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은 밀당으로 완성된다 (2)
“팀장님! 점심 먹고 복귀했습니다.”
윤재는 장팀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 윤재! 어서 와라! 뭐 잘 아는 사이니까 인사는 필요 없겠지?”
“크하하. 반갑습니다. 김윤재씨!”
사내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윤재도 남자의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황.성.호.씨!”
장팀장의 방에 있던 남자는 다름 아닌 황성호였다.
그의 양쪽 관자놀이는 아직도 손가락 마디 두께로 눌려 있었다.
“동기 전체 1위 김윤재 사원과 같이, 광주에서 일하게 됐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눈앞에 황성호의 비아냥거리는 얼굴이 있었다.
맘 같아서는 인중을 치고 싶었다.
‘게임도 안 되는 자식이? 하여튼 광주에 잘 왔다. 너는 여기 있는 동안 나한테 죽는다!’
광주 영업1팀으로 발령받은 황성호.
최동식 과장의 후임 인사와 3각 트레이드로 광주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루키들 두 명이 힘 합쳐서 우리 부문을 빛나게 해다오.”
“네. 알겠습니다.”
윤재의 답변에 황성호가 또 비아냥 거렸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체1위도 있고 이 황성호도 있으니, 올해 호남부문은 전국 1위 할 겁니다.”
“황성호씨! 영업3팀은 이미 전국 1위고, 호남부문도 양호하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장동석이 보기에도 황성호의 하는 짓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가요? 3팀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앞으로 잘 해 봅시다. 그나저나.....”
장동석 팀장은 황성호 전입 기념으로, 3팀과 함께 회식이라도 한 번 하자는 제안을 했다.
황성호의 답변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광주는 와인바 같은 곳은 없나요?”
“와인바? 그게 뭐야?”
장동석 팀장은 와인바가 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술을 즐겨하지 않은데다 술이 약한 장동석.
그에게 와인. 양주. 막걸리. 맥주 등은 모두 그저 술일뿐 이었다.
“간단하게 와인 한잔 하면서 재즈 음악도 듣고... 뭐 그런 곳이죠. 미녀들이 토크도 해주면 더욱 좋구요.”
“그런 곳이 광주에 있나? 윤재 너는 아냐?”
“글쎄요. 광주에 와인바는 없는 걸로 압니다.”
“그럼 그렇지. 이런 촌구석에 와인바가 있을 리 있나?”
황성호가 혼잣말로 궁시렁거렸다. 그런 황성호를 보고 장팀장이 물었다.
“뭐라고? 성호씨?”
“아. 아닙니다. 혼잣말입니다. 저는 이만 1팀으로 가보겠습니다.”
황성호는 누가 봐도 거들먹거리는 자세로 1팀으로 돌아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고참 차장이나 팀장 정도는 돼 보이는 몸짓이었다.
“윤재야! 니 동기는 어딘가 느낌이 차명수랑 비슷하지 않냐?”
“하하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차대리님 보다 퀄리티가 많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만.”
윤재와 장동석은 잠시 함께 웃었다.
둘이 묘하게 어울리는 구석이 있긴 했다.
‘명수형은 사람 됐지만, 나는 안다. 황성호 저 새끼는 죽었다 깨어나도 사람 안 된다는 것을!’
◈ ◈ ◈
“이게 다 뭐야?”
회의실에 모인 영업1팀원 전원.
황성호는 부문원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소속팀인 1팀원들과 함께 모여 상견례를 하는 중이다.
1팀원들은 눈앞의 물건에 호기심을 표했다.
알록달록 은박 포장지로 포장된 물건이 각자 눈앞에 있었다.
“영업1팀 입당 기념으로 제가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작은 선물?”
“약소합니다. 크하하.”
“뭔지 뜯어보는 게 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겠지?”
1팀장 윤경진이 먼저 포장지를 뜯었다.
그 다운 행동이었다.
“이거 뭐야? 시계잖아?”
“네. 팀장님! 티쏘 시계 당첨이시군요. 어이쿠야! 팀장님 손목에 맞춤으로 잘 어울리네요.”
“그래? 고맙다. 이 비싼걸?”
윤경진 팀장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입사 1개월 갓 넘은 신입사원이, 팀원들에게 이런 고가의 선물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저희 아버지께서 함께 근무할 직원들에게 잘 해야 한다면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 아버님이 3선 국회의원이라더니 통이 크시네!”
1팀장은 그 정도 멘트로 마무리했다.
장동석이었다면 황성호에게 호통을 친 뒤, 선물을 돌려보낼 것이었다.
다른 팀원이 꾸러미를 열어봤다.
은박지를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거슬렸다.
“뭐야? 이건 루이비통 지갑이네. 이걸 준다고? 어쨌든 고맙다.”
“이거 짝퉁 아니지? 진짜 고맙다야.”
“야! 신입 집이 좀 사는 모양인데. 어쨌든 고맙다야.”
다들 눈앞의 꾸러미에서 하나씩 황성호의 선물을 챙겼다.
신입사원 연수에서 조원들에게 선물했다 돌려받은 티쏘 시계와, 루이비통 장갑을 재활용할 생각을 하다니!
지극히 황성호 다운 행동이었다.
1팀원들에게 재활용 뇌물을 바치고 회의실을 나오던 황성호!
복도에서 차명수 대리와 마주쳤다.
“어이! 신입!”
“아. 안녕하세요?”
황성호의 표정은 차명수가 누군지 잘 몰라 하는 표정.
“나? 아직 몰라? 호남의 에이스 차명수 대리라고 하네.”
“아. 네? 안녕하세요?”
운명적인 만남이란 이런 것일까? 어딘지 모르게 닮은 두 사람이 드디어 조우했다.
“그런데 그건 뭐야?”
차명수가 황성호가 들고 있는 꾸러미를 가리켰다. 팀원들에게 하나씩 돌리고 남은 선물이었다.
“아! 이거 별 것 아닌데, 대리님도 하나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재활용이었다. 황성호가 선심 쓰듯 차명수 대리에게 선물을 건넸고, 차명수는 즉석에서 선물을 뜯어봤다.
“뭐야? 이거 티쏘아냐?”
“네. 그렇습니다. 대리님! 역시 대리님은 티쏘를 알아보시는군요.”
황성호는 알랑방귀를 꼈지만 차명수는 콧방귀를 꼈다.
차명수가 포장지를 다시 대충 싸더니 황성호에게 던졌다.
“너 아직 내 명성을 못 들었구나. 나는 롤렉스급 이상 아니면 팔목에 안 감는다. 그리고 어린놈이 이따위 것 선배에게 선물하는 것 아냐! 건방지게....”
“예?”
“예는 무슨 예야? 시계도 새것도 아니고 중고 같은데! 그딴 선물 할 생각 말고 일이나 잘 배워!”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차명수 대리가 많이 달라지긴 달라졌다.
제법 늠름한 선배의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하는 것 보니까 겁나 고문관 같은데, 처신 잘 해라. 내가 지켜볼 테니까!”
차명수가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먼저 찍고, 그 뒤에 황성호의 눈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유유히 3팀으로 사라졌다.
꿩 잡는 것은 매라고 했던가?
한 때 3팀의 고문관이었던 차명수 대리는 몰라보게 성장해 있었다.
황성호를 닭 잡듯 잡는 매의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그 운명적인 조우가 방금 이뤄진 것이다.
◈ ◈ ◈
11일 오후에는 드디어 호남 CS팀과 영업3팀의 미팅이 있었다.
이미 윤재는 호남CS팀 사이에서 1등 신랑감으로 통했다.
“애들아! 오늘 3팀 윤재님이 서비스 교육한대!”
“정말! 너는 좋겠다. 비번이라 미팅 갈 수 있고. 부럽다!”
“잘 해 봐! 또 아냐? 우리 윤재씨 사로잡을 수 있을지?”
“미숙언니처럼?”
미숙언니는 최근 목포지사 직원과 결혼한 서비스팀 직원이었다.
서비스팀원들은 사무실로 오는 동안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장동석을 중심으로 3팀원들과 30분 정도 간담회를 가진 뒤, 윤재가 주축이 돼 서비스팀과 함께하는 교육이 시작됐다.
“저는 고졸입니다. 아시는 분들 많겠지만, 올해 5월까지만 해도 계약직 이었죠”
담담하게 자신을 고졸이라고 밝히는, 윤재의 말이 너무 당당해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공부를 못했든, 집안 형편이 어려웠든 서비스팀 직원들도 대부분 고졸 또는 초대졸이었는데, 윤재의 솔직한 말에 라포(Rapport)가 형성됐다.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소통한다는 마음으로 90분 정도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말 한마디로 천냥빚 갚는다’ 입니다.”
눈앞에 서 있는 윤재는 남들의 눈에는 입사 1년 된 신입이지만, 사실은 20년 내공의 소유자!
전생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이미 거친 사람인지라, 교육을 받는 것과 교육을 하는 것 모두 전문가였다.
“시식을 권유할 때 ‘부담 갖지’ 마시고 드셔 보세요. 이런 말씀은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소비자들이 뭐야? 부담가지란 말인가? 이렇게 들을 수 있거든요. 요지는 부정적 단어의 사용을 피하자는 거지요.”
서비스팀들이 킥킥대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제로 자기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였다.
“윤재님! 그럼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 게 좋을까요?”
“그냥 시식행사 합니다. 드셔 보세요! 이런 식으로 부정적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아하!”
여사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회사 제품이 대부분 경쟁사보다 비쌉니다.”
“맞아요. 주부님들이 항상 비싸다고... ㅠㅠ”
계약직부터 시작해, 영업사원과 영업팀장까지 모두 겪어본 윤재.
경험에서 우러나온 얘기들은 서비스팀 직원들의 폭풍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럴 때 중요한 것도 부정적 언어를 피하는 겁니다. 우리 제품은 비쌉니다. 이게 아니라, 우리 제품이 저렴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의미인데 다른 느낌이죠?”
이번에도 여사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찬가지로 접속사도 요긴하게 쓰실 수 있어요. 우리 제품 저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맛은 좋아요. 보통 이렇게 말씀 하죠? 그런데. 하지만. 이런 접속사보다 이왕이면 긍정의 접속사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이번에는 알쏭달쏭한 표정들이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제품 저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맛이 좋습니다. 또는 우리 제품은 저렴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지만 같은 부정적 의미의 접속사가 아니라, 그래서, 덕분에, 따라서 같은 긍정적 의미의 접속사를 이용해 보세요!”
이 대목에서부터 여사원들은 정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햅반 1+1 행사합니다. 하나 사가세요! 고객님 오늘 밀가루 2kg 사시면 부침가루 400g 드립니다. 한 번 사보세요!”
하루에도 수백번씩 자신들이 쓰는 용어였다.
이것도 뭐가 잘못 됐다는 건가?
또다시 여직원들의 눈에 물음표가 켜졌다.
“하나 사가십시오. 하나 들여가세요. 한 번 사보세요. 이런 얘기 하는 순간 여러분들이 ‘을’이 됩니다. 그냥 소비자가 받을 ‘이익’에 집중하십시오. 1+1 행사한다는 내용과, 할인을 한다는 정보만 제공하시면 족하다는 얘기죠. 물건 파는 사원에서, 고객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 겁니다.”
다시 여사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기들의 경험을 잘 알았고 쉽게 얘기했기에 훨씬 전달이 잘 됐다.
“오늘 저희 만두 해주시면 아빠가 좋아할 겁니다. 아니면 애들이 너무 좋아할 거에요. 뭐 이런 식으로 이익과 혜택에 집중하시라는 얘기입니다. 아시겠죠?”
“네!”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마라.
긍정적 말과 긍정적 접속사를 사용해라.
이익과 혜택에 집중해라.
요약하면 3가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윤재는 60분 정도 진행한 얘기를 3가지로 재요약하며 강의를 마쳤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월급 120만원 받는다고 너무 힘들어 마십시오. O2 C&S에서 서비스팀으로 인정받으면, 본사에 가서 서비스 교육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서비스팀 직원들을 태상이나 옹심 같은 경쟁사에서 선호하는 것 아시죠? 그 쪽 교육팀장으로 스카웃 되실 수도 있어요!”
“호호호. 정말 다른 회사로 가도 돼요?”
실제 그런 일이 많기도 했지만, O2 직원이 경쟁사로 가도 된다고 하니 웃긴 모양이었다.
“그럼요. 저는 여기 계신 분들이 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이왕이면 호남팀 분들이 C&S 교육팀장 되시고, 다른 회사 교육팀으로 스카웃 되시면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영업경력도 없는 대졸 신인이, 서비스팀에 이런 얘기를 했다면 콧방귀도 안 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재는 달랐다.
백화점 수신호에서부터 계약직을 거쳐 정규직이 됐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는데다, 자신들과 비슷한 고졸이었기 때문이었다.
진심은 통하는 법!
윤재의 얘기가 모두 끝나자, 여사원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윤재의 말을 실천해 보겠다는 투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O2 정규직원들과 썸씽이나 바라는 ‘을’!
마트 직원들이나 아줌마들에게 무시당하는 ‘을’에서, 교육팀장이나 다른 회사로 스카웃 될 수 있다는 비전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서비스팀 팀장을 맡고 있는 여직원이 윤재에게 다가왔다.
“윤재님! 오늘 하신 강의 다른 서비스팀원들에게도 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저야 땡큐죠!”
고객과의 접점에서 회사 제품을 홍보하는 서비스팀의 역량이 향상되면, 실수요가 증가한다는 윤재의 Pull 전략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은 대다수 O2 영업맨들처럼, 서비스팀을 하청업체로 보는 게 아니라, 자기 회사의 제품을 팔아주는 소중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윤재의 마인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