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23화 (123/196)

한 끼 식사에 3억?

2003년 KS 글로벌 사태에 맞춰 ㈜KS 지분을 매집해 떼돈을 번 윤재.

그런 윤재에게 또 하나의 대박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외국환 은행 인수전 참여였다.

일단 론스타에게 매각되는 걸 저지하는 데는 성공한 상태였다.

그리고 2003년 9월 1일 월요일 오후 3시 30분 결정타가 터졌다.

네 번째 스텝의 주인공 워렌 버핀에 대한 뉴스가, 다시 한 번 한국을 강타한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렌 버핀. 1조 4천억에 외국환은행 인수 전격 결정.

매각불발로 고민하던 금융당국과 정부의 부담 덜어주나?

가치 투자! 장기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핀의 인수로, 한국 은행들에 대한 재평가 이뤄질 듯.

한국 언론은 온통 워렌 버핀의 외국환은행 인수 뉴스로 도배가 됐다.

론스타에 대한 금산분리 위반 때만큼이나,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방송사들은 특집편성을, 신문사들은 호외를 통해 워렌 버핀의 외국환 은행 지분 투자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윤재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척하며 회사 동료들과 워렌버핀이 나오는 특집방송을 시청했다.

방송 3사와 합동으로 진행된 인터뷰!

오마하의 현인. 백발선생. 워렌버핀이 모니터에 등장했다.

미모의 아나운서들이 돌아가며 워렌버핀과 대담을 진행했다.

“KBC 론스타는 먹튀 문제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론스타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평생 장기투자를 원칙으로 살아 왔습니다. 단기간에 시세차익을 보는 투자가 아니라, 외국환은행의 장기 성장성에 투자했습니다.”

“경영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희 회사를 포함한 새로운 주주들은, 외국환은행의 51% 지분을 갖게 됩니다. 이사회에서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저와 버크셔 해서웨이는 재무적 투자자일 뿐, 경영에 관여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장기적 투자와 재무적 투자라는 자신의 방침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아무래도 주주가 바뀌면, 기존 노동자들이 불안해 할 겁니다. 인위적인 인력감축은 없는 겁니까?”

“새로운 경영진이 추진할 얘기입니다. 다만 저는 인력감축보다는,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는 일이 진정한 구조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새로운 경영자는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할 것이라 믿습니다. 필요하다면 주주로서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약 30분 정도 특집방송으로 진행된 인터뷰.

길었던 인터뷰의 키워드는 4가지였다.

장기투자.

재무적 참여.

고용안정.

끝으로 구조혁신!

극동건설과 스타타워 문제로 인식이 좋지 않던 론스타에 비해, 워렌버핀은 등장과 동시에 여론의 호의적 지지를 받았다.

워렌 버핀 그는 누구인가?

오마하의 현인! 드디어 한국 시장에 대규모 투자 단행.

한국 자본시장!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인가?

론스타의 금산분리법 위반 사실이 밝혀졌을 때보다 더 많은 뉴스가 흘러나올 기세였다.

차이라면 론스타는 부정적 뉴스 일색이었고, 워렌버핀은 긍정적 기사가 주류라는 것!

특별 대담을 지켜보는 윤재의 마음은 당연히 기뻤다.

그리고 조금 벅차기까지 했다.

‘됐다! 3년 가까이 준비한 작업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구나!’

윤재는 외국환은행 인수전 참여의 4가지 스텝 중, 3번째와 4번째 역할을 수행한 차태영과 워렌버핀과의 일화를 회상했다.

역시 3개월 전의 일이었다.

◈          ◈          ◈

개구리도 호랑이 등에 올라타면 순식간에 수십리를 달려갈 수 있는 법.

외국환 은행 인수전을 준비해 온 윤재는 2명의 호랑이에 동시에 올라탈 수 있었다.

바로 차태영이라는 호랑이와 워렌버핀이라는 대호였다.

주주가 아니라 직장인 출신 뱅커로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금융인인 차태영.

차태영의 능력도 출중했지만, 윤재가 그와 차명수에게 공을 들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차명수의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차명수의 할아버지이자, 차태영의 부친인 차정만.

그는 육군장성 출신으로 군인연금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

아들 차태영은 개인적 능력으로, 그의 부친 차정만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윤재를 도울 수 있었다.

차태영과는 광주에 있을 때부터 수시로 만났다.

이미 그는 론스타가 희대의 먹튀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외국환은행 인수의 명분과 실리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 차태영과 윤재는 4개월 전인, 5월 달에 미국행 휴가를 떠났다.

바쁜 와중에 휴가를 쓴다고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윤재에게 외국환은행 인수 건은 반드시 처리해야할 비즈니스였다.

차태영이 기내식 비닐을 뜯으며 말했다.

“생각할수록 자네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아닙니다. 저는 짜장면도 곱빼기는 안 먹고, 보통만 먹는 사람입니다.”

“허허. 실없기는.... 혹시 윤재 자네 모친께서, 자네 임신했을 때 특별한 것이라도 드셨나?”

“왜요?”

“아니.... 뭘 드셨기에 자네 배포가 이렇게 크냔 말일세.”

미국 뉴욕을 찾아가는 이유는 워렌버핀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2003년 이베이에서 진행된 워렌버핀과의 점심식사에 윤재가 1등으로 낙찰된 것이었다.

“나는 워렌버핀이 점심 자선경매를 한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자네는 마치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낙찰을 받지 않았나? 은행 인수전 참여도 참여지만, 워렌 버핀과 뉴욕에서 점심 먹을 생각은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

“워렌버핀 좋아하세요?”

“금융권 종사자 치고 그의 책 한권 정도 읽지 않은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하하하. 행장님! 쫄지 마세요. 제 눈에는 행장님도 워렌버핀 만큼 훌륭한 분이니까요. 행장님하고 10살 정도 밖에 차이 안 나니까, 만나시면 형님이라고 부르세요. 영어로 부라더! 부라더 좋네요. 하하하.”

“허허. 실없는 친구....”

말은 그렇게 했지만 차태영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나이 27살에 국내은행 서열 5위인 외국환은행을 인수할 생각을 품은 사나이.

이역만리 미국에 날아가 워렌버핀과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따낸 젊은이.

점심 값으로 3억을 지를 수 있는 청년!

그뿐인가?

외국환은행 인수에 따른 명분과 실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완벽에 가까운 비전까지!

자신도 금융인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지만, 윤재의 능력과 포부는 저세상 것이었다.

“자네 제안서 보게 된다면 워렌 버핀 아니라, 워렌 버핀 할아버지라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거네.”

“하하하. 제안서 때문이 아닙니다.”

“?”

“행장님 자기소개서 보면 뻑가지 않고 버틸 수 없으니까요. 한국에도 이런 뱅커가 있었나.... 아마 그런 생각을 하게 되겠죠.”

워렌 버핀에게 전달할 제안서에는 외국환은행 인수의 실익이 담겨 있었다.

추가적으로 CEO로 왜 차태영을 추천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1페이지 준비해 뒀다.

“고맙네!”

“아네요. 제가 고맙죠.”

“아냐. 자네 덕분에 명수도 몰라보게 달라졌고....”

천덕꾸러기였던 차명수 생각에 차태영은 잠시 말을 끊었다.

“우리 집 사람도 종종 자네 얘기를 할 정도니까. 그리고 덕분에 나도 노익장을 불태우게 되지 않았나?”

차태영은 조은은행 몰락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환갑 갓 지난 나이지만, 아직 그는 정정했다.

무엇보다 그의 능력을, 사모님 집안일이나 돕도록 놔두는 것은 사회적인 낭비였다.

“갈 길이 멉니다. 행장님! 잠시 눈 좀 붙이시죠?”

“허허. 그럴까? 그런데 왠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군.”

뉴욕까지 14시간.

윤재 역시 잠이 오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애써 눈을 감았다.

차태영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쉬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          ◈          ◈

뉴욕 맨하탄 킨스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윤재는 차태영과 함께 워렌버핀을 만났다.

이베이 낙찰가 26만 달러!

3억을 주고 워렌 버핀의 시간을 3시간 빌렸으니, 시간당 1억을 쓴 셈이다.

회귀 직전 기준으로, 축구스타 메시의 주급은 약 36억.

주 2회 정도 게임에 출장한다고 가정하면, 메시는 시간당 12억을 버는 것이다.

워렌 버핀의 경우에도 회귀 전에는 점심식사비가 45억까지 치솟았으니, 시간으로 따지면 15억이 되는 것.

시간당 가치로 따지면, 메시를 뛰어 넘는 값어치를 갖고 있는 사람이 워렌버핀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담화를 나누니 30분이 훌쩍 지나갔다.

서로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3명 중 가장 어리둥절한 사람은 차태영이었는데, 그 이유는 워렌 버핀이 윤재를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이름 없는 청년을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었지만, 첫인상은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소.”

어리둥절해 하는 차태영에게, 워렌 버핀은 당시의 기억을 상세하게 들려줬다.

“당시 물에 빠진 여인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미스터 윤재의 모습은 마치 슈퍼맨 같았소. 인간의 스피드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요.”

“마치 영화 같은 얘기로군요. 듣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차디찬 물속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 물에 빠진 큰 다람쥐를 구해 왔다는 것이지요.”

“다람쥐가 아니라 마멋입니다.”

“하하. 그랬던가요? 어쨌든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빌 게이트에서 워렌버핀으로 이어지는 과거의 추억.

스위스 상페호수에서 스치듯 만났던 인연이, 3명의 사이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줬다.

마치 스테이크와 잘 어울리는 소스처럼, 과거의 인연이 윤활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비즈니스에서 첫인상은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상페호수에서 워렌버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고, 워렌버핀은 빌 게이트에게 윤재에 대해서도 좋은 얘기들을 들었던 상태.

워렌버핀과의 비즈니스는 절반 정도 성공한 상태에서 시작된 것이다.

탐색전을 끝낸 윤재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보고서를 잠시 봐 주시겠습니까? 제가 차태영 부회장과 함께 당신을 찾아온 이유입니다.”

윤재는 5페이지로 요약한 레포트를 워렌에게 건넸다.

정제된 영어를 사용한, 제법 훌륭한 보고서였다.

워렌 버핀은 스테이크 써는 동작을 멈추고, 진지하게 보고서를 정독했다.

줄곧 소탈한 모습이던 워렌의 동작이 변해가는 게 느껴졌다.

동네 할아버지 모드에서, 세계적인 투자가의 모드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점심시간 3시간 가지고는 부족할 것 같군요.”

2번이나 레포트를 정독한 워렌의 일성이었다.

그는 비서에게 전화해 오후와 저녁 스케줄을 조정할 것을 지시했다.

워렌으로 하여금 추가시간을 할당케 한 보고서.

핵심 내용은 아주 단순했다.

1조 4천억이 필요한 외국환은행 인수전에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하나하나 정리해 봅시다. 그러니까 매년 5천억 정도의 이익을 낼 수 있는 은행이다?”

“그렇습니다. IMF 전후로 손실을 기록했지만, 외국환 은행은 매년 5천억 전후의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미래 성장 잠재력은 빼고서 말이죠.”

“5천억 이익 내는 회사의 지분 51%가 1조 4천억이라.... 멀티플이 대략 6 정도 되겠군.”

IMF의 후폭풍을 이제 막 빠져나오고 있는 한국과, 구제금융의 직격탄을 맞은 은행산업.

제대로 된 주주와 경영자만 만난다면, 멀티플 6배는 헐값이었다.

론스타가 4조 넘는 차익을 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이닉스와 형제건설 지분가치는 어떻게 계산한 것이오?”

외국환은행은 IMF 시기를 지나며, 아이닉스와 형제건설에 대출해 준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했었다. 말 그대로 출자전환!

워렌버핀은 그 지분가치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현재 주가야 말씀드릴 필요 없을 테고, 미래가치 즉 성장성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워렌 버핀은 계속해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현재가로 아이닉스의 지분가치는 2천억도 안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 3위권인 D램과 낸드플래시를 보유한 아이닉스의 미래가치입니다.”

“미래가치라?”

워렌 버핀은 전설적인 투자가.

빅애플의 MP3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고, PMP나 디지털 카메라 등 모바일 휴대기기가 급증하고 있다는 트렌드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소니의 워크맨이 안겨준 충격보다, 훨씬 더 빠르게 모바일 세상이 덮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도 폭증할 것이란 얘기군요?”

천재적인 두뇌와 이해력을 갖춘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참 쉽고도 재밌는 일이다.

“중동에 플랜트 건설 바람이 불고 있는 것 아시죠? 한국 건설회사들은 이미 중동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습니다. 형제건설은 그런 한국을 대표하는 건설사이구요.”

“IMF 구제금융의 위기를 벗어나면 지분가치가 훨씬 치솟을 거라는 얘기로군요.”

“그렇습니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현재 2천5백억도 안 되는 2개 기업의 가치만 해도 1조 4천억을 넘길 수 있습니다.”

워렌버핀은 윤재의 얘기를 곱씹었다.

머릿속으로 경제성과 실현가능성을 가늠하고 있으리라!

“무슨 얘기인지 모두 이해했소. 그런데 은행업 본질에 대한 부분은 이해가 잘 안 되는 군요. 모바일 퍼스트라는 얘기는 무슨 의미입니까?”

“말씀 그래도 모바일 퍼스트입니다. 조만간 지구촌은 모바일 세상이 된다는 것이지요.”

“PDA나 팜 같은?”

“네. 노키아나 블랙베리, 윈도모바일을 이용한 제품들 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모바일 세상이 도래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 모바일 세상에 맞는 은행으로 외국환은행을 변신시킬 CEO가 바로 차태영 부회장이구요.”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빅애플의 MP3.

불티나게 팔려나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

이 모든 것을 엮어줄 스마트폰과 모바일 시대의 도래.

매년 5천억에 가까운 이익을 낼 수 있는 은행.

모바일 시대에 필수적인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지분만 13.7%를 갖고 있는 은행.

게다가 외국환은행을 모바일 뱅크 기반의 회사로 탈바꿈 시켜 나가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현재가치만 해도 1조4천억은 껌 값인데, 미래의 성장성을 고려하면 진짜 껌 포장지도 안 되는 금액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미스터 윤재 진영이 1조 4천억을 독식하고 싶지만, 자금이 부족한 관계로 나와 함께하고 싶다는 것 맞죠?”

“비아이엔지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워렌버핀이 윤재와 차태영의 손을 잡았다.

그가 외국환은행 인수전에 뛰어들기로 마음을 굳힌 순간이었다.

“제 시간을 3시간 넘게 빼앗은 사람은 당신들이 처음이군요. 우리 본격적인 얘기는 장소를 바꿔 진행해 볼까요?”

“좋습니다.”

윤재 인생을 통틀어 가장 비싼 점심식사가 끝났다.

3억짜리 식사였지만, 해피엔딩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