햅반과 검은쌀 (1)
무더위가 극성일 때, 여름은 가을을 준비하는 법이다.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8월24일 금요일!
윤재는 장동석 팀장과 1박2일 일정으로 전라남도 진도군을 찾았다.
“녹음기랑 카메라 챙겼지?”
“네. 비디오카메라도 챙겼습니다.”
“그것까지 챙겼어?”
장동석은 하나를 말하면 열을 준비하는 윤재가 대견스러웠다.
“네. 보고서에 동영상 링크 시키면, 더 있어 보이거든요.”
“하하. 녀석! 오피스 마스터는 다르네.”
3개월 정도 남은 2001년 이노베이션 챌린지와 2002년 오픈 이노베이션.
윤재의 페레레 그룹과의 제휴에 대한 제안서와, 장동석이 진행할 햅반에 대한 제안서!
하나는 이노베이션 챌린지에, 다른 하나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나가게 될 것이었다.
현장 영업에 오래 있다 보면 혁신활동이나, 경진대회 같은 걸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렇게 된다.
대부분 직원들은 혁신활동 같은 걸,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과외활동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장동석은 나이도 이미 40이 넘었고, 이미 팀장이었지만 솔선해서 혁신활동에 참가했다.
지금도 이들은 장동석의 프로젝트를 위해 진도엘 가는 길이다.
“네가 보기엔 우리 햅반이 뭐가 문제인 것 같니?”
“햅반이요? 글쎄요!”
윤재가 햅반의 문제점을 모를리 없다.
O2 식품의 2010년대 대표 히트상품 중 하나인 햅반.
문제는 햅반이 아직까지는 히트상품이 아니라, 골칫거리 상품이란 점이었다.
장동석은 답을 알고 있을까?
완벽하게 솔루션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필코 햅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넘쳐났다.
“내가 봤을 때 우리 햅반은 충분히 히트할 가능성이 있는데 말이야.”
“그런가요? 저는 햅반 먹으려 하면 왠지 모를 거부감이 생기던데요?”
윤재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장동석의 프로젝트! 그에게 주도권을 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요즘 1주일에 3~4개는 먹는 것 같거든. 그런데 편해! 맛도 좋고.”
장동석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관계로, 햅반을 즐겨 먹었다.
그런데, 장팀장은 소위 Guilty Feeling Products 라고 불리는 상품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세탁기만 해도 1980년대에는 죄의식 상품이었다.
“예전에는 한 겨울에도 손빨래했지만, 다들 잘 만 살았다!”
뭐 이런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다.
햅반도 마찬가지!
“이젠 밥하기도 싫어서, 즉석 밥을 내놔?”
이런 불편한 인식에 맞서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장동석 팀장은 Guilty Feeling Products 라는 워딩은 모르고 있었지만, 특유의 감각으로 햅반의 본질에 접근하려 했다.
윤재는 장동석 팀장의 얘기에 적당히 추임새를 넣으며, 보조를 맞춰 줄 생각이었다.
최대한 도움을 드리되, 장팀장이 자신의 프로젝트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1인 가구의 증가와 더불어, 햅반은 자연스럽게 히트 상품이 된다.’
실제 그랬다.
대가족 체제에서 핵가족화가 가속화 되면서, 자취생, 취준생 등이 늘어났고 직장인들도 혼자 사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세계 최고의 이혼율까지 더해지며, 한국은 1인 가족이 폭증하게 된다.
“쉽게 조리할 수 있고, 맛도 나쁘지 않고, 가격도 싼데 왜 안 팔릴까?”
장동석은 윤재에게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해답을 찾고 있었다.
햅반의 주요 생산공장은 청주에 있었다.
전생에서 청주공장엔 공장장을 보좌하는 2명의 부공장장이 있었다.
윤재는 그 중 기획을 보좌하는 부공장장을 역임했었다.
누구보다 햅반을 잘 아는 사람인 것이다.
“양상무님 의견이 중요하지만, 너와 나 둘 중 한명은 연말 경진대회에 나가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햅반 살리자는 제안을 하고 싶은데, 구체적인 대안이 잘 안 떠오르네!”
윤재의 살생부에 의하면, 살려야 할 대표적 인물인 장동석!
장동석은 열의에 찬 표정으로, 다이어리에 자신의 생각을 적고 있었다.
윤재는 이번에도 장팀장을 확실히 도와줄 계획이었다.
“팀장님! 용기의 문제는 없었을까요?”
“용기?”
“네. 도시락처럼 사각형으로 생긴 햅반은, 일단 예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런가?”
장팀장이 메모를 멈추고 윤재를 바라봤다.
“네. 실제 우리가 먹는 밥그릇 모양으로 둥글게 만드는 건 어떨까요?”
순간 장동석의 눈빛이 빛났다.
“야!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계속 해 봐!”
“그리고, 거부감의 이유 중에 플라스틱 용기에 대한 거부감도 있지 않을까요?”
“플라스틱? 그거 플라스틱이 아니라 복합수지잖아?”
햅반의 용기는 갓난애들 젖병을 만드는 것과 같은 폴리프로필렌이 주 원료. 젖병을 끓여도 인체에 무해하듯, PP는 열을 가해도 인체에 해로운 환경호르몬이 배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플라스틱이라 생각한다는 거죠. 가족들에 따뜻한 밥 한 끼를 해주고 싶은 것이 우리나라 주부들 마음 아닐까요?”
“옳거니. 그런 생각을 하는 주부들에게, 안전을 어필할 필요가 있겠네. 그래 그 부분에 대해서도 환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겠어.”
장동석은 자신의 생각에, 윤재의 발언을 추가해 가며 메모를 했다.
습관적인 메모!
장동석의 장점 중 하나였다.
“사실 나는 진도 검은 쌀을 가지고 햅반 흑미밥을 출시하자고 제안할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너랑 얘기하다 보니, 뜻밖의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하하하. 그런가요? 제가 팀장님께 도움이 됐다니 기쁩니다.”
“녀석.... 너는 웃는 얼굴이 좋아. 그건 그렇고 내가 왜 흑미를 생각했는지 아니? 햅반이 대리점 사장들에게 짐이 된지 오래됐고, 수익성도 꽝이잖아.”
장동석 팀장의 말 대로였다.
잘 팔리지 않는 햅반을 대리점 사장들은 기피했다.
게다가 식당엘 가도 공기 밥 한 그릇은 1,000원.
쌀로 직접 지은 공기밥이 천원인데, 햅반을 1,000원보다 비싸게 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햅반을 받기 싫다는 대리점에는 할인을 해서 밀어내야 했고, 소매가도 올리지 못하다보니 햅반은 원가 이하로 팔리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그거야. 팔리지도 않고 돈도 안 되고. 검은 쌀 햅반을 출시하면 판매단가를 올릴 수 있지 않을까? 내 고민의 지점이 거기에 있었다.”
장동석은 검은 쌀의 장점에 대해 한동안 일장연설을 했다.
검은 쌀 햅반에 대한 장팀장의 생각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쌀 햅반은 메이저 즉석 밥이 될 수는 없는 아이템이었다.
‘잘하면 장팀장님께 좋은 선물 하나 할 수 있겠어!’
윤재는 장팀장의 검은쌀과 햅반을 연결할, 열쇠가 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때 장동석이 하품을 했다.
“으하함. 어제 상무님과 거하게 마셨더니 피곤하네. 나 눈 좀 붙여도 되니?”
“네. 팀장님! 좀 쉬십시오. 긴 여정이 될 테니까요.”
“그래. 혹시 꿈에 공자님이 나타나서 좋은 아이디어 줄 지도 모르니까. 잠시 눈 좀 붙이련다. 졸리면 말 해!”
어느새 해가 정점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노을이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하는 서쪽하늘을 보며,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던 장동석은 이내 코를 골기 시작했다.
◈ ◈ ◈
윤재는 다음날 일찍 장팀장과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를 찾았다.
검은 쌀로 유명한 진도!
진도는 특히 무농약 검은 쌀로 품질과 농가소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었다.
“섬 이라 가능한 것이지.”
“네?”
“섬 이라 육지와 떨어져 있잖아. 그래서 농약을 하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거야.”
“네. 저도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농약을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하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 농약 안한 농가에 농약 친 농가의 벌레들이 떼로 몰려 와 버리거든. 그런데 진도는 섬이라 섬사람들이 같이 농약을 안 하면 외지에서 벌레들이 몰려오기 힘드니까.”
진도군은 그렇게 검은 쌀을 재배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공기도 좋은데 에어컨 틀지 말고 창문 열고 가자!”
“그럴까요?”
윤재는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조금 습하긴 했지만 바람은 상쾌했고, 더위를 식혀주는 맛이 있었다.
5분 정도 더 이동하니 완연한 시골길이 나타났다.
그 때였다.
“에헤 에헤헤 에헤야! 에헤에 어허허야!”
골목길에서 상여를 멘 일군의 상여꾼들이 나오고 있었다.
선소리꾼의 선창을 따라, 상여꾼들이 다시래기를 진행하며 한발 한발 움직이고 있었다.
엄숙한 듯 하면서도 밝고, 그렇다고 경망스럽지 않은 가운데 슬픔이 공존하는 묘한 광경이었다.
상여 지나가는 걸 지켜보느라 자연스레 윤재의 차도 속도를 늦춰야 했다.
“아이고 아까운 양반이 가셨구만.”
“그래도 그만하면 호상이제라!”
“긍게 말이시. 90넘게 사셨응게.”
동네 아주머니들의 얘기도 들려왔다.
“누가 돌아가셨나요?”
윤재가 길가의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잉. 외지에서 왔소?”
“네. 소포리 이장님과 약속이 돼 있어서요.”
“그요. 저 짝으로 가시면 될 거요.”
시골 아주머니가 인심 좋은 표정으로 갈 길을 알려줬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분이 누구세요?”
“잉. 조창조 명창이라고. 우리 진도가 나은 5대 명창 중 한 분이 그저께 돌아가셨소예.”
“아! 네.”
만가. 진도아리랑. 육자배기. 씻김굿 등으로 유명한 전남 진도.
소공례 여사. 박병천 명창 등의 진도출신 인간문화재와 함께, 진도를 빛낸 명창 중의 한명인 조창조 명창.
이승과 결별하는 길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늙어가는 농어촌.
진도도 예외일 수 없었다.
시골 상여꾼들에 불과한 사람들의 만가.
‘이토록 구슬프고 애달픈 소리일 줄이야!’
윤재는 진도의 필부들이 불러대는 만가를 들으며,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 ◈ ◈
“이 죽일 놈의 피들! 징허게도 많이 생겨부렀네.”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이장 신판석 어르신의 논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때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신판석 이장님은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피(잡풀)를 뽑고 있었다.
“신판석 어르신 계십니까?”
장동석 팀장이 신판석 이장을 불렀다.
“나를 찾아 온 그대들은 누구요?”
“네. 어르신 며칠 전 연락드린 O2 회사의 장동석입니다.”
“잉. 광주에서 온 사람들이구만!”
“네. 어르신!”
장동석과 윤재가 꾸벅 인사를 올렸다.
“쫌메만 기다리쇼. 거진 끝나강께 피 마저 뽑고, 같이 점심이나 묵음서 얘길 허십시다.”
“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신판석 어르신은 덧소매를 가다듬더니 다시 피 뽑기를 시작했다.
“어이! 자네들. 걍 일만 할랑가? 조창조 어르신도 가부렀는디 우리도 소리로 어르신을 추모혀야제.”
“말이라고요 형님! 우리도 육자배기라도 뽑아서 어르신을 추모허십시다.”
신판석 이장의 얘기에 동네 어르신들이 얘기를 주고받더니, 이내 구성진 가락을 쏟아냈다.
“거나~~ 헤~~ 사람이 살 면은 몇 백 년이나 사드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서 남녀노소가 있느냐~~ 살아 있을 때 각자 마음껏 놀거나~~~~~ 헤~~~~“
“거나~~ 헤~~ 가지는 말어야 할 사람은 이리 가는데~~~ 이놈의 때려죽일 피들은 어찌 이리 지천이냐~~ 한꺼번에 때려잡고 속 편히 놀거나~~~ 헤~~~”
그늘 하나 없는 섬의 들판.
장구도 북도 없는 들판.
한 노인이 호미로 괭이를 치며 박자를 탔고, 여남은 명의 노인들이 신판석과 함께 육자배기를 흐드러지게 불렀다.
‘원래 있던 가사와 즉흥 가사를 섞어 부르는 것 같은데, 라임과 운율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구나!’
윤재는 어른들의 육자배기에 감탄했다.
좀 전의 상여소리도 그렇고, 이곳 농부들의 육자배기도 놀라웠다.
동네 필부들마저 모두 명창이라 느껴졌다.
윤재는 자신도 모르게 장단에 몸이 반응하는 것을 보며 놀랬다.
‘꺽고 트는 것을 절제하면서도 투박하게 부르시지만 내공이 느껴지는 소리다!’
한 여름의 노동의 고통과, 존경하던 동네 어르신을 보냈다는 슬픔을 잊게 할 만큼 멋드러진 가락이었다.
“얼씨구나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저어얼씨이이구!”
느려졌다 빨라졌다, 휘몰아치다 잦다들던 어르신들의 육자배기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윤재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장동석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고생들 혔네. 밥 묵고 쪼금만 더 하세잉.”
“알았소. 성님!”
신판석 어르신이 논에서 걸어 나오고 계셨다.
◈ ◈ ◈
“언제 저까정 가서 광주리를 가져 올꼬?”
논에서 나온 신판석 이장.
100미터 정도 떨어진 산비탈을 보다가 윤재를 봤다.
딱 봐도 제일 젊은 윤재가 적임자라는 노골적인 신호였다.
“어르신! 저기 산비탈 어디에 광주리 놔두셨어요?”
“잉. 저기 나무 보이제? 그 밑에 냇가에 잘 놔뒀응게 싸게 다녀오소.”
“하하하. 잽싸게 다녀오겠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윤재를 마치 손자 다루듯 부려먹는, 신판석이었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 노인양반이었다.
다들 하기 싫어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
그리고 그에 걸맞는 성과까지 따라 준다면!
윤재는 인생 성공의 지름길인 이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신판석 어른께 잘 보이기 위해, 윤재는 집중력을 끌어 올려 신속하게 산비탈로 이동했다.
나무 밑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그 곳에 은철 양동이에 잘 포장된 점심식사가 있었다.
‘나름 더위를 피하기 위한 방법인가?’
윤재가 양동이 보자기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끼루룩! 끼루룩!”
어딘지 비명에 가까운 새소리가 들렸다.
청력이 좋아진 윤재가 집중력을 끌어 올리자, 새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들려왔다.
‘일단 어르신들 주린 배부터 채우게 하고 다시 오자!’
윤재는 보자기를 들고 신속하게 이동했다.
“워따! 젊음이 좋긴 좋다. 그 먼데를 벌써 갔다 왔어?”
“긍게 말이시. 김가놈 보냈으면 세월아 네월아 했을 것인디 말이여.”
“광주서 온 두 젊은이도 이리 앉게나. 같이 드세나!”
60줄 언저리의 농민들에 비하면, 40초입의 장동석도 젊은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성스레 준비한 쌈 채소에 검은 쌀로 지은 밥. 김치. 된장 등의 반찬이 계속 나왔다.
“어르신들. 장팀장님! 먼저 식사하고 계세요. 저는 잠시만 다녀오겠습니다.”
“왜? 어디 가게?”
“잠깐이면 됩니다. 소변이 급해서요.”
“크헐헐. 젊음이 좋아. 순환도 잘 되는 갑구만. 에요 징헌놈의 팔자. 나도 소피를 시원하게 볼 수 있으면 억만금이라도 쓰겄는디...”
“억만금은 있고?”
“인자 쌀 팔아서 벌어야제!”
“아나 떼돈 벌겄다!”
어른들은 그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농사일의 고단함을 잊는 모양이었다.
윤재는 양해를 구하고 신속하게 새소리가 났던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노란색의 새 한 마리가 울부짖고 있었다. 방울새였다.
“어떤 인간이 여기에다..쯧! 쯧!”
윤재가 혀를 차며 무릎을 구부렸다.
새소리가 더 구슬프게 들렸다.
새의 발 하나가 올무에 걸려 있었다.
방울새의 울부짖음이 계속 됐다.
‘울음소리가 아까 들은 상여소리 같기도 하고, 어르신들 육자배기 타령 같기도 하구나!’
윤재는 올무를 보며 생각했다.
‘이를 어쩐다?’
얇은 철사줄로 조여진 올무.
이미 조여질 대로 조여진 철사줄!
어설프게 끊어내려 하면 방울새의 통증이 가중될 것 같았다.
순간 윤재는 지난 휴가 때 얻은 마멋(marmot)의 능력이 생각났다.
일단 윤재는 새 다리와 상관없는 쪽 철사를 앞니로 끊어봤다.
철사줄이 실처럼 뚝딱 끊어졌다.
테스트를 마친 윤재가 방울새의 발에 걸려 있는 올무를 마저 끊어 버렸다.
“끼루룩! 끼루룩!”
방울새가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몇 발자국 걷더니, 이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끼루룩! 끼루룩!”
방울새는 윤재의 머리 위를 뱅뱅 돌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조창조(鳥蒼鳥) 어르신이 새로 환생이라도 한 것인가?’
윤재는 멀어져 가는 방울새를 보며 생각했다.
어느새 방울새가 점처럼 작아지나 싶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윤재는 방울새를 보며 푸른눈을 가진 여인을 떠올렸다.
목소리가 방울새 같기도 했고, 꾀꼬리 같기도 했던 허스키 보이스의 소유자.
얼마 전 몽블랑 트래킹을 함께 한 에밀리에 캠벨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한국의 회한과 남도 소리의 느낌이 묻어 있던 에밀리의 보이스.
‘잘 살고 있을까? 올리버와는 진도가 조금 나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