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79화 (79/196)

52 Cafe 1호점

12월 2일은 백화점 알바 동료들의 정기모임이었다.

모임 날이면 윤재는 창진과, 다른 멤버들 보다 2시간 앞서 만나 투자전략을 세웠다.

“형! 오성중공업과 로티칠성음료 현재까지 누적수익률이 15%야. 이익금만 9억이 넘는 다구! 손댔다 하면 이익이야! 진짜 마이다스의 손인가?”

확실히 구르는 눈덩이가 커지니까, 수익금이 몰라보게 커지긴 했다.

하지만 윤재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아직 월드컵 호재가 본격 반영되기 전이니까, 당분간 들고 가자. 네 고객들에게도 그렇게 안내하고.”

월드컵 전까지는 월드컵 수혜주와 조선주, 철강주 중심으로 가는 걸로 창진과 다시 한 번 정리했다.

“그런데, 오늘 엔론 뉴스 봤지? 미국 놈들 자기들이 항상 글로벌 스탠다드 라고 하더니, 별것 아냐? 어떻게 그 큰 회사가 분식회계를 하지?”

2001년 하반기부터 심심치 않게 뉴스에 등장하던 엔론이, 12월2일에 결국 파산보호 신청을 한 것이다.

창진은 열변을 토해가며 엔론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창진아! 너 옵션거래와 미국주식에 투자하는 방법을 좀 연구해 봐라. 한 달 시간 줄 테니 완벽하게 공부해서, 쉽게 좀 알려다오.”

“엥? 이젠 미국에도 손대시려고?”

“글로벌하게 한 번 놀아봐야지? 미국은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 하고 있으니 분명 기회가 있을 거다. 미국 증권사 계정 여는 방법 등 완벽하게 마스터 해 와야 한다?”

“알았어. 맡겨줘! 형이 내준 숙제 내가 안 하는 것 봤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윤재는 속으로 아쉬움이 가득했다.

전생에서 팀장 재직당시, 매년 2주가량 팀장교육을 받았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내용중 하나가, 엔론의 파산이 주는 교훈에 대한 강의였다.

‘9-11에 집중하느라, 엔론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2002년도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윤재는 잘 알고 있었다.

콜 옵션 매수와 매도, 풋 옵션 매수와 매도, 스트랭글과 스트래들, 버터플라이 등에 이르기까지 용어도 어려운 옵션거래.

대진증권 에이스가 된 창진이 옵션을 마스터 해 온다면, 윤재가 선택할 수 있는 투자 옵션이 몇 개 더 생기게 된다.

“이 형! 분명 뭔가 있네.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미국주식이나 옵션 얘기하는 것 보니까 심상치 않아!”

“하하하. 너 돗자리 깔아도 되겠다.”

“뭔데 그래? 응?”

“나보고 빨간펜 선생님이라며? 일단 숙제를 성실하게 이행해라. 그러면 때가 되면 알려주마.”

회계부정 스캔들로 엔론의 CEO인 스킬링은 24년이 넘는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런데 엔론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엔론을 뛰어 넘은 회계부정 사태가 다시 터지는데, 미국의 통신공룡 월드컴의 분식회계와 파산절차 진행이었다.

엔론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분식회계를 저지른 월드컴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엔론은 준비가 안 돼 놓쳤지만, 월드컴은 제대로 준비해 대박 한 번 친다.’

◈          ◈          ◈

언제 만나도 즐거운 백화점 알바 동료들.

혜진과 선희가 출연한 영화얘기.

장식이형이 해외를 다니면서 경험한 얘기.

창진이가 요즘 밀려드는 소개팅 때문에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얘기 등이 오갔다.

모임 할 때면 느끼는 것이지만, 혜진과 선희가 멤버로 있었기 때문에 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는 것이다.

혜진이 때문에 빛이 가리긴 했지만, 선희도 매력 있고 예쁜 얼굴이었다.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한 뒤 일행들과 헤어진 윤재.

오랜만에 선희를 떼어놓고, 혜진을 집까지 바래다주게 됐다.

“혜진이 네 덕분에 장팀장님께서 이노베이션 챌린지에서 또 우승하셨다.”

“정말?”

“응. 네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하마터면 장팀장님 보고가 묻힐 뻔 했어.”

“야... 오빠 토크가 많이 늘었네. 올리버 찜 쪄 먹겠어?”

적당히 MSG를 첨가하긴 했지만,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11월말에 진행된 이노베이션 챌린지.

햅반과 HMR시장을 준비하자는 장동석의 프레젠테이션은 오재준 회장과 참석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내용 자체도 훌륭했다.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에 진도군 소포리 어르신들의 인터뷰 영상을 집어넣은 점.

혜진과 윤재가 모델로 등장한 15초짜리 광고를 포함시킨 점 등, 형식도 고퀄리티를 자랑했던 것이다.

2001년도만 해도 영상을 편집해, 보고장표에 붙일 생각을 하던 사람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15초짜리 광고영상에 출연한 혜진의 미모가 워낙 출중했기에, 참석자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출시이후 5년 가까이 판매부진과 누적적자에 시달리다, 결국 사업철수를 검토했던 햅반.

윤재와 장동석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햅반 살리기 보고서 덕에 경영진은 햅반 사업을 3년간 더 진행키로 결정했다.

햅반은 2003년부터 고도성장을 이어가며, 회사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아직은 미래의 얘기지만, 햅반이 조명을 받을 때마다 장동석 팀장이 덩달아 주목을 받을 예정이었다.

“내년 임원인사에는 장팀장님께서, 상무보가 되실 거야.”

“정말? 진짜 장팀장님 별 다는 거야?”

“나는 뭐 거의 99% 확실하다고 본다.”

오픈 이노베이션 때 있었던 일과, 장팀장님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혜진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

항상 혜진을 내려주는 집 근처의 놀이터였다.

“저번에 오빠 남양주 왔을 때 왜 뽀뽀해줬는지 알아?”

“?”

“오빠 온 다음날 키스 씬 촬영이 있었거든. 그래서 내 입술을 상대배우가 아니라, 내 남자에게 먼저 주고 싶더라.”

“하하하. 고맙다.”

“그런데 차정원과 키스씬만 1시간 넘게 찍었는데, 오빠와의 2초 뽀뽀가 더 강렬한 거 있지?”

혜진의 양 볼이 붉어졌다.

이럴 때는 또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아쉽네. 그 때 뽀뽀가 아니라 키스를 했으면, 연기하는데 더 도움이 됐을 텐데.”

혜진이 한동안 깔깔대고 웃더니 윤재에게 진하게 입을 맞췄다.

모태솔로였던 윤재에게 전현생을 통틀어 첫 번째 키스였다.

“집까지 바래다 준 교통비야!”

키스를 끝낸 혜진의 말이었다.

“그럼 나도 키스에 대한 값을 치러야지. 집 앞까지 업어줄 테니 업혀라.”

“나, 무거울 텐데....”

말은 그렇게 하더니, 냉큼 업히는 혜진.

강화된 신체능력 탓에 정말로 무겁지 않았다.

‘얼굴도 마음도 예쁜 여자 친구를 집 앞까지 업어서 배웅해 주다니!’

46년 모태솔로의 서러움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          ◈          ◈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은 12월22일 토요일.

윤재 부모님이 운영했던 서점을 카페로 변신시킨, 52Cafe 1호점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아직까지는 커피전문점이 활황을 보이기 전이긴 했다.

‘고도윤 사장이 함께하기로 한 이상, 앞으로 52Cafe는 성장가도를 달릴 것이다.’

작은 아빠 가족들, 혜진이 엄마, 백화점 동료들과 태화정밀 김민기 사장 내외, 그리고 양광수 상무의 비서였던 송진영이 참석해 조촐한 개업식을 치뤘다.

“텀블러는 1월 중순까지는 납품할 수 있을 거야.”

“하하하. 사장님! 너무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개업식에 맞췄다면 좋았겠지만, 상관없습니다. 텀블러는 2월 발렌타인데이에 맞춰 사은품으로 제공할 생각입니다.”

혜진과 선희가 영화 개봉 행사로 강민우 감독 등과 전국투어를 다니고 있어서, Cafe 개업식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52 Cafe 사업전반에 대한 경영은 고도윤사장과 윤재가 주도할 예정.

1호점인 광남대 정문 점은 작은엄마와 혜진 어머님, 그리고 송진영 누나가 운영할 예정이었다.

2호점, 3호점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매장들은, 혜진 어머님이나 송진영 누나에게 운영권을 부여할 계획.

회사가 커져나갈수록 고도윤 사장의 역량이 빛을 발할 것이니, 윤재는 자금조달만 차질 없이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1호점 홍보는 지방의 카페답지 않게 블록버스터 급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첫 번째 스타트는 다음 주 광주로 복귀할 혜진과 선희의 사인회.

2명의 신인 연예인들은 흔쾌히 윤재의 제안을 수용했다.

두 번째 홍보는 바로 광주NBC의 안수애가 진행하는 비디오 특공대였다.

안수애와의 인연도 인연이지만, 52Cafe 1호점이 갖고 있는 특색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호점과 52Cafe 사업의 확장방안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이, 창진이가 커피를 홀짝 거리며 다가왔다.

12월말의 강추위에도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창진이를 보고 있자니, 얼죽아를 좋아한다는 미래의 젊은이들이 생각났다.

“에이요. 형님! 커피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이거 왜 이렇게 달고 진하지?”

“그게 우리 가게 시그니처 메뉴인 아이스 큐브 돌체 라떼다.”

“아이스 큐브 돌체 라떼?”

얼음이 들어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아이스라떼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얼음이 녹으면서 커피 맛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 점을 고려해 52Cafe는 아이스커피는 콜드브루로 일원화하기로 했고, 커피원액과 우유를 얼려서 얼음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처음의 맛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52Cafe의 여름철 시그니처 메뉴가 바로, 달콤한 커피얼음과 우유얼음이 들어가 있는 아이스 큐브 돌체 라떼였다.

“창진이 숙제 하나 또 생겼다.”

“아니, 형님은 맨날 숙제만 내줘... 홈워크 너무 힘들어! 그런데 무슨 숙제야?”

“증권사 딜러만 하다 끝날 것 아니라면, IPO같은 것도 좀 공부해 둬라. 나중에 52Cafe 증시에 상장할 계획이니까!”

“푸하하. 형님! 포부가 너무 큰 거 아냐? 형이 무슨 하워드 슐츠야? 별다방이냐고?”

단순한 커피 전문점이 52Cafe의 비전은 아니었다.

복합 공간이자, 전국단위 Network 사업의 전초기지로 역할을 하게 될 52Cafe.

충분히 사업성을 갖춘 커피 네트워크로 키워낼 자신이 있었다.

◈          ◈          ◈

저녁 늦게 고도윤 사장이 광주에 도착했다.

경기도 구리시 꼼빠뇨 매장을 정리하고 내려오느라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송진영 누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고도윤은 당분간 광주1호점에서 함께 생활하며, 52Cafe를 확장해 나갈 예정이었다.

첫 만남이후 고사장은 중간중간 광주를 오가며, 1호점의 개업을 도왔다. 로스팅 원두의 구입, 에스프레소 머신 구입과 가격정책 등 전문가의 솜씨가 1호점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윤재야! Big Wheel은 볼수록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52Cafe의 상징물이 될 자격이 있어. 멋지다!”

이젠 제법 친해져 호형호제하기로 한 고도윤 사장.

1호점의 빅 휠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태화정밀 김민기 사장이 만들어 준 빅 휠.

직경 4m의 물레방아를 생각하면 딱 Big Wheel의 모습이 된다.

빅 휠의 전면에는 대형 시계바늘이 달려 있어, 시계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냥 봐서는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빅 휠이 느린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물레방아 살은 선반 역할을 했는데, 그 선반에 얼음으로 커피를 추출할 수 있는 콜드부르 용기들이 올라가 있었다.

52개의 물레방아 살 역시 바퀴의 회전에 맞춰, 함께 회전하며 수평을 유지하는 구조였는데, 태화정밀의 솜씨는 감탄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52 Urban, Suburban, Rural 등 커피 매장이 들어간 곳은 모두 저 Big Wheel을 매장에 설치하게 될 겁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어떤 가게든 그 곳 하면 떠오르는 상징물이 있으면 좋으니까.”

“두고 보세요. 조만간 미니홈피에 저 빅 휠을 배경으로 사진 올리는 여자들이 늘어날 겁니다.”

윤재는 고도윤과 함께 매장 북쪽면을 통째로 차지한 채로 돌아가고 있는 빅휠을 잠시 감상했다.

저 Big Wheel 때문에 안수애도 윤재의 1호점을 홍보해주기로 약속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비디오 특공대라는 프로그램의 취지에도 나름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임차든, 매입이든 엄청난 자본이 들어갈 텐데, 자금조달 자신 있니?”

윤재의 커피 전문점 비전에 공감해, 자신의 가게를 접고 내려 온 고도윤 사장. 취지에는 100% 동의했지만, 윤재의 비전은 너무나 광대한 것이긴 했다.

연봉 외에도 매년 소정의 지분을 받기로 돼 있는 고도윤.

회사가 성공해야 지분도 의미가 있는 법.

고도윤의 걱정이 이해됐다.

“자신 있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데, 최고의 경영자인 형님을 모셨으니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일차적으로, 자신이 벌어들일 돈으로 자본금을 늘리면 된다. 그리고 은행 차입부터, 궁극에는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동원까지!

몇 년 뒤 도래할 스마트폰과 모바일 시대.

이미 성공방정식을 알고 있는 윤재와,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줄 고도윤 사장과 파트너들.

52Corp의 성공은 단 0.1%의 오차도 없이 성공하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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