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대하는 자세
2005년 8월 새참만두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름 하여 완자만두!
만두소를 감자전분 가루를 입혀 익혀낸 만두였다.
역시나 출시되자마자 각종 인터넷 카페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 저번 새우만두는 겉바속촉이더니, 이번 완자만두는 완전 겉쫀속촉이네요. 겉은 엄청 쫀득쫀득하고, 만두소는 촉촉하고 육즙이 터지네요.
┗ 저는 만두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투명 만두였어요.
┗ 그게 감자전분을 살짝 입혀서 그런 거래요. 만두피로 치면 0.2mm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 새참만두는 왕만두만 잘 만드는 줄 알았는데, 이번 제품은 한 입에 쏙 들어가는 것이 먹기 편해서 좋아요.
┗ 그러게 말입니다. 진짜 만두가 이런 기쁨을 줄지 누가 알았겠어요?
┗ 진짜 만두 업계가 바짝 긴장할 듯.
┗ 이렇게 잘 만드니까 O2 푸드가, 공작질을 했겠지요.
┗ 중소기업이 대기업 무릎 꿇린 드문 사례인 듯!
=> 내고향 만두에서 새참만두를 300억에 인수제안 했다는데 실화냐?
┗ 내일식품 서영호 사장 대박났네?
┗ 무슨 대박? 인수제안 거절했는데. 그리고 서사장은 전문경영인이에요.
주주는 따로 있다고 합니다.
새참만두의 신제품, ‘완자만두’에 대한 평가는 맛에 대한 것부터 O2푸드와 관련된 것 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특히, 오재준 회장 명의의 사과문과 홈페이지 사과방송도 새삼 주목을 받았다.
듣보잡 만두소 공장 사장이 신상품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게다가 대기업의 방해공작을 뚫고 이뤄낸 업적.
그 뿐 아니라 콧대 높은 대기업 회장의 사과까지 받아냈다.
듣보잡의 성공신화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8월의 무더위 속에 윤재는 새참만두 히트의 본산인 익산공장을 찾았다.
태화정밀 김민기 사장이 윤재와 함께 했다.
“사장님! 뭐 이런 걸 다 사오셨어요?”
“하하하. 약소합니다. 직원들 더운데 얼마나 노고 많으시겠어요.”
윤재는 서영호 사장과 익산공장 직원들을 위해 준비해 온 간식을 건넸다.
아이스크림 100개, 수박 10덩이였다.
“이 뜨거운 날! 만두 쪄 내시려면 고생하실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나이는 서영호가 윤재보다 4살이나 많았다.
하지만 서사장은 윤재를 볼 때 마다, 인생을 새로 사는 기분이었다.
내일식품의 최대 주주이자, 수천억 재벌이 된 윤재였다.
하지만 윤재는 여전히 소나타를 타고 다녔고, 아이스크림이나 수박 등을 수행원도 없이 직접 들고 다녔다.
김민기 사장과 익산공장을 찾은 이유는 2가지였다.
“만두소 공급기랑 분쇄기 잘 작동하고 있죠?”
“그럼요. 공장 직원들의 찬사가 장난 아닙니다. 모두 김민기 사장님과 태화정밀의 기술력 덕분이죠.”
작년 재정비 기간에 충주와 익산, 그리고 진주의 만두공장에 기계화를 단행했었다.
원래 태화정밀기계는 기계류 제작에 장점이 있는 회사.
반도체나 LCD 같은 대기업 산하의 Tech 사업에 비할 수는 없어도, 중소기업용 기계 제작과 자동화 설비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 있었다.
“분리형 칼날은 청소하기 편해서 좋습니다. 청소시간은 대폭 단축됐는데, 오히려 위생상태는 더 좋아졌으니까요.”
태화기계의 기술력에 대한 서영호 사장의 칭찬은 계속됐다.
◈ ◈ ◈
익산공장을 나온 윤재 일행은 울산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윤재가 직접 운전하는 소나타에는 서영호 사장과 김민기 사장이 함께 타 있었다.
“사장님! 제가 어묵 공장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요?”
서영호가 긴장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마치 죽었다 살아난 뒤, 다시 시작하던 당시의 표정이었다.
“하하하. 서사장님! 걱정되세요?”
“솔직히 어묵은 포장마차 어묵 먹어본 게 전부라....”
“저는 사장님 걱정 전혀 안합니다. 만두업계를 혁신시키셨어요. 어묵이라고 못하실 일이 없어요. 현지 직원들도 그대로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윤재는 울산의 중소 어묵회사를 인수했다.
은행 부채를 포함해, 35억을 투자했다.
이재민 사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
“김민기 사장님께서 울산공장의 개선 포인트를 잡아주실 겁니다. 내일 식품의 성공방정식을 따르는 거죠.”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부분에는 기계 공정을 도입해서, 비용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이뤄낸 바 있다.
울산의 어묵 공장도 손 볼 곳이 너무 많았다.
“서사장님! 결국은 다 먹는 음식이에요. 만두소 만드는 거나, 연육에 밀가루나 전분 넣어 어묵 만드는 거나 비슷해요.”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만두를 쪄낸다면, 어묵은 튀기는 것이고. 만두를 냉동시킨다면, 어묵은 냉장시키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편할 겁니다.”
“하하. 사장님 말씀 들으니까, 막연하지만 힘이 나네요.”
“저는 서사장님 믿습니다. 250% 잘 해내실 거에요.”
누군가가 자신을 믿고 응원해주는 것은 여러모로 힘이 된다.
그 상대방이 윤재처럼 탁월한 사람이라면, 효과는 배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사장님! 할 수 있어요. 왕만두 시리즈 4총사에 이어, 완자만두까지 5연속 히트 아닙니까? 어묵도 하실 수 있습니다.”
윤재가 서영호 사장에게 펌프질을 하는 사이, 소나타는 울산의 어묵공장 앞에 도착했다.
‘울산 어묵이라.....’
일단 브랜드 네이밍부터 정리가 필요했다.
52 로 재편성할 것이냐? 내일식품의 새참 브랜드로 통합할 것인가?
‘52 Corp 체제로 전환하기 전까지는, 일단 새참 브랜드로 간다.’
서영호 사장과 손발이 잘 맞았기 때문에, 만두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윤재와 서사장의 공통점은 바탕이 좋다는 것.
미래의 흐름을 꿰고 있는 윤재와 서영호의 시너지는 상상 이상인 것이다.
“윤재 사장.... 나 진짜 조심스러운 질문 하나 해도 되나?”
“예. 사장님! 뭐가 궁금하세요?”
“자네는 대체 이 많은 돈이 어디에서 나오나?”
태화정밀기계 투자. 만두공장 인수에 이어 이젠 어묵공장까지 인수했다.
공장 기계화 설비에 들어가는 돈만 해도 수억은 쉽게 들어간다.
김민기 사장이 의아하게 생각할 만 했다.
“글쎄요... 화수분도 아니고 돈을 써도 써도 마르지가 않네요.”
“내 말이 그 말일세.”
“형님! 걱정마세요. 올해 상반기에 제가 주식투자로 벌어들인 돈만 250억입니다. 그리고 제가 쓰는 돈을 지출이라 생각 안 해요. 투자라고 생각해요.”
2004년 말 배당투자에 따른 배당수입과 평가차익이 50억.
그리고 오성전자와 POSCO를 밴드 내에서 사고 팔면서 챙긴 수입이 200억이 넘었다.
“1천만원 갖고 있는 사람이 2천만원 만들기 어렵지, 100억 있는 사람은 200억 쉽게 벌 수 있어요. 안타까운 현실이긴 하지만.....”
“그렇긴 하지.”
“그리고 제겐 김민기, 서영호 두 분 형님이 계시잖아요. 두 분 형님 덕에, 저는 더 큰 부자가 될 겁니다.”
“뭔 소리야? 자네 덕에 우리가 부자가 됐지!”
김민기와 서영호가 동시에 손사레를 쳤다.
“하하하. 3명이서 동시에 함께 잘 되는 걸로 정리합시다.”
윤재는 2명의 사장과 함께 배꼽을 잡고 웃었다.
52 Corp 관련자들이 다 그랬지만, 유독 김민기, 서영호와 케미가 좋긴 했다.
‘만두는 계속 잘 될 거고, 새참어묵도 대박을 낼 준비가 돼 있다.’
윤재의 아이디어를 죽을 각오로 현실화 시키는 서영호.
그가 있기에 어묵공장을 인수할 수 있었다.
앞으로 만두와 어묵시장이 훨씬 더 커진다면 모를까.
현재 수준이라면 서사장이 2개 사업장을 모두 커버할 수 있다고 봤다.
그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음 빅 이벤트의 주인공은 김민기 사장이었다.
하인즈 케첩을 포함한 국내외 업체에 케첩과 마요네즈 용기를 판매해, 대박을 터뜨린 매지홀 용기.
크리스챤 디올과 입생로랑, 그리고 한국 화장품 업체의 발주를 따낸 콤팩트 케이스.
그리고 대박을 안겨줄 특허 아이템이 하나가 국내외 승인 목전에 있었다.
단일 이벤트로는 현재까지 윤재가 벌어들인 돈 중 가장 큰 금액이 될 사건이 될 것이었다.
◈ ◈ ◈
윤재가 만두와 어묵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오진탁은 나름 미래 먹거리를 준비했다.
신흥국 시장 특히, 중국의 성장에 주목에 미래전략실이 준비한 아이템은 O2 상사의 영업활동 강화였다.
2004년 만두공장을 매각하며 받은 돈 140억.
O2 상사와 미래 전략실은 그 돈으로 미국 등지에서 폐 벌크선을 국내로 수입했다.
폐 선박을 해체한 뒤, 고철로 만들어 중국에 판매하는 사업을 O2 상사를 통해 진행해 왔던 것이다.
“내가 말 했지? 만두 파는 것 보다, 스크랩 사업이 수익이 좋다니까.”
“역시 부사장님 혜안은 천리안 급입니다.”
“우하핫! 과잉 충성은 총살이야. 총살!”
“부사장님 아부가 아니라, 팩트만 얘기한 겁니다. 상사 철강 트레이딩 팀이 작년 6개월 동안 벌어들인 수입만 20억이 넘습니다.”
“좀 벌긴 했어? 그치? 올해는 고철값이 더 올랐어. 상반기에만 35억 벌었으니까. 올해 순이익 70억 돌파는 시간문제 아니겠어?”
“여부가 있습니까? 늦어도 내년 말이면 만두공장 판매한 대금 모두 회수하고도 남을 겁니다.”
“우하핫! 신문 기사 봤어? 우리가 폐 선박 재활용해서, 친환경에 일조하고 있다는 기사 말이야?”
“헤헤. 부사장님! 저는 그 신문기사 오려서 스크랩까지 해 놨습니다.”
“이야. 강팀장 센스 장난 아니네. 고철 스크랩에서 스크랩이 나오다니 말이야.”
오진탁이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한지 만 3년이 돼 갔다.
그동안 마이너스의 손으로 유명했던 오진탁이다.
3년도 안 돼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정도로 활황인 고철 가공사업.
게다가 친환경 이미지까지 얻었다.
기분이 째진다는 게 이런 것이라 생각했다.
“회장님도 오하루 팀장에 대한 기대를 접을 겁니다.”
“어허! 내 동생 험담하지 마. 나 그런 비정한 오빠 아니라니까.”
오진탁은 좋은 오빠 코스프레까지 할 수 있어 더욱 기분이 좋았다.
‘산업재, 바이오를 키워야 해. 이번 스크랩 사업으로 역량을 입증한다.’
오진탁은 소비재를 넘어 산업재로 나가야 한다는 자신의 비전이 옳았음을 다시 확신하게 됐다.
간혹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사업을 했다하면 망하는 그런 사람.
오진탁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여전히 오진탁은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었다.
◈ ◈ ◈
2005년 8월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다.
관측이래 6번째로 강한 걸로 밝혀진 카트리나.
엄청난 바람과 물 폭탄으로 미국 남동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건물. 도로. 다리 등의 붕괴.
1,800명이 넘는 사망자.
재산피해만 7천억이 넘는 대재앙이었다.
“험험. 어쨌든 윤재 자네 덕분에 드디어 수익률이 200%를 넘겼어.”
윤재의 분당 사무실에 놀러온 론스타 한국대표 데이비드 리.
그는 윤재의 제안대로 원유상품에 연계된 ETF에 1년 넘게 투자해 왔다.
“쩝! 이럴 줄 알았으면, 500억 정도 더 넣을걸 그랬어.”
“500억 번 게 어딥니까? 그리고 당분간 유가는 더 오를 겁니다.”
“그럼. 이제 자네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겠네.”
윤재는 어쨌든 유쾌하진 않았다.
자신도 ETF에 투자해 오고 있었지만, 인명피해나 재산피해를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데이비드 리는 조금 달랐다.
1천억 투자하지 않은 것을 계속해서 후회하는 것이었다.
‘외국환은행은 물 먹었지만, 내가 어떻게든 네놈 단물 빨아 먹고 만다.’
데이비드 리는 윤재의 정보를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외국환은행의 가치가 올라갈 때 마다, 그 생각은 더욱 커져만 갔다.
윤재 역시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를 보며, 머릿속이 바뻐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태풍 매미가 연달아 터졌던 것이.....’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원당 값과 밀가루, 옥수수 값이 치솟아 힘들었던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카트리나 사태가 가라앉기도 전에, 한국에 태풍 매미가 다가왔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데이비드 또 놀러 와요. 우리 피쩨리아에서 마르게리타에 커피 한 잔 하며 또 얘기 나눕시다.”
“나야 언제든 콜이지.”
윤재는 데이비드 리를 내쫒다 시피 돌아가게 했다.
태풍 매미를 준비해야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