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41화 (141/196)

쓰레기 언론

자전거와 오리 배 페달을 밟아 대느라, 윤재의 허벅지가 혜진의 허리 통 만큼 두꺼워졌을 무렵이었다.

오리 배와 자전거를 타며 한강 주변을 배회한 지 3일째.

“윤재야! 좀 쉬었다 하자. 너는 뭐 터미네이터냐? 안 힘들어? 지치지도 않네.”

“윤재형. 미치겠어.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야! 혜진이를 좀 빌려 주던가. 우리는 이게 뭐야? 뻣뻣한 남자들끼리 오리 배가 뭐야? 오리 배가?”

장식과 창진이 투덜거렸다.

한강 데이트 3일만에 혜진도 조금 지친 기색이었다.

6월13일 일요일 오후 2시.

창진이 퀵 마우스로 떠들어 댔지만, 윤재는 창진이 아니라 양화대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화대교 가장 높은 곳에, 하나의 그림자가 올라서는 것이 포착됐다.

그러더니 그림자가 한강으로 그대로 떨어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장식이형! 오리 배 좀 제 쪽으로 끌고 오세요! 혜진이 너는 선착장으로 돌아가고!”

"왜 그래? 무슨 일인데 그래?"

윤재는 긴박하게 외침과 동시에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잠수해 들어갔다.

대략 4~50미터 앞에 물에 빠진 그림자가, 허우적대더니 이내 가라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혜진은 3년 전 스위스 상페호수의 기억이 떠올랐다.

윤재의 초인적인 스피드와 힘을 믿었지만, 걱정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윤재가 물 속으로 뛰어든지 3~4분 정도 흘렀을까?

2명의 인영이 물 위로 솟구치는 게 보였다.

윤재와 투신자살을 택한 남자였다.

“푸악! 장식이형! 창진아! 이쪽이다. 이쪽으로 와줘!”

장식과 창진이 허벅지가 터져라 페달을 밟았다.

이윽고 윤재가 낯선 사내를 오리 배에 태운 다음, 물속에서 오리 배를 밀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지 말고, 응급처치라도 좀 해 봐요!”

“응급처치?”

“구강 대 구강 법 몰라요? 군대에서 안 배웠어?”

“아. 알았다. 내가 할 게!”

난장판이 된 오리 배 안에서, 장식이 사내에게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젠장. 윤재 저 놈은 인공호흡을 해도 혜진이 같은 미녀에게 했는데. 나는 이게 뭐야? 무슨 산적도 아니고.....’

장식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산 도적 같이 생긴 사내에게 쉼 없이 인공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          ◈          ◈

이대 목동 병원에 산적 같은 남자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의 이름은 서영호!

나이는 36살. 내일식품의 대표로 쓰레기 만두 사건의 원흉으로 지목된 사람이었다.

경찰과 119대원들이 모두 돌아가자, 입원실에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윤재는 누워 있는 서영호를 바라봤다.

서영호의 감은 눈 옆으로 눈물자국이 보였다.

“사장님! 죽을 마음이면 못할 일이 없을 겁니다.”

“....”

서영호는 말이 없었다.

“살아남아서 왜곡된 진실을 밝혀야지, 목숨을 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언론의 왜곡을 인정한 꼴 밖에 더 됩니까?”

서영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전생에서 쓰레기 만두 사건은 서영호의 자살 이후, 극적으로 반전된다.

젊은 사장이 남긴 절절한 호소문에, 동정여론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뒤 6개월 정도의 논란 끝에, 언론의 왜곡 보도였음이 밝혀지면서 만두사건은 허무하게 일단락된다.

그랬지만 죽은 서영호가 다시 살아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서영호를 윤재가 지금 구해낸 것이고.

“왜 나를 살렸소? 그냥 죽게 놔두지.”

서영호가 눈과 입을 동시에 열었다.

“빚더미 밖에 없는 회사지만, 나름 좋은 일 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쓰레기 만두소라니.”

40억에 인수한 내일식품 공장은 은행 빚만 35억.

서영호가 3금융권 즉, 사채로 동원한 빚이 또 2억이 있었다.

매달 이자만 2,000만원 가까이 필요했다.

“매출은 뚝 떨어졌고, 납품받은 대기업들은 책임 저라고 아우성이고! 쓰레기 만두를 만든 사람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내가 살아서 뭐 하겠소!”

“사장님! 더한 역경도 이겨낸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사장님의 진정성을 믿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서영호는 윤재가 한강에서 팔자 좋게 놀다가 우연히 자신을 구해줬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윤재의 얘기를 들어 보니,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사장님의 억울함을 풀어 드리고,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고, 희망을 가지십시오. 약혼자와 결혼도 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있소?”

“저도 왕년에 만두 깨나 팔아본 사람입니다. 이 바닥에서 서영호 사장님 모르는 사람이 드물죠. 하여튼 제게 다 생각이 있으니, 어서 털고 일어날 궁리만 하세요.”

“.....”

“물에 빠지자마자 제가 구했기 때문에, 병원에 오래 계실 필요 없을 겁니다. 오늘 하루 푹 쉬고, 내일은 퇴원 합시다.”

“....”

“딴 생각 말고 계세요. 말씀드렸지만 제게 다 방법이 있으니까.”

서영호의 눈빛을 보니, 다시 극단적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윤재는 서영호의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파트너 중 한명인, NBC의 인기 기자이자 아나운서인 안수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또 뭘 가지고 나를 이용해 먹으려고 보자고 하셨을까?”

1살 더 먹은 안수애가 한층 농익은 섹시미를 뽐냈다.

“하하하. 수애씨! 누가 들으면 제가 수애씨 등골 빼먹고 사는 사기꾼인 줄 알겠네요.”

윤재는 쓰레기 만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언론계에 심어 놓은 자신의 첩자 안수애를 만났다.

“수애씨와 탐사보도 팀은 항상 특종에 목말라 있잖아요.”

특종이라는 얘기에 안수애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괄목상대.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신한 안수애.

이젠 꽤 괜찮은 언론인이 돼 있었다.

새삼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쓰레기 만두 사건 알죠? 그걸 뒤집을 만한 보도를 하는 거에요?”

“쓰레기 만두 사건이요? 미쳤어요? 지금 세상이 난리인데.”

“그러니까 그걸 뒤집으면 특종이 되는 거죠. 광고 생각 안나요?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하는 사람.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라고 하는 사람. 트루 프렌드. 트루 언론인 안수애!”

“쓸데없는 얘기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안수애가 특종에 목마른 맹수의 눈빛으로 변했다.

언론인이라는 말이 기분 좋았는지, 그녀가 피식 웃었다.

‘이 여자가 언론계 최악의 팜므 파탈. 남심 브레이커 안수애가 맞나?’

윤재는 긍정적으로 변한 안수애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핵 이빨을 털기 시작했다.

누구나 한 번 들으면 빠져들고 마는 걸로 유명한 핵 이빨이었다.

“1년에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만 약 500만톤. 금액으로 환산하면 15조 전후.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만 연간 1조원이 추가로 소요됩니다.”

“그렇죠. 그게 쓰레기 만두 사건이랑 무슨 상관이죠?”

“음식물 쓰레기가 될 뻔한, 자투리 단무지를 3시간 동안 고온으로 삶아, 만두소로 만들었다. 이 정도면 연결이 되지 않을까요?”

“?!”

안수애가 최근 들어 잘 돌아가는 자신의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저널리즘에 눈을 뜬 안수애는, 몸매만이 아니라 뇌까지 제법 섹시미를 뽐내는 여자로 거듭나 있었다.

“그러니까 윤재씨 얘기는 쓰레기로 버려질 단무지를 깨끗하게 조리해, 맛있는 만두소로 만들었으니. 환경에도 유익한 일이고, 서민 간식인 만두로 재탄생 시켜서 사람들을 즐겁게 까지 해줬다?”

“얼씨구!”

“그런 만두를 언론이 선정적인 [쓰레기만두] 딱지를 붙여, 여론에 불을 지폈다?”

“지화자!”

이미 여러 번 손발을 맞춰가며 일을 해서일까?

안수애와 윤재는 탐사보도 팀의 일원으로 느껴질 정도로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수애씨!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음식물 쓰레기의 심각성. 그 문제에 나름 기여할 수 있는 자투리 단무지 재생사업. 그리고 언론의 아니면 말고 식 선정적인 보도! 이 3가지 꼭지를 엮으면 작품 하나 나올 것 같지 않아요?”

“소름이 돋을 지경이군요.”

“제가 이번 쓰레기 만두 파동의 당사자도 섭외해 놨습니다. 내일식품 대표님 아시죠?”

“내일식품이요?”

“네. 그 분이 며칠 전 최근 상황을 비관해 자살기도 하셨는데, 극적으로 살아 나셨어요. 수애씨의 탐사보도에 인터뷰할 의향이 있다고 합니다.”

“윤재씨! 이제 완전 PD 다 됐군요. 촉이 좋습니다. 한번 해 보죠.”

“아직은 사람들의 안 좋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6월말 또는 7월초 방송을 목표로 준비해 보시죠.”

“와! 진짜 윤재씨! 방송국 국장해도 되겠어요. 크크크.”

“하하하. 다 수애씨가 가르쳐 준 거죠.”

그렇게 쓰레기 만두 사건을 반전시킬 첫 번째 단추를 꿰었다.

언론계 도우미 안수애가 한 몫 할 찬스였다.

◈          ◈          ◈

윤재가 안수애를 만나러 다니고, 내일식품 서영호와 조율을 하는 와중에도 쓰레기 만두 사건의 후폭풍은 계속됐다.

아파트 상가나 시내에서 만두를 파는 사람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고, 냉동만두를 판매하는 대기업들도 울상이었다.

O2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O2푸드 회장실로, 오진탁이 호출됐다.

“진탁이 네게 기회가 많지 않다고 말 했을 텐데!”

“....”

“감히 네가 내게 도전하는 거냐? 회사에 지휘체계가 엄연히 존재하고, 내가 아직 정정하거늘. 나부사장과 이부사장을 불러 들여서, 뭐? 사명을 바꿔?”

지난 번 미래전략실로 영업본부장과 경영 지원실장을 호출한 사건을 문제 삼은 것이다.

‘나부사장. 이부사장! 당신들은 내가 그룹 물려받는 순간 끝이야. 끝!’

오진탁은 표정관리를 했다.

미래권력이 아니라 현재권력에 줄 선 2명의 부사장이 괘씸했지만, 아직 자신은 2인자였다.

오진탁이 아버지 앞에서도 오만방자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집안대대로 희귀질병인 ‘사리코마리투스’라는 폐질환을 겪고 있는데, 오재준이 최근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호령할 날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길어야 5년?’

추악한 생각과 다르게 오진탁은 연기를 했다.

세상 미안한 표정이었다.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나부사장 이부사장 건은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그런데 소비재 산업에서 산업재 사업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는 제 소신은 굽힐 수 없군요.”

“정녕 만두를 접자는 얘기냐?”

“생각해 보세요. 연간 200억 시장 만두 때문에, 회사가 덩달아 위기에 처하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들과 달리 입장문도 내놓지 않은 탓에, 그룹 전체로 불매운동이 번질 기세라구요.”

“끄응. 언론 이 미친 자식들이 문제야. 하필 쓰레기 만두라니!”

“아버지! 읍참마속을 해야 합니다. 만두 순이익 20억도 안됩니다. 만두 끌어안고 있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게 생겼어요.”

오재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내고향 만두. 도투락 만두. 취영루 만두 등을 따라잡기 위해 그간 얼마나 애썼던가?

조미료와 장류. 어묵에 이르기까지!

만년 2등에서 1등으로 역전을 이뤄낸 통쾌한 경험이 있었다.

‘결국! 만두는 1등을 해보지 못하고 접어야 한단 말인가?’

쓰레기 만두 사건의 충격파가 쌔긴 쌨다.

진퇴양난이었다.

게다가 사리코마리투스 덕에 판단력이 예전만 못했다.

만두사업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김윤재 같은 친구들이 몇 명만 더 있었어도...... 그 녀석이라면 어떤 주장을 했을까?’

떠나버린 사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

그 또한 오재준의 결단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신호였다.

"아버지! 매출 100조. 재계 10위 이내로 진입하고자 한다면, 소비재에서 산업재로 전환해 나가야 합니다. IMF로 무너진 태우그룹 계열사들이 먹잇감으로 나와 있어요."

오재준의 귀에 오진탁의 강변은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          ◈          ◈

“내일식품을 인수하겠다고요?”

“네. 사장님! 내일식품 지분 전체를 엔젤 투자사를 통해 인수하겠습니다.”

목숨을 구해주더니, 유명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따준 윤재였다.

그런데 이제는 빚덩이 사업장인 내일식품을 인수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보고 듣고도 믿기 힘든 윤재의 제안이었다.

“쓰레기 만두 사태로 세상이 난리입니다. 거저 준다고 해도 빚 때문에 가져갈 사람이 없는데, 40억에 인수하겠다 구요?”

“하하하. 원래 40억 값어치 나가는 회사 아닙니까? 땅만 해도 몇 평인데!”

윤재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오긴 했다.

그렇다고 재벌2세는 아닌 것 같은데, 젊은 사람이 통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갸우뚱 하고 있는 서영호에게 윤재가 믿기 힘든 말을 또 했다.

“지분은 인수하지만 경영은 사장님께서 계속 하시는 겁니다.”

“예? 지분만 가져갈 생각이면, 우리 회사를 뭐 하러 삽니까? 지분 가치 그거 얼마나 나간다고?”

“하하하. 그렇게 걸리시면, 나중에 흑자나면 배당이나 많이 해 주세요.”

“....”

“이게 끝이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만두 사업을 더 크게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예? 그건 또 무슨?”

일이 어디까지 커질지!

믿기 힘든 얘기의 연속이었다.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려 지옥에 와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일부 대기업들이 이번 파동 때문에, 만두공장을 내놓고 있다는 소문이에요. 나오는 대로 제가 인수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만두공장들 역시 사장님께서 이끌어 주셔야 해요. 그리고 만두왕 되신 다음, 형수님이랑 당당하게 결혼 하는 겁니다.”

“이 무슨.....”

서영호가 어벙벙한 얼굴로 자신의 볼을 꼬집고 있었다.

자투리 단무지를 쓰레기 단무지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문제가 됐던 쓰레기 만두사건.

물론 일부 만두소 납품업체의 위생상태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일식품과 서영호는 국내 최대 만두소 납품업체라는 이유로, 매장됐고 목숨까지 내놔야 했다.

‘사업능력도 사업능력이지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마저 버릴 수 있는 사람이야. 이런 사람은 쉽게 얻기 힘들다! 서영호 사장이라면 만두 사업을 세계 수준으로 끌아 올릴 수 있어.'

윤재가 서영호를 살리고 그에게 만두사업을 몰아줄 생각을 한 이유였다.

앞으로 한 달도 걸리지 않은 시점에, 쓰레기 만두에 대한 여론은 극적으로 바뀐다.

안수애와 NBC 시사보도팀이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 덕을 톡톡하게 볼 수 있었다.

‘그 때가 되면 만두공장을 헐값에 팔아치운 기업들은 후회하게 될 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