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에 이뤄지는 큰 꿈이란 없다
9-11테러 전후 KOSPI지수 선물을 매도해 60억을 넘게 벌어들인 뒤, 2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수천만원의 수수료 수입과, 몰려드는 고객들 때문에 비명을 지르던 창진이 슬슬 안달하기 시작했었다.
“형님! 너무 오래 쉬는 것 아네요?”
“창진아. 내가 쉬는 것도 투자라고 했잖아. 내 예탁금만 50억이 넘고, 일반 고객들 투자금액까지 합하면 너희 지점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관리하고 있잖아. 금액이 커질수록 신중해 져야 한다.”
20년 전으로 돌아왔기에 뭐든 샀다 하면 돈이 될 수 있었다.
주식. 아파트. 땅. 심지어 미술품까지....
윤재 역시 마냥 쉬고 있을 생각은 아녔다.
창진을 주식투자를 관리해줄 파트너로 키울 생각.
다음 스텝에 대한 아이디어를 전달키로 마음 먹었다.
“내년에 가장 큰 이벤트가 뭐지? 대통령 선거도 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예정돼 있잖아?”
“그렇지. 형! 올림픽과 함께 지구촌의 축제인 월드컵이 예정돼 있지.”
“오랜만에 주식격언 풀이 좀 해보자. 너도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는 얘기 알잖아?”
“나도 이제 주식 밥 먹은지 어언 1년이야. 그 정도 센스는 있다고!”
실제 2001년 10월의 창진은 더 이상, 대진증권 지점장에게 개갈굼을 당하던 신입사원이 아니었다.
“월드컵 수혜주 뭐가 있을 것 같니?”
“응? 그... 글쎄? 뭐가 있을까? 갑자기 물어보니까 생각이 안 나네.”
애매할 때는 사례를 찾아보면 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
역대 월드컵 때마다 주목받는 수혜주는, 맥주나 콜라 회사 같은 식음료주식, 그리고 방송 컨텐츠나 광고기획사 등이 주목을 받았다.
한국 같은 경우 치맥이 유명하다 보니 닭고기 가공회사들도 월드컵 특수를 누리는 종목 중 하나였다.
“월드컵 시즌이 되기 전, 선점을 했다 월드컵 특수가 본격화 되면 매도하는 전략으로 가자.”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는 얘길 한 게 그 이유였구나!”
“바로 그거야. 고객들에게 비슷한 내용으로 설명해 주면 된다. 화이트 맥주. 로티칠성음료 같은 음료회사나, 방송사 관련 주식들도 괜찮아. 9-11로 주식이 꺼져 있는 상태니까, 지금 사서 2002년 4월 정도에 이익실현하면 제법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다.”
창진이 입이 찢어져라 웃기 시작했다.
“내 가용 현금이 100억이 넘는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슈퍼개미 들을 수 있는 돈이야.”
“그렇지... 아주 작은 증권사 정도는 무리하면 인수도 할 수 있는 금액 아닐까?”
“하하하.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굴리는 금액이 커진 만큼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2001년 10월에 윤재가 동원 가능한 금액은 대략 130억 수준.
500만원 투자하는 개미처럼 투자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먼저, 대형주식 위주로 해야 한다는 거야. 주당 가격이 1,000원도 안 되는 닭고기 회사 같은 건 조금만 사도 시세가 출렁거려서 안 돼.”
“그러네. 닭고기 회사를 몽땅 인수할 수 있는 금액이니까!”
“두 번째가,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는 거야. 시장의 관심을 최대한 적게 받으면서도 돈을 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윤재는 그런 의미를 담아, 2002년 월드컵 특수 직전까지 투자할 종목 2개를 골랐다.
하나가 로티칠성음료였고 다른 하나는 오성중공업이었다.
1999년 중국의 WTO가입.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한 중국경제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10% 수준의 고도성장을 이어갔다.
“중국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게 원자재야. 도시도 지어야 하고, 도로도 닦아야 한다. 필요한 기름도 수입해야 하고. 석탄. 철광석. 곡물. 기름. 시멘트 등 닥치는 대로 쓸어 와야 해.”
“짱개들이 그렇게 영향력이 클까? 중국 다녀온 고참들 얘기 들어보면 우리나라 1970년대 수준이라고 하던데.”
“그런 촌구석이 도시로 탈바꿈 한다는 생각을 해야지. 광저우. 상해. 푸동. 칭따오. 선전 등의 도시 하나하나가 서울 같아진다고 생각해 봐!”
“아!”
윤재가 오성중공업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2001년 10월 오성중공업 주가는 3,500원대.
벌크선. 드릴십 등 한국 조선주의 기술력은 일본을 넘어서게 된다. 주가 역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럽경제의 침체가 시작되기 전까지 고공행진을 지속했는데, 오성중공업만 해도 2007년에 5만원을 넘겼으니, 지금 몽땅 사놓으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2000억대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윤재의 얘기를 꼼꼼하게 메모하던 창진의 눈빛도 조금씩 확신에 찬 표정으로 변해갔다.
130억을 모두 태우지는 않고, 절반 정도의 금액만 오성중공업과 로티칠성음료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창진이 물었다.
“그런데, 형. 나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뭐든지.”
“전업투자자를 해도 떼돈을 벌 것 같은데, 회사생활을 지속하는 이유가 뭐야? 형님 한 달 투자수익도 안 되는 월급 받아가면서?”
조만간 시작하게 될 커피사업만 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었다.
아니 이미 벌어놓은 돈만 쓰면서 살아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회사생활을 악착같이 하고 있으니, 궁금할 것 같기도 했다.
“큰 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인내심과 시간이 필요한 법이야. 내가 만약 1조원이라는 돈을 벌어, 우리 회사 최대주주가 됐다고 가정해 보자.”
“1...1조? 이 형 배포가 장난 아니네.”
“그냥 가정해 보자고. 30살에 내가 수조원 부자가 돼, 한국 대기업을 인수했어. 임원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지 않겠어? 그 사람들이 돈만 많은 대주주인, 내 말을 충심으로 들을까?”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어. 회사 다니기 싫은 놈들 다 나가! 그러면 되는 것 아냐?”
“하하하. 창진이 너 다운 발상이다.”
한국 최고의 식품회사를 넘어서는 글로벌 식품회사로 성장시켜 나가는 것.
그를 통해 전생의 동료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근무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
윤재의 오랜 꿈이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회사의 우두머리가 됐을 때, 모든 구성원들이 윤재에게 진심으로 따라야 했다.
‘Plan A가 됐든, Plan B가 됐든 구성원의 자발적 복종은 반드시 필요해. 돈 버는 것이야 회사를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걸 떠나서 전생의 경험과 자신의 실력으로 회사 일을 해나가는 것도, 충분히 재밌고 보람이 있었다.
“창진아! 너도 명심해라. 한 몫 단단히 챙겨서 여생을 편히 살아갈 생각을 하지 말고, 대진 증권에서 하는 일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고 살아 봐. 이러든 저러든 한 번 사는 인생 아니냐?”
◈ ◈ ◈
양광수 상무에 대한 경질건과, 호남본부에 대한 감사가 한창이던 10월 13일 토요일.
자신의 사업을 도와줄 3명의 인재를 모시기 위해 1박2일의 장정에 올랐다.
밤에는 경기도 남양주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혜진과 선희를 만날 계획이었다.
먼저 윤재는 경기도 구리시를 찾았다.
구리시 인창동에서 윤재의 커피사업을 도와줄 고도윤이라는 인물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홀리스 커피, 톰 앤 팀즈, 커피베네는 한국 커피 프랜차이즈의 1세대를 대표하는 브랜드.
홀리스에서 시작한 3인방이 헤쳐모여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위 3개의 커피 프랜차이즈를 키워냈다.
하지만 1세대 3인방이 모두 행복한 인생을 살지는 못했다.
구리시에서 운 꼼빠뇨(동반자)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고도윤은 1세대 3인방과 모두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침 10시 30분.
인창동에 있는 카페 ‘동반자’에서 고도윤에게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타이거 스킨이 멋지군요!”
에스프레소 크레마가 호피무늬 모양이어서, 이태리 사람들은 타이거 스킨이라 부른다.
뿔테 안경 속의 고도윤의 눈동자가 커졌다.
2001년에는 에스프레소를 먹는 사람도 드물었고, 크레마나 타이거 스킨을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연락드렸던 김윤재라고 합니다.”
“다... 당신이? 김윤재씨?”
고도윤이 놀라는 건 당연했다. 커피 사업을 논하자는 윤재를 4~50 된 중년남성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고도윤의 얼굴이 식어버린 커피처럼 굳어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아시죠?”
“아? 예? 하하.”
윤재가 자리를 잡자, 고도윤도 자신이 마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마주 앉았다.
에스프레소가 식을 때까지 신변잡기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이제 슬슬 본론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2개월 전에 샤모니에서 그랑드조라스와 스위스 아르쁘뜨와 상페호수 까지 다녀왔는데, 희한하게도 3국 커피 중 이태리 커피가 단연코 맛있더군요.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맛이 아직도 기억날 정도입니다.”
한국시장에 커피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했던 2000년대 중반.
고도윤은 ‘이태리 커피 투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팀장과 임원을 역임하면서 직원들 또는 상사들과 커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 읽은 책 중에 고도윤의 책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의 책을 요약하면, 첫째가 별다방을 대놓고 깐다는 것이었고, 둘째가 이태리 커피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한국 커피 전문점이 나갈 길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하.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플로리안이 1700년대 초반에 생겼으니까요. 달랑 커피 한 잔 이지만 역사와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이태리 커피에 대한 찬양과, 고도윤이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칭찬하자 이미 절반은 윤재편이 돼 있었다.
“고사장님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별다방으로 대표되는 미국식 커피 문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살살 긁어주자, 고도윤 사장이 별다방과 한국 커피 1세대 프랜차이즈를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했다.
1박 2일 동안 얘기를 하라고 해도 부족할 기세였다.
“그래도 별다방이 가맹점이 아니라, 직영점 시스템으로 가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김사장님!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라니.... 커피에 대한 생각보다 가맹점 늘려서, 코스닥 등록해서 돈 벌 궁리만 하는 녀석들이죠. 결국 끝이 좋지 못할 겁니다.”
“고사장님이랑 제 생각이 묘하게 닮았네요. 저도 매입을 하든 임차를 하든 직영매장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죠.”
“통제도 안 되는 가맹점 100개 보다, 제대로 된 직원들이 관리하는 10개의 매장이, 훨씬 좋은 맛과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번 긁어줬을 뿐인데, 고도윤은 어느새 윤재를 영혼의 동반자 정도로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고사장님. 이 자료 한번 보시겠습니까?”
윤재는 1997년 IMF이후 한국의 CD금리의 변화 차트를 보여줬다.
48개월 동안 13.3%에서 5.3%까지 하락해 있었다.
“저는 2010년이 되기 전에 2%대 CD금리를 볼 것이라 확신합니다. 일본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자본주의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금리는 장기적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어요.”
“김윤재 사장님은 놀랍도록 저와 생각이 비슷하시군요. 대도시 건물주등 임대료 올려주기 바쁜 국내 프랜차이즈 커피들은 결국 임대료 때문에 사단이 날 겁니다.”
윤재가 고도윤을 찾아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구리시에서 장인 정신으로 커피가게 1개를 운영하며 젊음을 보내기에는, 고도윤은 비즈니스 감각과 머리가 너무 좋았다.
커피베네를 창업한 고도윤의 친구가 고사장의 주장을 들었다면, 알짜배기 중소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전이나 부산에 1,000만원을 주고 월세를 낼 게 아니라, 대출을 받아서 건물을 사버리는 게 낫다고 봅니다. 부득이 임차를 하더라도 직영을 하는 게 맞다고 보구요.”
“1,000만원이면 3% 금리로 따지면, 40억짜리에요. 대전 같은 곳의 3~4층 짜리 건물 2채는 살 수 있는 돈입니다.”
그의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조금 각색한 윤재의 얘기에 고도윤이 홀라당 빠져들고 있었다.
“52 Urban, 52 Suburban, 52 Rural 이라구요? 왠지 그럴싸한데요?”
“광주에 Urban 1호점이 한창 공사 중입니다. 11월초에는 오픈할 수 있는데, 한번 찾아주시겠습니까? 세가지 컨셉과 아이스커피에 대한 컨셉을 고사장님께 보여드리고 싶군요.”
“아이스커피라구요?”
이태리 커피에 집착하는 고도윤은 아이스커피라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영국의 런던아이에서 착안한 Big Wheel이라는 콜드브루 음료를, 아이스커피 시그니처 제품으로 밀까 생각중입니다.”
“빅휠? 콜드브루요?”
“네. 다음 달 광주에 오시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빅휠과 콜드브루에 고도윤의 호기심이 동하는 얼굴이 됐다. 이제 본론을 꺼낼 시간이었다.
“광주에서 구리까지 4시간 넘게 운전해 찾아온 용건을 말씀드려야 겠네요. 고사장님께서 구상하시는 방식으로 커피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메인 몸이라, 경영자가 필요해요. 사장님께서 52Cafe를 이끌어 주셨으면 합니다.”
“?”
“물론 당장 결정하기는 힘 드시겠죠. 광주 52 Cafe Urban을 한번 보시고 결정해 주시면 됩니다.”
광주에 꼭 한 번 내려오겠다는 확답을 받고, 동반자 카페를 나왔다.
고도윤 사장은 자신보다 나이가 5살 어린 윤재의 손을, 한동안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고사장님. 동구릉 자주 가시나요?”
“어릴 적 소풍가보고 못 가봤습니다만....”
“꼭 가보세요. 사장님께서 조선을 세운 이성계처럼, 한국 커피왕국의 왕이 될 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윤재는 인창동을 떠났다.
고도윤 사장의 성정을 미루어 짐작컨대, 그가 반드시 동구릉을 찾아 이성계의 억새무덤을 볼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사장이 도와준다면. 한국의 1세대 커피맨들이 이루지 못한 IPO에도 성공할 수 있다!’
윤재가 준비하고 있는 Plan B가 첫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고도윤이 전문경영인이라면, 윤재는 대주주 자본가가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압도적인 실적과, 신뢰자본을 만들어 나가는 Plan A.
재테크와 창업을 통해 재산을 불려 나가는 Plan B.
다양한 플랜B 아이템 중 커피사업의 최적 파트너가 바로 고도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