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만큼 튀어 오른다
2004년 9월.
어느덧 1년 농사를 돌아볼 시기가 됐다.
2004년은 풍년도 그냥 풍년이 아니라 대풍작!
먼저 개인적인 재산증식.
5월 옵션 초대박으로 번 돈만 2,500억!
당시까지 한국에서 개인이 파생상품으로 벌어들인 금액 중에, 단연코 가장 큰 금액이었다.
“창진아! 당분간은 개별 주식은 배당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 짤 생각이다.”
“캬! 형님 타이밍 죽인다. 딱 좋네! 배당주! 종목은 뭘로 갈 거야?”
“3가지만 하자. KS텔레콤. 오성전자. POSCO!”
“와! 어쩜 내 생각과 똑 같지. 형! 우린 천생 연분인가 봐!”
“미친놈아. 네 여친한테나 잘 해라!”
5월 옵션 초대박 외에도, 주식투자로 벌어들인 돈이 또 몇 억!
슈퍼개미라 5% 수익만 내도 몇 억이 왔다갔다 한다.
남은 기간 3대 배당주 투자는 배당수익 뿐만 아니라 시세차익까지 안겨줄 것이었다.
"창진아! 신흥국 성장 덕을 톡톡히 보게 될 거야. 앞으로 3~4년간 대세 상승장이 온다."
"믿습니다! 할렐루야! 윤재천국! 불신지옥!"
"하하하. 나만 믿어! 우리 함께 천국으로 가는 특급열차를 탄 거야!"
오성전자 30만원. 포스코 13만원하던 시절이었다.
사놓고 버티기만 해도, 시간이 돈을 벌어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윤재의 투자회사들.
52 Corp 관련사들의 1년도 제법 굵직한 변화들이 있었다.
52카페는 윤재가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
덕분에 가장 먼저 자리 잡았고, 100호 매장 돌파가 목전에 와 있었다.
"윤재야! 올해 말이면 스타빈스와 매장 차이가 20개 수준으로 좁혀진다."
"하하하. 도윤 형님 뚝심과 경영능력 덕분이죠."
"아냐! 네 통찰력 덕분이지! 어떻게 찍어주는 부지마다 대박이 터지냐?"
"땅파서 커피 파나요? 형님과 직원들 노고 덕이라 생각합니다."
도심. 외곽. 관광지 중심의 시골형 매장 모두 골고루 잘 됐다.
직영점 위주의 성장을 고수한 덕에, 직원만 450명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대부분이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었지만, 개발팀과 본사 인력만 해도 100명 가깝게 조직이 커졌다.
어느덧 52 Cafe는 확고 부동한 국내시장 2위로 성장했다.
사세가 커지자 주요 언론들이, 앞 다퉈 52Cafe와 고도윤 사장을 취재했다.
“고사장님! 왜 52 Cafe 죠? 숫자 52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년이 대략 52주 아닙니까? 매주 1번은 저희 카페를 찾아 달라는 의미에서...”
자신 넘치는 표정으로 인터뷰 하는 고도윤 사장을, 심심치 않게 잡지나 신문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상반기가 끝났을 무렵, 52 카페는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초창기부터 함께한 많은 사람들이 승진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52 카페에서 52 피자로 이직한 사람들이었다.
고도윤 사장과 윤재에게서 역량을 검증받은, 직원 5명이 52 피자의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과거 고도윤이 윤재에게 스카웃 됐던 방식으로, 이들 5명이 52피자를 책임지게 됐다.
그들과 함께 분당과 을지로에 있는 52 카페 건물에, 나폴리 3대 피자 중 하나인 브란디 피쩨리아를 입점시켰다.
2개 매장 모두 이탈리아 출신의 피자이올로를 고용했다.
나폴리 브란디의 사장인 로베르토가 보내준 사람이었다.
“윤재! 내 자식과 형제나 마찬가지인 사람일세. 한국 여자들과 연애도 좀 시켜주고, 가족처럼 돌봐 주게나!”
브란디의 총괄 사장 로베트로와 통화했을 때, 그가 남긴 부탁이었다.
2명의 이탈리안은 브란디 한국 매장에서 근무하며, 한국 직원들에 대한 교육까지 담당할 계획이었다.
“윤재! 진짜 40개나 오픈 시킬 거야? 나폴리에도 하나밖에 없는데, 한국에 40개는 너무 많은 거 아냐? 이러다가 나폴리 브란디가, 한국 브란디 분점이라는 소리 듣게 생겼어! 와하하하하.”
한국에 브란디를 오픈하겠다는 얘기를 반신반의했던 로베르토.
실제로 매장 2개를 오픈시키자,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로베르토였다.
“40개까지는 아니지만, 최소 10개는 넘을 겁니다. 한국의 대도시에는 모두 브란디를 오픈할 생각이니까.”
“10명이든 20명이든 꼭 이탈리아 피자이올로를 채용해야 하네. 내가 어떻게든 사람은 보내줄 테니까."
"로베르토! 고마워요. 당신의 넉넉한 마음 잊지 않을게요."
로열티는 약속대로 무료.
하지만 이탈리안 피자이올로를 채용해야 했고, 밀가루와 치즈 등 모든 재료는 이태리 산을 이용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나는 자네를 믿네. 우리 브란디를 더 유명하게 해 줄 사람이란 걸 말이야.”
“하하하. 로베르토! 걱정 마요. 이제 나폴리 피쩨리아는 브란디가 확고부동한 원탑이 될 겁니다."
"와하하하. 미켈레와 마테오 두 녀석의 코가 납작해 지겠어. 와하하하하."
100년 피쩨리아의 주인으로, 먹고 사는 걱정이 없는 로베르토.
지역내 라이벌들의 콧대를 꺽을수 있다는 사실이 저렇게나 좋은 모양이다.
3년 내 10개 매장 오픈.
적어도 한국에서 브란디는 나폴리 최고의 피쩨리아로 유명세를 탈 것이 분명했다.
주로 미국식 피자와 배달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
경제성장과 소득수준 향상 덕분에, 이태리 스타일 피자의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하루는 론스타 한국 총괄 데이비드 리를, 분당 브란디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뒤통수를 쌔게 후리기 위해, 윤재가 공들이고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마르게리타를 보며 실망했지. 너무 성의 없어 보였거든. 그런데 담백한 맛이 기가 막히군!"
두툼하면서도 각종 토핑이 푸짐하게 올라가 있는 미국식 피자와, 브란디의 피자는 확실히 달랐다.
미국식 피자에 비하면 지나치게 단촐 했던 것.
하지만 치즈. 토마토소스 등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 노력한, 이태리 피자의 맛이 데이비드 입맛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마르게리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데이비드가 말했다.
“자네는 이미 52Cafe를 갖고 있고, 은행 지분만 해도 1천억이 넘을 텐데. 대체 피자집은 왜 하는 건가?”
“앞으로 피자 사업도 할 생각입니다. 그때가 되면 정통 나폴리 피쩨리아를 운영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 52 피자에 프리미엄을 줄 겁니다.”
“프리미엄?”
“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란 게 있는 법이니까요!”
52 피자는 배달만 하는 게 아니라, 나폴리 정통 스타일 피쩨리아도 운영한다.
그것도 맛이 기가막히는 브란디 매장을!
브란디를 통해 일종의 후광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맛있게 잘 먹었네."
금융인 답게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 데이비드.
피자 한판을 뚝닥 해치우고 나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화덕에서 구워서 그런지 확실히 담백해. 느끼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렸다는 느낌이네."
"잘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나는 여태껏 미국식 피자가 최고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정도로 맛있었네.”
중국인 피가 흐르지만, 데이비드 리는 완벽한 미국사람.
브란디로 성공 경험을 쌓고, 52 피자까지 성공을 이어갈 계획이었다.
피쩨리아 브란디는 52피자 직영매장 체제로.
배달피자 사업은 직영과 프랜차이즈 혼합 방식으로 간다는 계획이었다.
"론스타도 52 피자에 투자해 보세요. 괜찮은 사업이 될 겁니다."
"하하. 자네 농담하는 건 아니지? 피자 헛이나 도미노 정도는 돼야, 우리가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만 해도 프랜차이즈 피자가 한두개가 아냐! 경쟁이 심하다고."
"누구도 제가 군인연금. 워렌버핀과 손잡고 외국환은행 지분을 사들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죠!"
"그.... 그야...."
데이비드 리가 아픈 곳을 찔렸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분명히 기회 드렸습니다. 나중에 후회 하지 마십시오."
넘치는 정보와 자신감.
거기에 신중함까지 더해져 데이비드 리와 론스타는 몇 번의 기회를 이미 놓쳤다.
원유 ETF를 포함해 론스타에게 중간중간 떡고물을 줬고, 앞으로도 소소하게 챙겨줄 계획이었다.
'데이비드! 당신들이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수렁에 빠져 있을 겁니다.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갈등하고 있는 데이비드 리의 눈동자를 보며, 윤재는 그를 옭아 맬 수 있음을 확신했다.
◈ ◈ ◈
52 Farm의 양계장과 양돈장이 언론을 탄 이후.
그린팜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농가들이, 52 Farm을 부리나케 찾아왔다.
덕분에 친환경 시스템과, 방역에 특화된 52 Farm 스타일의 양돈, 양계 농가들이 전국에 하나둘 생겨났다.
현재는 일부 부농들에 국한된 일이었으나,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형! 우리가 이뤄낸 일들이 정말 꿈만 같다. 52 Farm 보유 부지의 땅값은 폭등했고, 우리 닭과 돼지를 프리미엄을 줘서라도 사겠다는 유통업체들이 폭증했어.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야.”
“남재야! 52 Farm 은 아직 걸음마 단계야. 갈 길이 멀다. 여기서 만족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응. 알았어. 요즘 일 하는 게 너무 재밌어.”
“그래. 우리 닭과 돼지는 머지않아, 일본 등에 수출까지 하게 될 거야.”
“정말? 그런 날이 올까?”
“확신을 갖고 해라. 더 이상 농사는 시골 노인들이나 하는 산업이 아냐. 그린 팜과 스마트 팜으로, 농사의 패러다임을 바꿀 생각이니까!”
시설농업. 양돈. 양계까지.
최소한 3개의 사업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도록 성장시킬 생각이었다.
천문학적 돈이 들어갈 52 Farm.
윤재는 52Farm을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위한 투자라 생각했다.
미소천사 은행과 미소 엔젤투자 역시 승승장구 했다.
먼저 미소 엔젤 투자를, 미소천사 은행의 자회사로 만들었다.
남광주점. 양동 점에 이어 성남시장 점까지 확장한 마이크로 크레딧.
본업인 소액신용 대출은 연 매출 50억원 수준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했던가?
윤재의 합류 이후 엔젤투자가 미소천사 은행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링키드인과 콤파스 투자금액만 1,5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200억에 육박하는 금액이었다.
2004년 내내 윤재는 미소천사 은행의 자본금 증자와, 지분관계 정리에 몰두했다.
그리고 엔젤 투자의 성장을 위해, 분당에 작은 사무실을 따로 차렸다.
“자네 뜻대로 하게. 내 지분이야 조금 줄어들겠지만, 지분가치는 오히려 크게 늘어날 것 같으니까.”
미소천사 은행의 증자에 따른 지분정리에, 차태영 회장이 흔쾌히 동의해줬다.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이었다.
“동재야!”
“예. 형님!”
“미소천사 은행은 어디까지나 네가 주인공이다. 그 사실을 항상 명심해라.”
“알겠습니다.”
“더 중요한 게 하나 있어. 바로 네 후계자를 선정하는 일이야.”
동재는 여전히 정계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년 내 동재가 출마할 경우, 미소천사 은행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날을 미리 준비하며, 후계자를 키우는 것.
그것이 동재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마이크로 크레딧이야 이미 노하우가 있으니까, 운영에 문제가 없어. 엔젤 투자 역시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고. 네가 떠날 때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지?”
“응. 이미 후보자 몇 명을 육성시키는 중이야.”
“그래. 잘했다. 제대로 된 후계자를 세우는 것이, CEO의 가장 큰 덕목임을 잊지 마라.”
“오케이.”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의 안정.
링키드인과 콤파스에 대한 엔젤투자 성공.
여기에 추가해 동재를 금융업의 귀재로 만들어 줄 또 하나의 회사가 있었다.
바로 내일식품이었다.
쓰레기 만두 사태 당시 패닉에 빠진 회사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몇 곳이 만두공장을 매물로 내놨다.
그중 O2푸드와 중소기업이 매물로 내놓은 만두 공장을 내일 식품이 인수한 것이다.
서영호의 내일식품.
인수한 2개의 만두공장.
모두 3개월째 휴업 중이었다.
인수 당시 사람들은 내일식품이 망테크를 탔다고 수근 거렸다.
대표적인 사람이 O2 그룹 미래전략실의 오진탁이었다.
“뭐? 내일식품 배후에 김윤재가 있다고? 그 멍청한 자식, 회사 짤리더니 어지간히 똥줄 탔나 보군! 크하하하하. 이 시국에 만두공장을 인수해?”
내일식품과 O2 푸드의 인수협상 당시 오진탁이 한 말이었다.
“공장 인수하자마자, 휴업하고 있다고? 이 것 봐! 내가 뭐라고 했어? 김윤재 그 자식 똥줄 타서 망테크 한 거라 했지? 크하하하하. 작년에 먹다 걸린 송편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다. 크하하하하.”
골치거리 만두를 제값 받고 팔았다는 생각에 오진탁은 흐뭇했다.
“내 말이 맞았잖아. 만두 시장은 레드 오션이라고. 나의 천재적인 혜안을 보라고! 한국의 잭 웰치가 따로 없지?"
오진탁이 그러거나 말거나, 윤재와 서영호는 차분하게 만두 사업을 재정비했다.
'오진탁! 이 바닥이 네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을 거다. 우리는 지금 더 높게 더 멀리 도약하기 위해, 웅크리고 있을 뿐이야.'
2개의 공장과 내일식품을 재정비한 다음, 제품명부터 주력 품목의 맛까지 모두 리뉴얼할 생각.
시장 상황도 재도약을 준비하기에 딱 맞는 상황이었다.
안수애와 탐사보도팀 덕분에 쓰레기만두에 대한 인식이 호전되긴 했지만, 여전히 만두시장은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김사장님! 걱정되지 않으세요?”
“뭐가요?”
“내일식품과 만두공장 인수하시면서 250억을 쓰셨습니다. 휴업기간 동안 직원들 급여도 50% 주기로 하셨구요. 부담이 이만 저만 아닐 텐데?”
“왜요? 영호 형님은 걱정 되세요?”
“제가 아니라, 사장님이 걱정 돼 그러는 거죠.”
“하하하. 저는 아무런 걱정 없어요. 목숨 걸고 만두 사업에 올인 할 형님이 계시고. 새로운 제품과 유통 방식도 계획이 섰어요. 그러니 영호 형님께서 저희 사업장만 잘 관리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께서 제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뼈가 닳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열심히 일 해서 사장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하하하. 형님! 제발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형님 말씀 들으면, 저를 얼마나 욕하겠습니까?”
“예?”
“형님이 나이도 한참 많고, 업계 선배님인데. 저보고 뭐라고 할 거 아네요. 그리고 형님이 보통 얼굴입니까?”
“예?”
“나이는 6살 차이인데, 액면만 보면 스물여섯 살은 차이나 보인다니까요.”
“참 나. 사장님은 이 판국에 농담도 잘 하십니다.”
서영호는 노안종결자였다.
우락부락한 얼굴이 전매특허인 서영호는, 나이보다 스무살은 더 먹어 보였다.
더 놀라운 건 스스로 동안이라 생각하며 산다는 것.
하긴 얼굴이 무슨 소용인가?
서영호가 윤재를 위해 목숨 바쳐 일하겠다는 각오가 돼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영호를 구한 일이, 또다른 선순환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