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천사 은행의 불청객
회사 일에 52 Cafe 와 Farm까지.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야구 감독. 회사 CEO. 대통령 등 조직을 책임지는 수장의 가장 어려운 과제는 Decision Making 즉, 의사결정이다.
회귀자로서 미래의 굵직한 사건들을 알고 있기에, 의사 결정에 큰 어려움이 없다는 점만으로도 윤재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10월 12일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각.
미소천사 은행의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사실을 확인하고, 윤재는 은행 사무실을 찾았다. 대주주로서 경영을 맡고 있는 사촌 동생 동재와 현안도 점검하고, 앞날에 대한 논의도 하기 위해서였다.
금을 매개로 신용카드 발급과 신용대출을 엮어 놓은 소액대출 사업.
광주 남광주 시장 상인들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떡집 사장님. 미용실 아줌마. 옷가게 아가씨 등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보면, 급전이 아쉬운 상황은 반드시 찾아온다.
보통의 경우 시장 내에서 가장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 융통하는 경우가 많았고, 처지가 더 어려운 사람들은 사채업자들의 일수 돈을 써야 했다.
사업 6개월은 넘긴 미소천사 은행은 6개월 동안 2번의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10%에서 시작한 신용대출 이자는, 현재 7.5%까지 낮아져 있었다.
50만원 급전이 필요해, 미소천사 은행을 찾는 시장 상인들은 당연히 금리인하를 반겼다.
남광주 시장 바닥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일까?
사촌동생 동재의 표정은 아주 밝아 보였다.
“형! 왔어? 직원들 있을 때, 와도 된다니까.”
“아냐. 내가 자꾸 드나들면 괜히 의식하고 불편할 거 아니냐?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도 계시는데.”
차태영 부행장도 주 1회 정도 사무실을 찾고 있었는데, 윤재까지 자꾸 찾아오면 동재에게 좋지 않았다.
동재는 형이 자신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일부러 저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직원들 급여와 관리비 수준에서 간신히 유지되는 사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재는 지난 세월의 자신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노동자는 무조건 절대 선이고, 경영자는 노동자 피 빨아 먹는 존재로 생각했는데, 자신이 경영자의 자리에 올라보니 급여 생활자일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은행에서 해고된 후, 자신과 함께 합류한 직원들의 일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었다.
“일확천금 벌어서 팔자 고치자고 하는 일 아니니까, 조금 더 멀리보고 가자. 알았지?”
“응.”
“당장은 어렵지만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으로까지 영역을 넓히면,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배당도 할 수 있게 될 거다. 힘내라.”
“알았어. 다행히 직원들이 박봉에도 내색하지 않고 잘 해주고 있네.”
소위 말하는 서민들에게 은행 문턱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외국환은행 해고자 출신인 미소천사은행 직원들.
박봉에 복리후생도 메이저 은행에 비할 바 아니었다.
하지만 시장상인들이 저리 대출에 대해, 미소천사 은행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가장 보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신용카드 발급해 금 사게 하는 것은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 두자.”
“그럼 사실상 담보가 전무해 지는데... 너무 Risk한 것 아냐?”
“신용카드 덕분에 Risk 회피한 것은 사실이지. 그리고 금반지나 팔찌를 대출자가 매입이나 반납 중 선택할 수 있게 한 것도 주효했고. 하지만 신용카드 연계는 초창기 소프트 랜딩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어. 이제는 멈춰야 할 때다.”
윤재의 얘기를 이해 못할 동재가 아니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무분별한 신용카드 남발과, 카드사들 간의 회원 수 증가 경쟁은 1년이면 파탄을 맞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에서 5년에서 10년을 근무한 젊은이들로 구성된 미소천사 은행이라면, 순수하게 실력으로 신용도 평가나 Risk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했다.
카드와 금 상품으로 담보를 확보했던 과거는 보너스라 생각해야 했다.
“지금은 여력이 없지만, 수익을 내게 되면 수익의 50%는 금 관련 상품에 계속 투자를 해야 해. 골드바도 좋고, 금 관련된 금융상품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우리 직원들 모두가 금 관련 투자는 유망하다는 결론을 내렸네. 어지간한 금융상품이나 주식보다 훨씬 수익률이 좋을 것 같아.”
IMF이후 한국의 경우에도 금리는 계속 하락하고 있었다.
21세기 중국을 포함한 신흥강국의 부상, 그리고 EU와 미국 블록의 경쟁 등은 필연적으로 저금리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돈의 값어치가 떨어지면 반대급부로 금값은 오르게 돼 있었다.
윤재는 오랜 기간 차태영이라는 금융권 스타에 공을 들여왔다.
이제 1년 정도만 더 지나면, 미소천사 은행은 지금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서 사업을 영위하게 될 것이었다.
“차태영 어른도 곧 환갑이다. 아직 정정하시지만 10년 뒤에도 현직에 계시긴 어려울 거야. 너도 회사 경영보다는 정치에 뜻을 두고 있고.”
“....”
동재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점이 바로 그 포인트였다.
자신을 믿고 함께 해준 사람들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
“네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바로 2인자를 키우는 거야. 미소천사 은행은 몇 년 하다가 말 사업이 아니니까. 명심해라.”
“알았어. 형!”
미소천사 은행에 대한 논의가 끝나자 가족들에 대한 얘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혜진과 언제 결혼할 거냐는 얘기.
작은 엄마의 몬스터 초콜릿이 52 Cafe 1호점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얘기.
함평군에 52 Cafe Rural 이 착공에 들어갔고, 리뱀핑 공사와 인테리어를 작은 아빠의 건설회사가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들이 오갔다.
최근 남재도 패밀리 비즈니스를 시작했는데, 그 얘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나랑 겨우 1살 차이인데, 형이 요즘 들어 너무 거대해 보인다.”
동재의 얘기는 진심이었다.
아직 걸음마 단계였지만, 손대는 족족 잘 풀려나가는 게 신기한 정도를 넘어 무서울 정도였다.
“하하하. 아직 멀었다. 너도 나도. 이제 겨우 시작이야. 문 닫고 퇴근하자. 가까운 곳에 가서, 네 형수 모셔다가 소주라도 한잔 하자.”
혜진의 경우에도 최근 나쁘지 않았다.
대학 졸업장은 무조건 따야 한다는 것이 혜진 아빠의 엄명.
그래서 혜진은 학업에 집중하며, 중간 중간 들어오는 CF 광고 등만 촬영하며 연예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윤재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혜진도 제법 큰돈을 벌고 있었다.
“그래. 형 덕분에 연예인 형수님과 소주도 마시고.... 오늘은 형수님한테 소개팅이나 시켜주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퇴근을 준비할 때였다.
“우당탕 쿵 쾅!”
누군가 미소천사 은행의 출입문을 격하게 걷어차는 것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동재가 물었고, 윤재는 고개를 돌려 소란의 당사자들을 바라봤다.
“야이 호로새끼야. 니가 미소천사인가 된장천사인가 대표냐? 니가 천사은행인가 좆인가 쩐주여?”
딱 봐도 험상궂게 생긴 놈들이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윤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가 쩐주인데, 너희들은 뭐냐?”
“이 새끼야! 함평 소시장 화투판에도 룰 이라는 게 있는 뱁이여. 그란디 제 3금융 시장에 7.5% 이율이 웬 말이여? 10%도 열불 났는디, 칠점오프로?”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남광주 시장을 일대로 사채놀이 등을 하며 시장 상인들 등골 빨아먹고 사는 동네 조폭들.
그들이 미소천사 은행의 낮은 이율을 문제 삼아 이곳을 쳐들어 온 것이다.
윤재 입장에서는 자기가 있을 때 놈들이 쳐들어 온 게 다행이긴 했다.
“애들아. 이러지 마라. 내가 요즘 너무 사람들을 뚜까 패서, 자칫 지옥 갈까 걱정된다. 그러니 제발 말로 하자. 응?”
말은 그렇게 했지만, 평화롭게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윤재도 잘 알고 있었다.
“좆밥이 뭐라는 거야? 몽둥이찜질 당하고도 니 입이 살아 있는지 함 보자.”
똘마니들이 윤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보아하니 똘마니들 같은데, 너희들 가지고는 내 상대가 안 돼. 나도 바쁜 사람이다. 시간 없으니까 한꺼번에 데리고 와.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동재는 대체 윤재가 뭘 믿고 저러는지 걱정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양아치 몇 놈이 윤재 코앞에서 쇠파이프를 휘둘렀나 싶었는데, 윤재의 몸이 허공을 갈랐다.
“꽤액! 큭! 쿨럭!”
정확히 3개의 비명이었다. 아니, 비명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윤재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3명의 몸뚱이가 가을 볏단 넘어가듯 쓰러졌다.
남겨 놓은 똘마니 한 놈이 뒷걸음질 치다 벽에 부딪혔다.
“뭐 하고 있냐? 한 놈 살려 놓는다고 했지? 얼른 가서 두목이랑 모두 끌어 와. 나 바쁘다니까!”
“이. 이런 씨. 씨발...”
양아치 하나가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윤재는 의자에 앉아 놈들이 몰려오기를 기다렸다.
“야! 손 똑바로 안 들어!”
양아치 3명이 무릎을 꿇고 있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어설프게 하면 안 된다. 다시는 지분거리지 못하도록 박살을 내놔야 한다.’
남광주 시장 정도의 사이즈에 전국구 조폭이 있을 리는 없었다.
동네 양아치 수준의 애들은 수 십 명이 몰려와도 윤재에게 비빌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더니 일군의 무리들이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어림잡아 10명 조금 넘는 숫자였다.
방금 전까지 무릎 꿇고 있던 3명이, 두목과 동료들이 나타나자 슬며시 동료들의 뒤에 가서 섰다.
“누가 삼식이냐?”
좀 전의 그 놈들을 통해 윤재를 습격한 조직이, 남광주 시장의 삼식이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고 잡냐? 이런 호로상렬의 자식이 어디서 내 이름을 함부로?”
160센티미터를 갓 넘을 법한 키지만 다부진 몸과 험한 인상의 사내.
그가 삼식이파 두목 민삼식인 모양이었다.
“나는 너희 같은 놈들을 그 동안 두 부류로 부른다.”
“그것이 뭔디?”
“좆만한 놈들과 좆같은 놈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인지는 알았지만, 니 간이 진짜 배 밖으로 나온 뒤에도 그럴 수 있는지 함 보자.”
삼식이파 두목 민삼식이가 이죽거렸다.
“앞으로는 너희 같은 양아치들에게는 두 마디만 하고 살겠다.”
“아그들아. 저 새끼가 아직은 주둥이가 살아있는 모양인디, 어디 그 얘기가 뭔지 들어나 보자!”
삼식이파 애들이 크게 웃었다!
하지만 윤재의 날라 차기에 나가떨어진 3명은 웃지 못했다.
“꺼져! 꿇어! 이게 내 잎에서 나올 마지막 두 마디다!”
윤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삼식이 소리쳤다.
“쳐라! 저 건방진 사채업자 놈에게 매운 맛을 보여 줘!”
25평이 조금 넘는 은행 안으로 놈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뛰어 들었다.
‘저 인원이 삼식이파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 별 것 아냐. 빨리 끝내고 연애 비즈니스 하러 간다.’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덩달아 스피드와 파워가 치솟기 시작했다.
“쿵!”
“떡!”
“어이쿠!”
“우지끈!”
“콰직!”
소리가 울릴 때마다 양아치들의 몸둥이가 은행바닥에 널 부러졌다.
이제 남은 건 삼식이와 한번 당한 적이 있는 세놈이었다.
“뭐. 뭐여?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났다냐?”
삼식이가 테이핑 된 사시미칼을 좌우로 휘두르며 윤재를 견제했다.
“꿇어!”
“뭐여? 니미! 니가 뱃가죽에 내 칼침을 맞고도 주댕이를 내두르는지 보자!”
삼식이가 뒤로 젖힌 사시미를 찌르려던 순간! 삼식이의 눈에서 윤재의 모습이 사라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 ◈ ◈
삼식이가 동생들을 끌어 모아 미소천사 은행을 습격한지 20분 정도 지난 시간. 은행 사무실에는 2명만이 일어나 있었는데 윤재와 동재였다.
삼식이파 전원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형님, 성함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형님을 보스로 모시겠습니다.”
“일 없다. 나는 이미 파트너들이 넘쳐 나니까. 딱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무슨 형님이냐?”
삼식이는 감히 윤재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눈알이 유난히 툭 불거졌는데, 딱 봐도 겁먹은 표정이었다.
“이 바닥에선 쌘 사람이 형님이니까요. 그리고 노안이라 그렇지 생각보다 어립니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
“그게 뭡니까? 형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아니냐? 이자를 7.5%를 받든 무이자를 받든, 앞으로 다시는 미소천사 은행을 건들지 말라는 것이다!”
“.....”
“왜 꼬아? 너희들은 너희들의 길을 가고, 미소천사 은행은 우리 길을 가면 되는 거야!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서비스와 상품으로 경쟁하자. 알겠나?”
“알겠습니다. 형님!”
“너희들이 어지럽혔으니 사무실 청소 실시한다. 실시!”
“실시!”
양아치들이 복명복창한 뒤 일어나 사무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소천사 은행의 이자율 문제로 불거진, 삼식이파와의 트러블은 그렇게 해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