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은 밀당으로 완성된다 (3)
2001년 7월 13일 금요일 오후 3시 30분!
광주와 함평노선에 있는 송산유원지에 행사용 천막 4동과, 캠핑용 타프 2동이 설치됐다.
윤재는 아침부터 송산유원지로 바로 출근해 행사를 준비했다.
유원지 인근 식당에 맡긴 통돼지 바비큐와 음식, 음료수와 술 등이 모두 준비돼 있었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윤재의 작은 엄마가, 식사 관련된 일을 진두지휘 했다.
그리고 행사 보조요원으로 C&S 서비스팀 6명이 참석해, 윤재와 작은 엄마를 돕고 있었다.
서비스팀 여직원들은 일당을 1.5배로 책정해준 것 보다, 윤재와 영업3팀이 진행하는 행사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더 기쁘게 생각했다.
평소 서비스팀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준 윤재와 장동석 팀장의 힘이었다.
사장들 안내와 행사 진행은 서비스팀이 도왔고, 힘쓰는 일은 모두 영업3팀 직원들의 몫이었다.
“다행히 오늘 날씨가 그래도 선선한 편이네요. 이제 10분 정도 지나면 사장님들과 장팀장님, 그리고 상무님 도착하실 겁니다.”
“네. 각자 위치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서비스팀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축구장이라고 해 봤자 잡초가 듬성듬성 난 흙 구장이었지만 축구장이 하나 있었고, 족구장도 2면 정도 준비돼 있었다.
오후 4시가 가까워지자 거래처 사장님들이 한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과장! 차대리~ 오랜만이네.”
“사장님 그간 잘 계셨죠?”
영업사원들이 2년 주기로 담당지역을 변경하다 보니, 오랜만에 만나는 사장님들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직원들과 사장들, 그리고 사장들끼리 인사를 하며 반가워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사장님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뭐야? 서비스팀 팀장도 와 있었어? 여기서 만나니 반갑구먼!”
서비스팀 직원들이 사장들을 천막으로 안내했다.
얼마 안 돼 양광수 상무와 장동석 팀장도 유원지에 도착했다.
양광수 상무가 영업3팀 거래처와 함께하는 친목도모 행사에 대해 축사를 했다. 대기업 임원답게 정형화된 코멘트가 이어졌다.
이어서 영업3팀 대리점 사장 중 원로 사장의 대표격인 손용진 사장이 답사를 했다.
“회사와 30년 넘게 거래해 왔는데, 대리점 사장들이 이렇게 모인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양상무님과, 저희의 영원한 동반자 장동석 팀장님!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기획해 준 김윤재 사원에게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참석자들 모두가 열심히 박수를 쳤다.
박수가 가라앉을 즈음 손용진 사장이 추가 멘트를 하고 답사를 마쳤다.
행사 진행 총괄을 맡은 윤재가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럼 앞으로 2시간 반 정도 소프트볼과 족구를 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들과 직원들께서는 앞에 있는 보드판의 조를 확인하시고, 조별 천막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참석자들은 ‘고객’ 조와 ‘사랑’ 조로 구분돼 각자의 조 이름이 적혀있는 천막으로 이동했다.
◈ ◈ ◈
30대 후반의 사장부터 60이 넘은 사장들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대리점 사장들.
처음으로 다 같이 모여 체육행사를 하게 된 사람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신나게 즐겼다.
특히, 족구와 소프트볼을 할 때 누군가가 엉뚱한 실수라도 하면, 유원지가 떠나갈 듯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게임 진행 요원인 관계로, 운동에 참석하지 않은 윤재는 바쁘게 움직였다.
음료수나 막걸리 등을 나르기도 하고, 과일과 간식 등을 전달하는 걸 지휘했다.
중간 중간 차명수 대리와 오석진 과장을 통해 경기결과도 기록해야 했다.
윤재가 막걸리와 두부김치 안주를 가지러, 주방역할을 하고 있는 천막으로 갔을 때였다.
“더운 날 왔다 갔다 고생한다. 너도 일만 하지 말고 좀 먹으면서 해!”
작은 엄마가 윤재의 입에 두부김치를 한 젓가락 먹여줬다.
“음! 맛있네요. 역시 작은 엄마 음식 솜씨는 짱이에요!”
“막걸리도 한 사발 해라~”
“네. 좋지요!”
윤재는 작은 엄마가 따라 준 막걸리를 들이켰다.
그렇지 않아도 갈증이 나던 참에 꿀맛 막걸리였다.
“다 큰 어른들이 저리 재미날까? 신나게들 뛰어 노시네?”
조카가 기획한 행사를 사장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작은 엄마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항상 당근과 채찍의 관계로만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술 마시는 정도인데 이렇게 다 같이 모이니까 좋으신 거죠.”
“당근과 채찍?”
“네. 회사에서 물건 얼마 팔아라! 그러면 장려금 얼마 더 줄게. 아니면 왜 이번 달은 이것 밖에 못 팔았느냐? 뭐 이런 얘기 주고받다가 팀으로 뭉쳐 함께 뛰고 있으니까요!”
작은 엄마와 더 이상 얘기를 나눌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윤재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 ◈ ◈
저녁 7시가 되자, 체육행사가 모두 끝났다.
어느덧 해는 서쪽 산 너머로 모습을 감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황룡강에 대충 얼굴과 손발을 씻은 사람들이 천막 주변으로 몰려 들었다.
통돼지 바비큐와 육개장을 중심으로 각종 반찬과 음식들이 제공됐고, 음식을 안주 삼아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자! 사장님들, 그리고 선배님들 어떻게 재미 있으셨습니까?”
“겁나게 재밌어부렀네!”
“네!”
참석자들의 얼굴이 아주 밝아 보였다.
“술 드시기 전에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 경품 추첨이 있겠습니다.”
“경품이 있었어?”
사장들의 놀란 눈들이 윤재에게 집중됐다.
“C&S 팀장님께서 들고 계시는 저 보드 판 보이시죠? 아마 어렸을 적 집 앞 문방구나 가게에서 한 번씩은 해보셨을 겁니다. 이름 하여 추억의 뽑기 입니다!”
윤재가 서비스 팀장을 가리키자, 이번에는 사장들의 시선이 CS팀장을 향했다.
치마와 반팔 제복을 입은 여팀장은 보드 판을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반으로 접힌 하드보드지가 스태플러 심으로 박혀 있었다.
하얀색 뽑기 보드지와 빨간색 보드지 2가지 종류였는데, 자세히 보면 빨간색 보드지들이 이어지며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 뽑기는 꽝이 없습니다. 고객 조 사장님부터 차례대로 나오셔서 뽑기를 뽑으시면 되겠네요.”
윤재의 진행에 따라 첫 번째 사장님이 앞으로 나왔다.
대략 40개 정도 달려 있는 뽑기 중의 하나를 사장님이 뜯었다.
윤재가 그 종이를 넘겨받아 뽑기 종이를 펼쳤다.
“와! 위니야에서 나온 김치냉장고를 뽑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윤재의 얘기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진짜 김치냉장고를 준다고?”
사람들이 술렁거림을 윤재가 정확한 멘트로 진압했다.
“저희가 상무님까지 모셔놓고, 허튼 소리 하겠습니까? 오늘 참석하신 사장님들은 모두 경품 받으실 수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다른 사장님이 또 뽑기를 뽑았다.
개그 프로나, 토그쇼 사회자가 생각날 정도로 부드러운 진행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산동물산 김동현 사장님께서는 코베야 캠핑용품 세트를 뽑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윤재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니, 거기에는 텐트, 타프, 가스 등, 아이스박스, 버너 등으로 구성된 캠핑용품 세트가 전시돼 있었다.
“진짜 저걸 준다고? 와! 저거 전시된 것 보고 설마 오늘 경품으로 주나 했는데, 진짜 저걸 주는 거였네.”
김동현 사장이 복권이라도 맞은 것처럼 좋아했다.
“네. 캠핑용품 가지고 사모님이랑 애들 데리고 꼭 캠핑 다녀오십시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사장님들께서 오늘 뽑으신 경품들은 모두 택배로 배송될 겁니다.”
그런 식으로 20명 조금 넘는 사장들은 꽝 없는 경품을 뽑았다.
김치 냉장고, 캠핑용품 세트, 골프클럽 세트 등 대략 1백만원 전후의 금액대로 구성된 경품들!
모두 사장들의 호응이 기막히게 좋았다.
원래 선물이란 게 자기 돈 주고 사기는 애매한 걸, 누군가 사주면 효과가 배가 되는 법이었다.
보드 판에 한 장 한 장 스태이플러로 찍어서 만든 추억의 뽑기 판!
2,000년 전후해서 히트하기 시작한 상품 위주로 구성된 경품들.
나이 먹은 사람들도 부담가지 않게 준비한 운동.
그리고 천막부터 시작해 음식준비까지!
행사를 도와주는 늘씬한 미녀들까지...
뭐 하나 흠잡을 것 없는 준비에, 거래처 사장들의 만족도가 하늘을 찔렀다.
밤 9시가 훌쩍 넘자, 장동석 팀장이 사람들 앞으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1박 2일로 함께 하고 싶습니다만, 조금 아쉬울 때 헤어지라는 말도 있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신 사장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는 이런 자리를 더 자주 만들도록 해 보겠습니다.”
적당히 술에 취해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의 사장들이 장팀장 눈앞에 보였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회사와 함께 성장해 나갔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귀가길에 올랐다.
회사에서 부른 대리운전 기사들이 도착해서 대기 중이었다.
◈ ◈ ◈
귀가하고 있는 양광수 상무의 차량에는 장동석이 함께했다.
“언젠가 김윤재 그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
“어떤 얘기 말씀이십니까?”
“면접 볼 때였던가? 자기가 문무를 겸비했다고 그랬었지 아마?”
백화점에서 장동석의 추천으로, O2 계약직 면접을 볼 때 윤재가 했던 얘기였다.
“필드에서 뛰는 영업도 잘 하고, 기획력도 좋고..... 자기 말대로 문무를 겸비한 친구 맞구만!”
“그렇습니다. 상무님! 여러 모로 기특한 친구죠!”
“장팀장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윤재 그 친구 나이 때 저런 열정과 일머리가 있었나 싶더군!”
“20대의 제 모습과 비교해 봐도, 제가 윤재보다 더 잘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군요.”
생각해 보면 번거롭기 짝이 없는 준비들이었다.
그런 일들을 스스로 제안하고, 군소리 없이 준비해 준 윤재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번 행사에 얼마 썼다고 했지?”
“3,000만 원 정도 집행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영업1팀에서 하겠다는 3분기 인센티브 안보다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구만.”
“그렇습니다. 섣부른 예측이지만, 효과는 오늘 체육행사가 훨씬 더 좋을 겁니다.”
장동석은 자신이 있었다.
지난 1년 가까이 갈고 닦아 놓은, 영업3팀이라는 밭은 본격적인 수확의 계절로 접어든 상태였다.
“상무님! 어설픈 장려금이나 인센티브 같은 밀어내기는, 할인에 대한 기대감만 심어줘서 장기적으로 보면 효과도 떨어지는 법입니다.”
“그건 그래. 인센티브 주는 밀어내기는 마약과도 같은 거야!”
1만원 정가를 자꾸 8,000원에 판매하면 사람들은 8,000원을 정상가격이라 생각하게 돼 버린다. 장동석은 그 지점을 지적한 것이다.
“머리는 김윤재처럼 써야 해! 영업1팀, 2팀, 목포, 순천, 전북, 익산..... 하나 같이 5% ~ 15%까지 장려금 집행하겠다고 품의서 올렸더군! 한심한 놈들 같으니라고!”
양광수는 혀를 찼다.
내년 봄이 되면 나머지 팀들도, 영업3팀의 체육행사를 흉내 낸 품의서를 올릴 게 뻔했다.
같은 일이라도 먼저 하는 게 중요한데, 윤재의 체육행사와 경품행사 제안이 주효했던 것도 남들보다 먼저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장동석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스스로 잘 하는 것으로 어필해야지, 남을 깍아 내리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짓을 장동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 ◈ ◈
“작은 엄마! 수고하셨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이제 그만 들어가세요!”
쉬는 날 자신을 도와주러 온 작은 엄마에게 콜택시를 불러드렸다.
“오늘 수고비랑, 거래처 사장들 기념품 값은 회사에서 송금해 드릴 겁니다.”
“그래. 너도 수고했다. 언제 이거 다 치울래?”
“업체에서 와서 다 가져가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광주 시내 대형 예식장에서 쿠키나, 케익, 과자 등을 만드는 일을 하시는 작은 엄마!
오늘 행사에 참석한 사장들은 작은 엄마가 만드신 쿠키세트를, 기념품으로 가지고 갔다.
작은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넉넉지 않은 작은집 형편을 고려해, 자신에게 일거리를 주고 자신이 만든 쿠키를 답례품으로 준비했다는 것을.
이젠 아침부터 송산유원지로 나와 밤늦게 행사진행을 도운 서비스팀을 퇴근 시켜야 했다.
“팀장님!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회사 잘 되자고 하는 일인데요! 그리고 행사 보면서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여기 팀원들 일당입니다. 15만원씩 담았습니다.”
“예? 12만원으로 들었는데....”
최초 서비스팀과 얘기한 금액의 하루 일당의 1.5배인 12만원!
“장동석 팀장께서 3만원씩 더 챙겨주셨습니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CS팀장의 얼굴에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스쳐지나갔다.
“오늘 뽑기 보드판 너무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추억의 뽑기판을 허접하게 만들었으면, 경품추첨 행사가 시시해 보일수도 있었다.
서비스팀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뽑기판도 오늘 행사에서 크게 한 몫 한 것이다.
“호호호. 아네요. 윤재님도 오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서비스팀도 자신들의 차량으로 퇴근길에 올랐다.
어느새 행사 용역 준 업체에서, 천막과 간이의자, 앰프 등 행사 비품을 모두 철거한 상태였다.
“윤재야! 우리도 가자!”
“네. 과장님! 다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우리가 뭐 고생했냐? 네가 제일 고생했지!”
오석진 과장이 윤재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주말은 푹 쉬고, 다음 주에 우리 팀만 뒷풀이 하자고 팀장님께 건의 드려야겠다!”
밤 11시가 거의 다 돼서야, 송산유원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영업3팀은 이미 선순환 궤도에 진입한 상태였는데, 오늘의 행사가 더욱 가속도를 붙게 할 것이었다.
‘갑을 관계인 영업팀 대 거래처의 관계를 넘어, 함께하는 파트너가 됐다. 앞으로 거래처 사장들의 로열티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밀어내기가 필요할 때 우리 팀 사장들은 기꺼이 정책을 이행해 줄 것이다.’
몸은 피곤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맑았다.
‘그리고 CS서비스 호남팀도 교육을 함께하면서 더 성장하게 될 것이다. Push전략을 실행해 줄 사장들! 그리고 Pull전략의 첨병이 될 서비스팀! 모두 영업3팀을 전국 최고수준으로 만들어 줄 강력한 우군이 될 거야!’
최고의 영업사원이 되는 것!
그리고 최고의 스텝부서 직원이 되는 것!
첫 번째 단계에서 윤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어느새 윤재는 국내 영업에서 그를 따라 올 사람이 없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