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47화 (147/196)

새참만두

3시간 넘게 진행된 변동혁과의 인터뷰.

52 카페에서 52 소프트.

중간중간 전해들은 마이크로 크레딧과 52 Farm에 이르기까지.

변동혁은 윤재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광신도 숫자를 늘리기 위해 윤재는 계속 핵이빨을 털었다.

"인터넷 뱅킹 용 보안 솔루션 작업에 투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업도 인수할 생각이죠. 최근 외국환은행에서 엔젤투자를 받았습니다."

"차태영 CEO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는 것은 레포트에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투자까지 받게 됐군요."

"네. 외국환은행이 저희 고객사 이기도 하니까요. 30억을 전환사채 방식으로 투자 받았습니다."

남창진이 증권업계의 파트너라면, 차태영 CEO는 은행권의 파트너였다.

차태영 차명수 부자와 좋은 관계를 맺었던 인연이, 비즈니스 관계로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편집장님도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 때문에 짜증난 경험 많으시죠?"

"어휴. 말 하면 뭐합니까? 진짜 액티브X 때문에, PC키보드 여러개 날렸습니다."

변동혁이 키보드를 쾅쾅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2010년이 넘어서까지...

한국의 인터넷 문화의 발암유발자중 갑은 액티브X 였다.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 없는 인터넷 뱅킹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나아가 모바일 뱅킹도 서비스할 생각이구요."

"아!"

"은행이 공인인증서와 액트브X 때문에, 보안에 투자를 안 하고 안주해 버리거든요. 그래서는 국내용 우물안 개구리 밖에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메신저에서 모바일 뱅킹으로 나아가는 윤재의 꿈에 변동혁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런 의미에서 차태영 회장님은 깨어 있는 분이시죠."

차태영이 외국환은행장에 오른 것은, 은행과 한국사회에 큰 도움이 될 사건이었다.

윤재는 차태영과 손을 잡고 외국환은행을 변화시킬 생각이었다.

전생에서는 론스타의 먹튀 희생양이 됐고, 론스타의 배만 불렸다.

매각과 론스타 사건 정리로 한국이 치른 비용은 돈으로 따지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외국환은행이 한국 금융산업의 퍼스트 무버가 될 거다.'

외국환은행의 4% 개인대주주인 윤재.

퍼스트 무버로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윤재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다.

"4월1일에 NC텔레콤을 통해 WIPI용 모바일 뱅킹을 서비스할 계획입니다."

"3월에는 오이 메신저. 4월에는 모바일 뱅킹인가요?"

"하하하. 공교롭게도...."

어차피 WAP이나 WIPI같은 통신사들 모바일 인터넷은, 빅애플의 하이폰 세상이 오면 폭망한다.

'미래를 위한 노하우 축적!'

모바일 뱅킹 서비스를 무리해가며 구축하는 이유였다.

“홍도현 이사님을 개발 책임자로 영입했다는 말씀 드렸죠? 최근 홍도현, 나란희 이사님께서 교육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정말 사장님의 끝없는 확장에, 이젠 저절로 경의를 표하게 되는군요."

"하하하. 아직 시장에 보여준 것은 없습니다."

"아닙니다. 말씀만 들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3월1일까지 10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52 소프트의 첫번째 작품이 시장의 평가를 받을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발달장애나 지적장애 등 공부와 학습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환경오염과 산업화. 워킹맘의 증가에 따른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라고 하더군요. 최근 더 증가추세라는 얘기를 저도 들었습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전부는 아닙니다. 아프리카나 남미 같은 곳에 교육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카이스트 동문인 홍도현과 나란희 부부.

항상 1등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던 사람들이었다.

발달 장애를 갖고 태어난 2세가, 그들 부부의 삶의 방향을 틀어 버린 것이다.

"1월초에 홍도현 이사님과 한국에서 만났죠. 아프리카나 남미 등의 교육 소외국의 아이들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자는 얘기에 많이 놀라시더군요."

실제 홍도현은 윤재의 그 한마디에 더욱 감동했다.

홍도현 자살을 택한 서영호를 구해준 얘기와, 그에게 만두회사 경영권을 줬다는 미담만 가지고도 윤재에게 충성을 다짐한 상태였다.

"교육 소프트웨어를 통한 사회공헌의 무대를 세계로 넓히는 겁니다."

윤재의 한 마디에 홍도현의 자기 부부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던 것이다.

“사장님! 죄송한 말씀인데, 그런 비즈니스는 전형적인 돈 안 되는 사업 아닌가요?”

미담 파괴자가 할 법한 질문을 변동혁이 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사회공헌 활동은 전형적인 돈이 안되는 사업.

“SHEQ 와 ESG를 실천하는 거죠.”

“예?”

변동혁은 안전.건강.환경.품질이나 사회적책임과 기업지배구조를 뜻을 몰랐다.

윤재는 사회적 활동의 필요성을 설명해 줘야 했다.

"그런데 ESG 경영이 돈도 된다는 겁니다."

"예? 정말요?"

“교육 소프트웨어 사업은 사회적 활동이자,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

“돈 안 되는 서비스가, 어떻게 투자가 되나요?”

“교육용 소프트웨어 개발 경험 자체가 투자입니다. 무료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도, 개발자들의 경험과 노하우는 쌓이죠."

"아!...."

"향후 토익. 토플 같은 영어나 수학 등 유료 교육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거죠."

'이 사람은 벼락 부자를 꿈 꾸는 게 아니구나. 멀리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변동혁은 어렴풋이 윤재와 홍도현 부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교육 소프트웨어 산업도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윤재와 52 소프트의 사회공헌활동이, 앞으로 가지고 올 기회에 대해서는 눈치 채지 못했다.

장장 4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어느새 종착역이 목전이다.

변동혁이 마지막 질문을 했다.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를 그만두고, 벤처기업과 엔젤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O2 푸드에서 3년 6개월 정도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테크 산업과, 푸드 산업의 융합이 최종 목표입니다. 푸드 테크라고 칭할 수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생소했는데 이젠 확실히 푸드 테크가 어떤 개념인지 알겠습니다."

"네. 푸드 테크를 통해 소비자들이, 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편하게 드시는 날이 올 겁니다. 그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장시간 인터뷰 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윤재는 카페를 떠났고, 변동혁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는 인터뷰 내용을 복기하며 기사의 컨셉과 소개글을 작성했다.

31세의 나이로 수천억대 부자가 된 남자. 투자도 사업도 손대는 족족 히트 친다는 21세기의 마이다스 왕 김윤재.

저는 한국 스타트 업에 새로운 기대주가 등장했다고 감히 말 하겠습니다.

독자들께서도 인터뷰를 읽다보면, 미래에 대한 김윤재 사장의 인사이트에 반하게 될 것입니다.

변동혁이 인터뷰 기사 도입부에 작성한 소개글이었다.

◈          ◈          ◈

2005년 3월말.

국내 최대 음식문화 커뮤니티인 '밥사랑'과 '식도락' 등의 카페를 달구는 글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 새참 만두 유행인데 먹어 본 사람? 만두피 쫀득 거리는 것 실화냐?

└ 새참 새우 만두 군만두인데 만두피가 바삭거려요.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해요.

└ 그럼 겉바속촉이네요.

└ 그게 뭐에요?

└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면서요?

└ 님! 좀 짱인듯. 겉바속촉이라니.... 신조어 탄생이닷.

- 새참 고기만두 육즙 터져요. 진짜 미친 맛!

└ 정말 깜놀! 만두가 아니라 딤섬인 줄!

└ 무식한 소리 하시네요. 만두가 딤섬이에욧!

└ 사돈 남 말 하네. 만두랑 딤섬은 다르거든요. 빼액!

- 새참 만두는 크기가 일단 왕입니다요. 완전 왕만두. 내 스타일!

└ 개당 600원 정도 먹히니까. 좀 비싼 편인데, 크기를 생각하면 가성비

갑인 듯!

└ 맞아요. 맛도 없고 쥐알만한 물만두 20개 보다, 새참 만두 1개가 더

나은 듯.

- 새참 만두 돼지고기가, 52 Farm 이라는 회사의 제품을 쓴대요. 2만평 목장

에서 방목해 키우는 건강한 돼지라고 합디다.

└ 레알? 우리 나라에도 그런 돼지 농장이 있었어요?

└ 어쩐지 만두소 돼지고기 맛이 일품이더라니. 맛있는 이유가 다 있었네.

└ 갑자기 새참 만두 먹고 싶어졌어요. 다이어트 해야 되는뎀.

└ 님! 120kg 넘죠? ㅋㅋㅋ

└ 어머! 아네요. 비 매너 댓글은 자제 하시죠?

기존 서영호 사장의 내일식품과, O2 푸드의 만두공장 등을 인수해 새로 설립한 통합 내일식품.

당초 계획한 3개월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렸지만,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내일식품의 통합 만두 브랜드 '새참'의 맛에 대한 호평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새참만두는 기본적으로 기존 만두보다 1.5배 가량 큰 왕만두를 지향했다.

새참 브랜드로 출시된 새우만두. 김치만두. 돼지와 닭고기 기반의 고기만두 2종까지 총 4개의 제품이 설날 전에 출시됐었다.

그리고 1개월 만에 입소문 릴레이가 번져 나간 것이다.

맛에 대한 호평이 전부가 아니었다.

- 근데 새참이 무슨 뜻이에요?

└ 왜 새참 먹는다는 얘기 하잖아요. 그 새참이라고 합니다.

└ 아니에요. 내일식품 홈페이지 가 보세요. New(새)&True(참)의 줄임말임.

└ 하하. 둘 다 맞다고 대표이사가 그랬어요. 서영호 사장이라고 쓰레기

만두 사태 때 한강에 투신자살 하신 분이죠. 다시 태어났다는 맘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만들었다고 하네요.

└ 어쩐지! 진짜 냉동만두에서 장인 정신을 느낄 줄이야!

내일 식품을 이끌고 있는 서영호 사장에 대한 일화와, 브랜드 '새참'에 대한 게시글과 댓글도 숱하게 접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글과 댓글이 압도적이었다.

출시 한달만에 돌풍을 일으킨 내일식품의 새참만두.

나비효과는 도처에서 나타났다.

윤재와 내일식품에 자사의 만두를 팔아버린 O2푸드 이해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석진 팀장님! 거래처에서 만두 좀 납품해 달라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만두가 있어야 납품을 하죠."

광주 영업3팀을 이끌고 있는 오석진 팀장.

오팀장뿐 아니라 차명수 과장 같은 영업사원들까지 비슷한 고충을 겪었다.

폭풍 불만을 듣고난 오석진의 자리로 차명수가 들어왔다.

"배사장님에게 팀장님께 전화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명수 네가 뭔 죄냐? 사장님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전화를 했겠어."

"그러게요. 오진탁 그 멍청이는 진짜 마이너스의 손이에요. 마이너스의 손."

"야! 누가 들어. 좀 조용히 좀 해!"

가뜩이나 친윤재 리스트에 올라 고욕을 치루고 있었다.

오석진이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어휴! 속 터져. 그러게 멀쩡한 만두공장을 왜 팔아가지고."

"그 때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 만두가 사라질 기세더니...."

오석진과 차명수는 답답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문제는 윤재는 이렇게 될 걸 알았단 얘기입니다. 팀장님도 아시죠? 요즘 날개 돋힌듯 팔리는 새참 만두!"

"에효. 내가 그걸 왜 모르겠니? 내일식품 뒤에 윤재가 있다는 얘기야. 본사에도 소문이 짜하게 퍼졌다더라."

오석진과 차명수의 얘기는 사실이었다.

쓰레기 만두 파동은 처음 3개월간 만두를 한반도에서 사라지게 할 기세였다.

그 다음 3개월 동안에도 만두장사가 파리를 날렸다.

안수애와 탐사보도 팀의 방송으로 분위기가 달라졌고, 2004년 말에는 경찰의 발표까지 있었다.

쓰레기 만두 사건은 경찰의 신중하지 못한 보고와, 선정주의에 환장한 쓰레기 언론의 합작품이라는 게 진실이었다.

그리고 2005년 3월.

새참 만두가 출시 1개월 만에 한국 만두시장을 강타했다.

쓰레기 만두 사태로 공장현대화나 신제품 기획을 뒤로 미룬 식품회사들.

미처 손 써 보기도 전에, 새참만두의 신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O2 그룹 미래전략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진탁을 중심으로 회의가 한창이었다.

"재무팀장님. 아버지 건강 상태 나뻐지는 것 아시죠?"

"네. 실장님."

"노가은 실장 통해 그림 좀 더 사들여야 겠어요."

"명심하겠습니다."

90분 정도 진행된 회의의 마지막 주제는 O2 푸드에서 올라온 보고서였다.

내일식품의 만두사업이 성공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풋. 내일식품의 새참만두가 돌풍이라고? 풋. 푸하하하."

미래전략실의 팀장들은 어이가 없었다.

웃을 일이 아닌데, 실성했나 싶은 것이다.

"돌풍 아니라 허리케인을 일으켜도 안돼. 만두 그 까짓거 얼마나 번다고? 안 그래?"

"네. 그렇습니다. 부사장님!"

이미 저질러 버린 일이었다.

미전실 팀장들은 과거의 일로 오진탁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만두공장 판 돈으로 O2상사 원자재 무역업에 투자한 게 훨씬 이익이지 않나?"

"그렇습니다. 부사장님 용단 덕분에, 선박 해체 사업으로 작년에만 50억을 벌었으니까요. 동 기간으로 비교하면, 만두보다 수익성이 3배 정도 높습니다."

소비재에서 산업재나 바이오 등 미래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오진탁의 지론이었다.

중국시장의 성장에 베팅한 미래전략실은, 2004년 하반기 O2상사의 조직과 사업을 확장했다.

그 중 하나가 원자재 무역업이었다.

나쁘지 않는 판단이었다.

곡물. 철광석. 석탄. 구리. 석유 등 원자재를 중국과 신흥국이 빨아들이고 있었다.

"만두 많이들 먹으라고 해. 우리는 미래전략을 준비할 테니까."

"하하하. 역시 부사장님의 혜안에 놀랄 따름입니다."

미래 전략실은 그룹의 미래와 오너 일가의 지분정리가 가장 중요한 업무.

그냥 이 정도로 기분 좋게 끝내면 좋을 것을.

아부와 출세에 눈먼 성수용 대외협력팀장이 선을 넘는다.

"아직 내일 식품 쪽에 기존 우리 직원들 있거든요. 그 쪽 통해서 쓰레기 만두 파동을 다시 한 번 일으키면 어떨까요?"

윤재에게 만두공장을 팔면서, 희망자는 O2 푸드의 다른 공장이나 부서로 이동배치를 시켜줬다.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이동배치 됐고, 내일식품을 택한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미전실에서 위험한 계략을 꾸민 것이다.

기존 직원들 중 쓸만한 사람을 매수해, 내일식품과 윤재에게 해코지 하자는 의견이었다.

오진탁이 성수용팀장의 얘기에 눈을 번쩍 떴다.

"에이. 괜한 짓 벌이지 마. 아버님 노여워 하실라."

오진탁은 분명히 No라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을 읽지 못할 팀장들이 아니었다.

"네. 실장님! 괜한 짓 벌리지 않겠습니다."

직언하는 충신들을 몇년에 걸쳐 내쳐 온 결과였다.

미래전략실의 수장도, 그 밑의 팀장들도 간신배들의 비중이 높아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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