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피자
베트남 현장을 다녀온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국내 7위 정도의 피자 프랜차이즈인 ‘피자 킹’ 발 기사가 심심찮게 뉴스를 탔다.
하루하루 미모를 갱신하고 있는 NBC간판 아나운서 안수애.
저녁 뉴스에 등장한 안수애의 멘트였다.
“국내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 피자 킹. 가맹점들에게 광고비와 판촉비를 95%이상 전가해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보도에 연보은 기자입니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피자 킹 가맹점주의 인터뷰가 보도됐다.
“이건 말이 가맹점이지 완전 노예입니다. 세상에 우리 매장을 홍보하는 것도 아니고, 피자 킹 본사를 홍보하는 TV 광고비를 가맹점에 부담시키는 회사가 어디 있습니까?”
피자 킹은 TV광고는 물론 각종 할인행사나 판촉물까지 거의 전액을 가맹점에 부담시켜왔던 것이다.
NBC 기자가 현장에서 전하는 멘트가 이어졌다.
“피자 킹은 반발하는 가맹점 100여 곳에 대해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통보했다고 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이곳 가맹점 옆 10m 근처의 상가에, 피자 킹이 직영점을 오픈하기 위해 인테리어를 공사하는 모습입니다.”
억울한 표정의 가맹점 사장님이 다시 TV에 등장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사실상 저희는 판촉비 부담에 반대했다가 본사에 찍힌 거죠. 계약서는 완전 회사에 유리한 대로 돼 있고, 퇴직금 털어서 피자 가게 차린 저만 망하게 생겼습니다.”
가맹점 사장님의 호소가 잠시 이어졌다.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른 방송사나 신문의 후속보도가 뒤를 이었다.
피자 킹 구태욱 회장. 운전기사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켜 파문.
일간지는 기자의 호소를 따옴표와 함께 보도했다.
“세상에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코너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을 이렇게 패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구회장님은 제가 받는 월급 200만원에 매 값도 포함돼 있다고 하더군요.”
그 외에도 피자 킹의 친척이 운영하는 회사를 통해서만 판촉 물을 구입하게 강제했다는 내용이나,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식자재를 가맹점에 납품했다는 의혹 등이 보도됐다.
인터넷의 민심은 즉각 들끓었다.
=> 면상은 과학입니다. 구태욱 그 인간 얼굴을 보세요. 개기름 잘잘 흐르는 게, 딱 갑질 할 관상 아닙니까?
┗ 중소기업 주제에 재벌 흉내가 내고 싶었나 봐요. 공정거래위원회는 뭐하나 몰라? 저런 놈
때려잡지 않고?
┗ 구태욱 그 인간. 이름부터 참 구태의연하죠? 아주 개**입니다. 불매가 답이에요!
=> 우리 모두 피자 킹 직영점에 갑질하러 갑시다. 피자 값 25,000을 10원짜리 동전으로 지불하기 운동 콜?
┗ 콜! 가맹점은 죄가 없으니 직영 매장으로 고고싱.
┗ 10원 짜리 2,500개를 어디서 구합니까? 100원으로 허시죠?
┗ 그보다 그냥 불매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 항의의 표시로 동전 구매도 나쁘지 않은 듯.
피자 킹 갑질 사태로 뜻하지 않은 주목을 받은 피자 회사가 있었다.
바로 윤재가 창업한 52 피자였다.
네티즌들은 뜬금없이 52 피자와 피쩨리아 ‘브란디’를 소환했다.
=> 피자 킹 처럼 맛도 없고 가격도 비싼 피자 대신, 브란디가 화덕피자 배달하면 좋을 텐데.
┗ 브란디는 배달은 하지 않는 답니다. 이탈리아 본사와 계약도 그렇게 돼 있다던데요?
┗ 아쉽네요. 거기 피자 정말 맛있는데. 또 가보고 싶네요.
┗ 그러니까요. 우리 동네는 브란디가 없어서.... 게다가 실제 매장에 가면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줄 서는 시간이 넘 길어요.
=> 얼마 전에 국회의장이 국회의원들하고 브란디 왔다가 줄 서서 피자 먹고 갔다는 얘기 실화냐?
┗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진짜 국회의원들이 뱃지 달고 줄서고 있더군요. 아주
볼 만한 광경이었습니다.
┗ 국회의원을 줄 세우는 피자 가게라니.... 얼마나 맛있으면!
당시 국회의장실에서 브란디 측으로 배달을 의뢰했었다.
보좌관이 피자 20판을 배달 받고 싶다고 전화한 것이다.
하지만 52피자 대표이자, 여의도 점의 점장인 심철호 사장은 그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저희 브란디 매장은 배달을 하지 않습니다. 본사와 계약 문제도 있지만, 특정인에게만 특혜를 베풀 수는 없습니다. 한 번 원칙을 어기면, 계속해서 원칙을 어겨야 하는 게 싫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보고를 받은 국회의장이 직접 심철호 사장에게 전화했지만, 심철호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국회의장이 동료 의원들과 매장을 직접 찾아오게 됐던 것이다.
어쨌든 피자 킹 갑질 사태에 따른 여론은 뜨거웠다.
실제 피자 킹 직영점에 동전을 들고 피자 주문하러 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공정위는 즉각 피자 킹 본사에 대한 실태 조사에 나섰다.
기자들도 피자 킹의 갑질 사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하지만 가맹해지를 당한 100여 곳 가맹점들의 피해배상은 멀고도 험한 일이었다.
일단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해도, 법원에서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게다가 피자 킹 회장 일가가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 ◈ ◈
윤재는 즉시 52 피자 심철호 사장과 긴급회의를 진행했다.
“사장님! 드디어 저희가 움직일 때가 됐군요.”
“피자 킹 사태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심철호는 원래 52 Cafe 초창기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매장 관리와 개발업무, 관공서 허가 업무 등 다방면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52 피자의 사장이 될 수 있었다.
52 카페에 고도윤이 있다면, 52 피자에는 심철호가 있었다.
심철호는 무엇보다 성실했다.
52 피자에는 이태리 현지인 출신 피자이올로가 20명 정도 근무하고 있었다.
심 사장은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이탈리아어를 독학할 정도로 열심인 사람이었다.
“형님 덕분에 피쩨리아는 이제 지역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다시 한 번 형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다 김사장님의 선견지명 덕분이지요.”
심철호는 자신보다 나이가 10살이나 어린 윤재에게 깍듯하게 존칭을 사용했다.
편하게 얘기해도 좋다고 수차례 얘기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갑질과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피자 킹 갑질 사태로 피해자가 된, 100명의 가맹점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최적임자였다.
이미 52 피자는 피쩨리아 ‘브란디’의 뒤를 이을, 배달피자 사업을 모두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52cm짜리 대형 피자라!”
심철호는 새삼 윤재의 혜안에 놀랐다.
52 피자에 어울리는 52cm 짜리 대형피자는 물론, 52 소프트를 통해 홈페이지도 모두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김 사장님은 마치 피자 킹 갑질 사태가 일어날 걸 예측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하. 제가 뭐 점쟁이 입니까?”
“피자. 홈페이지. 원료 소싱은 물론 가맹점 친화적인 계약서까지 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셨습니까?”
“하하하. 아네요. 공정위 권고 사항 최대한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브란디’를 도입하던 순간부터 윤재는 배달사업을 준비해 왔다.
피자 킹의 피해자 100명과 함께,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드는 일만 남아 있는 것이다.
“전국에 피쩨리아 ‘브란디’가 10개 영업 중입니다. 그 곳에 이번 피자 킹 피해자인 가맹점 사장님들을 초대하면 어떨까요?”
“프랜차이즈 설명회를 하자는 말씀이시군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최재형 팀장이 52 카페 있을 때부터 그런 일 잘 했습니다. 가맹점 사장님들 대상으로 설명회 개최하고, 컨택하는 일은 최팀장에게 맡기시면 될 겁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도윤이 그랬듯 심철호 사장과도 손발이 잘 맞았다.
52 피자의 본격적인 성장을 위한 충원, 자금조달 계획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형님! 저는 52 피자에서 중요한 건 피자 크기나 맛, 또는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피자 회사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요?”
“형님! 52 카페. 52 피자. 52 팜은 물론 내일식품과 울산어묵도 제가 관여하고 있다는 것 아시죠?”
“그거 모르는 52 피자 직원들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52 피자는 푸드 테크의 주력회사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푸드 테크요? 피자 회사에?”
심철호 사장의 성장이 52 피자의 성장이었다.
윤재는 시간을 갖고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형님! 홈페이지 회원 가입할 때 짜증나는 경우 많으셨죠?”
“아이고 두 말 하면 입 아프죠. 뭘 자꾸 깔아라고 했다가, 컴퓨터 다시 꺼졌다 켜지고... 원하는 정보는 뭐 그리 많은지.”
“저희 52 피자는 이메일 또는 핸드폰번호, 그리고 이름만 있으면 회원 가입할 수 있잖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그건 베타 서비스라 그랬던 거 아니었나요?”
“아닙니다. 홈페이지 회원 가입하는데 필요한 단계를 대폭 줄이는 일. 그런 것이 모두 IT의 도움으로 가능해 지는 겁니다.”
회원가입 절차 프로세스 개선 같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 할 일은 태산이었다.
“결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뭘 자꾸 깔아라 말아라.... 이런걸 최대한 심플하게 만드는 거죠. 그런 개선들이 자꾸 모이다 보면 혁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배달하는 라이더들에게 GPS와 실시간 교통정보를 이용해 최단시간에 안전하게 배달이 가능하도록 돕는 일.
소비자에게 주문부터 시작해 배송정보와 도착예상 시간을 알려주는 일.
윤재의 설명은 계속됐다.
“우리 피자는 52cm 초대형 피자입니다. 배달박스부터 재설계 해야겠죠? 그런 일들이 모두 테크 기반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사장님! 정말 이런 일들이 가능하기는 한 겁니까?”
“그럼요. 수년 안에 모두 해낼 겁니다. 그리고 형님께서는 52 피자를 푸드 테크 회사로 변모시킨 CEO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게 될 겁니다.”
“제가 그런 일들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걱정 마세요. 일단 제가 있고, 52 소프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52 피자를 푸드 테크 기업으로 만들어갈 적임자들을 형님께서 잘 뽑으시면 됩니다.”
“!”
“지난 시기 브란디를 전국 맛집 명소로 만드셨잖습니까? 형님 아니면 이 멋진 프로젝트를 해내실 분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한국을 넘어 일본. 미국 등으로 뻗어 나갈 겁니다. 오토바이뿐만 아니라, 자전거나 자동차로 배달할 수도 있죠. 하늘 길을 이용하게 될 수도 있구요. 형님! 52 피자가 갈 길이 얼마나 먼지 아시겠죠?”
“허허... 하늘 길을 이용한 피자배달이라니... 할 말을 잃게 만드시네요.”
2시간 넘게 이어진 윤재의 설명을 들은 심철호.
‘전부터 김윤재 사장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사람은 정말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며 일을 하고 있구나! 정말 놀라운 사람이다. 더 놀라운 것은 김 사장님 말씀을 듣다보면, 왠지 우리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야.’
심철호는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김윤재 사장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허리가 90도 보다 더 꺽여 있었는데, 그가 얼마나 윤재를 존경하는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