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40화 (140/196)

쓰레기 만두

LA에서 귀국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었다.

-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택시와 버스 등에서도, 길거리와 상점에서도 장윤정의 [어머나]가 흘러나왔다.

어딜 가더라도 하루에 몇 번은 장윤정의 [어머나]를 들을 정도로 인기였다.

국내 굴지의 IT기업인 NC전자에서 어머나 폰을 만든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송태관. 태진하. 설윤도 등의 중년 남성들과 중년 여성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던 트로트.

그런데 20대 초반의 여자가 트로트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다.

'2017년 송가인의 등장과 트로트 경연방송의 히트로, 트로트 전성시대가 열렸었지!'

트로트 경연의 시조새격인 장윤정의 노래를 듣다보니, 벼락처럼 머리에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혜진아! 광주 내려가는 길에 진도에 좀 들릴까 하는데. 같이 갈래?”

“진도? 뭐하게?”

“다섯 누님들 계시잖니. 누님들 본지 오래돼서 한번 보고싶네."

소공례 엄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5명의 누님들은 묵묵히 진도 소리 방을 지켰다.

하지만 중심축을 잃은 관계로, 동력은 많이 떨어져 있었다.

광주에 내려가면 처갓집에 들러, 결혼날짜를 확정지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진도에 내려가, 5명의 누님들께 트로트 팀 구성을 제안할 계획이었다.

에밀리가 혼자 힘으로 우뚝 섰다면, 5명의 누님들은 뭉칠수록 존재감이 커지는 분들.

뭉치면 천하에 두려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만약 누님들이 트로트 팀으로 스타가 된다면?

그녀들 역시 윤재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돼 주고도 남을 것이었다.

혹시 누님들이 윤재의 제안을 거절해도 나쁘지 않았다.

남도 소리의 명맥을 잇는다는 일도 의미있는 것이니까.

개인적으로 누님들께 부탁할 일도 있었다.

결혼식 축가를 5명의 누님들께 부탁할 계획이었다.

◈          ◈          ◈

“명수 형. 토요일에 어쩐 일이야?”

“아버지 만나러 가는 길에, 네가 보고 싶어 들렸다.”

광주 영업3팀에서 함께 일했던, 차명수가 분당에 놀러왔다.

마치 고향 친척을 만나는 것 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1층 52 Cafe에서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20명 직원들의 커피를 사오는 정성을 보였다.

초창기 차명수라면 있을 수 없는 일.

윤재와 장동석과 근무했던 경험이 그를 이만큼 발전시켜 놓은 것이다.

“생각보다 사무실이 제법 그럴싸한데?”

“그래요? O2 푸드에 비하면, 완전 구멍가게 아닌가?”

회사 얘기가 나오자 차명수의 폭풍 드립이 시작됐다.

쌓인게 많은 모양이었다.

“그냥 답답하기도 하고, 옛날 장동석 상무님 모시고 있을 때가 그립기도 하고. 아빠도 보러 가야하고. 뭐 겸사겸사 찾아왔다.”

차명수의 부모님은 차태영이 CEO가 되면서 서울로 이사했다.

“왜? 회사에 무슨 일 있어?”

“오진탁 전무가 부사장 승진해서, 푸드로 들어온다는 소문이야.”

벌써 6월이었다.

11월 초에 보통 임원인사가 발표되니까, 5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장동석 상무님도 상무보 못 뗄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고.....”

그룹의 콘트롤 타워인 미래 전략실 수장자리.

오진탁이 전략실장 자리를 반납하고, O2 푸드로 복귀하겠다는 이유는 불순한 것이엇다.

Anything But KimYunJae!

윤재와 관련된 일들을 엎어버리고, 관련된 사람들을 핍박하겠다는 생각.

명색이 재벌그룹 총수가 될 사람의 생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옹졸한 것이었다.

류중정. 조영우. 임나영. 장동석. 오석진 등의 간부급 이상의 직원들부터.

차명수. 신미나. 김범수. 한송이 등 팀원 급까지.

전략기획실에서 친윤재 List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느새 팀장 승진 대상 1년차가 된 차명수.

그가 의기소침해진 이유도 바로 블랙리스트 때문이었다.

“혹시! 니네 회사 영업할 사람 필요 없니? 소프트웨어 판매하려면 영업도 중요한데.”

차명수가 사무실을 다시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그가 이 먼 분당까지 찾아 온 두 번째 이유였다.

“형. 대기업 떠나서 구멍가게 와 보면 알게 될 거야. 다니던 회사가 얼마나 좋았는지.”

“좋기는 개뿔.”

“오진탁이 회사 말아 먹게 생겼는데, 알짜배기 사람들이 O2에 많이 남아 있어줬으면 좋겠어. 좋은 사람 다 떠나고, 쭉정이만 남으면 오진탁 폭주는 누가 막을 거야?”

“그러는 너는 왜 때려 치웠냐?”

차명수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룹과 회사 내에 오진탁 스트레스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형!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식으로든 회사로 돌아갈 거야. 그러니까, 난파선에서 뛰어 내리지 말고, 회사를 잘 지켜 줘. 지금은 오진탁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 뛰지만, 언젠가 큰 코 다칠 날이 올 거니까.”

52 소프트 창업 후 윤재가 철저하게 지킨 원칙 중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O2 그룹 사람을 빼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명철이나 이세영 처럼, 계약만기로 쫓겨난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긴 했다.

하지만 정규직은 제 발로 찾아오더라도, 모두 설득해 돌려 보냈다.

“아빠도 안 된다고 하고, 너도 안 된다고 하고.... 학연.지연.혈연 덕 보고 살기 힘 드네.”

“하하하. 형님! 정년까지 20년도 넘게 남은 사람이 그럼 안 되지. 평균 5,000만원만 해도 20년이면 10억이요. 10억! 그리고 팀장진급. 임원진급 안 할 거야? 로또보다 나은 게 대기업 생활이요. 그러니, 속없는 얘기 하지 말고 오석진 팀장님이나 잘 보필해.”

“얘가 지금 뭐래는 거니? 네가 떼돈을 벌었다는...."

차명수는 말을 하려다 멈췄다.

넘사벽이 돼 버린 윤재와, 오진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자신이 극명하게 대비됐기 때문이었다.

윤재가 그런 차명수의 심정을 눈치챘다.

“형! 이런 머리 아픈 얘기 말고, 언제 장상무님 모시고 운동이나 한 번 합시다. 내가 날 잡을 게.”

차명수는 결국 쫒기다 시피 52 소프트를 나와야 했다.

그는 서울로 올라가며 생각했다.

‘괜히 찾아와서 본전도 못 찾았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어리광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재가 돈을 엄청 많이 벌었다고는 하지만, 가시적인 매출이 없었다.

그만한 회사를 유지하려면 고정비만 해도 연간 수십억이 들어갈 것 같았다.

‘아이고.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다. 월급쟁이가 속 편하지.’

한편 차명수가 돌아간 뒤, 윤재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재벌체제의 단점 중 하나가 오너 리스크인데, 오진탁은 너무 치명적 단점이다. 오재준 회장이 좀 더 건강을 유지하며 버텨줘야 할 텐데.’

오재준 회장은 100점 만점짜리 CEO은 아녀도, 70점 정도는 줄 수 있는 인물.

오진탁과 비교하면 슈퍼 에이스였다.

오진탁 스트레스는 차명수 한 명의 문제는 아니었다.

미래전략실과 협업이 절실한 조직들에 동맥경화가 찾아와 있었다.

대표적인 조직은 신사업부문.

윤재가 기초를 다져놓고 나온 기획안들이, 미래 전략실만 가면 이유 없이 반려 당했다.

그룹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사람이, 결재권으로 보복을 하고 있었으니.

양아치가 따로 없었다.

◈          ◈          ◈

차명수가 회사에 다녀간 다음 날인 6월 6일의 일이었다.

저녁 뉴스에는 국민들을 경악케 하는 뉴스가 일제히 보도됐다.

- 내일식품. 중국산 쓰레기 단무지로 만두소 만들어 판매하다 적발.

- 국민 건강 위협하는 쓰레기 만두.

- 한국인이 좋아하는 국민 간식 만두. 알고 보니 쓰레기로 만들어!

“어쩐지. 이상했어요. 저는 만두가 너무 맛있어서, 최근 1주일 동안 매일 만두만 먹었거든요. 그런데 배가 아프더라 구요. 근데 그게 다 쓰레기 만두 때문이었다니!”

이런 인터뷰 방송까지 나오는 바람에, 한국 전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언론은 쓰레기 만두 기사를 쏟아냈다.

누가 더 자극적인 제목과 기사를 쓰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식품회사 중 만두비중이 높은 기업의 주가가 폭락했고, 마트와 시장의 만두매출이 뚝 떨어졌다.

O2 푸드는 종합식품회사로, 만두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했다.

그럼에도 타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만두시장 1위를 목표로 2002년에 상업생산을 시작한 공장은, 감가상각비도 빠지기 전에 공장을 세워야 할 지경이 됐다.

6월 11일.

O2 푸드 영업본부장과 경영지원 실장은 미래전략실로 호출됐다.

“만두 사태가 심상치 않은데, 대안 준비하라고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보고도 없는 거요?”

“죄송합니다. 실장님! 보고서를 미전실에서 자꾸 반려하는 바람에....”

“뭐요? 지금 핑퐁치자는 거요? 뭐요?”

“그건 아닙니다. 만두산업은 2,500억 규모로 무시할 수 없는 시장입니다. 어렵더라도 계속 이어가자는 것이....”

탕. 탕. 탕.

오진탁이 두툼한 보고서 파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아무리 오너라지만 오진탁은 전무.

영업본부장과 경영지원실장은 모두 부사장급으로, 오진탁보다 족보가 한 등급 위였다.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만두시장에서 여태 1위도 못하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회장님은 매출 100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마당에 200억짜리 만두 때문에, 회사가 휘청거려서야 되겠습니까?”

쓰레기 만두 사태로 O2푸드가 망할 일은 없겠지만, 식품사업 전체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2명의 부사장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부정하자니 오진탁이 거품을 물 것 같았고, 긍정하기에는 너무 말도 안 되는 주장인 것이다.

“매출 100조를 위해서는 블루 오션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긴 당신들이 블루오션이나 레드오션이 뭔지 알 턱이 없지. 만두는 전형적인 레드오션이란 말이오. 만두 접고 블루 오션으로 가자는 내용으로 보고서 작성하시오.”

“네?”

오진탁의 경악할 만한 사고방식과 발언에, 2명의 부사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쟁사에 만두 공장 모두 매각하란 말이오. 그 돈으로 우린 블루 오션으로 갈 생각이니까!”

2005년도에 책으로 출판돼 공전의 히트를 친 블루오션 전략.

오진탁은 다보스포럼이 제공하는 레포트를 통해, 블루오션 이란 말을 미리 접했다.

최근 그는 말끝마다 블루오션과 레드오션을 달고 살았다.

나상길 영업본부장이 마지막 힘을 짜내 직언을 했다.

“전무님. 회사가 라면 포기하려고 했을 때, 꼬끼오 라면으로 대박을 쳤습니다. 햅반도 접자고 했는데, 지금 효자가 됐지 않습니까? 만두도 이어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오진탁이 거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하얀국물 라면 꼬끼오면. 햅반 모두 윤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상품들이었다.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오진탁 때문에, 결국 2명의 부사장은 힘없이 물러났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오진탁이 지원실장을 다시 불렀다.

“이 실장님!”

“네. 전무님.”

“우리 회사 이름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네요?”

만두공장 매각보다 더 황당한 발언이었다.

“고객만족도와 인지도 등 모든 지표가 좋은데, 왜 재검토 하자는 겁니까?”

“회사 이름이 산소가 뭡니까? 산소가! 마케팅 부문과 홍보부문 통해 사명 변경 검토하세요.”

“전무님! 회사 이름은 쉽게 바꾸는 게 아닙니다. 최소 2~30년은 사용할 생각으로 해야 합니다. 이제 고작 3년 이용한 사명을....”

탕.탕.탕

오진탁이 다시 테이블을 내리쳤다.

“검토라도 해 보자는 것 아닙니까? 검토도 못해요? 부사장님 말씀대로라면, 세상에 어떤 기업이 회사 이름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네. 검토는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O2 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 등 제반 지표가 양호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허. 부사장님! 그 얘기는 이미 했잖습니까?”

결국 더 들이받지 못하고, 오진탁의 방에서 나와야 했다.

2명의 부사장의 입에서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경영지원실장은 몰랐지만, 영업본부장 나상길은 오진탁이 왜 저리 광광대는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Anything But Kimyunjae!

약자로 ABK.

영업본부 젊은 직원들 사이에 떠도는 루머였다.

“오진탁이 김윤재 대리한테 처 발리고, 김윤재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대!”

나상길 본부장은 오늘 오진탁의 광분을 보면서, 더 이상 ABK가 소문만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회사가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는 것 아닐까?’

나상길은 다시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6월11일 금요일.

“주말들 잘 보내세요. 먼저 퇴근합니다.”

윤재는 오후 일찍 퇴근했다.

혜진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데이트가 잡혀 있었다.

한강변에 가보니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었다.

“오빠! 갑자기 웬 바람이 분 거야? 일에 빠져 사는 사람이, 평일에 데이트를 다 하자고 하고?”

“갑자기 보고 싶었습니다. 마님!”

“수상해?”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 보고 싶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니? 그냥 보고 싶으면 보는 거지.”

“나도 좋지. 근데 갑자기 왜 오리 배를 타자는 거야?”

“응. 오리배도 타고. 자전거도 타고. 유람선에서 식사도 하고. 지금이 한강에서 놀기 딱 시기거든.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분명한 목적이 있는 한강행이었다.

쓰레기 만두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내일식품 사장이 양화대교에서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을 한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았다.

'최초 보도 이후 일주일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전생의 기억에 의하면 금요일부터 일요일 중 하루인 것이다.

‘언론의 선정성 기사와 방송으로 난도질당했지만, 쓰레기 만두는 결코 쓰레기가 아니었다.’

대국민 호소문을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던, 내일식품의 서영호 대표.

윤재는 양화대교에서 그를 구출할 생각이었다.

그와 함께라면 쓰레기 만두 사건을 드라마틱하게 극복할 수 있었고, 나아가 한국 냉동만두 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2~3일 아무 생각 말고 열심히 놀자. 내일은 창진이랑 장식이형도 모셔서, 오랜만에 신나게 놀아보자고.”

“3일 동안 자전거 타고, 오리배 타자고?”

“자전거 페달과 오리 배 페달이, 남자한테 얼마나 좋은지 너는 모를 거다.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네!”

“오빵. 뭐야? 부끄럽게!”

윤재는 혜진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양화대교 곳곳을 주시했다.

그의 눈이 매의 눈처럼 번쩍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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