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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60화 (60/196)

놀면 뭐 하니?

“형! 어떻게 오성전자도 10% 먹었어! 현재까지 승률 100%야!”

폭염이 절정이던 8월초, 퇴근 후에 만난 창진이는 흥분하고 있었다. 밥을 먹고 팥빙수를 먹으며 얘길 나눴다.

“그냥 야성적인 본능이라고 해 두자!”

“말도 안 돼! 야성적 본능으로 5억을 태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솔직히 얘기해 봐! 우리 사이에 못할 말이 어디 있어?”

“내기가 끝나면 얘기해 주려고 했다만, 네가 정 듣고 싶다면야.”

“신난다. 말해봐! 형! 말해봐!”

요즘 창진이는 회사 생활이 신이 났다.

20억을 맡겼고 중간중간 매매를 통해 수수료를 벌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에도 우상향할 주식을 찾아내면 되는 거야!”

“형님! 그런 하나 마나한 소리를....”

아직까지 창진은 전생의 창진에서 거의 발전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상태였다.

“너처럼 지점장 갈굼이 두려워 동전주 손대고, 이거 저거 샀다 팔았다 해서는 수익은커녕 까먹을 가능성이 더 높아!”

“....”

떠벌이 창진은 그 대목에서 말이 없었다. 입사한지 어느새 7개월이 넘었지만 빚만 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을 포함해 친척들까지 어느새 3억 넘게 빌린 돈!

그 중 이미 4000만원 가까이를 까먹은 상태였다.

게다가 BMW 할부금마저 창진을 압박했다.

모두 동전 주에 손댄 결과였다.

윤재의 20억 예탁과 수수료 수입이 없다면 길거리에 나앉을 팔자였다.

“창진아 내 말 들어라. 그러면 너는 한국에서 알아주는 투자가가 될 수 있어.”

“정말?”

“고객들에게 내가 찍어 준 우량주들을 집중적으로 권유해 봐. 그리고 수시로 사고 파는 것 자제하고.”

창진은 이제 누가 자신의 동아줄인지 확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창진은 카페의 상호가 찍혀 있는 냅킨과 볼펜을 준비했다.

“그래! 좋은 자세다. 메모한 뒤 확실하게 지켜라!”

창진의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성전자는 반도체, 핸드폰, 디스플레이, 생활가전의 네 마리 말이 이끈다. 머지않아 세계를 호령하는 회사가 될 거야. 너의 제 1번 말로 이용해.”

“1번 말. 오성전자!”

창진이 냅킨에 정성들여 메모를 시작했다.

“엔시화학! 치약 칫솔 만드는 회사로 알고 있지? 엔시화학에서 빅애플에 노트북 배터리 공급하는 거 알고 있니?”

“엔시화학이요? 빅애플에 공급한 배터리 불량 발생해서, 리콜하고 난리난 거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그건 나도 알아. 엔시화학을 치약 비누 만들고, ABS수지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배터리 전문 회사라고 생각해 봐!”

“오성SDI같은?”

“그래. 토요타가 프리우스라는 하이브리드 차로 미래차를 선점하고 있어. 그런데 앞으로 전기차가 굴러다니게 되면 배터리 시장이 얼마나 커질까?”

“아하! 왠지 그럴싸한 얘긴데?”

“그래. 엔시화학을 니 2번 마로 정해라.”

창진은 윤재의 얘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에헷! 뭔가 시야가 트이는 기분이야. 형! 어쩜 좋아. 개안하는 기분이라고!”

윤재는 그렇게 오성전자, 엔시화학, 포스코, KS텔레콤, 형제중공업 5개 회사를 포트폴리오로 제시해 줬다.

“가장 중요한 건 지나치게 자주 사고 팔지 않는 거야. 그렇게 해서 수익을 올려주면 잔챙이들이 아니라 큰손들이 네게 돈을 맡길 거다.”

전에는 샀다 팔았다를 반복해, 수수료 약정을 채우는데 혈안이 돼 있던 창진이었다. 하지만 윤재의 20억이 기본 수수료를 채워준 덕에 이젠 제법 마음의 안정을 찾은 상태였다.

“투자자들에겐 돈 벌어주는 딜러가 갑이니까! 네가 관리하는 약정고가 지금 얼마냐?”

“24억이요...”

“거기서 내 돈 빼고, 니가 차명으로 굴리는 돈 빼면?”

“일... 일억이요.”

특별히 놀랄만한 소식도 아녔다.

주변에 돈 많은 부자들이 없는 증권맨들은 대부분 창진이처럼 초년병 시절을 견뎌내야 했다.

“1~2천만원 짜리 잔챙이 계좌들로, 열심히 매매해서 수수료 수입 맞출 생각하지 말고. 1~2억짜리 투자자들의 돈을 받는 다는 마음으로 하라고!”

“알았어. 형! 명심할게.”

윤재는 자신의 미래 파트너 중 1번으로 창진을 키울 생각이었다. 향후 20년의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정리해 놨기 때문에 창진이 증권계의 스타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리고 9월까지는 고객들에게 방망이 짧게 잡으라고 안내드려. 너도 투자하는데 유의하고.”

“방망이 짧게 잡으라고? 고객들이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야. 중국경제 버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는 얘기와, 조지 부시의 집권으로 중동지역 정세가 좋지 않다는 얘기를 하면 될거다. 증권계 격언 쉬는 것도 투자라는 말 잘 알지?”

“그럼 나도 알지. 나 이래뵈도 대진증권 금남로 지점의 에이스라니까!”

5가지 대형주 모두 주도주가 될 종목이었다. 짧은 매매주기로 Risk까지 관리해 주면 창진에게 큰돈들이 몰리게 될 것이었다.

“다음달 정도에 너한테 60억 굴리자고 제안할 날이 오니까, 그 때까지 다섯 개 종목 위주로 굴리면서 존버해라.”

“존버?”

“존나게 버티라고....”

“명심하겠습니다. 존버하겠습니다! 윤재 형님!”

창진이 과장된 표정으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그런 창진을 보며 윤재는 생각했다.

‘창진아! 너도 나도. 이번 생은 훨씬 더 나은 삶을 살아보자! 우린 할 수 있다!’

◈          ◈          ◈

창진과 헤어지자 마자, 집으로 가는 길에 윤재는 집 근처에 있는 부동산을 찾았다.

“요 근처 집들이야 다들 쓰러져 가는 집들하고, 철학관들 밖에 없어서...”

“철학관 시세가 얼마나 하죠?”

“글쎄! 요즘 뭐 거래가 있기나 해야지.”

“사장님이 전문가신데 대충 시세는 아실 거 아네요.”

광주천을 사이에 두고 학동과 방림동 일대에는 철학관들이 많이 자리해 있었다. 일종의 점집들의 클러스터였다.

“아마 4~5천만원? 그 정도나 할 거야.”

“학동이나 방림동 철학관 쪽에 물건 나온 거 있으면 다섯 채만 사주세요.”

“다. 다섯채?”

다 쓰러져가는 철학관을 5채나 사겠다는 말에, 부동산 사장의 앉은 자세가 달라졌다.

윤재의 나이가 어렸기에 소파에 기댄 채, 건성으로 답하던 아저씨가 자세를 고쳐 앉은 것이다.

“네. 2억이면 되겠죠?”

“2억? 한 채에 5000만원이면 다섯 채면 2억5천이지. 어떻게 2억이 되나 이 사람아!”

“사장님! 마트 가서 번들로 물건 사면 디스카운트 해주죠?”

“그. 그렇지!”

“저도 다섯채 한꺼번에 사니까 그 정도 디스카운트는 해 주셔야죠. 그 정도 능력 있으시잖아요.”

“그. 그것이...”

“못하시겠다면 다른 부동산 가보겠습니다.”

부동산 아저씨 입장에서 괜찮은 장사였다. 시세가 5천까지 가지는 않았기에 물건을 쉽게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것이다.

“아냐. 아냐. 내가 알아볼게!”

“따로 떨어진 곳으로 사지 마시고, 붙어있는 걸로 사주세요. 도로에 접한 것 하나에 뒷 부지들도 괜찮습니다.”

“알았네. 내 한번 알아보겠네.”

아저씨의 표정으로 봐서, 매물로 나와 있는 물건들이 제법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한은 언제까지로 보고 있나?”

“2개월이면 가능하겠죠?”

“헛참.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는 것도 아니고... 두 달 이라니!”

“못 하실 것 같으면 다른 부동산 알아 보구요.”

“아냐. 내가 언제 안 한다고 그랬나?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네.”

“그럼 사장님만 믿겠습니다.”

윤재는 학동 부동산을 나왔다.

지금은 다 쓰러져가는 동네지만, 학동, 방림동 일대는 10년 정도만 지나면 재개발 이슈가 불거지며 땅값이 아주 크게 오른다.

학동이나 방림동 땅은 회사에서 짤릴 운명인 동재를 위한 비즈니스로 제격이었다.

게다가 비즈니스를 끝내면 재개발 조합이나 건설사에 팔거나, 아파트를 받을 수 있어 꿩먹고 알먹고가 가능한 땅이었다.

◈          ◈          ◈

“미모는 여전하시군요.”

“뜬금없이 나타난 이유가 제 외모 칭찬하자는 건 아닐 테고?”

“하하하. 수애씨 눈치가 보통 눈치가 아니군요?”

윤재는 오랜만에 안수애를 만났다. 1월 눈폭탄이 터졌을 때 만난 뒤 처음이니까, 6개월 정도 지나서야 그녀를 보게 된 것이다.

“수작 걸지 말고 말해 봐요. 왜 보자고 한 거에요?”

다시 볼 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광주 NBC의 안수애 아나운서를 만난 것은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과외 비즈니스를 구상하고 있는 윤재.

잘만 풀리면 안수애가 윤재의 신사업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었다.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참 나 기가 막혀서! 이렇게 불쑥 나타나 도와 달라고 하면, 제가 덜컥 도와줄 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뭐. 오늘 나오신 걸로 봐서 확률은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혀서...”

안수애는 그런 윤재의 자신감이 싫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 역시 윤재가 연수원에서 버스기사를 구조한 영상을 봤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윤재였다.

하지만 눈폭탄 사건을 겪고, 버스기사 구조 사건 등을 보며 윤재를 자신의 이상형 정도로 생각하게 된 상태였다.

‘윤재씨 정도 되는 남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싶다!’

언제부턴가 안수애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고, 돈만 보고 만남을 유지했던 건설사 사장과의 만남도 정리한 상태였다.

“어디 부탁이 뭔지 들어나 볼까요? 듣고 나서 결정하죠.”

“수애씨가 진행하는 주말 뉴스 잘 보고 있습니다.”

광주NBC의 간판인지라 뉴스까지 맡게 된 안수애.

“그래서요?”

“언제 저를 한 번 다뤄 주세요.”

“뉴스가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세요?”

“제가 그렇게 실없는 사람이 아니란 걸, 수애씨도 잘 아실 텐데요?”

그렇긴 했다.

그녀에게 윤재의 존재는 여러모로 특이한 존재였다.

우선 스물일곱의 나이에 베스트셀러를 세권이나 출판한 사람이었고, 그 책들을 해외에서도 출판을 한 인물이 윤재였다.

무엇보다 자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첫 번째 남자가 김윤재였다.

“당장 급한 일은 아닙니다. 나중에 서로 괜찮다면 한 번 부탁 드리죠!”

“서로 괜찮다?”

“네. 수애씨가 새로 진행하게 된 ‘우리동네 특공대!’에 제가 괜찮은 소재를 제공하게 될지 누가 압니까?”

지금까지 안수애의 행동으로 봤을 때, 자신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직 윤재에 대한 호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뭐! 그 때 가서 보시죠!”

역시나 냉정한 거절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윤재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또 무슨 할 말이 있나요?”

“요즘 이직 준비 중인가요?”

“그. 그걸 어떻게 알았죠?”

“어떻게 알긴요. 수애씨 얼굴에 쓰여 있는데... ‘나 이직 준비 중이다!’ 라고!”

그래서 안 게 아니라, 전생에서 안수애는 광주NBC 찍고 서울로 진출해 전국구 스타가 된다.

“세상에! 아무도 모르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윤재씨가 그걸 대체 어떻게!”

그녀는 안 그래도 큰 눈을 치켜뜨고 입을 틀어막았다.

“제가 좀 신기가 있습니다. 하하하하!”

윤재는 은근 기분이 좋았다.

안수애가 미끼를 덥석 물었기 때문이었다.

“여기도 나쁘지 않을 텐데, 왜 굳이 이직을 준비하는 거죠?”

“글쎄요....”

안수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윤재를 바라봤다.

“어떤 남자가 오래 전에 그러더군요.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라 싫다고?”

“헐....”

1월에 눈 폭탄 사건을 안수애에게 제보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새로운 비즈니스를 안수애가 방송을 통해 홍보해 준다면, 생각보다 쉽게 현금을 쓸어 담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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