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93화 (93/196)

황태준의 골칫거리가 금싸라기로!

몇 달 전 경호학과를 나오고 아마추어 격투기 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던, 집안의 부하를 불러 윤재를 혼내주려다 된통 당했던 황성호.

그 뒤로 윤재를 살살 피해 다니기 바빴다.

2002년 6월 24일 월드컵 4강전을 앞두고 윤재는 황성호를 불렀다.

황성호는 연거푸 주식으로 쪽박을 차고, 월드컵 기간에 불법 스포츠 도박까지 전패한 바람에 돌아가시기 일보직전에 처해 있었다.

“아하하. 윤재야! 나를 왜 부른 거니?”

담양 사건 이후 달라진 모습이 또 있었는데, 그건 황성호가 윤재를 상전 모시듯 대했다는 것이다.

식당에 도착하자 황성호는 알아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윤재 앞에 정렬시킨 뒤, 윤재의 물 컵에 곱게 물을 따라 바치는 성의를 표했다.

“성호야!”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과, 위엄이 서린 목소리였다.

“응? 왜?”

단 2마디의 말을 하는데도 황성호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자기네 집 부하 2명을 일방적으로 박살내버린 윤재의 무력.

그것도 경호과를 나오고, 격투기 선수 경험이 있던 애들을....

담양 사건은 황성호에게 엄청난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우리 이제 28살이다. 이제 정신을 좀 차려야지!”

“그게 무슨 말이니?”

“너, 이번 월드컵 때 해외 도박사이트에 베팅했지?”

“콜록! 콜록!”

윤재의 눈치를 살피며 물을 마시던 황성호가 사래 들렸는지 물을 토해냈다.

“성호야!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네가 얼마나 베팅했는지 모르겠지만, 인터넷 토토는 엄연히 불법이야. 월드컵 끝나면 검경의 대대적인 단속이 있을 거다.”

“....”

황성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성을 상실하고 미쳐있었던 바람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월드컵 같은 굵직한 이벤트 뒤에는, 음지의 불법활동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수반된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3선 국회의원이자 원내대표를 노리고 있는 황태준 의원님께도 화가 미칠지 몰라.”

“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물 컵을 들고 있던 황성호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황성호에게 윤재는 얻어맞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대상이라면, 황태준은 조 단위의 유산을 주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수해라. 그 방법이 유일한 방법이야.”

“쿵!”

황성호의 물 컵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자수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또한 누나들과의 유산쟁탈전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게 뻔했다.

잘 하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철면피라 한들, 해외 도박 사이트로 법정 처벌을 받은 상태에서 회사를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기가 다니고 싶다 해도 회사에서 내버려 두지도 않을 중죄였다.

“내가 아는 걸 경찰이 모를까? 시간의 문제지 조만간 밝혀질 거다. 자진신고하고 처벌 수위를 낮춰. 그게 최선이라고 본다.”

윤재가 알고 있는 사실을 경찰이 모를 턱이 없었다.

대략 한 달 가량, 월드컵과 스포츠 토토에 미쳐있던 황성호.

자신의 과오가 회한이 돼,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황성호는 그간 있었던 해외 도박사이트 토토에 대한 과정을 간략하게 윤재에게 들려줬다.

대략 상황을 파악한 윤재는 황성호가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얘기해 줬다.

황성호의 현재 채무는 제1, 제2 금융권에 약 2억을 빚진 상태.

그리고 서울 사채업자에게 진 빚이 3억이었다.

불법 도박에 따른 형사처벌과 별개로, 5억에 달하는 부채를 정리해야 했다.

그 중 3억은 신체포기각서를 제출해야 할 정도로 악랄한 업자들이었다.

“황태준 의원 땅부자잖아. 땅이라는 게 환금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지 않니? 내가 아버님 땅을 조금 사드릴 테니까, 그 돈으로 부채 모두 청산하는 거야. 그리고 새롭게 출발해라. 아직 너는 젊어.”

“우리 아버지는 좀처럼 땅을 팔지 않는 분이셔....”

“내게 나름 괜찮은 거래방안이 있다. 의원님께도 나쁘지 않은 거래가 될 거다.”

황성호는 갑자기 윤재가 저승야차에서 천사로 보이기 시작했다.

악의 수렁텅이에 빠져 있는 자신을 구해줄 유일한 동아줄로 보였다.

불법 도박 사실이 나중에 경찰에 의해 밝혀지면, 자신도 처벌을 쌔게 받을 것이 뻔했고, 황태준에게도 엄청난 데미지를 줄 게 뻔했다.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사채업자들이 네 아버지에게 협박하고, 그 사실이 뉴스에라도 나와 봐라. 네 아버지 원내대표는 물론, 다음 선거도 기약하기 어려울지 몰라. 빨리 사채업자들 돈을 갚는 게 최선이라고!”

“어떻게 하면 그런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까? 윤재야! 너 똑똑하잖아. 제발 방법을 알려다오.”

황성호는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울 기세였다.

“황태준 의원님을 한 번 만나보게 해 주라. 그럼 내가 아버님께 직접 제안을 해 보마.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콩밥 먹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해 볼게. 그러니까 아버님과 약속만 잡아 줘.”

“노력해 볼게.”

황성호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주식실패와 불법 토토로 5억의 빚을 졌다고 말씀 드리면, 재떨이 맞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          ◈          ◈

당시 황태준은 황성호가 엄청난 똥을 연속해서 싸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문제는 자신의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본래 꿀 지역구의 다선 의원으로, 권력을 누리며 살면 족할 수준의 인물.

분수를 모르고, 당 원내대표를 꿈꾸자 탈이 나기 시작했다.

메인 신문지면에 황태준의 비리나 문제점을 다루는 기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두 원내대표 자리를 두고 경합하고 있는, 소속 정당에서 나오는 기사들이었다.

- 황태준은 부동산 재벌이 아니라 비리 재벌? 경기도 평택 부지 취득 과정에서 이중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제보 쏟아져.

- 황태준 소유의 강남 빌딩. 청소 아주머니들 불법 해고로 몸살! 상습적으로 노동법을 어긴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

- 황태준 여의도 모 주유소에서 월 200만원 주유! 국고로 카드깡 한 것 아닌지 의혹!

- 황태준 의원. 부친에게 물려받은 평택 토지에서, 쌀 직불금 수령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

자극적인 제목에 비슷한 내용을 단 기사들이 연일 인터넷과 신문지면을 달구고 있었다.

특히 평택 땅 직불금은 연간 3~4백만원 수준이었는데, 조 단위 부자가 얼마 안 되는 직불금을 받아먹었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6월 29일 토요일.

윤재는 서울의 정통 한식집에서 황태준을 만났다.

황태준, 황성호 부자를 동시에 만났는데 부자지간에 얼굴이 좋지 않았다.

최근의 스캔들로 황태준은 얼굴이 푸석푸석했고, 황성호는 양쪽 눈에 재떨이 문양이 선명하게 찍힌 채,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범상치 않은 용모로구나! 말로만 듣던 것보다는 훨씬 큰 인물이군.’

윤재에 대한 황태준의 첫 인상이었다.

하지만 황태준의 입장은 난처하고 다급했다. 윤재의 용모에 대해 품평이나 할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다.

‘지금 나오는 뉴스도 골치인데, 아들 놈 뉴스까지 터지면 원내대표가 아니라, 나락으로 떨어질 판이다. 우선은 성호 이 새끼 문제부터 해결해야 해!’

황성호가 집 안의 가신들을 불러, 신입사원 연수 때 비열한 짓을 했던 내용.

그리고, 눈앞에 있는 윤재라는 젊은이에게 린치를 가하려다 오히려 된통 혼나고 영상까지 찍혔단 내용.

그리고 아들놈이 해외 불법 도박을 했고, 거액의 사채 빚을 졌다는 내용.

하나 같이 인터넷과 언론이 좋아할 자극적인 내용들이었다.

황태준이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젊은이! 자네가 의리가 있다는 것은 알겠네. 아들놈이 사고를 많이 쳤는데도, 뉴스에 나오지 않고 있으니까!”

“모두 성호가 젊은 혈기에 저지른 실수들입니다. 본인이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고, 아버님께서 적절히 훈육해 주시니 앞으로 나아질 겁니다.”

윤재는 황성호의 눈자위에 찍혀있는 재떨이 문양을 바라봤고, 황성호는 고개를 숙였다.

‘맹랑한 놈! 어디 근본도 없는 자식이..... 감히 누구 앞이라고.’

황태준은 속으로 끄응 앓을 뿐이었다.

윤재 같은 어린 녀석과 마주 않아야 하는 상황을 만든, 아들놈이 패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그렇다고 윤재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미 황성호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는데다, 도박한 사실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윤재의 시간.

늙은 도둑놈 황태준을 야금야금 요리하면 될 일이었다.

“의원님! 요즘 뉴스보기 좀 민망합니다. 그래서 제가 의원님께 맞춤 제안을 준비해 왔습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황태준은 다시 끄응 소리를 씹어야 했다.

“주로 제기되는 의혹들이 의원님의 엄청난 재산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래서....요?”

황태준의 말투가 조금씩 우호적으로 바뀌는 게 느껴졌다.

이래저래 시간적 여유가 없는 만큼, 어서 빨리 윤재와 딜을 마무리해야 했다.

“적들의 공격에 역공을 가할 수 있는 묘수가 있습니다.”

아픈 곳을 찔렸음에도, 묘수라는 얘기에 황태준은 귀가 번쩍 하는걸 느꼈다.

“있으나 마나 한 땅을 처분해, 그 돈으로 지역구에 공공시설을 지어 기부체납 하겠다고 밝히십시오. 그러면 악화된 여론이 돌아설 수 있습니다.”

“젊은이. 내게 있어 있으나 마나 한 땅이라는 건 없네. 그리고 공공시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체육관이나 공연장, 공공 도서관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굳이 의원님과 관계도 없는데다, 특별히 쓸모도 없는 땅 갖고 계시느니, 매각대금으로 의원님 지역구에 기부하면 사람들은 의원님의 용단을 높이 살 겁니다.”

“?”

황태준의 눈빛이 떨렸다.

그만큼 요즘 상황이 절박했고, 윤재의 제안도 솔깃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평택 고덕면에 있는 의원님 땅. 그것 산비탈에 있어서 이도 저도 아닌 땅 아닙니까?”

미군기지가 있어 개발행위가 제한돼 있었고, 윤재의 말마따나 200미터 남짓의 태봉산 밑자락의 땅들은 용처가 애매했다.

“그 땅들은 절반 가까이가 논밭이야. 쉽게 취득할 수 있는 땅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더 처분하셔야죠. 평택은 1년에 한 번 가실까 말까 하신 분이 왜 농사 직불금은 받으셨습니까? 그거 얼마나 한다고.”

“끄응.”

황태준은 서서히 윤재의 그물망에 갇히고 있었다.

“제가 의원님 평택 땅 평균 15만원에 매입해 드리겠습니다.”

“15만원? 말도 안 돼!”

2002년 황태준의 평택 땅 중, 농지의 경우 대략 평당 10만원이 조금 넘었지만, 농지 이외의 땅은 30만원에 육박했다. 땅에 환장해 있는 황태준에게 평당 15만원이란 금액은 헐값 그 자체였다.

“의원님! 잘 생각해 보십시오. 강남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성호 빚을 갚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용인이나 김포의 금싸라기 땅을 파시겠습니까? 아깝다고 생각 마세요. 급매물로 처분할 평택 땅. 15만원이면 정확히 시세대로 계산해 드린 겁니다.”

“끄응.”

“그리고 저나 되니까, 의원님과 관련된 내용들 입 다물고 있지, 부동산에 내놓거나 주변에 알려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금방 소문날 겁니다. 성호 건 경찰이나 언론에서 눈치채기 전에 서두르셔야 합니다. 정치는 타이밍 아닐까요? 뉴스에 나오기 전에 평택 땅 처분과 사회공헌 활동을 발표하시는 게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황태준의 얼굴은 갈등으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물망 좁히기 2단계 작전으로 쐐기를 박을 일만 남아 있는 상황.

때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하하하. 딱 맞춰서 전화 했구나!’

광주 NBC 안수애 아나운서의 전화였다.

“의원님! 죄송합니다. 중요한 전화라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윤재는 전화를 들고 한식집 룸 구석으로 이동해 전화를 받았다.

조용하게 얘기했지만, 의도는 황태준이 잘 듣게 하는 것.

소곤거리는 윤재의 목소리가 황태준의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네. 기자님! 너무 오랜만에 전화 주셨네요. 그나저나 어쩐 일로?”

중간 중간 황태준을 한 번 씩 봐 주면서 전화를 이어갔다.

“아. 네. 그럼 다음에 다시 통화하시죠. 제가 지금 귀한 분을 뵙고 있어서.... 이만 전화 끊습니다. 1시간 뒤에 전화 드릴게요.”

윤재는 안수애와의 전화를 끊었다.

통화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황태준의 귀에는 오로지 ‘기자님!’ 이라는 3글자만 메아리 칠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기자님이 갑자기 전화를 주셨네요. 촉이 참 좋은 기자님인데....”

황태준이 변비 똥을 싸는 것 같은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          ◈          ◈

그날 밤 늦게 윤재는 광주로 내려왔다.

평택의 부동산 3만평을 매입할 자금을 정리해야 했다.

‘황태준 의원님! 자식교육을 제대로 시킬 생각을 해야지 낙하산으로 회사에 꽂을 궁리나 하시니까, 오늘 같은 참변을 당하는 겁니다. 의원님 금싸라기 땅 제가 잘 쓸게요.’

몇 년 뒤의 얘기가 되지만, 평택은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보상으로 대대적인 발전계획이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평택 오성 반도체 공장이었다.

수십조의 반도체 공장이, 황태준의 땅 남쪽 5Km 주변에 들어서게 되고 황태준의 쓸모없던 부동산은 모두 아파트 단지와 상가 등으로 변신하게 된다.

대략 2015~6년의 일이니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긴 했다.

농사도 짓지 않는 황태준이 직불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언론과 정치인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평택땅.

지금은 평당 2~30만원이지만 2015년이 되면 30배 이상 폭등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고 윤재가 부동산 지가 상승을 목적으로 평택 땅을 매입한 것은 아니었다.

52 Cafe 뿐만 아니라, 유통허브를 위한 공간을 위해서도 토지는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황태준의 땅 일부는 52 Cafe rural을 위한 용지로 이용할 계획이었다.

또한 실제 농사도 지을 계획이었다.

식품의 가장 기초적인 원자재는 농사에서 나온다.

현재 군대에 있는 사촌동생 남재가 제대하는 시점에 맞춰, 윤재는 영농법인을 출범시킬 계획이었다.

평택 땅은 황태준에게는 골칫거리 땅이었지만, 윤재에게는 다목적 카드로 이용될 수 있었다.

지가상승, Cafe 공간, 유통허브, 영농법인의 농토에 이르기까지!

최소 4가지 측면에서 기여할 금싸라기 땅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