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18화 (118/196)

So Far So Good(1)

2003년 4월 26일 토요일.

윤재는 52 Cafe를 이끌고 있는 고도윤 사장과 함께 부산에 다녀왔다.

“윤재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하하하. 형님. 왜 이러세요? 2년이 안 되는 사이에 매장을 10개나 오픈시킬 정도로, 스피드 경영을 강조하시는 분께서?”

52Cafe는 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150평짜리 4층 건물을 35억에, 달맞이 공원 끄트머리에 위치한 맹지 200평을 2억에 매입했던 것이다.

모두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었다.

“건물이야 그렇다지만, 중동 그 땅은 개발허가나 받을 수 있겠어? 말이 좋아 맹지지 산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형님! 말씀 드렸다시피 지금이야 무쓸모인지 몰라도, 몇 년 안에 수익성 높은 52 Cafe로 탈바꿈할 겁니다. 걱정 마세요.”

52 Cafe 3호점 이후, 약 8개월 만에 7개의 매장을 오픈시킨 고도윤.

문제는 신규개업 7개소 모두 임차 매장이라는 것이었다.

세상만사 일장일단이 있는 법.

임차매장은 목돈이 들어가지 않는 대신, 운영 안정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LC(leased Cafe)와 PC(Purchased Cafe) 매장은 최소 50:50은 돼야 합니다.”

윤재의 지론이었다.

문제는 그 땅들을 확보하는데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당장 해운대 인근 부동산 매입을 위해 40억이 필요했는데, 52 Cafe 부동산을 저당 잡히고 10억을, 윤재가 KS주식을 담보로 30억을 대출 받았다.

40억 모두 빚이었다.

거기에 공사비 등을 고려하면 추가로 들어갈 돈이 또 기십억이었다.

“너한테 너무 무리 주는 것 같아 그렇지.”

“형님. 걱정마세요. 저랑 형님의 회사 아닙니까? 빚 걱정 마시고, 말씀드린 장소의 땅들 확보하는데 힘을 써 주세요.”

“알았다.”

바다가 보이는 개발허가 가능한 땅을 최대한 확보한다.

그것이 52 Cafe가 2003~2005년까지 3년 동안 해야 할 최대의 과제였다.

그를 위해 개발부서를 별도로 운영하며, 인력만 15명을 채용한 상태.

올해 안에 15명을 추가로 채용하자는 것이 윤재의 주문이었다.

“해운대는 시작입니다. 남해, 여수, 목포, 고창, 부안. 대천, 태안, 속초, 정동진 등 바다 조망이 가능한 땅은 최대한 쓸어 담아야 합니다.”

“알았다. 나도 맘 같아서는 모두 확보하고 싶지. 문제는 자금 아니겠니?”

“걱정 마세요. 어떻게든 주주들이 해결할 테니까!”

“그래. 나도 최대한 힘을 보태마. 그리고 미안하다. 너한테 항상 큰 짐을 지게 해서.”

“그런 걱정 마세요. 형님은 2005년까지 전국 매장 200개 오픈을 목표로 달리시면 됩니다. 그렇게만 되면 매출 2,000억 짜리 회사가 돼 있을 겁니다. 코스닥 등록회사가 되면 대출 받기도 쉬워지고, 기업공개 통해 자금 확보 가능해 집니다. 그럼 매장 확보는 더욱 탄력을 받을 거에요.”

산과 바다, 강에 이르기까지 View가 끝내주는 카페 부지를 확보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땅들의 부가가치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는, 윤재의 머릿속에 이미 자리 잡힌 상태였다.

“제주도에도 부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제주도까지?”

“전국구 커피 전문점이 제주도에 매장이 없으면 되나요?”

“전국구 커피 전문점! 한번만 더 얘기하면 100만 번이다. 어쨌든 윤재 네 얘기 듣다보면 왠지 설레는 게 있어.”

커피. 베이커리. 해안의 절경. 일몰. 세차. EDM 파티. 숲속 산책길. 애견카페 등등.

52 Cafe는 커피 한잔을 파는 것이 아니라, 52 Cafe라는 브랜드를 팔아야 한다는 게 윤재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그 철학에 가장 부합하는 CEO가 고도윤이라고 확신했다.

“하하하. 지금까지 이룬 것만 해도 믿기 힘든 성과죠. 52 Cafe 성장에 맞춰, 회사는 더 튼튼해질 겁니다. CEO가 고도윤 형님이니까!”

“말이라도 고맙다.”

“진심이에요. 그리고 동재가 하고 있는 미소천사은행도 올해 아니면 내년 초에 한 단계 도약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52 Cafe에도 호재가 될 거에요.”

착실하게 성장궤도에 올라타 있는 52Cafe.

KS글로벌 사태로 막대한 차익을 볼 수 있었고, 4월 로또 당첨금으로 150억이 넘는 돈을 수령한 상태.

전국적인 지가 상승 전에, 주요 포스트를 확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52 Cafe 뿐 아니라, 다른 비즈니스도 나쁘지 않았다.

2003년 이내에 빅 이벤트가 대기 중인 미소천사 은행.

윤재의 계획대로 풀리면, 미소천사 은행은 앤젤투자 회사로 도약하게 된다.

Plan B에 의하면, 2006년 말 또는 2007년에는 회사를 그만둘 계획인 윤재.

회사를 관두고 52 Corp에 전념하기 전까지, 윤재가 투자한 회사들의 안정적인 성장이 절실했다.

다행히 현재까지는 모두 On Track 상태였다.

◈          ◈          ◈

“오빠! 오늘따라 무지 힘도 좋으시네?”

“무슨 얘기야? 하루가 다르구만. 30대 후반에 접어드니 하루가 달라.”

오진탁이 침대에 누운 채 담배를 찾았다.

“호호호. 재벌 3세께서 유머까지 갖추셨어!”

노가은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창문으로 다가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창밖으로 어둠에 싸인 광교산이 어렴풋이 보였다.

계열사가 25개 수준인 O2그룹.

그룹의 건설 자회사가 갖고 있는 임프레션 갤러리.

일반인 상대로 전시회 한 번 개최한적 없는 갤러리의 목적인 단 하나.

그룹 승계를 위한 자금 조성이 목적이었다.

오진탁은 갤러리 4층에 펜트하우스를 꾸몄고, 자신의 목적(?)에 맞는 장소로 유용하게 써 먹었다.

갤러리라 그런지 4층 펜트하우스는 주인공 오진탁의 행위예술(?)을 위한 무대였다.

동쪽 멀리 바라보이는 수지구의 아파트들을 보며, 노가은은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색마도 아니고! 대체 저 인간이 뭘 쳐 먹은 거야?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제 명에 못 죽겠어. 무슨 수를 내야지.’

오진탁은 뇌만 빼면 전반적으로 준수한 인물.

매일 2시간씩 헬스와 복싱으로 몸을 단련했고, 젊어서부터 몸에 좋다는 걸 수시로 찾아 먹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약학기술의 힘까지 빌리고 있었으니, 변강쇠도 오진탁 앞에 서면(?) 고자취급 받을 지경이었다.

문제는 각종 변태적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꿀 담배를 태운 노가은이 오진탁을 돌아봤다.

오진탁은 여전히 이글거리는 열정으로, 다시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실장님! 요즘 문화 컨텐츠 사업이 괜찮다고 하던데. O2도 하나 해 보세요?”

“야! 가은씨 사업가 다 됐네?”

미술품 브로커 주제에, 무슨 사업얘기냐는 힐난이 묻어 있는 얘기.

재벌3세 답지 않게, 매사 꼬인 말투가 주특기였다.

“O2는 극장사업도 하고, 케이블 방송도 가장 많이 갖고 있잖아요. 기획사 하나만 있으면 완전체 아네요?”

“호..... 진짜 사업가 다 됐어.”

“비꼬지 마세요. 실장님.”

“아냐. 내가 왜 가은씨를 비꼬아?”

“진심이면 저한테도 기획사에 한 자리 주시든가?”

갑자기 오진탁이 노가은을 와락 끌어당겼다.

“일단 몸을 맞대면서, 어떤 기획사가 좋을지 한번 생각해 보자고.”

“어머. 실장님 좀 봐. 머리를 맞대야지. 몸을 맞대면 어떻게 해?”

동상이몽은 이럴 때 쓰는 말인지도 모른다.

오진탁과 노가은은 몸은 맞대고 있었지만, 생각은 180도 달랐다.

‘연예기획사 차려서, 어서 빨리 이 징한 색마에게 다른 년들을 갖다 바쳐야 해! 돈은 뽑아먹을 만큼 뽑았으니, 이젠 좀 자유롭고 싶다.’

노가은의 생각이었다.

‘연예기획사? 것 참 좋은 생각이네. 내가 왜 여태 그 생각을 못했지? 노가은이가 여러모로 쓸 만하네. 하핫! 가은이는 메인요리. 연예인 지망생들은 간식?’

넘쳐나는 정력을 주체할 수 없는 오진탁.

그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준다 해도 마다할 인간이 아니었다.

꽃다운 젊은 아가씨들 생각에, 오진탁은 체온이 1도 정도는 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          ◈          ◈

신사업 부문의 세 번째 프로젝트로, M&A를 한창 준비 중인 윤재와 지원팀.

보고서에 참고할 Data을 서칭하고 있는데, 조팀장이 윤재를 불렀다.

“네. 팀장님! 부르셨습니까?”

“잠시 얘기 좀 할래?”

회의 등으로 다른 팀원들이 없건만, 목소리를 낮추는 조영우였다.

뭔지 몰라도 은밀한 얘기인 모양이다.

“윤재 대리. 너 MBA 한 번 해볼래?”

“MBA요? 어떤....”

국내 MBA, EMBA, 해외 MBA 까지.

회사가 교육비 전액을 지원해 주는 MBA만 해도 3가지나 있었다.

그중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로그램은 단연코 해외 MBA!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데다, 해외 체류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가장 파워풀한 프로그램이었다.

“당연히 해외 MBA지. 그런데 말이다.”

윤재는 조영우가 어떤 부분을 고민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대학중퇴 고졸 입사에.... 방통대를 수료한 윤재의 학벌을 우려한 것이다.

“토플이든 GMAT이든 모두 자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작년에 토플은 113점 받았습니다. GMAT도 상위 20%는 자신 있습니다.”

“토...토플이 113점이라고?”

조영우 앞에서 윤재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했던 적이 잦았다.

보통 내공은 아니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윤재의 토플 점수를 들은 조영우는 왠지 기가 질리는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만점이 아니라서...”

“푸하하. 녀석 망언도 요상한 망언을 하는구나.”

윤재의 농담을 찰떡같이 알아 들은 조팀장이 한참을 웃더니 얘기했다.

“올해 우리 부문 해외 MBA후보로 너를 천거할까 생각중이다. 다행이 전무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셔.”

“고맙습니다. 팀장님!”

“핵심 전력을 2년이나 내주면 나도 전무님도 손해지만, 멀리 보고 추진하는 거다. 최종 결정되면 전무님께 꼭 감사인사 올리고.”

“예. 알겠습니다.”

윤재가 신사업부문을 지원하고, 해외 MBA를 가려는 이유는 뭘까?

학벌과 간판이 필요해서?

전혀 아니었다.

신사업 부문에 있으면 회사일과 인적 네트워킹이 가능했고, 재테크 관련 활동을 쉽게 할 수 있었다.

MBA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가고 싶었다.

전생에서 이미 회사생활을 20년 동안 했고, 국내 굴지의 대학에서 MBA까지 취득했던 윤재.

그에게 필요한건 학벌이 아니라, 해외에서 회사 눈치 보지 않고 글로벌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었다.

‘이 모든 걸 내 돈 아끼고, 회사 돈으로 할 수 있어. 완전 꿩 먹고 알 먹고지!’

부문장부터 본부장을 거쳐 CEO까지 윤재를 좋게 보고 있는 상황.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윤재의 해외 MBA는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였다.

혜진 아버님과 윤재 부친의 인연 덕에, 조건 없는 OK를 받아낸 상황.

그럼에도 윤재는 이왕이면 명문 MBA 입학허가증을 들고서, 혜진을 찾아가고 싶었다.

너무 타이트한 곳이 아니라, 네임밸류도 적당히 있으면서 학업에 지나치게 시간을 뺐기지 않아도 되는 곳.

2년간의 MBA기간과 혜진과의 허니문 기간을 일치시키는 것.

그 플랜의 실현 여부가 불과 몇 달 안에 결정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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