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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71화 (71/196)

황성호라 쓰고 고문관이라 읽는다

“야! 황성호! 이걸 지금 마감이라고 해 놨어?”

“왜요? 대리님!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마감하고 정산하면서 교차 검증도 안 해? 나한테 미리 검증받고 해야 할 거 아냐?”

“네? 대리님께 배운대로 했는데요?”

9월4일 전월 회계 마감일에 황성호 소속팀인 영업1팀에 아침부터 소란이 일어났다.

소란의 주인공은 황성호였다.

“너 이리와 봐. 싸가지 없이 거기 앉아서 따박따박 말만 하지 말고.”

그동안 황태준이라는 배경 때문에 참아왔던, 마대리의 인내심이 바닥난 모양이었다.

“예....”

황성호는 입을 쭉 내밀고, 마대리 앞으로 어기적거리며 다가갔다.

‘나 황태준의 외아들인데..... 이 동네는 이런 걸 전혀 안 먹어준다니까! 하여튼 촌놈들은....’

정신상태가 본래 썩어빠진 놈이었다.

황성호의 튀어 나온 입에 마대리가 결국 폭발해 버렸다.

“짝다리 집지 말고. 똑바로 안 서?”

“예. 대리님!”

“이게 어디서 건방지게. 광주 내려온 지 2개월 만에, 니가 사고 친 게 대체 몇 개냐? 사고 친 놈이 부르면 재깍 달려와야지.... 자리에 앉아서 고개만 까닥거리고 말이야. 하여튼 자식이 좋게 봐주려 해도 싸가지가 없어.”

“....”

“여기 봐. CM(credit memo)을 꺽어야 할 곳에, DM(debit memo)을 꺽으면 어떻게 해. 고참들 거래처 가서 골탕 먹어라고 일부러 그런 거야 뭐야?”

“이상하다. 분명 제대로 매출조정 처리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 아닌가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월 마감 시 추가할인 금액을 정산할 차액원장에, 마이너스 300만원을 반영해야 하는데, 황성호가 플러스 300만원으로 처리해 버린 것이다.

거래처 입장에서 받아야 할 돈이 생긴 것이 아니라, 빚이 생겨버린 꼴!

그런데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 라니.

어찌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야. 황성호! 사람이 잘못하지. 컴퓨터가 잘못하냐? 원인을 알 수 없긴 뭘 알 수 없어? 니가 식을 반대로 넣은 거지!”

“죄... 죄송합니다.”

“다른 직원들이 거래처 정산금액 확인하기 전에 다시 해! 빨리!”

“알았습니다.”

대학교육을 이수한 황성호가 더하기 빼기도 못할리는 없다.

덜렁거리는 성격에 꼼꼼하게 체크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황성호는 허겁지겁 자리로 돌아가, 전산에 엑셀시트를 업로드 한 다음 차액원장을 다시 돌렸다.

◈          ◈          ◈

1시간 뒤 영업1팀.

마석범 대리의 고함소리가 사무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야! 황성호! 너 이리 와!”

“네. 대리님 부르셨습니까?”

황성호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마대리의 목소리로 감안해 봤을 때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런 좆만한 게 어디서 슬리퍼를 신고!”

“죄송합니다. 사무실이 너무 더워서 그만...”

“가서 구두로 갈아 신고 다시 와. 슬리퍼로 싸대기 쳐 맞을래?”

2개월 동안 황성호의 사고가 계속되자, 영업1팀 전반의 피로도가 높아져 있는 상태.

황태준의 백그라운드와 그가 건네준 선물로 커버하기에, 황성호의 실수는 너무 자주 반복됐다.

황성호가 후다닥 구두로 갈아 신고 다시 달려왔다.

“여기 봐! 이번에는 금액은 맞았지만 제품코드가 다 틀렸잖아.”

“네? 그.... 그럴 리가.”

“너. 진짜 똑바로 안 할래? 야 이 한심한 놈아. 프리챌 한 박스에 1만원 하는데, 거기에 CM꺽은 게 -75,000원 이야. 그럼 프리챌 한 박스를 회사가 65,000원 손해 보고 판 것이 되는데 그게 맞냐? 거성유통 거래원장 뽑아 와!”

“예. 대리님! 죄송합니다. 헉. 헉.”

가뜩이나 숱이 많지 않은 황성호의 머리카락이, 자유롭게 흩날리고 있었다.

“이거 보라고! 설탕에 CM 꺽을 금액을 프리챌에 꺽은 거잖아. 이것만 그런 게 아니라 제품 코드가 다 잘못 들어갔어. 너 Vlookup 잘 못 끌고 온 거 아냐?”

“그. 그럴리가요....”

“가서 확인해 봐. 이 존만한 것이 사고에 사고를 더하고 자빠졌네.”

황성호는 후다닥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엑셀 원본을 확인했다.

“대. 대리님. 마. 말씀이 맞습니다.”

“어휴. 이걸 진짜 한 대 쳐 말어?”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대리님 치지는 말아 주세요.”

“어휴... 영업3팀 김윤재는 단 한 번도 실수한 적 없다고 하더라. 그리고 마감 끝나면 고참들에게 거래처별 정리한 자료 다 메일로 뿌려주고....”

“....”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팀 선배들이 됐든, 3팀 김윤재가 됐든 가서 좀 배워라. 배워! 사고 치지 말고.”

황성호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무한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영업1팀장이 거래처 방문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마대리!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신입을 닭 잡듯이 잡고 있어?”

“황성호 이놈아가 또 사고 쳤습니다.”

“사고? 또?”

‘또’라는 말에 황성호의 고개가 90도에서 100도 정도로 더 떨어졌다.

“CM 꺽을 거래처에 DM 꺽고, 다시 하라고 했더니 20개도 넘는 품목 코드를 다 틀리게 처리했습니다.”

“완전 대형사고네. 대형사고야.”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영업1팀장도 황성호를 포기해 버린 상태였다.

그의 얼굴에 짜증과 피곤함이 가득했다.

“마대리... 자기가 수정해도 몇 시간 걸릴 거 아냐? 미안한데 3팀에 윤재씨 있는지 확인해서, 윤재씨한테 작업 한 번 해달라고 하는 게 어때? 마감시간도 촉박한데, 신용관리팀 우리 때문에 마감 늦어진다고 난리치기 전에 윤재 도움을 받는 게 낫겠다.”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사 회계마감이 영업1팀 때문에 늦게 되면, 팀 전체가 욕을 먹는다.

영업1팀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는 극약처방을 해야만 했다.

마대리가 윤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이, 1팀장은 황성호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성호씨! 날 때부터 잘하는 사람 없는 법이야. 하지만 실수도 자꾸 반복되면 그게 실력이 돼 버려.”

“면목 없습니다.”

“게다가 매출조정 잘 못 꺽으면 팀이 감사를 받기도 한다고. 각별히 조심하고 꼭 교차검증 하면서 해야 돼!”

“죄송합니다.”

“더 문제는 감사가 아니야. 가뜩이나 제품 많은 우리 회사인데! 장부가 지저분해지면 거래처에서 의혹의 눈길로 보게 된다고. 그럼 거래처의 신뢰를 잃게 된다. 신뢰를 잃은 영업은 전부를 잃는 거야. 이번까지는 눈 감아 주지만 다음에는 안 돼! 알았지?”

“네. 팀장님. 죄송합니다.”

조금은 춥게 느껴질 정도로 에어컨이 빵빵한 사무실!

황성호만 홀로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사이 윤재가 1팀으로 불려왔다.

마대리의 얘길 듣고보니,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안 봐도 비디오고, 안 들어도 오디오였다.

1팀으로 오자마자 윤재는 황성호를 불렀다.

“성호야! 엑셀 작업하던 것 나한테 메일로 좀 보내주라.”

“으? 응! 알았어.”

황성호는 잔뜩 코를 늘어뜨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          ◈

“어디 오랜만에 윤재씨 작업하는 거, 보면서 또 한수 배울까?”

마석범 대리가 윤재 뒤로 다가 왔다.

하지만 황성호는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윤재야. 성호 이 자식 하는 꼬라지 좀 봐라. 지 때문에 팀을 쑥대밭 만들어 놨으면, 고수가 작업하는 걸 와서 지켜봐야지. 꼴에 동기한테 배우기 싫다 이건가?”

“대리님! 성호도 당황하고 혼쭐나다 보니 정신이 없었겠죠. 옥상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올 겁니다.”

굳이 나서서 황성호 비난에 동참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황성호를 더 맥이는 방법임을 윤재는 잘 알고 있다.

윤재는 마대리와 대화를 하면서도 능수능란하게 엑셀을 다뤘다.

“야! 방금 그건 어떻게 한 거야?”

“지난달 1팀 정산서를 다시 만든 다음에, Mid와 Search 함수를 이용해서 틀린 제품명들을 추출한 겁니다.”

“아!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나는 막고 품어야 하나 생각했는데. 역시 엑신은 다르네.”

마석범 대리는 윤재의 손놀림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런 마대리도 3팀의 차명수나 오석진에 비하면 조금 차이가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 차대리나 오과장이라면, 윤재가 하는 걸 보면서 메모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석범 대리는 감탄만 하고 있을 뿐, 메모를 하지 않았다.

영업1팀의 주무담당 일은 황성호가 하는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고치는 황성호의 존재도 문제지만, 영업1팀과 영업3팀의 조직 분위기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일주일에 3일씩 꼬박꼬박 진행돼 온 윤재의 MS오피스 강의.

수개월동안 지속된 강의에 출석율이 가장 높은 팀도 영업3팀이었다.

그래서일까?

다른 영업부서의 고참들은 독수리 타법으로 연명했지만, 영업3팀 고참들은 엑셀 함수를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야! 벌써 끝냈어? 30분도 안 걸렸네. 내가 했으면 2시간은 족히 걸렸을텐데... 고맙다. 윤재!”

“아닙니다. 잘 끝났다니 다행이네요.”

끝으로 윤재는 몇 개 거래처를 샘플로 검증했다. 황성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디테일이었다.

“네. 다 잘 돌아갔네요.”

“고생했다. 그건 그렇고 황성호 이 자식은 어디 가서 뭘 하기에, 아직도 안 들어오는 거야?”

◈          ◈          ◈

윤재가 황성호의 에러를 정정하는 동안, 황성호는 옥상에서 담배를 피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태의 원인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찾는다.

자신의 실수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지만, 황성호는 자신의 실수에서 원인을 찾지 않고 외부에서 원인을 찾았다.

‘우리집 재력과 배경을 시기 질투하는 못난 놈들이, 텃세를 부리는 거야!’

황성호는 그렇게 정신승리를 하며, 스트레스 해소방안을 찾았다.

담배를 연거푸 피운, 황성호가 자회사인 O2 CS팀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잘 지내시죠?”

“아.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황대리님도 잘 계시죠?”

O2푸드의 100% 소유 자회사 O2 CS.

그곳은 O2푸드 보다 한 단계 낮은 레벨의 회사.

CS팀에서는 O2 직원들을 부를 때 한 등급씩 올려 호칭하는 게 관행이었다.

“오늘 광주팀 애들 동구 쪽 도는 것 같던데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제 곧 끝날 시간 돼 가긴 합니다.”

연산군에게 임사홍이 있었던 것처럼, O2 CS의 팀장은 임사홍 스타일인 모양이었다.

자회사 팀장이면 푸드로 따지면 대리 말년급 인데도, 황성호에게 아첨하고 있었다.

“팀장님! 기분도 꿀꿀한데 오늘 CS 애들이랑 맥주나 한 잔 합시다.”

“그럴까요? 최근에 새로 들어온 애도 있는데, 오늘 같이 데리고 가겠습니다.”

“켈켈켈. 그러시든가요.”

“네. 대리님! 이따 뵙겠습니다.”

“그래요. 강촌에서 6시 30분에 만납시다.”

황성호는 담배 한 대를 더 피웠다.

마대리에게 혼이 쏙 빠질 정도로 깨지고, 윤재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릴 것 같았다.

황성호가 업무능력이 늘지 않는 이유도 이런 것이었다.

염불보다 제사밥에 더 관심이 있다고 했던가?

그는 재테크와, CS팀 여직원들과 어울려 노는 일에 더 관심을 가졌으니, 회사일이 잘 될리 만무했던 것이다.

◈          ◈          ◈

점심식사를 마치고 윤재는 영업1팀을 찾아갔다.

오전에 일 도와줘서 고맙다며, 1팀장님이 차라도 한잔 하자고 윤재를 찾았다.

1팀에는 황성호와 팀장만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1팀장에게서 고맙다는 얘기와 덕담 등을 전해 듣고, 팀장실을 나오던 윤재는 황성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화면에는 증권사 HTS가 켜져 있었다.

주제를 모르고 윤재를 한수 아래로 여기고 사는 황성호.

묘한 비웃음을 지으며 윤재에게 말을 걸었다.

모든 면에서 자신이 윤재에게 부족하지만, 재력은 윤재가 자신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윤재! 너 혹시 주식 안하지?”

“나는 뭐. 그냥 조금 해. 많이는 못하고.”

창진에게 맡겨놓은 금액만 현재 21억이 넘었고, 현금으로 갖고 있는 금액도 40억이 훨씬 넘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황성호가 다시 한 번 비웃음을 흘렸다.

“나 오늘 얼마 먹은지 아니? 장장 5장이야. 5장!”

황성호가 손바닥 하나를 쫙 펴 보였다.

“와! 성호! 너 그럼 5000만원 먹은 거야?”

“너는 통이 왜 그리 크니? 5천은 아니고...”

“그럼. 5백만원?”

“아니. 50만원 먹었어.”

명색이 한국 땅부자 상위랭커의 아들 치고는 너무 소박한 금액이었다.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 아버님 정보도 있고 해서 주식을 제법 크게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울 꼰대는 땅밖에 모르거든. 오로지 땅땅땅! 그래서 주식 같은 건 손도 못 대게 하시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것도 아니고, 황성호의 자랑질은 계속됐다.

“주식이란 게 승부근성이 있어야 하거든. 너는 내 동기니까 천기누설 한번 해 주마. 여기 좀 봐라.”

황성호는 두성그룹 재벌3세가 지분투자를 했다는 작전주 뉴월드코프라는 회사를 보여줬다.

“재벌 3세가 근거 없이 투자하지는 않았을 거 아냐? 이런 고급 정보를 알아야 쉽게 돈 벌 수 있다고!”

“소스는 어디니? 아버지 쪽?”

“아니라니까. 우리 꼰대는 주식 같은 건 손도 못 대게 한다니까. 내 대학친구가 알려준 정보야. 요즘 인터넷 카페에서 핫한 주식이라고 하더라.”

전형적인 잡주의 표준모델 같은 회사였다.

명문가 출신에 대기업을 다니는 젊은이의 수준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저질의 투자였다.

“나는 주식은 잘 모른다만, 우량주 중심으로 투자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그리고 요즘은 조금 조심해야할 때 아닌가 싶은데....”

“켈켈켈. 지금 니가 내 걱정하는 거야? 아이고 이거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려하네. 켈켈켈.”

이미 윤재에게는 피해의식과 증오가 골수에까지 퍼진 황성호였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윤재의 말을 곱씹어 볼만도 했다.

하지만 황성호가 윤재의 얘기와 정반대로 행동할 거라는 것을, 윤재는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네 아버님께서 주식투자를 반대하시는 이유도 있을 거야. 어쨌든 성공투자 기원하마! 시간 날 때 Risk관리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 보고. 남들 다 아는 정보는 정보가 아니라는 말도 있어. 작전주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아이고 그렇습니까? 김윤재 박사님! 3팀까지 살펴 가십시오. 멀리 못 나갑니다.”

윤재가 3팀으로 돌아가는 동안, 황성호는 작전주 차트를 띄워 놓고 주식 전문가 행세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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