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55화 (55/196)

영업은 밀당으로 완성된다 (1)

O2 C&S는 푸드의 자회사로 주요 업무는, 대형마트나 할인점에서 진행하는 판촉행사지원이다.

대형마트에 가면 만두나 돈까스 등의 시식을 진행하며, 판매를 독려하는 여성분들이 C&S 소속이다.

O2 정도 되는 대기업은 자회사 소속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규모가 작은 회사들은 용역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영업1팀부터 3팀까지 돌아가면서 C&S 소속 직원들과 회식을 했는데, 통상적으로 1년에 2~3번 정도 식사를 했다.

회사를 대신해 고생하는 여사원들에 대한 사기진작이 목적이었다.

C&S 소속 여직원들의 경우 박봉이었고, 아주 좋은 직장이 아닌 관계로 O2 F&B 총각들과 결혼을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3팀만 해도 오석진 과장이 과거 C&S여직원과 눈이 맞아 결혼한 케이스였다.

보통은 오후 5시 정도에 사무실로 와서 차 한 잔 마시며, 애로사항 등을 들어주고 저녁 먹고 노래방을 간다거나, 볼링을 치러 가는 걸로 마무리됐다.

7월11일 오후에 있을 C&S 직원들과 미팅을 앞두고, 윤재는 장동석 팀장을 찾았다. 항상 그렇듯 그는 옆구리에 새로운 기획안을 끼고 있었다.

“설명회를 하겠다고?”

“네. 팀장님!”

“내일이 미팅인데 강사 섭외가 될까?”

항상 하던 대로 믹스커피나 티백 녹차 한 잔 마시고, 술 마시러 가는 C&S팀과 미팅은 장동석도 반대였다. 다만 촉박한 시간에 강사 초청 등이 문제라 생각한 것이다.

“제가 설명회 진행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네가 직접 하겠다고? 나야 땡큐지!”

보통 직원들은 일을 벌이는 걸 싫어한다.

뭔가를 제안하면 제안한 사람이 일을 떠맡게 되는 건 어느 조직이나 비슷했다.

하지만 윤재는 계약직일 때나 정규직이 된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일을 벌이는 것도, 자신이 떠맡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상무가 됐을 때, 가장 좋았던 건 30평대 사택도 임원용으로 지급되는 차량이나 골프장 회원권이 아니었다.’

전생에서 상무가 됐을 때 좋았던 부분은, 매 월 1회 개최되는 명사초청 강연이나 외부 전문가들의 포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임원들은 교육을 대충 받았지만, 윤재는 사원부터 임원까지 교육을 충실히 받았다.

그리고 20년 교육 받은 것들이 현재 그의 자산이 돼 있었다.

신임 임원 집합교육이 끝났을 때, 회사에서 워터맨 만년필을 줬던 기억이 났다.

‘아들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펜촉이 18k 금으로 돼 있던 만년필을 집에 가서 애들에게 자랑삼아 주겠다던 임원 동기들이 부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말이야 원래 잘 하는 편이고, 20년간 교육 받으면서 쌓은 내공이 있으니까!’

윤재는 장팀장에게 이미 잘 나가는 영업3팀을 더 잘 나가게 만들고, 호남본부의 지위를 공고히 할 방안을 보고했다.

“팀장님! 연수 받다가 불연 듯 생각한 건데, 저희는 영업이 아니라 영업 관리지 않습니까?”

“그렇지. 사실 우리 영업은 자동차나 보험영업과는 좀 다르지!”

“제가 생각해보니 영업 관리는 밀당이 해답이더라구요.”

“밀당? 새로 나온 설탕이니?”

호실적과 상무의 총애를 받고 있는 덕분에, 장팀장은 아재개그도 구사하는 여유가 있었다.

“소위 Push & Pull 이라고 하잖습니까? 고객과의 접점에서 판매 행위를 하는 서비스팀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밥이나 먹고 덕담 한마디 하는 수준을 넘어, 함께 서비스 향상 방안을 고민해 보는 자리를 갖는 거죠.”

“좋은 생각이네!”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진 않겠지만, 서비스팀 역량이 향상된다면 장기적으로 실수요 소비자들의 구매증가로 이어져, 결국 회사 제품이 잘 팔리게 될 겁니다.”

“말 그대로 Pull전략의 일환이구나!”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는 상사를 만난다는 것은 복이다.

장동석은 윤재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현명한 팀장이었다.

지금이야 도급이슈로 자회사 직원에게 직접지시를 할 수 없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하도급법이 현재 수준으로 관리되지 않았다.

“Push전략은 뭐야?”

“연간 매출 달성도 때문에, 상무님께서 3분기 인센티브 실행방안 주문하셨잖습니까?”

영업3팀은 독보적인데 나머지 지사나 팀들의 실적은 썩 좋지 않아 양광수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집 지키는 셰퍼드를 데려다 놔도 니들보다는 영업 잘 하겠다. 독일 병정처럼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품의서라도 좀 써 봐! 정 안 되면 영업3팀 가서 보고 배우든가?”

회의를 할 때나 지사장들에게 전화를 할 때, 양광수는 요즘 들어 부쩍 불을 뿜었다.

전무 진급을 앞두고, 하반기에는 확실한 성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상무님 허가 득해서, 금요일에 송산 유원지에 대리점 사장님들 모셔다가 간단한 체육대회 하는 것 어떻습니까? 소프트볼도 하고 족구도 하고, 상품도 좀 증정하구요!”

매출 목표 120% 초과하면 장려금 3백만원!

또는 설탕 몇%, 식용유 몇%, 밀가루와 맛 다시다는 몇 % 깍아 줄 테니 얼마만큼 팔아라!

이런 것이 전통적인 인센티브 방식이었다.

윤재는 1회성으로 끝나 버리는 밀어내기가 아니라, 고객과 함께 하면서 유대관계를 더 강화하고 매출도 늘릴 수 있는 방식을 제안했다.

보고서에 대한 설명을 듣는 내내 장동석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어 버렸다.

“사장님들이 바쁜데 오려고 할까?”

“금요일 오후 4시 정도에 모이자고 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양상무님은?”

“요즘 상무님은 뭐라도 해 보라 주의시니까, 허락하지 않으실까요?”

그렇게 영업3팀의 단기와 중기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밀당전략에 대한 허락이 떨어졌다.

“점심 약속 있어서 그런데, 잠시 외출 좀 다녀오겠습니다.”

“내일 서비스팀 교육자료는?”

“교안 이미 다 만들어 놨습니다.”

“정말?”

신입사원 연수에서 복귀한 지 겨우 하루 지난 상황.

2시간 강의를 하려면 아무리 못해도 꼬박 준비해야 하는 법이었다.

“교육받을 때 틈틈이 만들어 놨습니다. 나쁘지 않을 겁니다.”

“하하. 너는 진짜..... 미친 것 같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곱게 미치겠습니다.”

◈          ◈          ◈

오전 11시 윤재는 대진증권 금남로점을 찾았다.

소파에 앉아 있는 윤재와 지점장.

그 옆에 남창진이 시립해 있었다.

“지점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윤재가 입을 뗐다.

“아이고! 사장님! 말씀만 하십시오.”

어린 나이에 1억 넘는 예탁금을 맡겨 놓은 윤재를, 지점장은 깍듯하게 사장님이라 불렀다.

“제가 대진증권 금남로 지점을 택한 건, 남창진 사원 때문입니다.”

“아이고! 그러믄요. 그러믄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계속 남창진 사원을 서 있게 하시는 거죠?”

“예?”

지점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안경을 밀어 올렸다.

“남창진 사원도 옆에 앉아 얘기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앉아만 있는 사람들은 서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모른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한다고 했다. 사원 때 열심히 서 있다가, 간부가 되면 서 있는 직원의 고충을 잊어버리는 교육이라도 받는 걸까?

“아하하. 전 또 무슨 말씀이라고.... 창진이! 자네 뭐하나. 어서 옆에 앉게.”

창진은 지점장 눈치를 한 참 살피더니 윤재 옆에 앉았다.

“그나저나 젊은 분께서 어찌 이리 큰돈을 모으셨는지? 우리 지점 에이스 남창진 사원에게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오로지 남창진 사원의 능력을 보고 맡겼다는 점 잊지 말아 주십시오.”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금액을 추가로 맡기시겠다고? 예탁금액과 주식 비중에 대해 여쭤 봐도 되겠죠?”

그때 지점장 비서로 보이는 여직원이 냉매실차를 내왔다.

윤재는 냉매실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답했다.

“최소 20억까지는 늘릴 생각입니다.”

“예? 20... 20억이요!”

지점장의 눈알이 안경을 뚫고 나올 기세였다.

앞에 앉아 있는 지점장 눈치를 보며, 차를 마시던 남창진이 사래들려 기침을 해댔다.

“네. 그러니 대진증권 금남로 지점 남창진이를 에이스 대접 확실하게 해 주셔야 합니다.”

“아이고. 그러믄입쇼! 여부가 있겠습니까?”

윤재는 창진과 함께 지점장실에서 차를 마시며, 몇 가지 대화를 더 나난 뒤 대진증권을 나왔다.

지점장은 주차장까지 쫓아와 손톱깍기 선물세트며, 녹차선물세트 등을 몇 개씩 트렁크에 실어주는 정성을 보였다.

“창진씨! 김사장님 모시고 가서 맛있는 거 사드려. 법인카드 아끼지 말고!”

◈          ◈          ◈

점심시간!

윤재는 창진과 함께 금남로의 유명한 한정식집을 찾았다.

지점장이 한사코 동행하겠다고 했으나, 윤재는 창진과 단둘이 얘기하길 원했다.

“형님. 내가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을꼬? 아까 지점장 폴더 인사 하는 것 봤지?”

“녀석. 은혜는 무슨.”

“나는 1억 정도 추가로 해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세상에나 만상에나 20억이라니! 진짜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번거야? 응? 궁금하다. 궁금해.”

“그건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창진이 너 내 말 잘 들어라.”

“에헷! 고객님! 우수 고객님!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형님 말씀 들어야지. 누구 얘길 듣겠습니까?”

창진이 바짝 군기든 것처럼 행동했다. 상근예비역이 아니라 현역같이 절도가 있어 보였다.

“내가 20억을 네게 맡기려 하는 이유가 있어.”

“나를 믿어서 맡겼겠지? 그치? 그치?”

“그럼. 너를 믿지. 그런데 니 투자 스타일은 나와는 상극이야.”

“형님!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전생에서 창진은 승률이 50%에 한참 부족했다. 증권쟁이 승률이 절반에 훨씬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자산보다 빚이 더 많다는 뜻.

그는 전생에서 마흔이 넘어가도록 전세를 전전하며 여기저기 빚을 지고 살았었다.

그 이유는 지나치게 잦은 매매때문이었다.

그리고 매매의 대상이 주로 잡주 중심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1년에 몇 번 거래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생각보다 큰 금액을 맡기려 하는 거다.”

“.....”

퀵 마우스로 유명한 창진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는지 말수가 줄어 들었다.

“한 달에 한번만 사고 팔아도 수수료가 2,000만원이다. 한 달에 한번 정도 거래하는 걸로 생각하고 하자.”

“그것은 조금....”

윤재 말대로 20억을 한 달에 한번만 거래해도, 창진은 밥값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영업과 펀드판매 등은 고스란히 창진의 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얘기.

“너 나랑 내기 하나 할래?”

“내기요? 내가 또 내기 하면 끔벅 죽는 거 어찌 알고? 무슨 내기요? 무슨 내기?”

내기라면 죽고 못사는 창진.

표정이 밝아지고 입이 다시 빨라지기 시작했다.

“내 말이 맞으면 내 의견을 따라서 투자하기로! 그러면 너는 앞으로 네 이름을 딴 펀드를 운용할 정도로 부자가 될 거다.”

“형님은 농담도 잘 하셔.... 그런데 형님?”

“왜?”

“그 내기라는 게....”

창진의 눈빛이 빛났다. 남자치고 내기 싫어하는 사람은 드문 법.

“내기가 별 거냐? 이긴 사람 하자는 대로 하는 게 내기지.”

“형님은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내가 이기면 내가 하자는 대로 투자해 주고... 네가 이기면 니 좋아하는 데이트레이딩 원 없이 하는 거야? 어때?”

20억을 매일 한 번씩 사고 판다면... 휴일 빼고 한 달이면 거래 수수료만 2억!

창진이는 보너스만 몇 억 받는 증권맨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그 전에 윤재의 원금이 작살나겠지만!

남창진이 입이 째져라 웃고 시작했다.

“그럼 뭐에 베팅하면 되는 거에요?”

“너 스포츠 좋아하잖아.”

“에헷! 형님은 내가 축구하고 야구.... 스포츠에 아주 환장하지. 환장해. 그래서? 형님 뭐 걸면 되는 거 에요?”

“2008년 올림픽 개최도시. 그리고 다음 달에 있을 국가대표팀 평가전!”

창진의 습성을 잘 알고 있기에, 그에 맞은 맞춤형 내기를 제안했다.

“히딩크호요?”

“그래. 나부터 걸까?”

“후배사랑이라는 게 뭡니까? 제가 먼저 해야지. 형님은 위아래도 없어요?”

말도 안 되는 너스레를 떨더니, 창진이 후다닥 자신의 초이스를 말했다.

“올림픽 개최지는 카자흐스탄. 축구는 한국이 체코에 이긴다에 한표 겁니다.”

“그럼 나는 올림픽은 베이징. 축구는 한국이 진다에 한 표 건다.”

“그래요. 얼른 도장 찍고 복사 합시다.”

창진이 입이 째져라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친김에..... 한국이 체코에 0:5로 진다는 것은 보너스로 해두자.”

“5:0으로 진다고요? 에이 말도 안 돼. 그러면 히딩크 감독은 오대영 감독 되겠네?”

창진은 모르겠지만, 실제 얼마 못가 히딩크 감독의 별명은 오대영 감독이 된다.

“하하하. 어쨌든 내기는 성사된 거다?”

“에헷! 남아일언중금속! 두 말 하면 쌉소리!”

“그래.”

윤재는 창진과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내기 후 창진은 유난히 신나 보였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20억을 원 없이 단타 칠 수 있는데?

그는 입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얘기를 쏟아냈다.

‘전생에서는 비실비실한 중년이었지만, 이번 생은 폼 나게 한 번 살아봐라. 내 말 잘 들으면 가능할거다!’

게장에 밥을 맛나게 비벼먹는 창진. 그런 창진을 윤재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식사를 마치고 윤재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소나타의 악셀을 밟으며 생각했다.

‘마름을 거느려야 한다고 했던가?’

그는 오재준 회장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마름이 아닌 파트너들을 육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 파트너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겠다!’

웬일인지 윤재가 가는 길마다 파란색 신호등이 들어왔다.

마치 그의 탄탄대로를 예견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무실 주차장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문자가 왔다.

남창진이 보낸 것이었다.

- 형님! 20억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형! 나 눈물 날 것 같아. 하트 뿅뿅.

윤재는 창진의 문자를 보며 웃었다.

‘20억이 끝이 아닌데! 앞으로 창진이 너 통곡할 일 많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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