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39화 (139/196)

절반의 성공

2004년 5월말.

윤재는 3주간의 미국 일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던 링키드인과 콤파스에 대한 투자가 성사됐다.

링키드인에 1천만 달러. 콤파스에 5백만 달러 투자 약정을 맺은 것이다.

이번 투자 성공에는 워렌버핀과 그의 오른팔 격인, 크랙 아담스의 역할이 컸다.

워렌 버핀이 이미 투자 결정을 내리고 있었는지, 아니면 윤재를 만나보고 마음을 굳혔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크랙 아담스는 산호세로 올 때, 변호사를 동반해 날아 왔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윤재는 혜진과 공항에서 커피를 마시며, 미국 출장을 복기했다.

“오빠! 안 피곤해? 장시간 비행해야 하는데 걱정되네.”

“하하하. 난 괜찮아. 네가 무한동력을 주니까!”

윤재가 진주의 난 괜찮아 후렴구를 부르자, 혜진이 달려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야! 손으로 막지 말고, 입으로 좀 막아주지!”

“오빠. 제발 좀 닥쳐라. 챙피해 죽겠어.”

이래서 그녀가 윤재의 무한동력원인 것이다.

윤재의 이번 출장은 비즈니스가 목적.

선희가 함께 하지 못한 바람에, 혼자 심심했을 혜진이 내내 걸리기도 했다.

“괜히 나 따라와서 20일 가까이 고생 많았다.”

“아냐. 오빠! 정말 재밌고 뜻 깊은 여행이었어. 특히, 에밀리 콘서트를 본 것이 가장 좋았어.”

일주일 전!

링키드인과 콤파스에 대한 투자를 마치고, 에밀리의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보러갔다.

출국 전 에밀리의 미국 투어에 초대 받았고, 공연 일정에 맞춰 미국 출장을 계획했다.

길게 잡아도 보름이면 충분했을, 미국행이 3주나 걸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에밀리 캠벨의 공연이었다.

전미 투어에 돌입한 에밀리의 서부지역 공연은 LA와 샌프란시스코.

야외공연장인 산타바바라 볼을 가득 채운 5,000여명의 관객이, 미국 내 에밀리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그녀의 미국 투어는 히트 행진 중이라고 했다.

히트곡과 카피. 초청가수가 함께 하는 공연이었는데, 에밀리의 히트 곡을 따라 부르는 관객이 아주 많았다.

역시 그녀의 인기를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었다.

에밀리의 타고난 재능과 성품. 음악을 대하는 자세 등을 고려해 보면 반짝 인기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에밀리가 가족문제 부터 시작해 사연이 많잖아. 집안 히스토리가 나랑 비슷한 측면이 많거든. 에밀리의 성공을 지켜보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도 마찬가지야. 에밀리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저절로 오빠 품에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하하. 생각만 한 건 아니었잖아?”

다시 생각해도 기분 좋은 추억이었다.

공연이 끝난 다음날, 베이커 비치 근처에서 에밀리와 점심을 함께 했다.

한국에서 만나든 이태리나 미국에서 만나든, 참 좋은 친구였다.

집안사. 힘들었던 유년기. 꿈을 이루지 못해 힘들었던 시절.

감상에 젖어 있던 에밀리가 말했다.

“윤재! 고마워. 오늘 내 성공은 윤재가 없었으면 힘들었을 거야.”

“하하하. 에밀리! 나보다 올리버가 더 중요하지. 왜냐면, 몽블랑에서 올리버가 혜진이한테 지분거린 덕택에, 우리의 인연이 맺어진 거니까!”

“호호. 그게 그렇게 되나?”

윤재와 에밀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혜진은 자신의 기분까지 좋아지는 걸 느꼈다.

2명의 대화는 성공한 팝스타와 억만장자의 얘기 같지 않았다.

혜진은 부모님과 형제가 없는 윤재에게, 마치 여동생이 하나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윤재. 너와 올리버에게 뭔가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

“일단 미국 투어를 잘 마쳐! 그 다음 차분히 만나서 생각해 보자.”

윤재는 이미 에밀리가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부탁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언젠가 세계 시장에 진출할 때, 윤재의 사업을 홍보해 줄 광고모델이 돼 줬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이미 그에겐 회사 홍보와 광고 모델을 해줄 스타가 4명이나 있었다.

팝스타 에밀리. 한국 신인 여배우 조혜진과 김선희. 그리고 천재 골프소녀 이지은.

실력과 매력을 겸비한 4명의 미녀들이, 윤재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물론 돈만 있으면 세계적인 스타를 광고모델로 기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연과 추억을 공유하는, 진정성 있는 파트너는 돈만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녔다.

미국 출장 중 관람한 그녀의 공연도 감동이었고, 그녀의 마음씨도 감동적이었다.

◈          ◈          ◈

콤파스(Compass)에 대한 투자 협정을 맺고, 링키드인을 만났을 때의 일이었다.

리차드 호프만 링키드인 창업자.

그는 소위 말하는 성공한 벤처 창업가였다.

돈도 이미 평생 쓰고 남을 만큼 벌어 놓은 사람이었다.

문제는 링키드인만 창업한 게 아니라, 그 자신이 스타트 업에 대한 투자를 겸하고 있었다.

여기 저기 투자를 많이 벌려 놓은 바람에, 링키드인을 성장시키는데 일시적 자금난에 부딪친 것이었다.

서비스의 대대적인 확장과 유료화 전환에 큰돈이 필요했지만, 당장 목돈이 나올 구멍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버크셔 해서웨이가 나타난 것이다.

크랙 아담스와 만난 리차드 호프만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구세주라도 만난 얼굴이었다.

“버크셔가 스타트 업에 관심을 가져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이미 10개도 넘는 스타트 업에 직간접적으로 발을 담근 사람이다.

투자도 많이 받아 봤고 자신도 투자를 했지만, 버크셔 해서웨이 정도의 투자자는 처음이었다.

맥시멈 2,000만 달러가 필요했던 호프만은, 뜻하지 않은 횡재에 들뜬 얼굴이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명성 덕에 협상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물론 삐끗할 뻔한 상황도 있었다.

윤재가 진심으로 건넨 조언 때문이었다.

“링키드인은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클라이언트도 그렇고 유저들도 그렇고 너무 화이트칼라 중심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뭐야? 재벌 3세라도 되나?’

상황이 꼬이다 보니, 원치 않은 펀딩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된 호프만.

그래서일까?

자신보다 10살은 어려보이는 동양인, 윤재의 조언을 고깝게 생각했다.

원래 투자자라는 게 돈만 대주는 사람이 아니거늘.

스탠포드를 나온 백인 엘리트와 듣보잡 동양인.

이런 저런 생각이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던 것이다.

아니면 부부싸움이라도 하고 출근했는지도 모른다.

크랙 아담스에 환호하던 리차드가, 윤재의 말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서요?”

“학생들과 경력자들을 구인자와 연결해주겠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천재적입니다. 다만, 화이트칼라보다 블루칼라가 차지하는 노동시장이 훨씬 큰 게 아닌가 싶어서요.”

링키드인의 수익모델은 사실 탄탄한 편이 아니었다.

MS를 만나 회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만, 2016년 MS가 인수를 결정한 건 5억 명에 달하는 가입자 수 때문이었다.

“취업 수수료나 유료구독자를 뛰어 넘는 수익모델을 위해서는, 가입자 수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링키드인에 블루칼라 구인자와 구직자를 추가한다면, 가입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을까요?”

“좋은 말씀입니다. 검토해 보겠소.”

“가입자 늘어나면 기업가치도 달라지고, 맞춤형 광고 등 유료화도 더욱 탄력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 하겠소!”

호프만의 참고하겠다는 얘기는, 누가 들어도 더 이상 얘기하면 참지 않겠다는 말로 들렸다.

스탠포드 재학시절 철지난 사회주의에 빠져있던, 리차드 호프만이 블루칼라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의외이긴 했다.

결국 함께 동행 한 크랙 아담스가 땀을 흘려가며 분위기를 완화시켰고, 덕분에 윤재와 버크셔는 링키드인과 총액 2,000만 달러의 자금지원에 합의했다.

돈이 자존심보다 중요한 순간이었고, 버크셔 해서웨이와 워렌버핀의 후광효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          ◈

마운틴 뷰에 있는 링키드인 본사를 나왔을 때, 돌연 크랙 아담스가 말했다.

“윤재. 우리 커피 한잔 하면서 얘기 좀 할까?”

“그럽시다.”

산호세의 유명 맛 집에 들러, 파이와 커피를 마셨다.

혜진이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마음이 급했지만, 아담스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모양이었다.

“윤재! 아까 블루칼라 노동자 얘기 있잖아.”

“호프만에게 했던 얘기요?”

“그래. 나는 솔직히 호프만과 링키드인 보다, 윤재 자네의 얘기에 더 관심이 가더군.”

“예? 정말요?”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위한 링키드인. 그 사업하면 더 대박날 것 같다는 얘기지. 사회관계망 서비스는 결국 유저의 숫자가 제일 중요한 것이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화이트칼라인 링키드인의 가입자가 구매력은 좀 더 높겠죠. 하지만 트럭노동자. 택배기사. 가사 도우미. 카페 알바. 일용직 노동자 등에 이르기까지. 블루칼라 노동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윤재는 크랙 아담스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알아주자 힘이 났다.

“인터넷은 어차피 국경이 없습니다. 블루칼라 링키드인의 유럽. 남미. 인도 등에서 사용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유저가 10억, 20억이 될 수도 있는 거죠.”

크랙 아담스가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그 역시 미국 내 이용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가? 버핀께 보고할 생각인데. 자네가 이 사업 추진해 보겠나? 한국에 스타트 업도 차렸다면서?”

“저도 오늘 호프만의 태도 보면서, 그 생각 안한 게 아닙니다. 문제는 결국 국경이에요.”

노동시장의 환경. 마켓 전체의 크기 등을 고려했을 때, 링키드인 블루칼라 버전은 역시 미국이 훨씬 적합한 비즈니스였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미국에서 스타트 업을 하는 게 관건이었다.

“아까운 아이디어야. 한 번 생각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커피와 파이를 맛있게 먹은 크랙 아담스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버크셔 소속 변호사와 유쾌하게 얘길 나무며, 공항 가는 택시를 타고 멀어져 갔다.

‘안 그래도 그 일이 숙제인데....’

미국 출장이 20일 정도로 길어진 두 번째 이유.

그것은 바로 미국인 또는 미국적 마인드를 갖춘 개발 책임자 스카웃이었다.

◈          ◈          ◈

귀국 5일을 앞두고 윤재는 7명의 인재를 만났다.

어려서 미국으로 입양된 경력을 가진 개발자.

미국으로 이민을 온 교포 3세.

국내 벤처를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와 있는 사람.

산호세 대학 한국인 교수에서 그냥 미국 사람까지.

최동진 인사실장에게 소개 받은 사람.

윤재가 전생에서 간접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까지 7명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7명 모두 OK 사인을 보내지 않았다.

윤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인터뷰를 끝낸 사람도 3명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4명은 그들이 윤재의 회사에 합류하는 걸 동의하지 않았다.

“한국 마켓은 너무 작아요. 저는 실리콘 밸리가 좋습니다.”

“미션이 우리는 미쳤다 라구요? 진심입니까? 우하하.”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는 미국인에서, 말은 점잔하게 했지만 표정은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따지고 보면 그들도 윤재를 만나봐야 할 정도로, 잘 나가는 사람들은 아니었건만!

하지만 한국의 스타트 업이라는 현실의 벽은 냉엄했다.

그나마 7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사람이 있었다.

최동진 실장이 다리를 놔준 홍도현이라는 사람이었다.

“KC소프트 직원이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맞습니다. 사실 아내도 KC소프트 직원이거든요. 그런데 아내가 기어이 미국 MBA를 따겠다고 해서!”

부부가 카이스트 출신이었고, 모두 롤플레잉 게임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KC소프트 직원이었다.

윤재는 홍도현과 얘기를 하다가, 회사를 다닐 때 미국 MBA 합격통지를 받았던 일이 생각나기도 했다.

“하하. 원래는 아내만 보내려 했죠. 저야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런데 왜 도현 형님까지 오게 됐나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제가 별 소리를 다 하게 되네요. 미쳤다고 하지 마세요?”

“그럼요. 형님! 52 소프트 미션이 [ 우리는 미쳤다 ] 입니다.”

“하하. 좋네요. 하여튼 아내가 미국에서 바람이라도 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직장생활까지 미친 듯이 일만하고 공부만 했는데, 이 기회에 좀 쉬면서 외조나 좀 할까? 미국 실리콘 밸리 경험도 하고 말이야. 뭐 그런 생각으로 미국에 오게 된 겁니다.”

MBA 학생 아내. 휴직자 남편.

KC소프트는 2명 모두 아내의 교육이 끝나는 대로, 다시 복직시켜주겠다고 했다.

확실히 좋은 인재였던 것이다.

“김선생님은 분명 젊고, 매력 있고, 유능한 젊은이라 생각합니다. 몇 년 전 우리 사장님 같기도 하고, 제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함께 일 하자니까요.”

“하하. 미안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겼어요. 아내가 지금 임신을 했거든요.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윤재는 깨달았다.

홍도현 부부의 합류는 물 건너갔다는 것을.

출산까지 3개월.

MBA를 마치려면 1년도 넘게 남아 있는 상황.

거기에 아내가 임신에 출산까지!

홍도현이 끔찍이도 사랑하는 아내의 옆을 떠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윤재는 2시간 넘게 진행한 홍도현과의 인터뷰를 마쳐야 했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          ◈          ◈

“오빠! 비행기에서라도 푹 쉬어!”

“응. 알았다. 근데 난 괜찮다니까!”

“얼굴이 그게 아니잖아. 사람들 만난 일 잘 안 됐어요 라고 쓰여 있어.”

“하하하. 티가 나니?”

“응. 많이~”

52 소프트뿐만 아니라 52 Corp 전체는, 모두 세계시장을 무대로 생각하고 있다.

싸이 월드는 실패하고 페이스 북은 성공한 여러 가지 요인 중 가장 큰 요인은 뭘까?

영어라는 국제공용어에 기반 한, 미국식 사고와 글로벌 마인드 부재가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그래서 윤재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개발팀 전체를 총괄해 줄 유능한 경력자가 필요했다.

완전 미국사람이거나, 글로벌 마인드가 뼛속까지 새겨져 있는 그런 사람.

그래서일까?

홍도현과 얼굴도 모르는 그의 아내가 다시 생각났다.

52 소프트는 윤재의 여러 회사들 중의 하나일 뿐.

좀 더 시간을 갖고, 52 소프트의 책임자와 개발자들을 모집해야 했다.

‘에밀리 공연. 링키드인과 콤파스 투자! 결국 절반만 성공했단 말인가?’

윤재는 15일간의 미국출장을 그렇게 정리했다.

뜻밖의 사건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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