지 기본기가 탄탄합니다.

┗ 머니해도 아이스 큐브 돌체 라테가 최고죠!

┗ 디저트는 진짜 악마가 만든 레시피에요. 자꾸 먹고 싶어짐.

증권사 홈페이지에서 커피 맛에 대한 칭찬 글이 이렇게 많이 달릴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 해운대 Vast Eye 오프닝에 초대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52 카페 경영진이 회사 경영자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정말 너무 감동적인 행사였습니다.

┗ 맞아요. 저도 친정엄마랑 참석했는데, 지상 100m 높이에서 바라보는 해운대의

모습이 그렇게 멋질 줄이야! 울 엄마가 너무 좋아 하셨어요.

┗ 8월 중순에 2차 프로모션 한다고 해서 저도 응모했습니다. 꼭 당첨 됐으면 좋겠

어요! 52 카페 짱!

┗ 캐빈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내려다보는 해운대의 야경이라니! 눈물이

날 뻔 했답니다.

┗ 한국에서 에밀리에 캠벨의 공연을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공짜로... 사랑해

요. 52 Cafe!

Vast Eye의 오프닝 쇼에 대한 칭찬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52 카페 홈페이지와 인터넷 카페를 달군 댓글 세례가, 대진증권 홈페이지까지 넘어와서 이어졌던 것이다.

자신의 레포트에 대한 호평을 확인한 남창진.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윤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요새 포털과 52 Cafe는 물론이고, 우리 회사 홈페이지까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

“대진증권이 IPO를 잘 준비해서 그런 거지.”

“에이. 그럴 리가? 사람들 보는 눈은 비슷한 가 봐. 나도 Vast Eye 오프닝 행사에 엄청 충격 받았거든. 형이 에밀리를 Vast Eye에 등장시킬 줄이야! 개런티 5억이 아깝지 않더라!”

“에밀리는 끝내 개런티를 거부했다.”

“정말?”

에밀리는 52 Cafe가 지급키로 한 개런티 5억을 끝까지 고사했다.

한국에서 더 유명해지면 앨범도 많이 팔리고, 공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윤재는 에밀리에게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매번 윤재에게 받기만 했어. 나도 윤재를 위해 뭔가 할 수 있게 해줘!”

에밀리는 간절하게 요청했고, 윤재는 결국 그녀의 청을 받아들였다.

“나는 No 개런티도 상관없으니, 대신 5명의 언니들의 개런티를 2배로 해주면 안 될까?”

에밀리의 또 하나의 부탁이었고, 윤재 역시 흔쾌히 수락했다.

“정말 에밀리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럼. 어때 괜찮은 여자지?”

“이젠 뭐 놀라기도 지친다. 진심 형이 부럽다! 부러워!”

창진은 마지막으로 부러움을 쌔게 발산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번 IPO로 형이 돈방석에 앉게 됐다는 거야! 지분가치가 대체 얼마야?”

“청약이 많이 들어왔을 때 얘기지!”

이미 52 Cafe 공모는 대박을 예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온라인상의 폭발적 반응이, 성공을 예고하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형님 지분가치가 4,000억을 넘기지 않을까?”

“공모가로 매각한다면 그 정도 될 것 같긴 하다.”

지난 몇 년 동안 증자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윤재가 가장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

외국환 은행. 미소천사 은행도 일부 지분을 취득했고, 직원들에게도 주식을 꾸준히 지급했다.

그럼에도 윤재의 지분은 40%를 훌쩍 넘겼다.

공모가 51,000을 기준으로 시가총액은 1조원을 살짝 넘게 된다.

“52 Cafe가 2006년 최초의 유니콘 기업이 되는 거야!”

“고맙다. 다 창진이 네 덕분이야.”

“무슨 말이야? 형님! 형님 덕분에 내가 부자가 되고 있는데!”

송진영. 조혜진. 김선희. 남창진. 신장식 등은 지분 0.1% 주주.

그들의 지분가치만 해도 5억이 넘었다.

윤재를 뺀 나머지 사람들 중, 최고의 수혜자는 CEO인 고도윤이었다.

증자 과정에서 지분 율이 계속 떨어졌음에도 그의 평가액은 200억이 넘었다.

지난 5년간 고생한 대가를 톡톡히 받게 된 것이다.

“창진아! 마음 단단히 먹어라. 앞으로 52 Corp에서 IPO 줄줄이 하게 될 거니까!”

“좋아 미치겠어. 형! 이러다 형님 유니콘 구단주 되는 거 아냐?”

창진은 농담으로 한 얘기였지만, 윤재는 농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1조원짜리 IPO를 줄줄이 성공시킬 자신이 있었다.

◈          ◈          ◈

“윤재! 섭섭하네.”

“하하하. 데이비드 미안해요.”

론스타 아태 담당자 데이비드 리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마르게리타를 뜯었다.

“오늘까지 3연속 상한가로군! 자네 회사 말일세!”

“아니 투자자들이 앞 다퉈 사겠다는 걸 어떡합니까?”

52 Cafe는 8월7일 상장과 동시에 3일 연속 상한가를 내달렸다.

“이런 좋은 투자 건에, 나만 쏙 빼 놨잖아?”

“하하하. 너무 그러지 마요. 데이비드! 지금까지 나 때문에, 폭망할 투자 피한 게 얼마입니까? 그 뿐이에요? 원유상품 ETF로 250% 넘게 수익 내고 있잖아요?”

외국환 은행 인수전 실패 이후, 데이비드 리는 윤재의 마법을 너무 자주 목격했다.

최근 그는 윤재의 팬클럽 회장이라도 할 기세였다.

“오늘 제가 데이비드를 먼저 초청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 뭐 좋은 건이야?”

항상 피쩨리아에 맘대로 찾아와, 밥값을 축내고 돌아가는 데이비드.

윤재가 먼저 부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태우건설 아시죠?”

순간 데이비드 리가 움찔거렸다.

나쁜 짓이라도 하려다 들킨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최근 론스타는 매물로 나온 태우건설에 대한 실사에 돌입한 상태.

청각이 고도로 발달한 윤재.

론스타와 데이비드 리가 추진하고 있는 전말을 꿰뚫고 있었다.

극비리에 인수를 추진하는 데이비드 리 입장에서는 놀라 자빠질 일이었다.

“제가 분명히 경고하는데, 태우 건설 삼키면 론스타가 공중분해 위기에 처할 수 있어요.”

데이비드 리는 처음에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겪은 사람다웠다.

“후후후.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참나. 우리 사이에 이러기요? 하여튼 검토하는 건 론스타 자유지만, 실제로 인수할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 겁니다.”

“우리는 태우 건설은 꿈에도 꾸지 않고 있네. 하지만 이유라도 들어 보세!”

데이비드 리가 윤재의 마수에 걸려들기 시작했다.

2006년 태우건설을 삼킨 회사는 결국 승자의 저주에 빠지고 만다.

전생에서 태우건설 인수를 검토했던 회사 중 한 곳이 바로 O2그룹.

당시에는 돈 질에서 밀려, O2는 태우건설을 인수하지 못했다.

윤재는 론스타의 옆구리를 찔러, 오진탁으로 하여금 태우건설을 인수하게 만들 계획이었다.

“한국 건설 회사들의 기술력과, 노동자들의 충성도는 일본의 그것을 압도한다고 알고 있네만.”

“맞는 얘기입니다.”

“중동 플랜트 건설. 중국과 베트남 시장 진출. 한국 주택시장의 브랜드 파워. 게다가 서울역 앞에 태우건설 본사 빌딩까지. 값어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네만.”

인수전을 준비하고 있는 데이비드에게, 자꾸 안 된다고 반대만 했다.

그랬더니 이젠 그가 애간장이 타는 모양이었다.

“주택과 건설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분석에는 동의합니다. 역시 론스타의 정보력은 CIA 급이군요.”

“우하핫! 우리가 괜히 글로벌 사모펀드겠나?”

윤재는 데이비드 리를 볼 때마다, 마르게리타로 피자 싸대기를 날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참았다.

‘내가 네가 예뻐서 봐주는 게 아냐. 이번까지는 봐주고, 더 키운 다음에 골로 보낸다. 조금만 기다려!’

윤재는 데이비드 리를 쥐락펴락 해가며, 그를 그물로 몰아갔다.

“미국 주택 경기가 최근 너무 좋아요. 버블이 양산되고 있다는 경고 보셨죠?”

“보긴 했지. 하지만 그런 비관론이야 항상 있었던 것 아닌가?”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조만간 엄청난 후폭풍을 감당해야 할 겁니다.”

2008년 핵폭탄 급 재앙인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다.

윤재는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운만 살짝 띄웠다.

“문제는 주택경기 같은 게 아네요. 바로 인수전에 뛰어들 기업들이죠.”

“?”

장난 반으로 임하던 데이비드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내가 보기에 론스타가 생각하는 적정가는 3조 5천억 전후겠죠?”

“자네가...그...그걸...어떻게?”

데이비드 리는 깜짝 놀랐다.

마치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얘길 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제 정보에 의하면 올해 태우건설은 최소 6조는 적어야 인수할 수 있습니다.”

“6조? 말도 안 돼. 어떤 미친놈이 태우건설을 6조에 인수한단 말인가?”

데이비드 리는 이제 완전히 진지해졌다.

이제 본론을 꺼내면, 쉽게 먹힐 상황이었다.

“제발 부탁입니다. 태우 건설 어차피 론스타는 못 먹어요. 6조 이상 써내지 않는 한. 그래서 말인데....”

“말인데 뭐?”

“나랑 같이 손잡고 6조 5천억에 태우건설을 인수합시다.”

“이게 대체 무슨 도깨비 같은 소리야? 인수하지 말자더니, 6조 5천억? 6조 5천어어어어억?”

전생에서 태우건설은 6조 4천 2백억에 매각된다.

윤재는 태우건설을 살 생각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하지만 ‘Anything But Kim Yun Jae’ 에 환장한, 오진탁을 인수 판에 끌어들일 수는 있었다.

“데이비드! 태우건설 인수 안한다니까요.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 에요. 저랑 손잡고 시장에, 론스타가 52 Cafe와 손을 잡고 태우건설을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을 내주시면 됩니다.”

“대체 그런 짓을 왜 하자는 거야?”

“그렇게 해 주면 당신이 돈을 벌게 될 거니까!”

예나 지금이나 오진탁의 염원은 산업재 시장 진출이었다.

전생에서도 태우 건설을 경쟁사에 뺐기고 밤잠을 설친 사람이 오진탁이었다.

그런 그의 신념에 ABK를 접목시키면, 오진탁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진탁을 통해 O2그룹을 그라운드 제로 상태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그래야 오진탁을 확실하게 내 쫒을 수 있어.’

꼴도 보기 싫은 론스타였다.

하지만 눈앞의 적을 치려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

론스타라는 악마 역시, 자신의 손으로 지옥에 보낼 생각이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