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핀과의 저녁식사
LA에서 첫날 숙박을 포함해 총 3일을 머물렀다.
그리피스 천문대.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 등을 구경했다.
그리고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오롯이 하루를 보냈는데, 일몰시간에 맞춰 대관람차를 탔다.
LA 일정을 마치고, 렌터카를 타고 텍사스로 향했다.
박찬호가 뛰고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야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오빠! 그런데 진짜 부산 해운대에 대관람차 설치할 생각이야?”
“당연하지.”
“놀이공원 사업에도 진출하려고?”
“그럴 생각이었으면,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가봤겠지.”
“그럼 대관람차를 해운대에 설치하겠다는 이유가 뭐야? 돈이 제법 들어갈 텐데?”
혜진의 걱정이 이해 못할 바 아니었다.
지자체와 정부의 인허가도 필요했다.
건설비만 해도 수백억, 어쩌면 1,000억 넘게 들어갈지도 몰랐다.
재벌도 아닌데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게 아닌지, 우려되는 것이다.
“부산은 매년 태풍피해도 있는 곳인데, 대관람차 위허하지 않겠어?”
“하하하. 혜진이 너 제법 기특해!”
윤재는 혜진의 볼을 꼬집었다.
마누라 마냥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는, 혜진이 사랑스러웠다.
“혜진아! 52 Cafe 의 빅 휠은 런던아이나 뉴욕 휠 같은 대관람차에서 영감을 얻은 거야.”
52 카페의 전동 물레방아 빅 휠.
콜드브루 추출기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빅 휠은 52 Cafe의 시그니처 조형물이다.
52 Cafe가 사랑받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빅 휠이었다.
“조만간 런던아이를 건설한 스타넷 대표를 만나 볼 생각이야.”
“그 사람이 만나준대?”
“그 양반이야 자기네 용역 파는 건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밀레니엄을 기념해 런던에 대관람차, 런던아이를 건설한 스타넷.
스타넷은 런던아이로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세계 도처에서 그에게 러브콜이 쏟아졌고, 그 역시 스타넷의 세계 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해운대 해변에 런던아이 같은 대관람차가 있다고 상상해 봐. 그리고 해운대에 있는 우리 52 Cafe에 앉아, 부산아이를 보며 커피를 마신다고 생각해 봐! 멋지지 않겠어?”
듣고 보니 그럴싸한 계획이었다.
“태풍은 1년에 며칠 안 돼. 그 정도 안전은 고려해 지을 테니까,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런던아이는 3년 만에 공사비를 뽑았다. 부산 해운대는 런던보다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5~6년이면 페이아웃 가능할 거야.”
“진짜 오빠 일 벌리는 것은 세계 최고다. 세계 최고!”
“내가 말했잖아.”
“세상은 넓고 돈벌이는 천지에 널려 있다!”
“그렇지.”
52 Cafe는 확실하게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
덩치를 키운 다음, 마케팅과 이벤트로 화제의 중심을 지킨다.
상장과 대박의 꿈이 점점 다가오는 중이었다.
텍사스 알링턴까지 자동차로 하루가 더 걸린다.
관광을 겸해 쉬엄쉬엄 이동할 계획.
“헐리우드사인 보고 싶지 않았어?”
“딱히... 내가 뭐 헐리우드 진출할 일도 없고. 명예의 거리 가봤으면 됐지 뭐.”
“혜진아. 너무 상심하지 마라. 지난번에 얘기한 것처럼, 오진탁이 오히려 기회를 준 거라 생각하자.”
“그런데 정말 오빠 말대로 동영상 서비스로, 연간 몇 억을 벌 수 있을까?”
“컨텐츠만 잘 만들면 수억이 아니라 수십억도 가능하지.”
윤재는 폭발적 성장이 시작되기 전에, 혜진과 선희를 유튜브 스타로 만들 계획이었다.
아직 유튜브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었다.
혜진과의 결혼 등 할 일이 정리되면, 2006년부터 프로듀서, 편집, 촬영 등 간단한 팀을 만들어 혜진에게 붙여줄 생각이었다.
혜진과 선희 정도의 미모와 연기력에 컨텐츠가 더해지면, 연간 10억 단위 수입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컨텐츠 어때? 남편과 집안 청소를 엄청 열심히 하는 거야. 창문도 닦고. 목욕탕 청소도 하고. 그러다가 혜진이 네가 창문세제 뚜껑을 열고, 세제를 마시는 거지.”
“그런 짓을 왜 해?”
“알고 봤더니, 창문 세제 용기에 파워 에이드를 넣은 거였어.”
“깔깔깔. 반전 재미가 있겠네.”
“이런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담은 컨텐츠를 만드는 거지. 영어 자막도 넣고. 인터넷 세상이 되면 하나의 컨텐츠로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으니까.”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네.”
“2탄도 있어. 세차장에서 세차하다가 워셔액을 마시는 거야. 그런데 알고 봤더니 게토레이였다.”
“오! 좋은데?”
“영화나 드라마 하는 것보다, 훨씬 자유로울 거다. 시간. 장소. 주제 등 모든 측면에서.”
배우. 컨텐츠. 작가. 피디 등 머릿속에 구상은 모두 끝냈다.
자베드 카림이 유튜브를 만들면, 미국으로 다시 날아와 투자할 생각이었다.
구글과 싸우기보다 구글을 이용하면 된다.
유튜브 지배주주가 될 구글에게 경영을 맡기고, 윤재는 앉아서 지분가치 상승만 누리면 된다.
혜진과 선희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돈도 벌 수 있게 할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고였다.
텍사스에 도착해 박찬호의 야구를 관람한 뒤에는 네브라스카로 이동할 계획.
그곳에서 오마하의 현인 워렌버핀을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이번에는 유료 점심식사가 아니라, 무료 저녁식사가 윤재와 혜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텍사스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서 박찬호를 응원하고, 윤재는 혜진과 함께 네브라스카 오마하로 향했다.
“오빠! 안 피곤해!”
“내가 피곤할 리 없잖아?”
“목은 괜찮아?”
“목? 멀쩡한데!”
“대단하다. 그렇게 악을 썼는데 멀쩡하다니.”
박찬호는 고질적 허리부상 때문에, 다저스에서 텍사스로 이적 후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응원석에서 윤재는 기차 화통보다 더 큰 목소리로 박찬호를 응원했다.
“대한민국이 박찬호 선수를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파이팅!”
홈구장이 떠나갈 정도로 엄청난 목소리였다.
윤재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박찬호는 강판됐고, 윤재는 야구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네브라스카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내가 목이 왜 멀쩡하고, 안 피곤한지 알아? 혜진이 니가 무한동력을 공급해 주니까!”
“옴마? 그럼 내가 오빠 게토레이에 파워에이드인가?”
“하하하. 그렇지. 그렇고말고.”
회사를 그만두고 오히려 더 행복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더 많이 벌었고, 혜진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태리에 이어, 미국 출장도 하루하루가 달콤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네브라스카주로 가는 길에 오클라호마에 들렸다.
그곳에 인구 1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 쿠싱이 있었다.
윤재는 쿠싱의 석유물류 터미널과 저장시설을 둘러봤다.
석유 냄새가 도시 곳곳에 배어 있었다.
“쿠싱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전 같은 곳이야.”
“대전?”
“응. 미국 최대의 산유시설은 텍사스와, 멕시코만 해상유전에 집중돼 있어. 생산된 원유가 이곳 쿠싱을 기점으로, 미국 전역의 비축기지로 퍼져 나가지.”
“대전이라고 한 이유를 알겠네.”
“창진이랑 미국 석유기반 상품에 투자했다. 현재까지 수익률이 50%가 넘어.”
“세상에. 지금 오빠가 하고 있는 일이 대체 몇 개야?”
“하하하. 몇 개 안 돼! 조만간 100개 채울 생각이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국제유가는 장장 6년을 우상향 한다.
2002년 배럴당 20불 언저리였던 WTI는, 2008년에는 배럴당 100불로 6년 만에 5배 넘게 폭등한다.
남창진의 대진증권. 윤재. 그리고 론스타!
모두 원유관련 ETF 비중을 늘려가고 있었다.
절대 금액은 단연코 윤재가 앞서 있었고, 론스타, 대진증권이 뒤를 이었다.
론스타를 잡기 위한 미끼 중 하나가 원유 ETF였다.
귀국하면 론스타의 데이비드 리를 만나, 쿠싱에서 본 것을 바탕으로 생생한 구라를 들려줄 계획이었다.
◈ ◈ ◈
미국에 온지 일주일 만에, 윤재는 워렌버핀과 만났다.
버크셔 해서웨이 본사를 방문한 뒤, 버핀의 단골 스테이크 집을 찾아갔다.
“나도 아내와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하고 싶었다네.”
“부인께서는 암을 보란 듯이 이겨낼 겁니다.”
“고맙네.”
워렌버핀은 혜진을 단번에 알아봤다.
암세포와 힘겨운 투병을 이어가고 있는 수잔버핀.
혜진을 보며 워렌버핀은, 자기 부부의 젊은 날을 떠올렸다.
혜진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든 미모의 소유자.
특히, 서양 사람들에게 더 어필하는 외모였다.
벌써 3년 가까이 지난 일이건만, 버핀은 당시의 일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목숨을 걸고 살릴만한 아가씨군!”
“감사합니다.”
“아내도 자네 커플을 만나고 싶어 했지. 하지만 알다시피 건강이 좋지 않아.”
“괜찮습니다. 수잔의 쾌유가 우선이죠.”
안타깝게도 수잔 버핀은, 2개월 정도 뒤에 세상과 작별한다.
이미 70이 넘은 고령.
그녀의 회복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유쾌하게 손님을 맞아준 워렌버핀이 고마웠다.
“그나저나 자네 덕에 한국투자 수익률이 아주 좋아. 1년도 안됐는데 수익률이 100%가 넘는군.”
“아니에요. 당신이 투자해 주신 덕에, 차태영 회장도 저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워렌버핀은 윤재가 어떻게 자신을 설득해, 외국환은행에 투자하게 했는지를 혜진에게 무용담처럼 들려줬다.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모양이었다.
“미국 스타트 업에 투자하고 싶다고?”
“네. 그것 때문에 이 먼 곳에 온 거니까.”
윤재는 미국에 오기 전에, 이메일로 워렌 버핀과 충분히 소통해 왔다.
외국환 은행을 둘러싼 제반 환경 변화를 알려줬고, 앞으로 미국 스타트 업에 대해 투자하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앞으로의 유망한 산업전망이나 종목에 대한 의견까지 주고받았다.
워렌버핀과 윤재 모두에게 유익한 전자우편이었다.
“링키드인도 그렇고 콤파스도 그렇고,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네.”
미국 방문 목적과 대상 기업의 현황자료를 이메일로 보냈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엔젤 투자를 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큰 회사였다.
그럼에도 워렌버핀이 윤재의 이메일을 주의 깊게 읽은 것은, 발신자가 윤재였기 때문이었다.
“크랙 아담스를 3일만 빌려주세요.”
“크랙이 무슨 물건인가? 빌려주고 말고 하게.”
“최근 저는 종자돈을 4억 달러까지 불렸습니다.”
“4억 달러! 정말 자네는 미쳤군!”
워렌버핀이 안경을 고쳐 쓰며 경탄했다.
4억달러는 30살의 워렌버핀에게도 없던 큰돈이었다.
“문제는 미국에서 저는 햇병아리조차 되지 않아요. 크랙이 함께 가 준다면, 투자에 도움이 될 겁니다.”
“공짜로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하하하. 당연하죠.”
윤재는 투자 목표로 삼은 2개 회사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들려줬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이 같은 눈망울로 그는 윤재의 얘기를 경청했다.
“링키드인! 구인과 구직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하더군요. 1,000만 달러 정도 투자할 생각입니다.”
“발상은 좋은데, 수익화 모델이 의문이더군.”
“맞습니다. 구인자와 구직자, 학생들의 데이터가 쌓일수록 가치는 올라갈 겁니다. 아직 시작단계지만 성장 잠재력이 아주 큰 회사죠.”
“데이터가 돈이라.... 무슨 얘기인지 알겠네. 또 다른 회사는 어떤가?”
“콤파스(나침반)는 메일에서 보셨겠지만 지도회사입니다. 작년에 창업했다고 하더군요. 거기도 오백에서 1,000만 달러 정도를 원하고 있더군요.”
지도사업의 성장 가능성과 향후 응용산업에 대해 윤재의 의견을 얘기했다.
오마하의 현인은 이번에도 윤재의 의도를 금방 알아챘다.
고수는 역시 달랐다.
“우리는 얼마 정도 했으면 좋겠나?”
“원하시는 대로 하셔야죠. 감히 제가 오마하의 현인께 훈수 두겠습니까?”
“자네는 오마하의 현인에게, 한국의 은행을 공동인수하자고 제안한 걸로 아는데?”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였다.
와인을 곁들인 송아지 스테이크를 먹으며, 윤재와 워렌버핀은 링키드인과 콤파스에 대한 투자를 합의했다.
구인자와 구직자 전용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링키드인.
2016년이 되면 MS가 링키드인을 무려 30조원을 주고 인수한다.
창업자가 너무 문어발식 투자로 인해, 일시적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다른 투자자들이 나타나기 전에 링키드인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키포인트.
투자만 성사된다면 현재 기준으로, 최소 15배에서 20배의 수익이 예상됐다.
링키드인이 차익실현을 위한 투자라면, 콤파스는 조금 성격이 달랐다.
미국 신생 지도업체인 콤파스(Compass).
장기적으로 성장시켜, 52 Corp의 사업 영역에 포함시킬 계획이었다.
배달. 내비게이션. 포털. 모바일 등 지도서비스 사업은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비즈니스.
한국시장에서도 지도 서비스 사업은 필수였지만, 한국과 세계시장은 조금 달랐다.
세계시장 진출 용 지도서비스 업체가 바로 콤파스였다.
“내일 바로 떠날 텐가?”
“네.”
“크랙에게 얘기해 두겠네. 그 친구도 자네와 함께 가는 걸 좋아하게 될 거야.”
워렌버핀은 이미 크랙 아담스를 통해, 링키드인과 미팅약속을 잡아 놓은 상태였다.
이동 시간 등을 고려해, 2일 뒤에 만나는 걸로 약속이 잡혔다.
윤재 입장에서 워렌버핀을 끼지 않고 독식하면,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생면부지의 코레안인 윤재에게, 회사의 지분을 넘길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최대의 투자기업 중 하나인 버크셔 해서웨이가 동행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런 측면에서 워렌버핀보다 더 좋은 파트너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윤재는 워렌버핀과 함께 매년 유망 스타트업을 사들일 계획이었다.
‘링키드인과 콤파스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비즈니스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업체는, 52 소프트를 위해 직접 개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리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직접 개발이 어려운 해외 사업체는 지분투자나 M&A를 시도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신생 스타트 업 지분 인수는,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투자였다.
회귀자인 윤재에게 이만큼 특화된 돈벌이는 드물었다.
“상페호수에서 한 번. 뉴욕에서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한 젊은이가 보고 싶었지. 그리고 그가 목숨 걸고 구한 아가씨도.... 오늘 자네를 보니 세 번째도 놀랄 일이 될 것 같군.”
“또 기회를 줘서 감사합니다.”
세 번 연속 오마하의 현인과 좋은 인연을 맺었다.
이제는 제법 수평적 입장에서, 워렌버핀과 비즈니스를 도모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