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53화 (153/196)

태풍을 대하는 자세(2)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곡물시장과 원자재 시장에도 영향을 줬다.

미국의 해상유전과 육상유전, 그리고 비축시설이 집중돼 있는 남동부가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크하하. 어쩔 때 보면 자네는 1년 뒤를 내다보는 사람 같아. 카트리나도 예측했나?”

“아니에요. 신흥국 성장세 때문에 유가가 장기 상승할 거라는 것은 예상했죠.”

데이비드 리는 피쩨리아 브란디가 오픈하기도 전에 사무실로 달려왔다.

윤재는 2년 전부터 석유제품 관련 ETF에 투자해 왔고, 데이비드 리도 윤재의 권유를 따라 작년부터 원유 ETF에 투자했다.

“엑슨모빌. 쉐브론 텍사코 같은 메이저 뿐만 아니라, 원유가 자체가 올라 수익률이 아주 좋아. 1년 만에 거의 2배 가까이 올랐군! 고마워 윤재!”

데이비드 리는 침을 튀겨 가며 즐거워했다.

“3개의 운용사에서 받은 분배금만 200만 달러야. 리치 회장에게 드디어 체면치레 좀 했네.”

론스타 아태 담당 데이비드 리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윤재.

이제 데이비드 리는 윤재가 똥을 된장이라고 해도 믿을 준비가 돼 있었다.

“데이비드! 당신 나라에 허리케인 피해자만 2천명 나왔어요. 그런데 수익률 20% 정도 추가로 발생한 것이 그렇게 좋은가요?”

“크하하. 자네 갑자기 공자선생이라도 된 것처럼 얘기하는군. 20%면 1,000만 달러야! 그리고 내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돈이야 돈!”

데이비드 리의 연봉은 15억.

거기에 각종 딜을 성공시킬 경우, 성공보수로 10% ~ 20%까지 지급 받는다.

“자네가 외국환 은행만 인터셉트 안 했어도, 내 성공보수만 최소 2천억이었어.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 벌떡 일어날 지경이야.”

“그게 내 잘못이요? 자격도 갖추지 않고 낼름 먹으려다 당한 거지.”

“크하하. 알았네. 알았어. 어쨌든 앞으로도 자네 덕 좀 보자고. 자네의 인사이트와 우리 회사의 정보력이 만나니, 이건 뭐.. 천하무적이군!”

마르게리타 피자로 싸대기를 때리고 싶은 맘을 억눌렀다.

‘지금 원 없이 웃어라. 수년 내 피똥 싸는 일을 만들어 줄 테니까!’

데이비드 리는 국제유가를 포함한 상품시장에 대한 전망, 매력적인 M&A 대상에 대한 의견 등을 교환한 뒤,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는 이번에도 피자 값을 내지 않았다.

◈          ◈          ◈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위세가 약해지고, 미국이 피해복구를 준비하던 시기.

한국에는 태풍 나비가 북상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2005년 8월말의 일이었다.

“윤재야! 어떻게 할까?”

52 카페 대표이사 고도윤이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히 모든 공사를 중단해야지요.”

“최소 1주일은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정리하는데 또 며칠 걸릴 겁니다. 2주 동안 All stop 하는 걸로 하시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니? 2주 동안 쉬었다 공사재개 하면, 그 비용만 대략 잡아도 2~30억은 될 거다.”

“다른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합니다. 2주 동안 현장관리와 안전 담당 팀만 근무시키고, 나머지는 휴가를 쓰는 방향으로 시공사와 협의할게요.”

“알았다. 그리고 고맙다.”

고도윤은 윤재의 결정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52 Cafe의 공동경영자라고 할 수 있지만, 투자금액과 지분으로 따지면 윤재와 고도윤은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났다.

부산시와 국토부는 5년 운영 후 철거라는 조건부 허가를 내렸다.

런던아이도 조건부로 시작했지만, 폭발적인 인기에 제한 조건을 모두 해제해 줬다.

Vast Eye 도 그렇게 될 것이란 확신이 있기에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공사가 대략 25%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태풍 나비의 북상 소식을 접한 것이다.

윤재와 고도윤은 모든 공사를 중단키로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공사 중단 기간.

모든 공사는 공사기간이 길어질수록 제반 비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20~30억이라는 비용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안다. 오픈이 늦어지는 만큼 수익발생도 지연되는 거니까.”

“Vast Eye는 가동에 들어가도 안전에 대한 의구심이 따라다닐 겁니다. 저희가 안전에 얼마나 진심인지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해요.”

고도윤은 윤재의 통 큰 결정과 철학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아직도 자신이 윤재에게 놀랄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          ◈          ◈

비슷한 시기에 윤재와 정반대의 의사결정을 내린 사람이 있었다.

O2 그룹 미래전략실 부사장 오진탁이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스타일이므로, 의사결정에 신중했어야 하거늘.

그는 결국 그릇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윤재나 오하루보다 훌륭한 돈벌이에 성공하겠다는 조바심이 문제였다.

“부사장님 이틀 뒤에는 저희 배들이 부산 앞바다에 도착합니다. 문제는 태풍의 북상경로와 겹칠 수 있다는 겁니다.”

“나도 날씨 체크하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방향을 오키나와로 틀어 그곳에서 일주일 정도 태풍을 피했다 오는 걸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오진탁이 유일하게 성공시킨 돈벌이.

만두공장 매각대금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폐 선박 재처리 사업이 그 돈벌이였다.

폐 선박 재처리 사업은 2004년부터 2005년 상반기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보니 배포와 욕심은 커졌고, 자신감도 수직상승했다.

10만 톤급 전후의 폐 선박 6기를 동시에 국내로 들여오기로 한 것.

오진탁은 2주일 전에도 비슷한 경고를 받았으나, 강행했고 성공시켰다.

당초 O2 상사 뉴욕지사는 폐선박의 출발을 7일간 지연시키자고 건의한 바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미국이 온통 난리입니다. 안전을 위해 갤버스턴 항에 일주일간 정박합시다.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에 한국으로 이동시키는 게 맞습니다.”

“이봐요 우리도 카트리나 이동경로를 면밀히 분석했어요. 갤버스턴에서 파나마 운하를 통해 이동하면 아무 문제없다는 것이 우리 결론이요.”

그때까지만 해도 행운의 여신이 오진탁과 함께했다.

컨테이너선 4기, 유조선 1기, 벌크선 1기 총 여섯 척의 폐선박이 태평양을 횡단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운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오진탁은 그걸 자신의 실력이라 생각했다.

태평양을 건넌 O2 상사 소속의 폐 선박 6척.

부산 앞바다 도착 이틀 전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VLCC는 15만톤 급이요. 컨테이너선들도 5만에서 10만톤이요. 태풍 나비 정도에는 끄떡없어요.”

“하지만 부사장님! 만사 불여튼튼이라 했습니다. 오키나와에 며칠 머물다 오도록 조치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비만 오지게 뿌려댈 뿐, 바람은 쌔지 않아요.”

“하지만 부사장님!”

“이봐요. 황팀장! 지금 LDT당 스크랩단가가 450불이요. 450불! 시간이 돈이란 말이요. 오키나와에서 머뭇거리다 다음 태풍이라도 올라오면, 또 오키나와에 정박할 것이오?”

“.....”

“이런 입씨름 할 시간에, 선장들이나 닦달해요. 하루빨리 감천만에 도착하면 나비 피해갈 수 있어요.”

조직이 오너리스크를 피하려면 레드 팀은 필수 요소.

하지만 O2 그룹 미래전략실에 레드 팀은 없었다.

결국 오진탁은 안전과 Risk관리가 아닌 이익을 택했다.

100억이 넘는 6척의 폐 선박을 해체해 되 팔면, 대략 25억의 수익이 예상됐다.

이번 건만 성공하면 2005년 3분기가 지나기 전 순익 100억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두공장 매각대금 150억.

채 2년도 되지 않아, 투자 원금의 2배를 회수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괜히 철두철미하게 Risk 관리를 하는 게 아니다.

1% 가능성도 내게 발생하면 100%가 되는 것이다.

오진탁은 그 기초적인 불문율을 따르지 않았다.

◈          ◈          ◈

2005년 9월 1일.

NBC 저녁 7시 뉴스에 안수애 아나운서가 등장했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프롬프터를 읽어 내려갔다.

“오늘 새벽 4시! 태풍 나비가 쓰시마 섬 방향으로 진로를 바꿔, 대한 해협을 비켜 갔습니다. 제주도 부산 등에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 나비. 우리 나라에 제법 큰 피해를 안겼습니다. 부산 감천만에 나가 있는 류성호 기자 불러보겠습니다.”

“네. 부산 NBC 류성호 기자입니다.”

“태풍 나비가 대한해협으로 빠져나갔지만, 피해가 만만치 않다구요?”

“그렇습니다. 어제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울산과 부산에 시간당 250mm 라는 엄청난 폭우를 토했습니다. 저지대 침수로 집이 잠기고, 차량이 떠내려가는 등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 한 상황입니다.”

TV 화면에는 승용차들이 마치 배처럼 떠내려가는 장면이 나왔다.

폭우의 대표적 피해 장면이었다.

“그런데 류기자! 이번 태풍 나비로 O2 그룹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번 태풍은 O2 상사에게 결정적 피해를 입혔습니다. O2 상사는 약 2주전 미국에서 폐 선박 6척을 부산 감천만으로 들여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한해협을 건너던 중 일본으로 경로를 튼 태풍나비를 만나고 만 것입니다.”

“그럼 그 선박들은 어떻게 됐나요?”

“안타깝게도 6척 모두 쓰시마 북쪽 30km 지점에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군요. 인명피해는 없었습니까?”

“다행히 일본 해양경찰청의 도움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일본 해경의 신속한 지원으로, 선원들은 모두 조기 구출됐다.

하지만 30년 넘은 낡은 선박들이, 바다로 가라앉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중고 선박 값만 약 100억원.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란 점이었다.

환경문제 등으로 인해, 약 70m 깊이의 바다에 가라앉은 폐 선박은 끌어 올려야 한다.

가라앉은 선박을 끌어 올리는데 들어갈 돈이, 또 수십억 들어갈 판이었다.

뭘 해도 안 되는 놈은 안 되는 모양.

오진탁의 행운이 처참한 파국을 맞게 된 것이다.

NBC의 전국뉴스가 끝나고, 지역 NBC 뉴스 시간.

부산 NBC에서는 태풍 나비와 관련된 미담들이 보도됐다.

폭우에 떠내려가는 송아지를 구해낸 시민의 얘기.

아이를 구출한 할아버지 등의 얘기가 전파를 탔다.

그 미담 중에 윤재와 52 Cafe 에 관련된 뉴스도 있었다.

“오늘 새벽 부산 해운대 앞 대관람차 Vast Eye의 공사현장입니다. 태풍 나비로 인한 물 폭탄에 선제적으로 대비한, 시행사의 조치는 예방활동의 모범이었습니다.”

부산 NBC 기자는 해운대 동쪽 끝 달맞이 공원에 나가 있었다.

“Vast Eye 건설사 바필드와 52 카페 측은, 태풍 나비를 대비하기 위해 공사를 중단하고, 현장의 자재를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켰습니다. 그 뿐 아니라, 혹시라도 주변의 피해가 발생할까 봐, 인력을 배치해 통행을 차단하고, 경고문을 부착하는 등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뉴스의 화면만 봐도 52 Cafe와 건설사가 얼마나 애를 썼고, 철저히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공사자재나 컨테이너 등이 마치 레고블럭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리돼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부산 NBC 뉴스에 고도윤이 등장했다.

“저희가 진행하는 대관람차는 이용객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저희는 공사 단계부터 철저한 안전시공으로, 부산 시민들이 걱정 없이 Vast Eye를 즐길 수 있도록,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행히 태풍나비는 한국을 살짝 비켜나갔다.

태풍 나비를 정통으로 맞은 일본의 피해가 엄청났던 것에 비하면, 한국이 입은 피해는 비교적 미미했다.

다만 O2상사와 오진탁은 똥바가지를 뒤집어 쓴 꼴이 되고 말았다.

수십조의 재벌에 필수적인 Risk 관리가 전혀 안됐던 것이다.

Risk 관리는커녕, 오진탁이라는 오너 리스크만 부각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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