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국물이라니?
백악관의 조지 부시가 재채기를 하면, 동북아에 태풍이 몰아치는 게 세상사는 이치다.
2003년 회사의 신년사!
O2 그룹의 회장이자 O2 F&B의 CEO인 오재준은 사내외에 화두를 던졌다.
2010년까지 매출 100조를 달성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2002년 말 회계 기준으로, 매출 8조를 넘긴 회사에 매출 100조라니?
O2 F&B는 물론이고 그룹 계열사 전체 매출도 15조가 안 됐다.
그런데 10배 가까이 더 팔아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 것이었다.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를 잡아야, 목표의 중간이라도 할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이 얘기가, 회사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지나치게 목표가 높으면, 첨부터 포기해 버릴 수도 있다구요.”
이 얘기도 역시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매출 100조에 대한 얘기는 몇 달 전부터 오재준의 입버릇이었고, 경영진들은 신사업 부문을 발족하는 것으로 CEO의 요구에 부합했다.
덕분에 윤재는 원하는 부서로 올 수 있었고, 자신의 의도대로 리베로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2003년 1월6일 월요일.
신사업 추진단장이자 부문장인 류중정 전무의 주재로 회의가 열렸다.
팀 4개의 미니 부문에 전무를 앉힐 정도로, 오재준의 의지는 확고했다.
팀 별로 돌아가며 2003년 업무보고와 중점추진 과제를 보고하는 자리.
첫 번째 주자는 신사업 전략팀장.
시작이 좋아야 회의 분위기가 부드러울 텐데, 전략팀장은 쩔쩔매고 있다.
“신팀장? 전략과 전술을 헷갈리고 있는 거 아냐?”
류중정 전무의 미간이 찌르러졌다.
“죄송합니다. 전무님!”
“전략이라면 숲을 봐야지, 너무 나무만 본 느낌이야. 박팀이 봐도 그런 것 같지 않아?”
“조속히 보완해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내가 시간을 촉박하게 준 점 인정한다고, 하지만 보고서가 너무 거칠어.”
신사업 전략팀장 신재영 팀장은 보고 내내 대차게 까였다.
팀장이 깨지자 전략팀 주무 담당자는 얼굴이 아예 흙빛이 돼 있었다.
다음은 Market Creating TF 차례였다.
“이팀장? 너무 나간 것 아냐?”
“예?”
“아니 우리 회사는 식품비중이 80%가 넘는다고, 갑자기 디지털 트랜스포매이션을 하자고 하니 내가 적응이 안돼서 그래.”
아니다 싶으면 꼬리를 잘 내리는 것도 능력인데, TF팀장은 고집이 강한 스타일이었다.
“전무님! 파괴적 혁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식품과 사료, 바이오만 가지고 어느 세월에 매출 100조 하겠습니까?”
“푸후후. 그래. 자네의 우국충정이 내 심금을 울리는 군. 그래서 디지털 트랜스포매이션으로 어떤 비즈니스를 할 텐가?”
“저희 TF에서 생각한 건 MP3 시장의 뒤를 이을, PMP 시장에 진출하는 겁니다.”
“PMP?”
“Portable Media Player 의 약어입니다. MP3는 이미 성숙기 시장이지만 PMP는 이제 막 시장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저희 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팀장! 미안한데 PMP 얘기는 영 내키지 않네. 따로 보고서만 제출하게.”
“전무님! PMP시장이 괜찮습니다. 올해 국내 시장전망은 약 2,000억으로...”
“어허. 됐다니까 그러네. 자꾸 두 말 하게 할래?”
눈치라고는 1도 없는 MC TF 팀장!
회의 분위기를 한없이 썰렁하게 만들어 놓은 뒤에야 입을 닫았다.
번지수를 찾는 능력도 부족한데, 눈치도 아주 꽝인 인물이었다.
저렇게 임원 뚜껑 열리게 만들어 버리면, 후속주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MC TF의 뒤를 이은, 제휴 사업팀도 마찬가지였다.
부문의 유일한 여자 팀장인, 제휴팀장도 대차게 까이고 말았다.
제휴 사업팀에서는 네슬레, 하인즈, 펩시코와 같은 회사와, 제휴를 하자는 거대담론을 늘어놨다.
“주제는 좋은데 방법론이 없잖아? 그런 보고는 나도 하겠네. 코카콜라와도 제휴하고, 피자헛도 제휴하고, 타이슨 푸드와도 제휴하고 아주 다 해버려!”
류전무의 독설은 여자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대기업의 팀장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헤매는 이유는 간단했다. 모두 ‘매출 100조’ 라는 거대담론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었다.
세 팀의 팀장들이 쫑크 먹는 동안, 주무담당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마우스를 누르는 소리가 딸각거릴 뿐이었다.
“내가 시간을 너무 촉박하게 줬나? 좀 답답한데 10분만 쉬었다 합시다. 담배도 한 대 씩 피워야 할 테고!”
신사업 지원팀장 조영우와, 지원팀 주무담당인 윤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왕 혼 난 김에 지원팀까지 마저 혼나고, 후다닥 끝내야 좋은 법이다.
그런데 쉬고 나서 회의를 또 한다는 것이 아닌가?
다를 하루가 길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
니코틴과 당을 보충한 사람들이 회의실에 모두 모이자, 조영우 팀장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윤재가 노트북 앞에 앉아 꾹꾹이 역할을 수행했다.
2시간 회의 후 10분 쉬고 들어온 사람들.
이미 영혼은 안드로메다 어딘가를 헤매는 표정들이었다.
지난 연말부터 휴일을 반납하며 준비해 온 보고서가 털렸기 때문이었다.
“신사업 지원팀 2003년 업무보고 올리겠습니다.”
류중정 전무의 얼굴이 심드렁하다.
너라고 별 수 있냐는 생각인 것이다.
“먼저 부문장님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가안입니다. 신규 제휴는 업체수 3개소, 매출액 300억을 각기 50%씩 반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비중은 15%로 책정했습니다.”
“건수는 오케이인데, 매출액은 너무 작은 것 아냐? 300억씩 팔아서 언제 매출 100조 할 생각이야?”
관절염보다 지긋지긋한 매출 100조 타령이 다시 터져 나왔다.
조영우는 손가락으로 코끝을 비빈 뒤 답했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매출 100조는 선언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는 의미이지, 당장 2010년까지 매출 100조 하자는 말씀은 아닐 겁니다.”
얼굴은 못났지만 말은 바른 말이었기에, 류전무도 다른 참석자들도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기선을 제압하는데 성공한 조팀장은 6가지의 성과지표로 구성된 KPI안에 대해 보고했다.
걸걸한 목소리에 제법 사람을 설득하는 힘이 실려 있었다.
류전무도 특별한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렇게 순항하는가 싶었는데, 드디어 암초를 만났다.
KPI 달성을 위한 중점과제에 대한, 보고 과정에서 공격이 시작됐다.
“신제품 출시 카테고리로 라면을 하자고?”
“그렇습니다. 전무님! 라면은 선대 회장님부터 꿈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구요.”
“조팀장도 라면이 우리 회사에서 금기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
조영우는 약간 뜸을 들였다.
그 사이 류전무가 아는 체를 할 게 분명했다.
밑에 사람들 모아 놓고 아는 척을 한 번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란 것을 조팀장은 익히 알고 있었다.
어리숙한 얼굴에 곰돌이 푸우처럼 튀어나온 배.
그래서인지 조영우의 별명은 미련 곰탱이였다.
하지만 그는 외모와 반대로 여우같은 사람이다.
“우리 회사가 라면 진출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나? 그런데 매번 옹심하고 똑순이 식품이 반대해서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그걸 아는 사람이 신제품 출시에 라면을 넣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O2푸드의 라면 진출은 오재준 회장은 물론 선대회장의 소원 중 하나였다.
오성철 창업주!
그가 남긴 유명한 일화는 한둘이 아니지만, 현재의 회사와 관련된 것도 여러 개 있었다.
첫 번째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딱 3가지 있다. 자식교육. 골프. 그리고 맛다시다!’ 였다.
오대양 푸두의 조미료 ‘맛다시다’는, 20년 넘게 경쟁사의 ‘맛미원’을 꺽지 못했었다. 선대 회장 오성철은 죽기 전까지, 조미료 시장의 1위가 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재준이 회사 조미료가 시장 1위가 됐던 날, 오성철의 묘에 ‘맛다시다’를 바쳤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였다.
두 번째가 ‘살아생전 라면시장에 진출했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오성철은 이번에도 오대양이 라면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여전히 라면시장 진출은 고객사의 반대로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O2에서 라면시장에 진입하는 날엔, 밀가루와 설탕 구입처를 바꿀 것이오!”
과자와 라면을 만드는 옹심과 똑순이 식품은, 밀가루와 설탕을 주력으로 하는 O2 푸드의 최대고객 중 하나.
그들은 라면 얘기가 나올 때 마다 저렇게 협박을 했고, 덕분에 O2는 영원히 라면시장에 진출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마치 류전무의 힐난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조영우 팀장이 여유 있게 대답했다.
“회사의 라면 진출에 대해서는 저희 팀 루키인, 김윤재 사원이 브리핑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김윤재 대리가?”
순간 회의실에 올림픽 정신으로 앉아 있던 팀장과 주무담당들이 화들짝 놀랐다.
임원 앞에서 대리 나부랭이가 발표한다는 것은 조금 놀라운 일.
그런데 그 대상자가 윤재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윤재는 영업본부에서는 이미 전국구 스타였다.
윤재의 등장에 회의실에 잠시 고요가 흘렀다.
“신사업 지원팀 김윤재입니다. 조팀장께서 발표한 라면 출시에 대한 신제품 아웃라인과 로드맵에 대해 보고 드리겠습니다.”
“꿀꺽!”
사명과 CI 발표로 오재준 회장을 파안대소케 만들었다는 사나이!
신계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인다는 사나이.
모두 윤재의 입을 바라보는 가운데, 도발적인 멘트가 흘러 나왔다.
충격요법으로 좌중의 이목을 끄는, 윤재의 전매특허 스타일 중 하나였다.
“아마 여기 계시는 분들도 회사의 가쓰오 부시 우동을 드시지는 않을 겁니다. 회사 직원들도 즐겨 찾지 않는 이 맛없는 제품으로, 1조원이 넘는 라면시장을 공략한다? 그러면서 고객사들 심기나 살피고 있는 현실. 이래서는 매출 100조는 영원히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겁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환기됐다. 역시 노련한 프레젠터였다.
“가쓰오 부시가 고육책이었다면, 저희가 제안한 이 라면은 라면 시장에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겁니다.”
“??”
너무나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화면을 응시했다.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한, 역발상으로 성공한 히트 상품들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윤재는 역발상으로 성공한 아이템들을 화면에 띄웠다.
“코코샤넬이 방돔광장을 내려 보고 착안한 팔각형 시계들은, 동그란 모양의 시계가 아님에도, 시계 애호가들의 워너비 아이템이 됐습니다. 껌은 치아에 좋지 못하다는 상식을 비튼, 로티의 자일리톨 껌! 날개 없는 선풍기 등! 모두 고정 관념과 거리 있는 상품들입니다. 히트작들이 모두 고정 관념에 충실한 제품은 아니라는 겁니다.”
참석자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역발상 히트작들이 몇 개 더 소개됐다.
“라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라면들은 왜 국물이 모두 빨간색일까요?”
사람들은 화면에 나타나 있는 라면회사들의 빨간색 라면국물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우리는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입니다. 부동의 1위지요. 하지만 라면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너무나 미약합니다. 1등에게 맞는 전략이 있고, 꼴지에게 맞는 전략이 있는 법입니다. 맛도 없는 우동으로 점잔이나 빼고 있을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도전자답게 다들 간과하고 있는 부분을 치고 들어가는 겁니다.”
1등 회사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게 마련이라는 윤재의 얘기에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했다.
그리고 꼴지에 맞는 전략으로 도전하자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는 그래서 새로운 라면으로, 흰 국물 라면 가칭 ‘꼬끼오면’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화면에 윤재가 어도비 프로그램으로 작업한 꼬기오면의 이미지가 올라왔다.
계란이 연상되는 흰색과 노란색 봉지에 귀여운 병아리가 보였고, 흰색 용기에는 하얀 국물에 면발이 담겨 있었다.
책을 냈을 정도로 소프트웨어를 잘 다루는 윤재!
그가 만든 꼬끼오 면의 이미지는, 이미지만으로도 회의 참석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닭고기 육수로 맛을 낸 하얀 국물 라면! 저희 팀에서 라면 시장 진입을 위해 고안한 신제품 컨셉입니다.”
윤재는 5분 동안 추가적으로 ‘꼬끼오 면’에 대한 컨셉을 설명했다.
대략적인 보고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라면은 매운맛. 빨간 국물인데 흰색 국물이 통할까?”
“1963년에 함양식품에서 라면을 출시한 뒤, 우리나라는 40년 동안 빨간 라면만 먹었습니다. 튀긴 면은 우리나라가 세계1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제 한국은 IMF를 벗어나 성장기에 다시 접어들고 있습니다. 라면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성에 대한 니즈가 솟구칠 겁니다.”
이미 예상했던 질문.
윤재는 펩시와 코카콜라가 어떻게 음료를 다변화 시키며,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우문에 현답이었다.
“흰 국물 라면의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경쟁사들도 ‘하얀 국물 라면이 되겠어?’ 라고 생각할 거라는 점입니다.”
윤재의 얘기에 류전무가 드디어 웃었다. 감이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라면 시장에서 마이너 장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집중 공략하는 방안을 구상중입니다. 경쟁사들은 처음에는 비웃을 겁니다.”
“우하핫! 그럴 테지. 느긋하게 우리가 헛발질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류전무의 반응은 이제 긍정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하얀국물 라면을 시작으로, B급 라면들을 연달아 히트 시키는 겁니다. 경쟁사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라면시장에서 저희의 입지가 달라져 있을 거라 자신합니다.”
조영우는 그저 웃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윤재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해도가 깊었다.
류전무와 다른 참석자들도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류전무가 다시 날카롭게 질문했다.
“설령 꼬끼오 면이 성공했다 치자! 아무리 그래도 밀가루, 설탕에 대한 보복은 어찌 감당할래?”
“그 부분에 대한 대안도 생각해 봤습니다.”
날카로운 질문에 척척 답하는 윤재.
사람들은 왜 윤재가 전국구 스타인지 이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국 시장에 스틱하다가는 매출 100조에는 근처도 가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조영우 팀장과 지원팀은 러시아 시장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윤재에게 발표 기회를 준 조팀장!
그런 조팀장을 띄워주는 윤재!
되는 집은 그렇게 움직인다.
장동석 팀장 시절에도 그랬지만, 신사업 지원팀에서도 윤재의 기본 행동 원칙은 구성원간의 Win Win을 추구했다.
“러시아? 미국도 아니고 유럽도 아니고 쏘련 놈들을?”
“조팀장의 지시로 러시아 시장의 특성을 조사했습니다. 첨부자료 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상의 콤비처럼 조팀장이 꾹꾹이를 하며 화면을 넘겨줬다.
“다들 아시다 시피 러시아는 추운 나라입니다.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열량이 높은 음식을 선호합니다. 저희가 중국집에서 먹는 기스면도 원래는 계사면! 닭 국물로 맛을 낸 하얀국물 요리입니다. 중국에서도 추운 지방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죠!”
“정말인가?”
류중정 전무뿐 아니라 다른 참석자들도 처음 듣는 얘기인 모양이었다.
“중국보다 더 추운 러시아. 열량이 높은 닭국물 라면이 러시아에 먹힐 거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겠습니까?”
화면에 부산항에서 라면국물을 먹고 있는 러시아 선원들의 사진이
떠올랐다.
“부산에 오는 러시아 선원들이 저희 라면을 먹고 있는데, 한국 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아주 좋다고 하는군요.”
시각효과를 강조하는 윤재의 장표.
마치 프롬프터를 보고 하는 것처럼 유려한 말솜씨.
류중정 전무를 시작으로, 참석자들이 슬금슬금 윤재의 프레젠테이션에 빨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