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54화 (154/196)

베트남 합작 법인

태풍 나비가 발생했을 당시 O2 상사를 통해 들여오던 폐 선박은 모두 쓰시마 섬 앞에 침몰했다.

O2그룹은 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오재준을 수장으로, 그룹 사장단이 총출동한 대책회의였다.

특이한 것은 이번 사건의 원흉인 오진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Risk 관리에 소홀한 것이 가장 큰 실패요인입니다.”

“몇 번의 성공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습니다.”

회의 참석자들의 입에서 실패요인에 대한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오재준을 의식해서 실패의 결정적 요인인, 오진탁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다들 삼가는 분위기였다.

“바다 한 가운데에 침몰했기 때문에, 해체 및 인양에 비용이 훨씬 많이 소요될 겁니다.”

“침수된 고철이라 값어치가 반 토막도 안 될 겁니다.”

“또한 사고 현장 수심이 생각보다 깊습니다. 비용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는 예상 피해액수에 대한 의견과 보고가 뒤따랐다.

1백억을 투자했는데, 손실이 1백억을 훌쩍 뛰어 넘을 지경이 된 것이다.

그동안 폐 선박 해체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보다 큰 피해액이었다.

“알았네. 사건 발생 원인과 예상피해액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했어. 해결방안에 대해 상의해 보세.”

오재준은 비통한 심정이었다.

최근 들어 큰 딸 오하루 덕에 좋아졌던 건강이 다시 나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고는 자신이 저지르고, 임원들 뒤에 숨는 꼬라지라니!’

오재준은 자신의 인내심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가 한숨을 내쉬는 사이, 고위 임원들이 해결방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책임자 선정. 해체 작업팀 구성 등 챙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깨끗하고 완벽하게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룹 회장이 참석한 대책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단 1주일을 견디지 못한 오진탁의 성급함이 부른 참사였다.

◈          ◈          ◈

태풍 나비의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바쁜 날을 보내야 했다.

겨울에 오기 전에 해체. 인양을 끝내야 했던 것이다.

오진탁 역시 그즈음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 잡년 당장 잡아 와! 당장!”

“부사장님! 죄송한데 이미 해외로 도피한 것 같습니다. 전화번호도 없는 것으로 나오고, 집도 처분했더군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노가은 그년 내 눈 앞에 데려와. 목이 붙어 있어도 좋고, 목과 몸이 분리돼 있어도 좋다. 6개월 안에 그년 잡아오지 않으면, 당신들 모가지가 떨어지게 될 거야.”

오진탁이 추진한 미술품 갤러리 [임프레션]과 [르네상스].

갤러리의 원장을 역임했고, 비자금으로 예술품을 사들이는 브로커 역할을 했던 노가은.

그녀는 오진탁과 밀애를 즐길 정도로 총애를 받은 바 있다.

그런 노가은이 오진탁의 뒤통수를 쌔게 갈긴 것이다.

실장실에서 도망치다 시피 나온 팀장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웠다.

최근 들어 미래전략실의 스트레스는 폭발직전으로 치솟은 상태.

“노가은 그년 끼고 놀더니, 결국 파국을 맞고 말았군.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서야.”

“왜 이래? 노가은 그 여자가 쌔끈하게 생긴 것은 부인할 수 없잖아?”

“지금 그게 중요해?”

“나도 짜증난다구. 사고는 오부사장과 노가은이 치고, 고생은 우리가 하고. 전략실 팀장이면 계열사 임원급인데.... 어서 빨리 전략실을 뜨고 싶다. 뜨고 싶어!”

팀장들은 죄 없는 담배만 빨아댔다.

“당돌한 년. 그 미친년이 오진탁 실장 뒤통수를 갈길 줄이야.”

“금액이 자그마치 400억이야. 400억!”

“그러게 말이네. 비자금으로 사들인 것이라, 경찰이나 검찰에 신고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게 생겼으니....”

“그러게 애시 당초 이런 일은 저지르지 말았어야 해. 직원들 개고생하고, 돈은 돈대로 날리고.”

무려 5년에 걸쳐 노가은을 중심으로 국내외의 미술품을 사들였다.

그림. 조각. 도자기 등 가리지 않고 사들이는 과정에서 노가은의 권력은 커져만 갔다.

오진탁의 총애까지 겹쳤고, 그녀는 미래전략실 팀장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파워가 쌔졌던 것이다.

문제는 총액 3,000억에 달하는 미술품 중 400억 상당의 그림이 가짜로 판명 난 것이다.

“오하루 팀장이 등판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어봐? 지금도 미술품 사들이고 있을 거 아냐?”

“그것도 그러네. 허허 참... 사람일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O2 엔터에 팀장으로 발령받은 오하루.

그녀는 ‘Contents First!’와 ‘문화기업 O2’ 라는 기치를 내걸고, 본격적으로 회사 업무에 뛰어 들었다.

관련된 부서에서 오하루에 대한 칭찬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하루의 등장에 위기의식을 느낀 오진탁.

그는 미술품을 현금화 한 다음, 그룹 핵심 계열사인 O2 푸드의 지분을 늘려갈 계획이었다.

아직까지는 미래전략실에 대한 오진탁의 지배가 공고했다.

문제는 그림 매각을 위해 감정을 받던 중, 상당수의 작품이 위작이라는 감정을 받은 것이었다.

진품 감정을 지시 받은 노가은이 사라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어쨌든 노가은 그 년이 보통 여자는 아니야.”

“그러게 말이네. 그 여자만 살 판 났네. 호구 하나 제대로 물어서, 수백억을 챙겼으니.”

“어디 물 좋은 외국에서 평생을 호의호식 하면서 살겠군. 좆나 부러운 년일세.”

미래전략실 팀장들이 옥상에서 줄담배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이.

오진탁은 실장실에서 독주를 마시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노가은 그년은 물론이고 감정서에 사인한 새끼들까지 사기꾼이었을 줄이야.’

오진탁은 이를 갈았다.

위스키가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속을 태웠다.

술 때문인지 배신감 때문인지 헷갈렸다.

‘믿을 만한 년놈들이 없어. 죄다 회사 돈 빼 먹을 궁리만 하는 도둑놈 새끼들뿐이야.’

오진탁은 여전히 문제의 본질을 객관화하지 못했다.

외부에서 이유를 찾았고, 자신은 무결점의 존재로 인식할 뿐이었다.

O2 그룹의 가장 큰 도둑놈이 자신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          ◈          ◈

2005년 11월.

결혼 1주년을 맞이한 윤재 커플에게 결혼기념일만큼 중요한 일이 벌어졌다.

올리버 페레레와 알게 된지 4년 만에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신설 법인의 이름은 Ferrere & MM(몽블랑과 몬스터)를 줄여 FMM이라 명명했다.

베트남 북부의 공업도시 하이퐁에 총액 3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 건설을 시작한 것이다.

50% 지분은 페레레그룹이, 25%는 52 Cafe가 부담했다.

나머지 25%는 워렌 버핀의 버크셔 해서웨이의 몫이었다.

3명의 주주단 대표는 베트남 하이퐁 공장 착공식에 참석했다.

착공식이 끝나고 임시 사무실에 모여서 감회를 나눴다.

“윤재야! 이미 상품력은 검증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나는 몽블랑과 몬스터 초콜릿 모두,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거라 자신한다.”

“올리버! 나도 동감이야. 페레레의 브랜드 파워와 몽블랑 초콜릿, 몬스터 초콜릿의 제품력이 만났어. 실패하면 이상한 일이지.”

“나 역시 마찬가지일세. 두 유능하고 야심찬 청년들이 의기투합했으니 성공할 수밖에 없지. 그나저나 이 과자들은 정말 맛있군. 너무 달지 않아서 특히 맘에 드네. 2가지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맛있어! 대박 날 상품일세!”

워렌 버핀이 몽블랑과 몬스터 초콜릿을 연거푸 입안에 털어 넣었다.

“워렌 저희에게 투자해 줘서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베트남 공장이 더 주목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올리버의 얘기는 사실이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투자였지만, 워렌 버핀은 전설적인 투자자.

그의 지분 투자 참여만으로도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될 수 있었다.

“허허허. 페레레 그룹은 초콜릿만으로 제국을 이룬 회사.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 훌륭한 기업이지. 가능하다면 페레레 본사에도 투자하고 싶네만.”

“하핫. 말씀만 들어도 힘이 나는군요.”

베트남 관계자들과 페레레의 고위 관련자들이 참석한 자리였다.

한국에서는 윤재와 52 카페의 CEO인 고도윤 사장이 함께 참석했다.

“페레레와 버크셔 해서웨이. 그리고 52 카페와 베트남의 발전을 위해서 건배하겠습니다.”

시종일관 좋은 분위기에서 착공식이 끝났다.

빠르면 2006년 말.

늦어도 2007년이 되면 페레레 브랜드를 단 몽블랑 초콜릿과 몬스터 초콜릿이 세계시장에 팔려나갈 예정이었다.

윤재는 고도윤과 샴페인을 마시며 한국말로 대화를 나눴다.

“윤재! 축하한다. 우리가 이렇게 세계 시장에 진출하게 될 줄이야.”

“모두 형님 노고 덕분이죠.”

“아냐. 네가 다 한 일이지. 그렇게 얘기해 줘서 고맙다.”

52 Cafe 매장은 어느 곳이나 몬스터 초콜릿과 몽블랑 초콜릿을 디저트로 판매했고, 전국적인 인기를 얻는 디저트로 성장해 있었다.

“도윤 형님. 페레레와 조인트 벤처로 우리는 3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됐어요.”

“3마리 토끼?”

“네. 지분가치 상승. 수익금 배분. 더 중요한 것은 52 Cafe의 평가재고입니다.”

이미 부산에 Vast Eye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52 Cafe.

Vast Eye 만 해도 1천억 짜리 사업이었다.

그리고 페레레와 조인트 벤처까지 설립했다.

해운대 대관람차와 조인트 벤처 만으로도 이미 수천억의 가치를 갖게 된 것이다.

“형님! 두고 보십시오. 내년 52 카페 상장은 초대박을 터뜨릴 겁니다.”

“나도 미칠 듯이 기대된다. 과연 우리 회사가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성공적인 착공식을 마치고 워렌 버핀은 귀국을 위해 돌아갔다.

호텔로 돌아온 윤재는 올리버와 함께 펍을 찾았다.

“윤재! 여러 모로 정말 고맙다.”

“하하하. 친구끼리 그런 얘기 하는 것 아냐.”

“정말이야. 네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됐어. 나도 에밀리도!”

“아냐. 다들 원래 그럴 사람들이었던 거지. 나야 살짝 부추긴 정도?”

“겸손도 적당해야 하는 법이야. 에밀리 소식 들었지?”

“응. 알고 있어. 참 대단한 아가씨야.”

에밀리의 2집 앨범 ‘Hold the line’ 은 플래티넘 앨범이 됐다.

곧이어 발매된 2.5집 ‘Sing Together! Again!’ 역시 대박행진을 이어나갔다.

윤재의 아이디어대로 세계의 버스커들과 함께 작업한 다시 부르기 앨범.

존 레논의 ‘Imagine!’, 사이먼앤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 같은 명곡들을, 세계의 버스커들과 함께 부른 리메이크 앨범이었다.

총 10곡을 리메이크 했는데, 2곡에는 낯익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한국의 5명의 국악누님들. 펜타시스터즈가 에밀리의 앨범에 목소리를 보탠 것이다.

Imagine 과 Bridge over troubled water 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펜타시스터즈 역시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다시 부르기 앨범에서 가장 히트한 노래는 존 레논의 ‘이매진’이었다.

“에밀 리가 다시 부른 이매진이 히트하면서, 2번째 앨범 B면 타이틀 곡 Farewell to Arms 도 차트 역주행을 시작했어.”

“응. 깜짝 놀랐다. 영국과 미국의 빌보드에 에밀리의 노래가 동시에 1,2위를 다투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헤밍웨이의 소설의 제목을 따 온 에밀리의 노래 ‘무기여 잘 있거라’.

북 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군 IRA의 갈등에 착안한 노래였다.

“너도 알다시피 에밀리 아버지께서 피의 일요일 사건 때 돌아가셨어. 그녀의 집안 내력이 알려지며 Farewell to Arms는 현재 영국에서 국민노래처럼 히트하고 있어.”

“나도 기사에서 봤다. 정말 국민적 인기와 관심을 받고 있더군.”

존 레논의 곡을 세계의 버스커들과 다시 부른 Imagine.

그리고 북아일랜드 문제를 다룬 Farewell to Arms.

2곡의 메가 히트로 에밀리는 2005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노미네이트 되는 기염을 토했다.

사회적으로 빌&미란다 재단을 설립할 빌게이트가 주목을 받았고, 아티스트 중에서는 U2의 보컬리스트와 에밀리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윤재야. 이러다가 에밀리 캠벨이 타임지 올해의 인물을 넘어, 노벨 평화상도 받게 되는 것 아닐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

“꿀걱!”

“이러다가 올리버 너보다 에밀리가 훨씬 유명해 지는 거 아니냐?”

“그렇게 될지도 몰라. 뭐 나야 좋지. 유명한 와이프 덕에 편하게 살 수 있잖니?”

“하하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남자를 셔터 맨이라고 부른다.”

윤재의 셔터 맨에 대한 설명을 들은 올리버가 호탕하게 웃었다.

물론 농담이었다.

올리버 페레레는 그런 편한 삶에 안주할 사내가 아니라는 것을, 윤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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