햅반과 검은쌀 (2)
“아니 자네는 소변보러 간 단 사람이 오줌을 만들어 싸고 왔는가? 밥 다 식어부렀네!”
“저기 어르신 밥은 원래 식어 있었습니다.”
“그! 그런가?”
“네. 어르신!”
윤재는 뒤 늦게 밥을 맛있게 먹었다.
진도의 명물 검은쌀을 섞어 지은 밥은, 찬밥이어도 맛있었다.
직접 기른 상추와 고추에 된장을 찍어 먹는 찬밥!
더위를 식혀 주는 바람까지 불어주니 꿀맛이 따로 없었다.
어르신들이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사이 윤재는 식사를 마쳤다.
“윤재야! 촬영 좀 해라!”
“네. 팀장님!”
윤재는 챙겨 온 비디오 레코더로 촬영준비를 마쳤다.
검은 쌀의 효능을 현지인의 육성으로 보고서에 영상 첨부할 계획이었다.
장동석 팀장이 신판석 어른께 질문을 시작했다.
“어르신 진도가 검은 쌀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이 검은 쌀로 말씀드리자면, 예전에는 임금님께 진상했던 귀한 쌀이다 이것이제.”
60이 넘은 나이에, 검게 그을린 얼굴.
전형적인 농민의 얼굴을 한 신판석은 생각보다 화면발을 잘 받았다.
“왜 진도 검은 쌀을 알아주나요?”
“그렁께 우리 진도쌀은 농약하나 안 친, 그 뭐시냐 유기농이다 이것이제!”
신판석 어른은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 가며, 꽤 쓸만한 정보를 많이 제공했다.
◈ ◈ ◈
“어이들! 일 시작하기 전에 배도 꺼트릴 겸, 노래하나 부르고 시작허세!”
“말 하면 잔소리제라!”
“광주에서 귀한 손님도 왔는디 진도아리랑 워뗘?”
“말 하면 잔소리제라!”
“자네는 밥그릇으로 장구치고, 자네는 벼피리 불면 쓰겄구만!”
“알았어라. 판석이 성님!”
한 어르신이 아직은 초록빛인 벼줄기를 꺽어, 보리피리처럼 만들더니 피리를 불러댔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밥그릇과 즉석피리의 하모니가 상당한 퀄리티였던 것이다.
윤재는 장동석과 함께 처음 보는 광경에 장탄식을 터뜨렸다.
“시작하드라고! 아리아리랑 쓰리스으리랑 아라리가 나아았네~에헷!”
“떴네~ 떠었네~ 무엇이 떴는가? 우리 장모님 똥 덩어리가 요강위에 떴구나아~”
절로 어깨춤을 추게 하는 가락이었다.
그 자체로 진도 소포리 들판은 하나의 콘서트장이었고, 광대극이었으며, 축제였다.
윤재도 촬영을 하는 중간 중간 어른들의 장단에 맞춰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을 따라 불렀다.
한 판 신나는 무대가 살랑바람처럼 끝났을 무렵!
“가만! 거기 젊은이 이름이 뭐라고 했제?”
“저요? 김윤재라고 합니다.”
“자네 고향이 워디여? 진도여?”
“네? 저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려? 이상헌디! 느낌이 딱 진도사람인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신판석 어른이 윤재의 이목구비를 샅샅이 훑어봤다.
“자네 목청과 흥이 보통이 아니란 말이시. 꼭 진도사람 같은디.. 목청도 좋고 말이여.”
“판석 성님도 그리 느꼈는갑소. 나도 저 젊은이 소리에 깜짝 놀랐당게요.”
“그라제? 보통 목은 아니제?”
어리둥절한 장동석이 윤재와 어르신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진도 소포리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는 동안, 윤재의 목청과 흥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 ◈ ◈
“일 끝났는디 집에 안가?”
“네. 오늘 어르신들 덕에 좋은 소리도 듣고, 검은 쌀에 대한 취재도 잘 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어르신들 일 좀 도와 드리고 가겠습니다.”
장동석은 윤재와 상의한 대로, 노인들의 일거리를 돕겠다고 나섰다.
예기치 못한 행동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장동석이었다.
이번에도 그는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옷을 그렇게 입고 일 헌다고? 놔두소! 괜히 세탁비 주라고 할라?”
“아닙니다. 논에 들어가 피 뽑으면 되죠? 저도 농부의 아들입니다.”
장동석이 바지를 걷어 제끼고 논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윤재도 장동석 팀장의 뒤를 따랐다.
“어허! 저 사람들.... 일당은 읎어. 나중에 일당 주라고 하면 곤난혀!”
꼭 욕쟁이 할매 같은, 신판석 어른의 꾸중을 들어가며 일이 시작됐다.
중간 중간 들려오는 육자배기를 포함한 진도의 소리.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은 고된 노동을 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목청 좋은 젊은이가 노동요 하나 해봐!”
“하하하. 그럴까요? 민요는 잘 모르니까 어르신들게 트로트 한 곡 뽑아 보겠습니다.”
윤재는 남행열차 등을 불렀고, 어른들은 “얼씨구!”, “지화자” 같은 추임새를 넣어가며 신명나게 일을 했다.
◈ ◈ ◈
“뭐여? 광주가 집이라고 안그랬어?”
“네. 그렇습니다.”
“근디, 뭔 놈의 농사일을 이렇게 잘 한당가? 진짜 자네 진도 사람 아니여?”
“하하하. 아닙니다.”
어느새 윤재가 뽑아온 잡풀은 어른들이 아침부터 해낸 작업량을 능가하고 있었다.
‘집중력을 높이면 속도가 빨라지다 보니.... 그나저나 내가 봐도 양이 많긴 많네!’
스스로도 놀랐지만 윤재는 대충 둘러댔다.
“제가 가는 곳마다 잡풀이 뭉탱이로 모여 있더라구요.”
“예끼. 실 없는 사람. 그나저나 자네는 암만 봐도 보통 인물이 아니시. 목도 좋고, 농사도 잘 짓고 말이여.”
“하하하. 감사합니다.”
“워뗘? 자네 진도 와서 나 밑에서 일 배워 볼랑가. 영농 후계자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인디 말이여.”
“하하하. 죄송합니다. 저는 회사원이니까 회사 일 해야죠.”
신판석은 진심으로 윤재를 영농후계자로 육성할 생각이었는지, 윤재의 얘기에 하늘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아깝다. 아까워!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잰디. 펜대나 굴리고 살아야 한다니...”
“아따. 성님! 요 징헌놈의 농사일 하자고 멀쩡한 직장 때려치는 젊은이가 어딨다요?”
“아까워서 그라제.”
이젠 어른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장동석 팀장이 사람 좋은 웃음으로 어르신들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오늘 하루 정말 고마웠습니다. 저희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려. 우리도 오늘 자네들 땜시 즐거웠네. 우리 진도 검은 쌀 잘 좀 홍보해 주소!”
“하하. 알겠습니다. 어르신!”
어르신들과 일일이 잡았던 손을 놓고, 윤재의 자동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윤재와 장동석이 농로 길을 따라 10미터나 걸었을까?
“어이. 거기 자네들. 잠깐만...”
신판석 노인이 고무신 바람으로 달려왔다.
“나가 서운혀서 그런디. 요거라도 받으소. 톨게이트 비라도 혀야제.”
신판석 노인은 허리춤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지폐 2장을 내놨다.
천원짜리 두장이었다.
장동석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천원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꼭 톨비로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재도 천원을 받았다.
“이제 진짜로 가보겠습니다.”
신판석 일행과 멀어지는, 윤재와 장동석의 뒤통수에서 대화가 들려왔다.
“아따! 형님! 돈 2천원이 뭐시다요. 2천원이?”
“왜? 톨게이트비 2천원이면 안된가?”
“놔두쇼. 형님. 내가 졌소.”
“뭣땜새 그래? 내가 돈을 더 줬어야 한당가?”
“놔두시랑게요. 성님!”
◈ ◈ ◈
둥그런 태양의 하단부가 수평선과 만날 무렵!
윤재는 부지런히 차를 몰아댔다.
돌아오는 내내 흐뭇한 표정인 장동석 팀장이 말했다.
“어떡할래? 좋은 기회 같은데?”
“뭐가요?”
“진도 내려와서 소리 한번 배워봐. 인간문화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하셨잖니.”
“하하하. 팀장님! 농담도 잘 하십니다.”
얼마 전 몽블랑에서 에밀리와 올리버도 그런 얘기를 했었다.
노래는 잘 하는 노래인데, 성량이 조금 아쉽다고....
‘그랬던 내게 목청이 좋다니?’
윤재는 신판석 이장의 진도 사투리가 생각나 피식 웃었다.
“나는 판소리 이런 건 전혀 모르니까 노래를 잘 하는지는 모르겠고, 너 목청이 좋다는 건 알겠더라.”
“진짜요?”
“그래. 들판에서 부르는데도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서 깜작 놀랐다.”
장동석 팀장은 허튼 소리를 잘 안하는 스타일.
‘진짜 내 목청이 트였나?’
윤재는 혼자 피식 웃었다.
가수를 할 것도 아니고, 목청이 트인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아까 그 어른들 표정 봤지? 신판석 이장님은 너를 양아들로 삼을 기세였다!”
“하하하. 그랬나요?”
윤재는 장팀장의 얘기를 들으며 1박2일의 성과를 정리했다.
어필하기 좋은 영상도 찍었고, 진도의 어르신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으니 의미 있는 일정이었다.
“팀장님! 이제 햅반 얘기 다시 정리하셔야죠?”
“그래! 햅반 얘기 좀 해보자.”
현장의 생생한 기억이 남아 있을 때, 기조를 정리하면 좋을 것 같긴 했다.
“팀장님! 일회용 반창고를 대일밴드라 부르고, 붙박이를 호치캐스라 부르잖습니까?”
“그렇지. Jeep이 짚차로 불리며 RV차의 대명사가 됐던 것처럼!”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만 지나도, 햅반은 즉석 밥의 대명사가 된다.
문제는 2000년대 초반, 회사 경영진이 햅반의 생산중단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 쌔게 나가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회사에 카테고리 킬러가 몇 개 없는데, 즉석 밥의 대명사로 햅반을 키웠으면 좋겠다. 뭐 이런 식으로요.”
“팔리지도 않는 적자상품을 즉석 밥의 대명사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네. 근거가 명확하면 됩니다. 연도별 1인 가구 수 증가 data를 붙이고, 일본이나 선진국들의 1인 가구 수 증가와 비교하는 거죠.”
“우리나라도 점차 선진국처럼 1인 가구 수가 늘어나고, 그러다 보면 즉석 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거란 얘기네.”
역시 장동석은 머리가 좋았다.
열정을 받쳐주는 지혜가 있다는 것은, 조직생활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
“무균화 설비와 클린룸 구축하느라 150억 넘게 들어간 것 아시죠?”
“그래. 그런데 수익은커녕 연간 매출이 100억도 안 돼서, 사업 접을까 말까 고민 중이라는 얘기도 들리더라.”
맞는 얘기였다.
실제 오재준 회장은 몇 년째 지지부진한 햅반 매출과 적자에 대노하고 있었다.
“청주공장에 햅반 라인 구축하느라 들어간 돈만 대략 300억수준입니다. 햅반으로 매년 적자보는 금액은 대략 10억 전후이구요.”
2000년에 약 85만개의 햅반이 팔렸고, 10억 조금 안 되는 영업적자를 기록했었다.
“사업을 접으면 300억은 Sunk Cost가 됩니다. 햅반 때문에 앞으로 5년 동안 적자날 금액보다 6배가 큰 금액이죠. 이노베이션 챌린지 때, 회장님께 5년만 생산을 이어가자고 설득해 보자 이겁니다.”
“Sunk Cost라....”
2010년이면 매출이 10배 가까이 증가하고, 2019년이면 매출이 5000억에 육박하는 회사의 대표 상품이 된다.
즉석 밥 하나로, 밀가루와 설탕. 그리고 식용유를 합친 시장보다 큰 시장을 하나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장동석은 윤재의 얘기에 번호를 매겨가며 열심히 메모를 했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에는 물음표를 적는 것이 보였다.
“어제도 저희가 얘기했지만, 여자들이 편해 빠져서 이젠 밥도 사먹냐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인식을 갖는 제품을 Guilty Feeling Products 라고 합니다.”
“죄의식 제품?”
“팀장님은 회사 직원이니까 햅반이 맛있어도, 주부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거든요.”
장동석이 햅반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맛과 편의성!
가족과 떨어져 살다보니, 햅반을 즐겨 먹었는데 맛도 좋고 편했던 것이다.
장동석은 입장을 바꿔 생각했고, 주부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장동석은 햅반을 좋아했지만, 자신의 아내만 해도 햅반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신판석 이장님 영상 말고, 영상 하나 더 만들면 어떨까요?”
“영상? 무슨 영상?”
“광고 콘티처럼 만들어 보자는 겁니다.”
윤재는 밤새 생각해 둔 아이디어를 아낌없이 방출했다.
경영진에게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광고 컨셉은 3가지 축으로 구상했다.
먼저, 최첨단 테크산업인 반도체처럼 무균화 설비를 갖춘 공장에서 첨단 공법으로 만드는 것이 즉석 밥이다.
둘째,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진 햅반 용기는 전자렌지로 돌려도 환경호르몬 걱정이 없는 제품이다.
셋째, 맞벌이 신혼부부를 등장시켜, 출근 때문에 바쁜 아내에게 남편이 먼저 햅반을 찾는다는 내용의 광고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주부들이 느낄 ‘죄의식’ 에 나름의 위안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개의 광고 컨셉은 이해했는데, 신혼부부 콘티를 우리가 어떻게 만드니?”
“그냥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되고, 실제 광고처럼 실사로 찍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게 가능해? 배우가 있어야 할 것 아냐?”
이노베이션 챌린지에 판을 너무 키운 게 아닌가 싶어, 장동석은 이제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12월초까지 아직 시간 있으니까, 그 부분은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음.... 실사 촬영이라!”
장동석은 신혼부부 광고 부분에 대해 노트에 적으면서, 물음표를 옆에다 표시했다.
윤재는 영화촬영차 서울로 올라간 혜진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장팀장께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얘기 나눈 것처럼, 사각형 용기도 원형 모양의 용기로 바꾸자고 제안해 보는 겁니다.”
“그 부분은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이노베이션 챌린지에서 소구할 포인트에 대해 대략 정리가 끝났다. 이제 끝으로 보너스 아이디어를 끼워 넣을 차례였다.
“팀장님 빅애플 키노트에서 ‘one more thing’ 이라는 걸 합니다.”
“스티브 홉스가 자주 한다는 원모어띵?”
“네. 백미 밥 하나뿐인 즉석 밥에, 흑미 밥을 추가하자는 제안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신판석 어른 인터뷰 영상도 집어넣는 거죠.
가격인상과 제품 다각화를 할 수 있다는 부분을 강조하면서요.“
“부라보! 그런데 이 많은 내용을 10~15분 정도에 담을 수 있겠니?”
“남은 3개월이면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 아닐까요?”
장동석이 박수를 쳤다.
윤재의 얘기만 들어도 프레젠테이션 현장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팀장님! 햅반은 반드시 성공할거라 확신합니다. 자신 있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 너 말을 듣고 보니 왠지 힘이 난다. 나는 분명 햅반이 먹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막연했거든.... 검은 쌀 햅반도 자신은 없었고. 그런데 네 얘기 듣다보니 먹구름이 완전히 걷힌 기분이다.”
장동석은 올해 이노베이션 챌린지에서도 1등을 먹은 거나 다름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 이러다 2년 연속 I.C는 내가 먹고, 오픈 이노베이션은 네가 먹는 거 아니냐?”
“하하하. 그렇게 되면 회사 역사상 최초로, 한 팀에서 연거푸 싹쓸이를 기록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하하. 생각만 해도 뿌듯하구나!”
2년 연속 이노베이션 챌린지 1등!
아직은 때가 아녔지만, 장동석을 임원의 길로 이끌어 줄 고속도로가 될 것이었다.
장팀장은 계속해서 메모를 다듬었다.
진도로 내려갈 때처럼 잠을 자지도 않았다.
뭔가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던 장팀장의 손이 멈췄다.
“그런데, 윤재야! 검은 쌀은 양념정도인데 괜히 너까지 데리고, 1박 2일 다녀온 것 같아 미안하다.”
명백히 잘못이 분명함에도, 부하에게 사과를 절대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에 비하면 장동석 팀장은 그릇이 다른 사람이었다.
“아닙니다. 팀장님! 저는 팀장님께서 지치지 않고 고민하시는 모습에서 배웁니다.”
“.... 그러니?”
“팀장님 덕에, 신판석 아재도 뵙고, 영농 후계자에 인간문화재 소리도 들었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자꾸 데려가 주세요.”
어떤 시인은 자신을 키운 것의 7할이 바람이라고 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생에서 자신을 임원의 위치까지 끌어 올렸던 동력은 7할이 장동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