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22화 (122/196)

많이 무따 아이가

2003년 7월과 8월 내내 윤재와 O2 푸드 직원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일했다.

이재민 사장과의 스왑딜과 이지은 선수에 대한 스폰서십 체결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였다.

그즈음 국민적 관심을 끄는 뉴스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 산업은행과 금융위 외국환은행 매각협상 전면 중단 선언.

론스타 명백한 산업자본으로 밝혀져 일파만파!

론스타가 일본에 투자한 퍼시픽 골프그룹! 자산총액 3조원 넘는 걸로 알려져 충격!

금산분리법까지 위반해 가며 론스타에 외국환은행 매각하려는 이유가 뭔가? 국내기업 역차별에 한국 기업들 연일 불만 성토.

재벌의 은행 사금고화를 막겠다며 금산분리법 만들더니, 외국 회사에 퍼주는 금융당국!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뉴스가 매일 같이 TV와 신문을 달궜다.

금산분리법 위반에 이어 론스타와 금융당국을 당혹케 하는 뉴스가 이어졌다.

한국 언론은 거의 2개월 내내 2가지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충격! 자산 60조가 넘는 외국환은행.

매각대금 1조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져 일파만파.

외국환은행 노조 헐값 매각 막기 위한 총력투쟁 선언!

금융노조 연일 헐값 매각 이슈 제기하며 금융위 항의 방문!

금산분리 특혜에서 시작한 국민적 공분은, 저절로 외국환은행 노조에 힘을 실어줬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매각을 추진했던 사람들과 정치권은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

2003년 8월말 일부 언론 종사자들만 관심을 갖는 뉴스가 하나 있었다.

론스타의 일본 골프 리조트 회사 투자사실 밝혀낸, NBC 탐사보도팀 이달의 기자상 수상!

탐사보도의 진수를 보여준 NBC 탐사보도팀!

방송과 신문에 짤막하게 소개된 TV와 신문 지면상에, 탐사보도팀과 함께하는 매력적인 미녀가 눈에 띄었다.

그녀의 이름은 안신애 아나운서.

윤재가 광주 영업3팀에 근무할 때 인연을 맺었던 바로 그 여자.

2003년에 서울 NBC본사로 발령 받은 그녀는, 탐사보도 ‘시사저널리즘!’의 진행자로 발탁됐고, 매력적인 외모 덕에 인기 상종가를 달리고 있었다.

시사저널리즘 팀이 론스타 금산분리 예외적용에 대한 특종을 터뜨린 것은 약 45일 전.

그 특종과 론스타 외국환은행 매입 실패의 배후에 바로 윤재가 있었다.

◈          ◈          ◈

지금으로부터 약 3개월 전인 2003년 5월 여의도의 한 카페.

윤재는 안수애를 만났다.

“수애씨? 여기 카페 이름 뭔지 알아요?”

“팜므파탈 이잖아요.”

“하하하. 광주에서 저희가 만났던 카페도 팜므파탈이었죠.”

“호. 그랬었나요?”

여전히 예쁘고 섹시한 아가씨였다.

“서울 생활은 할만 해요?”

“호호. 저야 뭐 오매불망 오고 싶었던 곳이니까요.”

“하긴 수애씨에게 광주라는 무대는 너무 좁은 곳이죠. 앞으로 NBC 간판 아나운서 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지방 촌닭 출신이라고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수애는 예전보다 표정이 훨씬 밝아보였다.

돈과 명품!

그리고 그걸 실현시켜줄 남자에 매달리던, 안수애는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윤재와의 만남이었다.

매사 열심인 윤재를 만나면서, 그녀도 돈만 많은 남자가 아니라, 노력하는 남자를 찾게 됐던 것이다.

이미 윤재에 대한 연모의 정은 사라졌지만, 안수애는 여전히 호감으로 윤재를 대했다.

“이제 윤재씨가 보자고 하면 겁부터 나더군요. 오늘도 마찬가지에요. 저 출세 기원하려고 보자고 한건 아닐 테고! 이번에는 뭐에요?”

그녀의 눈빛에 제법 언론인다운 날카로움이 빛났다.

“하하하. 이젠 독심술까지 하는 모양이군요.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윤재는 안수애를 슬쩍 띄워주면서, 자신이 준비해 온 보고서를 건넸다.

영어와 일어가 중간중간 눈에 띄는 보고서였다.

“이게 뭐에요?”

“최근 당국과 금융위, 코메르츠 방크 등이 외국환은행 매각하려고 안달이 나 있는 것 아시죠?”

“알죠. 론스타에 매각하려고 방향을 잡은 것 같던데....”

기자들이 써준 멘트를 앵무새처럼 읽던 안수애가 아녔다.

남색을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책과 저널리즘에 집중해 왔던 것이다.

안수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윤재의 보고서를 넘겼다. 그녀의 고운 손이 4번째 페이지에서 멈춰 섰다.

“퍼시픽 골프 그룹?”

“네. 일본에 골프장만 100개도 넘게 갖고 있습니다. 자산규모가 3조원이 넘는다고 하는군요.”

“이게 외국환은행과 무슨 관계죠?”

안수애가 특종 냄새를 맡기 시작하자, 윤재는 퍼시픽 골프 그룹과 외국환은행 매각이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설명해줬다.

윤재의 설명을 듣는 내내 안수애의 섹시한 눈망울이 더 커져갔다.

“이거!!!!”

“맞아요. 특종감이죠!”

“....”

“어때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현재 대한민국에 저와 수애씨 밖에 없습니다. NBC 시사저널리즘이 터뜨려 줬으면 합니다.”

보고서를 잡은 그녀의 손이 흥분으로 떨리는 게 보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외국환은행 팔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사람들은, 곡소리 좀 나겠는데요?”

“모두 사실 맞습니다. 그러니 시사저널리즘 팀이 교차검증해서 보도해 주십시오.”

“당연히 검토해 봐야죠. 그런데 윤재씨는 이 정보를 어떻게 알았어요? 그리고 이걸 왜 제게 주시는 거죠?”

“하하하. 하나씩 답변 드리죠. IMF 직후의 혼란을 틈타, 한국시장에 빨대 꽂아 단물 빼먹고 있는 론스타 잘 아실 겁니다. 걔네들 어떻게 물 먹일까 고민하면서, 조사했더니 이게 나왔습니다. 구글링의 힘이죠!”

2003년 5월이면 한국사람 절대다수가 구글이 뭔지도 모르는 시절이었다.

안수애로부터 구글에 대한 질문까지 접수해, 그것마저 설명해 줘야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제가 아는 언론사 직원 중,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수애씨 밖에 없네. 그래서 수애씨께 드리는 거에요.”

‘고위직’이라는 말에 안수애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저는 수애씨와 NBC탐사보도 팀의 저널리즘을 믿습니다.”

론스타의 외국환은행 인수를 가로막을, 핵심고리가 바로 퍼시픽골프그룹이었다.

전생에서는 외국환은행 매각이 모두 끝난 뒤에야, 금산분리법 위반 이슈 등이 부각됐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결국 NBC 시사저널리즘은 특종을 터뜨렸다.

방송사와 신문사들이 후속보도를 경쟁적으로 쏟아냈건 당연한 수순.

그 바람에 금융당국은 궁지에 몰렸고, 안수애와 보도팀은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던 것이다.

다음 스텝은 외국환은행 노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윤재는 배후에서, 외국환은행 노조원 출신인 동재를 움직였다.

언론의 보도 영향도 컸지만, 윤재가 제공한 결정적 정보들은 노조에 엄청난 버프를 부여했던 것이다.

동재는 옛 동료들을 찾아가 ‘금산분리법 위반’ 문제와 ‘헐값 매각’ 이슈를 집중적으로 부각해 가며 싸울 것을 알려준 것이다.

노조 역시 퍼시픽 골프 그룹의 존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언론의 보도를 받아 노조가 연일 싸우고, 노조의 헐값 매각 이슈를 다시 언론이 받아쓰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고, 폭발력은 그만큼 커졌다.

안수애의 특종이후 3개월!

언론의 경쟁적 보도.

국민여론 반전.

노동조합의 반대.

정치권의 개입.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터진 일련의 저항에, 결국 금융당국은 매각협상 중단을 선포하게 됐던 것이다.

당국의 매각협상 중단이 대대적으로 뉴스를 타던 날.

윤재는 동재의 전화를 받았다.

“정말 형 얘기대로 론스타가 결국 물을 먹었네.”

“국가적으로 잘 된 일이야.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형은 왜 그렇게 론스타를 미워하는 거야?”

“별 거 없어. 좆도 아닌 놈들이 우리나라에서, 단물을 너무 많이 빨아 먹잖아.”

론스타가 극동건설로 번 돈이 7천억 수준.

그리고 스타타워 매각으로 벌어들인 돈이 2천5백억 수준이었다.

전생에서는 외국환은행까지 먹어치워 4조가 넘는 돈을 번다.

그리고 세금은 진짜 껌 값 정도만 내고 튀었다.

윤재는 담담하게 열불을 토해냈다.

“론스타 그 잡것들 많이 묵었다 아이가!”

“흐흐흐. 성대모사 제법 비슷하네.”

“외국환은행도 먹고 튀면, 론스타가 벌어들인 돈 만큼, 누군가가 부담해야 된다는 거지.”

“일단 론스타에 매각하는 건 물 건너 간 것 같은데.... 자산 60조에 부채 60조인 외국환 은행을 사겠다는 후보자가 있을까? 나는 그게 걱정될 뿐이야! 안 팔려도 문제는 문제거든.”

“하하하. 그건 우리가 걱정할 게 아니라, 금융당국이 걱정할 문제지.”

동재는 윤재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월 3~4백만원 벌기도 벅찬 자신의 해결할 수 없는 주제였다.

“이미 수 백 번도 더 얘기했지만, 윤재 형! 정말 고마워. 이번에 회사 동료들 만났는데, 형 덕분에 칭찬 많이 들었어.”

“칭찬? 무슨 칭찬?”

“미소천사 은행 말이야. 서민 금융의 교과서라나? 그런 얘기 많이 듣고 왔네. 모두 형이 알려준 사업 아이템이잖아.”

“나야 아이디어하고 돈만 조금 투자했지. 실제 경영은 네가 해 왔잖니!”

“크하하. 형! 아이디어하고 돈이면 전부 아냐?”

“하하하. 그게 그렇게 되는 거니?”

외국환은행 차기 인수후보 선정과 매각은 금융당국이 할 일이라는 윤재의 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윤재는 이미 론스타의 대항마를 준비해 둔 상태였다.

금융당국도 마찬가지.

여론에 떠밀려 론스타를 인수 협상자에서 제외한 측면이 강했지만, 그들도 대안이 있기 때문에 미련 없이 론스타를 손절할 수 있었다.

◈          ◈          ◈

첫 번째 스텝으로 언론을 통해 론스타 매각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다.

안수애와의 인연과 퍼시픽 골프 그룹을 통해 해결했다.

두 번째 스텝으로 외국환은행의 이해당사자인 노동조합에 버프를 달아줬다.

사촌동생 동재와의 인연과, 언론의 특종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회귀하면서 계획했던 외국환은행 먹튀 방지를 위한, 세 번째 스텝과 네 번째 스텝이 남아 있었다.

윤재가 외국환은행 론스타 매각을 반대한 이유.

국민적 공분이나 이해관계자들의 피해 같은 거창한 명분만 아니라, 실리도 왕창 챙길 수 있는 일이었다.

론스타 처럼 단순히 지분 매입 후 되 팔아도 5배 가까운 이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시세차익만 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전생에서 외국환은행은 결국 국내 은행에 다시 팔린다.

하지만 잘 하면 외국환은행을 피인수주체가 아니라, M&A의 인수주체로 만들 수 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팔리는 곳보다, 천문학적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 ‘갑’이 되는 것이 세상이치.

그 뿐 아니라 다가올 모바일 세대에 맞는, 모바일 은행으로 탈바꿈 시킨다면?

그 가치는 5배를 훌쩍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윤재가 은행 경영을 할 수는 없는 노릇.

하고 싶어도 누가 시켜주지도 않겠지만, 윤재 역시 그럴 의지도 없었다.

자신의 비전에 적합한 경영자가 외국환은행의 경영과 체질개선을 이뤄주면 되는 것이다.

그 인물이 바로 윤재가 3년 동안 공들여 온 차태영 조은은행 부행장이었다.

오로지 이날을 위해 차명수의 구박을 견뎌냈고, 결국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세 번째 스텝과 네 번째 스텝은 결국 하나의 패키지!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핀이 바로 네 번째 스텝의 주인공이었다.

차태영과 워렌 버핀을 하나의 팀으로 묶어내는 일!

이미 그림은 모두 그려졌고, 발표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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