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24화 (124/196)

So Far So Good(2)

잭 니콜슨 주연의 1997년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윤재는 회귀한 자신의 젊은 날이 바로 그 영화의 제목과 똑 같다고 생각했다.

2003년 3분기 마감을 눈앞에 두고 있는 현재, 모든 것이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갔다.

회사는 페레레 그룹과 제휴계약을 체결했고, 페레레의 초콜릿 제품들은 출시와 함께 소비자들의 호평 속에 잘 팔려 나갔다.

“윤재! 성공적으로 로쉐와 킨더가 시장에 안착했다는 얘기 들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줘 고맙다.”

“하하하. 올리버! 우리가 더 고맙지. 앞으로도 우리에게 맛있는 초콜릿 우선적으로 공급해다오. 코리아 퍼스트 알지? 코리아 퍼스트?”

“그런 조건이 있었던가?”

“하하하. 우리 사이에..... 농담이다. 하여튼 좋은 관계 계속되도록 노력하마.”

MSN과 국제전화로 이어지는 올리버와의 우정이, 멋지게 비즈니스로 결실한 맺은 순간이었다.

윤재의 농담을 다 받아준 뒤 올리버가 말했다.

“그런데 윤재 너 에밀리 소식 들었지?”

에밀리 캠벨은 6개월의 준비 끝에, 2003년 9월 중순 그녀의 정규앨범 1집 Cosmopolitan을 발매했다.

영국의 팬텀 레코드를 통해 발매된 에밀리의 1집 앨범.

에밀리는 1집을 윤재에게 EMS로 보내줬는데, 윤재는 요즘 그녀의 앨범을 거의 매일 듣고 있었다.

에밀리만의 스크래치 있는 보이스가 명곡들과 만나, 빛을 발하는 앨범이었다.

“음하하. 에밀리의 데뷔 앨범 타이틀 곡, One step behind가 1개월 만에 영국 빌보드 차트 Hot 50에 진입했다.”

“이야! 대단한데! 나는 에밀리가 결국 대박을 터뜨릴 거라 믿었다.”

“그럼. 고맙다. 요즘 에밀리 스케줄 소화하느라 정신없는데, 언제 한번 꼭 한국에 함께 갈게.”

“그래. 가능하면 일찍 와!”

에밀리 캠벨 역시, 오랜 무명기간을 이겨내고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하얀국물 라면 ‘꼬끼오면’ 도 9월 출시 한 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500만개를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한 달에 3,000만개 넘게 팔리는 옹심의 매운 라면에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회사에서 기대했던 것보다는 폭발적인 수요였다.

더 고무적인 것은 마트와 수퍼, 대리점 사장들이 전하는 엔드 유저의 반응이 매우 호의적이라는 것이었다.

청주 꼬끼오면 생산라인은 24시간 가동에도 불구하고, 수요를 맞출 수 없어 라인증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꼬끼오 면의 원 기획자인 윤재는 출시직전까지, 마케팅부문과 지속적인 협업을 진행했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제품 광고 컨셉에 대한 회의였다.

광고 외주를 맡은 기획사와의 회의 때 윤재의 주장은 하나였다.

“후발주자로, 틈새시장을 노리는 만큼 파격적인 모델을 발탁해 B급 정서로 승부했으면 좋겠습니다.”

“흥미로운 주장이군요? 혹시 생각해둔 모델이라도?”

“제가 모델을 염두해 두고, 콘티도 짜왔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신사업부문 소속인 윤재.

사람들은 윤재가 마케팅부문이 주관하는 회의에는, 원작자로서 의견만 개진할 거라 생각했었다.

‘김윤재 대리와 함께 일한 사람들이, 왜 그토록 김대리를 칭찬하는지 조금 알 것 같군.’

마케팅 운영팀, 마케팅 개발팀, 마케팅 지원팀 등 마케팅부문 산하의 팀장과 실무자들은 하나같이 윤재의 능동적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아이디어가 버리기 아까운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윤재의 의견은 심플했다.

먼저 인기개그맨 박명승을 모델로 채용하자는 것.

‘꼬끼오 라면 사 주세요. 꼭이오! 꼭꼭꼭꼭꼭!’

윤재가 제시한 카피였는데, 그는 ‘꼭꼭꼭꼭꼭’ 부분에서는 직접 닭소리를 흉내 내는 열정을 보였다.

“틈새시장에 침투해야 하는 후발주자로서, 쇼킹한 모델과 저렴한 카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을 고민해 봤습니다. 우리 회사 구성원들 중 누구도 꼬끼오면이 매운 라면을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소비자들도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너무 엄숙한 광고보다, 재미있는 광고로 인지도를 올리자는 겁니다.”

판매하고 있는 대부분의 제품이 마켓쉐어 1위 또는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보니, O2푸드의 광고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측면이 강했다.

개그맨 박명승을 모델로 쓰는 것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지만, 결론은 파격적인 박명승 발탁이 중론이었다.

“광고가 너무 주목받고, 제품이 기억나지 않을까 우려되긴 합니다만! 분명 신선하고 재미있는 광고가 될 것 같긴 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광고기획사 팀장이 윤재의 의견을 지지했다.

확실히 전문가의 의견이 더해지니, 윤재의 주장에 힘이 실렸던 것이다.

실제 개그맨 박명승이 잇몸을 다 드러내면서 “꼭꼭꼭꼭꼭” 닭 흉내를 내는 광고는, 소비자들의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다.

마트나 수퍼에 꼬끼오 면을 사러 오는 사람들 중에, 꼭꼭꼭꼭꼭 닭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도전자의 입장에서 B급 정신으로 충격파를 던지자는 얘기도 놀라웠지만, 그 후속 아이디어 역시 놀라운 것이었다.

“박명승을 통해 변칙 플레이를 하는 거라면, 회사의 고전적 스타일에 맞는 정통적 접근 방법을 병행하면 어떻겠습니까?”

“정통적 접근?”

“예. 혹시 꼬끼오 면이 출시 첫 달 300만개 넘게 팔리면, 두 번째 아이디어도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윤재가 무슨 얘기를 하나?

사람들은 신기한 생물을 구경하는 표정으로 윤재의 입을 주시했다.

“하얗게 맵다! 이 카피 어떻습니까?”

평균적으로 남자보다 여자들이 매운맛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윤재의 두 번째 광고 아이디어는 매운맛과 여자들이 모티브였다.

자매 또는 친구관계인 2명의 여자가 등장해, 서로 갈등하다 하얀 국물 꼬끼오 면을 먹으며 화해한다는 컨셉의 콘티였다.

그리고, 마지막 멘트는 ‘하얗게 맵다.’를 제시했다.

“매운 라면을 포함해 우리나라 라면들은 빨간 국물 일색입니다. 어떻게 보면 모순돼 보이는 ‘하얗게 맵다.’ 라는 카피로 꼬끼오 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거죠. 박명승 코미디언과 달리 미녀들이 모델로 나온다면, 제품 자체의 맛에 대해서도 어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개그맨 박명승을 모델로 쓰자는 아이디어만큼이나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회의 참석자 전원은 윤재의 ‘하얗게 맵다.’ 라는 카피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케팅 개발팀장은 윤재의 계속되는 아이디어에 충격을 받았다.

‘그냥 관심 받고 주목받고 싶어서, 엉겁결에 하얀 국물 라면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생각했는데, 김윤재 저 친구는 진짜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제품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기 업무도 아닌데, 저런 고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눈앞에 앉아있는 윤재는, 한국 최고의 광고기획사와 마케팅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회의를 주도하면서 종횡무진 하는 사람은 윤재였다.

‘뭐야? 고졸에 영업출신이라고 해서 그냥 친화력 좋고, 현장체질인 직원으로만 알았는데, 내공이 장난 아니잖아. 마케팅 개발부문 어지간한 고참 직원들보다 아이디어가 좋다.’

하얀 라면 출시를 앞두고, 마케팅 부문과 홍보부문과의 협업이 진행되는 동안, 윤재는 자신의 진가를 아낌없이 발휘했다.

누구에게는 단돈 1,000원짜리 즉석식품에 불과할 수 있지만, 라면 하나를 출시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렇게 탄생한 국내최초의 하얀 국물 라면은, 재벌기업의 돈지랄이 아니라 라면시장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얼마 전 공장인수인계에 들어간 삼오어묵까지!

윤재와 신사업부문은 2003년을 풍성하게 만들어 갔다.

오재준의 매출100조 화두에 가장 완벽하게 화답한 부문이 바로 신사업부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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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말!

토플은 이미 상위권 성적이었고, GMAT까지 우수한 점수를 받은 윤재.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미국 MBA!

시카고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다.

윤재는 시카고 대학에 [ 21세기 잭 웰치와 결별할 때! ] 라는 타이틀의 도발적 에세이를 제출했었고, 에세이까지 합격점을 받으며 2004년 9월에 맞춰 MBA 입학이 결정된 것이다.

“정말 그 에세이가 OK 사인을 받았다고?”

윤재의 합격 소식에 조영우가 파안대소했다.

20세기 경영의 신으로 불리우며, GE를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의 회사로 만들었던 잭 웰치 회장.

2010년 이후 GE의 몰락과 함께,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던 잭 웰치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윤재가 에세이를 제출한 시점은, 전 세계가 잭 웰치를 추앙해 마지않던 2003년이었다.

“팀장님! 잭 웰치가 하느님도 아니고, 까지 못할 이유가 없죠!”

“푸하하. 그래 너 다운 얘기다. 시카고 가서 코쟁이 촌놈들 압살해 버려라.”

“알겠습니다. 제가 조선의 땡초 맛이 얼마나 매운지 보여주고 오겠습니다.”

아직은 MBA까지 1년이나 남아 있었지만, 윤재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Plan A가 현재까지 모두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문장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너한테 의지하는 부분이 작지 않아. 남은 기간 잘 해라. 특히 네 동년배나 후배들 잘 좀 이끌어 주고.”

“알겠습니다. 팀장님!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예상보다 1년 정도 빠르게 추진되고 있던, 해외 MBA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혜진이한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내년 가을이 오기 전 결혼해서 미국으로 함께 가는 거다!’

당시 혜진은 코스모스 졸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연예계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돈이야 지금도 넘쳐났고,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윤재.

윤재는 혜진의 연예활동을 잠시 쉬더라도, 2년의 미국 생활을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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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의 승승장구!

개인 재테크도 순풍에 돛단배와 같았다.

평균 단가 7천원에 350억을 풀 베팅한 ㈜KS 주식의 폭등으로, 현재 평가액은 1천억 수준으로 폭증해 있었다.

워렌버핀과의 협상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온 상태.

51% 외국환은행 지분 25.5%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15.5%를 군인연금과 대진증권이 투자하기로 했다.

윤재의 몫은 10%였고, ㈜KS의 지분을 팔아 부담할 계획이었다.

새 외국환은행 CEO는 주주들 사이에서 차태영으로 낙점돼 있었다.

그 외에 52 Cafe와 미소천사 은행 등, 윤재의 투자 회사들도 성장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2003년 10월 6일 Y대 대강당.

거침없이 상종가를 달리던 윤재는, O2 푸드 신입사원 리쿠르팅 행사에 초대 받았다.

HR지원팀원들과 함께 대학을 찾은 이유는, 우수 선배사원으로서 회사 입사를 희망하는 대학생들에게, 선배로서의 얘기도 들려주고 간략한 Q&A 세션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저는 이곳 Y대를 중퇴한 고졸사원으로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하지만 나름 회사 생활을 잘 해 나가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세계 최고의 식품회사를 꿈꾸는 저희 O2 F&B에서 여러분의 꿈을 펼쳐보시길 강하게 추천 드립니다.”

보통 사람들이 꺼려하는 자신의 학벌을 가감 없이 밝히는 윤재의 모습.

강당을 찾아 온 학생들뿐만 아니라, 리쿠르팅 행사를 진행하던 HR지원팀 직원들도 묘한 여운을 느꼈다.

윤재를 포함한 우수 사원 3명의 스피치가 끝났다.

입사 3년 미만의 신입사원 10명과, O2 입사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들과의 짧은 미팅이 진행됐다.

1인당 10여명의 학생들과 질의응답을 하며, 회사에 대한 궁금한 점에 대해 답하는 자리였다.

“신입사원 연봉이 얼마나 되나요?”

“해외 MBA같은 교육 기회가 제공 되나요?”

“회사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주택자금 융자나 휴가사용 같은 복리후생, 조직문화나 회사 분위기에 대한 질문들이 주를 이뤘다.

“98학번 경영학부 민태홍이라고 합니다. 아까 김윤재 선배님께서 세계 1위의 푸드회사를 지향한다고 하셨는데, 실현가능성이 있는 얘기신가요?”

“네. 2003년 저희 회사는 매출 100조라는......응? 잠깐만. 민태홍?”

회귀 직전 자신의 밑에서 지원팀장을 수행했던 민태홍!

방금 자신에게 질문한 젊은이와 눈이 마주쳤다.

회귀전보다 17살이 젊은 민태홍이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었다.

2003년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뒤, 2004년도에 공채로 입사한 민태홍.

그를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었다.

“음.... 민태홍씨 같은 훌륭한 인재들이 저희 회사에 입사해 준다면, 세계 1위 푸드 회사도 꿈같은 얘기는 아니겠죠!”

“우와. 선배님 짱! 말씀 참 잘 하신다.”

윤재 주변에 몰려있던 10여명의 학생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윤재는 눈앞의 파릇파릇한 민태홍을 보며 생각했다.

‘능력과 열정이 있는 직원들의 꿈의 직장을 만들자! 이것이야말로 내 Plan A의 알파와 오메가다!’

민태홍을 만난 덕에, 회귀한 삶의 핵심 목표를 다시 명확히 할 수 있었다.

리쿠르팅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회사 복귀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네. 팀장님! 김윤재입니다.”

“응. 난데.... 리쿠르팅 행사 끝나면 퇴근하지 말고, 사무실로 좀 들어올래?”

“네. 안 그래도 복귀할 생각이었습니다.”

윤재는 조영우와의 통화를 끊었다.

촉이라는 건 남녀 불문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팀장의 목소리에서 왠지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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