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43화 (143/196)

개발 책임자

2004년 1년 동안 윤재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52 소프트의 개발자 몇 명을 해고한 일이다.

유연한 근무시간.

최고수준의 급여와 복지혜택.

성과에 따른 소정의 회사 주식까지 지급까지.

스타트 업이라고 하기에 과분한 혜택이었다.

덕분에 52 소프트는 직원들의 소개와 추가 채용으로, 개발자를 30명 까지 늘릴 수 있었다.

문제는 모든 직원들이 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디에나 있는 프리 라이더와 부적응자가, 52 소프트에도 있었다.

윤재는 먼 곳의 얘기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청각의 보유자.

7개월가량 함께 일하며, 해고자 리스트를 만들어야만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을 피하려면, 불가피한 조치도 취해야 한다.

관련회사들의 홈페이지가 완성되고, 52카페 가맹점들을 위한 인트라넷과 ERP 시스템을 구축한 뒤, 윤재는 6명의 직원을 쳐냈다.

“최 실장님 보기에도 이 6명은 가망이 없죠?”

“네. 사장님. 인사 실도 피어그룹 평가 등 다각도로 검토했습니다. 마음 아프더라도 늦기 전에 자르는 게 맞습니다.”

인사실장 최동진과 고민을 거듭하다,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해고자들을 사장실로 불렀다.

항상 웃는 얼굴에 좋은 말만 하는 사장이었다.

해고 통보임을 모르는 그들은, 웃으면서 사장실로 들어왔다.

윤재가 금일봉이라도 주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김창식씨. 10월31일자로 해고입니다.”

당연한 반발이 뒤따랐다.

회사에 7개월 다니려고 입사한 것은 아닐 테니까.

“사전 경고를 이미 했고, 인사위원회도 당신의 해고를 결정했습니다.”

“사전 경고라니요? 사장님께서 언제 사전 경고했습니까?”

“8월말까지 토익 점수 750점 넘기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성적표조차 제출하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

설마 영어점수 낮다고 회사를 자르기야 하겠어?

그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단순히 영어점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52 소프트는 글로벌 진출을 지향하고 있다고 매주 얘기했어요. 서양식 사고방식. 서양식 문화의 체득. 글로벌 문화가 녹아있는 프로그래밍을 해야 한다고, 정확히 17번 얘기 했더군요.”

“그렇지만....”

김창식을 필두로 6명 전원 그렇게 해고시킬 생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영어점수 미제출로, 또 어떤 사람은 인문고전 레포트를 매달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붙었다.

“태복씨! 코드만 빨리 짜는 건, 누구나 학원 1년 다니면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학원 1년 정도 다닌 솜씨는 아니지 않나요?”

“인문학적 통찰력과, 다양한 사회 경험이 좋은 코드를 짜는데 도움이 된다고 얘기했죠. 그런데 손태복씨는 남들 1개월에 2개씩 제출하는, 레포트를 단 한 번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매월 자기소개서를 갱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조태화씨! 이미 취직한 사람, 자기 소개서 받아서 뭐 하겠습니까?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다음, 팀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을 통해, 서로를 더 알아가자는 취지 아닙니까?”

“사장님! 날마다 만나는 팀원들과 뭘 더 알아요? 지금 그딴 이유로 해고하겠다는 겁니까?”

“서로를 아는 만큼, 팀워크는 향상되는 겁니다. 소통도 훨씬 잘 될 거구요.”

“소통보다 실력이 우선 아닌가요?”

“태화씨. 소통이 잘 될수록 버그가 생길 확률은 떨어지죠. 당신은 6개월 동안 매달 실시한, 자기소개서 낭독 시간에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고입니다.”

6명은 그런 식으로 힘 한번 못써보고 해고됐다.

근무 태만. 적당히 남들 성과에 묻어가려는 사람. 회사에 와서 주식투자만 하는 사람. 조직문화와 팀워크를 해치는 사람들이었다.

해고를 하면서도 윤재는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

일종의 갱생프로그램!

“전남 나주에 가면 52 Corp에서 운영하는 양계장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내년 상반기까지, 양계장 일을 하세요. 우리와 함께 근무할 준비가 되면 다시 부르겠습니다.”

“닭 똥 냄새 나는 양계장에 가서 우리 보고 일하라 구요? 사장님 제정신 입니까?”

“그곳은 친환경 농장입니다. 냄새도 거의 없죠. 그곳에 가서, 세상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오시면 조건 없이 복직시켜 드리겠습니다.”

물론 6명 모두 윤재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정도의 멘탈이라면, 회사에서 일도 그 따위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노동부에 신고할 겁니다.”

“신고를 하던 진정을 하든 맘대로 하세요. 회사와 제가 져야할 책임이 있다면, 기꺼이 감수할 테니까!”

그렇게 결국 생에 첫 해고를 단행하고 말았다.

‘플랜 A는 O2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다음, 푸드에 테크를 결합시킬 생각이었어. 플랜 B는 그 역순으로 가는 것이고!’

이미 플랜 B의 길로 들어선 윤재.

플랜 B의 성공을 위해서는, 52 소프트의 역량강화가 필수였다.

관건은 역시 사람!

인재들을 만나보고 그들을 모셔오기 위해서는, 자신이 조금 더 자유로워져야만 했던 것이다.

미국 출장 갔을 때 개발 총괄 책임자를 스카웃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순간이었다.

◈          ◈          ◈

6명을 해고시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52 소프트를 강화시킬 인재 영입 문제로 골머리를 썩일 때였다.

미국에서 스카웃에 실패한 적이 있던 홍도현.

그가 먼저 윤재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뜻밖의 연락이었다.

“안녕하세요? 도현 형님! 반갑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게임회사를 부부가 함께 다녔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아쉬울 게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먼저 전화를 한 이유가 궁금했다.

“형수님! 학업은 잘 진행되고 있죠?”

“네.. 뭐... 그럭저럭!”

“형수님! 어떻게 2세는 잘 태어났습니까? 제가 알았으면 전남 진도 산 미역이라도 보내드렸을 텐데!”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진도 산 미역은 산모에게 좋기로 유명했다.

지산면 아재들에게 귀가 아프도록 들은 얘기이기도 했다.

2세 얘기에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뭐지? 내가 실수했나?’

홍도현 부부의 2세에게 뭔가 석연치 않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김사장님! 52 소프트 미션이 미친 사람들이 되자 라고 했죠?”

“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런 의미가 맞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뵙고 말씀 드리면 더 좋겠지만, 전화로 말씀드리는 것 이해해 주십시오. 부탁이 있습니다.”

5개월 만에 전화한 홍도현의 용건은, 윤재에게 투자를 해 달라는 얘기였다.

카이스트라는 한국 최고의 대학을 나온 부부.

후한 연봉을 받는 국내 최고의 게임회사.

남 부러울 게 없던 그들 부부가 인생의 첫 번째 시련을 만났다.

2세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것이다.

“저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살면서 공부를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새 전화기 너머 홍도현은 울고 있었다.

“공부를 잘했고, 게임하는 걸 좋아했고, 돈도 좋아했죠. 그래서 게임회사에 들어갔고, 아내를 만났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요.”

“예. 다들 그렇게 살고 싶어 하죠.”

윤재가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홍도현의 말을 들어줄 뿐이었다.

“아이가 공부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많이 울었습니다.”

“네. 형수님이 얼마나 마음 아팠을지...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35년을 살았으면서 우리 부부는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몰랐던 겁니다.”

학창시절부터 현재까지 메인 스트림 중의 메인 스트림으로 살아온 사람의 통렬한 반성이었다.

어느새 그의 울먹임이 더 커졌다.

“우리 아이와 같은 애들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부부가 앞으로 할 일이라 생각했어요.”

홍도현 부부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

실리콘 밸리의 벤처 캐피탈까지.

지적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펀딩을 시도했다고 했다.

20곳이 넘는 투자자를 만났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투자는커녕, 핀잔만 들었습니다. 어느 누가 그런 마이너리티 사업에 돈을 대겠냐고 말이죠. 혹자는 세상이 저희 부부와 같은 선의의 마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얘기도 하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다 문득 미친 사람들이 되자던 김 사장님이 생각났어요.”

홍도현은 그 뒤 윤재에 대해 알아봤다고 했다.

그리고 윤재가 양화대교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했던, 서영호 사장을 구해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의 만두공장을 사주고, 경영권 까지 맡겼다는 사실도.

게다가 수천억의 부자가 됐다는 사실까지도.

윤재에 대해 알아볼수록 놀라움은 커져만 갔다.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저희 부부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 아이들을 위한 교육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꼭 저희 아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우리 아이 같은 어린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들에게 우리 부부가 갖고 있는 기술로,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윤재는 묻지도 따지지 않고, 홍도현 부부에게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사소한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부부에게 해가 될 내용은 아니었다.

“좋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투자하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먼저 형수님 학업을 마치도록 하십시오. KC소프트가 학비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하면, 제가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홍도현은 차마 염치가 없어 고맙다는 말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2명의 천재가 모두 교육 소프트웨어 일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형님은 1년의 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반은 미국에서 일 하시면 어떨까요?”

윤재는 자신의 투자 조건을 계속해서 얘기했다.

“추가적인 인재를 발굴할 때 까지, 형님께서 저를 도와 52 소프트의 개발 총괄을 맡아 주세요. 1년의 반은 미국에서 형수님을 도와 주시구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리고 파격은 끝없이 이어졌다.

마치 서영호를 영입하던 것과 비슷했다.

“지분에 대한 문제 등은 도현 형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독자 스타트 업을 만들어도 되고, 저희 52 소프트로 입사해 개발을 하셔도 됩니다. 장단점이 있을 텐데, 말 그대로 편하게 결정하세요.”

“감사합니다. 아내가 기뻐할 것 같군요.”

“저야 말로 감사합니다. 두 분과 함께 일할 기회가 생겼으니까요.”

“아내가 학업을 마칠 때 까지만 미국에서 일하고, 끝나면 가족 모두 한국에 합류하겠습니다.”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야 형님 가족과 함께 해쳐나가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적 문제도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좋을 듯싶네요.”

아들 때문에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홍도현 부부.

보통의 아이들과 조금 다른 아이.

한국의 교육시스템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험한 일인지 다들 잘 알았다.

홍도현의 최종 결정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틀 뒤에 홍도현이 다시 연락해 왔다.

그들은 미국을 베이스로 일 하기로 했고, 홍도현은 52 소프트의 개발 총괄 직을 수락했다.

그리고 그들 부부 모두 52 소프트의 직원이 되기로 결정했다.

홍도현이 52 소프트에 합류했을 때의 장점은 분명했다.

일단 부부 모두가 훌륭한 개발자였다.

현재 회사 직원 누구보다도 경력이 풍부했다.

스펙이 좋았고 실리콘 밸리 근무경험도 있어, 우수한 사람들을 채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교육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는 애들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

그 일을 위해 홍도현 부부가 요구한 투자액은 200만 달러였다.

‘세상인심이라는 것이 참 사납구나!’

수 조원 가치의 게임회사와 실리콘 밸리의 투자자들에게 200만 달러는 큰 액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꾸고 희망을 주는 일에, 단 돈 200만 달러를 흔쾌히 내놓는 사람이 없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그렇게 냉엄했다.

윤재 역시 얼마 전 6명의 해고 결정을 한 바 있다.

홍도현과 얘기가 잘 끝나자, 다시 6명을 해고했던 일이 생각났다.

“신정태씨는 눈도 나빠서, 저보다 성과가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코딩도 느리고. 근데 신정태는 되고, 저는 왜 해고인 건가요?”

문득 해고통보를 했을 때, 손태복이 따지던 생각이 났다.

“태복씨! 태복씨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자기소개서 시간에, 정태씨는 매번 참석했습니다. 자신이 황반변성을 앓고 있다고 하더군요.”

황반변성은 종국에는 실명에 이르는 불치의 병이다.

“정태씨자 자기소개서 시간에 뭐라 했는지 당신은 모르시죠? 한 번도 참석한 적 없으니까?”

태복은 과외시간 개념으로 생각해 참석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미 정태씨는 가정이 있고, 아이가 둘이나 있는 사람입니다. 정태씨는 10년 뒤 혹은 20년 뒤에 자신이 시력을 잃게 됐을 때, 아이들의 성장해 가는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 가장 두렵다고 하더군요. 이런 정태씨의 사연에 태복씨는 관심조차 없어지 않았나요?”

실제 그랬다. 눈이 나빠 고생하는 정태를, 태복은 귀찮은 존재 정도로 생각했으니까.

그 눈깔 병신 새끼. 화면을 보여주면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한다니까. 진짜 같이 일 하려니 속 터져 죽겠어. 지가 심봉사야 뭐야?

윤재는 탈 인간급 청력의 보유자.

화장실에서 손태복이 여친과 통화하는 내용을 들은 적 있다.

해고를 결심한 가장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럼에도 신정태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컴퓨터 모니터를 확대해 가면서 코딩을 하고 있었다.

“동료들에 대해 서로 알면 알수록, 소통이 좋아집니다. 그럼 우리가 짜는 코드들의 퀄리티도 좋아지죠. 태복씨는 그걸 거부한 거고. 그래서 해고된 겁니다.”

홍도현 부부의 애로사항을 듣다보니, 저절로 당시의 일이 다시 생각났다.

‘그래. 가능성과 열정을 보이면 함께 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비즈니스 세계의 냉정함을 보이는 수밖에 없어!’

최고경영자는 그래서 외롭고 고독한 자리였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도, 피해갈 생각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윤재는 천재 개발자 부부와 일하게 됐다.

홍도현 부부와의 일화는 좁은 벤처 업계에 금방 퍼져 나갔다.

그리고 우수한 사람들이 52 소프트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국 지점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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