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47화 (47/196)

신상품 아이디어 (2)

‘빌 게이트는 알고 있을까? 자기 옆에 있는 아델라가 자신을 다시 한 번 세계최고의 부자로 만들어 줄 사람이란 걸?’

윤재는 빌 게이트와 스티브 팔머, 그리고 자신의 서명이 새겨진 합의서 봉투를 들고 카페에서 나왔다.

얼음 자세로 서 있던, 황성호 일당 들이 윤재에게 다가왔다.

“윤재야! 대체 빌 게이트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황성호 일당들에게도 빌 게이트의 등장은 그만큼 쇼킹인 모양!

“말 좀 해 봐. 우리가 보기에 네가 갑이고 빌 게이트가 을로 보였단 말이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리고 그 봉투는 대체 뭐에요? 궁금해 미치겠어!”

황성호 꼬붕들이 돌아가며 폭풍 질문을 던졌다.

“일단 연수원으로 돌아가시죠. 가면서 얘기 합시다.”

윤재 주변에 황성호 꼬붕들이 찰싹 달라붙었고, 황성호만 혼자 5m 정도 떨어져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얘길 해야 하나?”

◈          ◈          ◈

이튿날 윤재와 빌 게이트에 대한 소문이 연수원에 퍼져나갔다.

발 없는 말이 광랜 보다 빠른 모양이었다.

“빌 게이트가 쳥평 시골로 윤재씨를 찾아와, 스카웃 제의를 했다고 한다.”

“돈 봉투를 싸들고 와서 윤재를 설득했대!”

“거의 제갈공명을 찾아온 유비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소문이란 건 보통 그런 것이다.

조금 과장된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윤재의 몸값을 올리고 있었다.

헛소문이 있건 말건 윤재는 ‘신제품 아이디어 대전!’을 위한 조별 회의를 주관했다.

하지만 조원들 역시 아직은 젊고 어린 친구들이었다.

한참을 빌 게이트와 윤재에 대한 얘기를 하고 난 뒤에, 일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다.

금요일 오전 발표가 진행되는 관계로, 이젠 정리를 마쳐야 했다.

“막연한 구상 수준이 아니라 즉시 제품화 가능할 정도로 퀄리티를 끌어 올려야 합니다.”

“넵. 조장!”

갑자기 대답하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일전에 있었던 강민우 감독의 길거리 캐스팅, 빌 게이트의 등장에 대한 루머가 겹친 효과였다.

“송이씨가 전공을 살려 우리 기획안의 재료와 구성품에 대한 영양학적 분석을 좀 해 주세요.”

“옙. 조장!”

“현민 형님은 포장용기의 화학적 특성과 물성에 대한 정리를 해 주십시오.”

“오케이! 감 잡았어.”

“영식과 동호는 우리 기획 제품에 대한 상표권 등록 여부 등에 대해 검토해 줘!”

“Yes! 조장!”

“검토하면서 특허 쪽 분야도 함께 검토해 주고!”

“Yepp! 조장!”

“끝으로 남군이는 나랑 같이 식자재 마트 좀 다녀오자!”

“예. 조장!”

백현민이 윤재보다 두 살 많았고, 한송이는 두 살 어렸다.

나머지는 모두 윤재와 동갑내기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행동과 말투에서 윤재에 대한 복종심이 진하게 느껴졌다.

“발표까지 몇 시간 안 남았어요. 말씀 드렸던 것처럼 당장 상품화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서두릅시다!”

“넵. 조장!”

마치 말 잘 듣는 유치원생들처럼,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조원들.

참으로 러블리한 조원들이었다.

◈          ◈          ◈

이튿날 오전!

강의 대형에서 발표 대형으로 변형된 강당에 긴장감이 흘렀다.

사람들의 생각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

종합식품 회사에, 국내 1위임에도 라면이 없다는 건 모두에게 페인 포인트.

여섯 개 조 중에서 무려 세 팀이 신상 아이디어로 라면을 들고 나왔다.

“그래서 저희 조가 야심차게 준비했습니다. 이름 하여 산소(O2)면!”

“우리 회사에 라면이 없다는 건 치욕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신상품으로 미소라멘을 제안합니다.”

“튀긴 면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저희는 그래서 생면을 이용한 라면! 이름 하여 생생라면을 제안합니다.”

라면을 제안했던 세 개의 조!

자문교수와 인사팀, 그리고 교육팀 직원들이 쏟아내는 융단폭격 수준의 질문 공세를 받았다.

모두 한송이의 웰빙면 의견 당시, 윤재가 제기했던 문제와 비슷한 내용의 것들이었다.

“라면이라는 게 전혀 새로운 카테고리도 아니고, 현실적 제약을 감안했을 때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지금 발표한 라면이, 밀가루와 설탕을 포기하고서도 상품화 할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자문교수의 얘기였다.

그런 식으로 라면을 제안한 세 개의 조원들은, 돌아가며 독설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윤재의 조원들은, 윤재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반면 쓸만한 아이디어도 몇 개 있었다.

황성호 팀의 아이디어가 대표적으로 괜찮은 것이었다.

“발열 즉석식품을 제안합니다.”

프레젠터로 나선 황성호가 발표를 이어갔다.

터프한 성격과 달리 벌벌 떨며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황성호!

황성호의 아버지는 유권자에게도 갑질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아들은 발표하나 하는데도 심하게 긴장을 했다.

참 묘한 부자지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까지는 군용, 캠핑용 등의 마이너 카테고리지만 우리 회사가 만들기 시작하면 시장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요즘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밥하기 싫어하는 여자들 늘어나고 있습니다. 외식도 증가하고 있지요.”

“우! 우~ 우우~”

상품 팔기 미션에서 반칙을 저질러 동기들의 신임을 잃어버린 황성호.

이 대목을 말하자 여자 동기들의 야유가 흘러 나왔다.

“3분 뚝닥!”

황성호 팀의 신제품 이름인 모양이었다.

“3분 뚝닥으로 가, 간편식을 더 푸, 풍성하게 맛보실 수 있습니다.”

황성호의 발표가 끝났다.

“그래서 피저빌리티는 따져 보았나요?”

자문교수의 송곳질문이었다.

“그. 그.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나름 쓸만한 아이디어 였지만, 피저빌리티를 포함한 몇몇 질문에 대한 답을 명쾌히 하지 못했다.

그 부분이 감점요소로 작용할 게 뻔했다.

또 다른 한 팀은 O2 그룹의 식품인 햅반에 대한 개선아이디어를 들고 나왔다.

역시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개선 포인트를 잘 못 잡았다.

그리고 회사의 애물단지인 햅반에 대한 얘길 꺼낸 게 화근이었다.

“젊은 사람들답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놓아야지, 기존 제품 개선 아이디어인가?”

역시 새롭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조태수씨?”

“네?”

“햅반 소매가격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정.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1,200원입니다. 그나마 그 가격에 팔지도 못하고 있어요.”

“.....”

“밥 한공기에 1천원이라는 인식이 공고해 8백~9백원에 팔리고 있는 게 햅반입니다. 덕분에 수익성도 좋지 않아요.”

“아! 그랬나요?”

“아 그랬나요라니! 그 정도 조사도 하지 않고 신제품 발표 하는 거요?”

“죄송합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찬밥 신세였던 O2 그룹의 햅반.

잘 팔리지도 않아 대리점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한 게 햅반이다.

“햅반 용기를 스텐리스로 바꾸자고? 지금 제정신입니까? 스텐리스로 바꾸면 대체 햅반 하나를 얼마에 팔겠다는 겁니까?”

“.....”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을 정도로 입만 내밀었지, 발표자는 그럴싸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모두 감점 요소였다.

그 사이 마지막 발표 팀인 윤재네 조의 시간이 다가왔다.

◈          ◈          ◈

마지막 발표주자로 무대 중앙에 오른 윤재가, 빔 프로젝터의 불빛을 비켜 선 채 발표를 시작했다.

다른 조의 발표에서는 보지 못했던 관심이 윤재에게 쏠렸다.

그동안 보여준 눈부신 활약이, 모든 동기들로 하여금 윤재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놓은 것이다.

“발표에 앞서 종이컵에 있는 음료를 시음해 보시겠습니까?”

윤재는 조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조원들이 쟁반에 있는 종이컵을, 동기들과 관계자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문제없으니 한번 드셔 보시고 품평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의장의 사람들이 제각기 종이컵에 들어가 있는 음료를 마셨다.

“맛있다!”

“이거 인삼 맛 아냐?”

“그러게 꿀맛도 조금 느껴지고!!”

사람들의 평가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절대미각이라도 있으신지 잘 맞추시는군요!”

“??”

“저희가 준비한 신제품은 자양건강 음료입니다.”

“!!”

“우리는 신제품의 이름을 [왕뿌리]라 명명했습니다!”

“왕뿌리?”

강의장의 사람들이 왕뿌리를 되뇌였다.

시음해 본 음료의 맛이 나빴다면, 이 정도의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방금 여러분들이 드신 인삼은 삶거나 찌지 않았습니다.”

“!!”

“생삼을 제가 직접 곱게 갈았습니다. 그리고 꿀 조금과 우유를 조금 배합해 만든 음료입니다. 맛이 괜찮으셨죠?”

신선하면서도 달콤한 맛이었기에 사람들은 긍정적 답변을 반복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강식품 인삼과 홍삼!”

윤재는 다시 호흡 조절을 했다.

발표 때마다 완급조절을 위해 사용하는 그의 전용스킬이었다.

“갈수록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겁니다. 여러분이 방금 맛 본 것 같은, 인삼을 갈아 만든 음료를 출시하는 겁니다.”

“!!”

윤재의 발표에 대한 집중도가 갈수록 높아갔다.

“저는 지난 10개월간, 광주의 영업3팀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했습니다.추석과 설날 두 번의 명절을 보냈죠. 매년 명절이 되면 회사 선물세트를 팔기 위해 전쟁이 벌어집니다.”

30명 동기들은 겪어보지 못한 윤재의 현장 경험!

경험에서 우러나온 발표는, 사람들에게 묘한 생동감을 불어 넣고 있었다.

“저희가 왕뿌리 제품을 세트로 출시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

“어르신들의 건강이나 수험생들의 건강을 챙기는, 건강 선물 세트로 왕뿌리가 히트를 치지 않을까요?”

“!!”

여기저기서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 뿐 아닙니다. 병문안 가보신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이 대목에서 4인실 병동에 자주 보이는 바카스, 구론산 병들의 사진이 화면에 나타났다.

사람들의 킥킥 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카스나 구론산 같은 자양강장제 대신, 왕뿌리 세트를 들고 병문안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왠지 더 성의 있고, 고급져 보이지 않을까요?”

어느새 사람들은 윤재의 설득에 넘어가 있었다.

윤재가 홈쇼핑 호스트라면 당장이라도 주문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저희는 한국에 여태껏 없었던 상품으로, 왕뿌리를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와!”

동기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자문교수를 포함한 심사단도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윤재를 보고 있었다.

“저희팀 동료들이 이어서 보충 설명해 줄 계획입니다. 먼저 상품성에 대한 설명을 조남군 사원이 해주겠습니다.”

윤재의 뒤를 이어 무대에 오른 조남군이, 왕뿌리의 피저빌리티에 대해 설명했다.

예상원가와 희망 소매가와 수요전망에 대한 발표였다.

“왕뿌리의 주요 성분과 영양학적 특성에 대해 한송이 사원이 설명해 주시겠습니다. 그녀가 명문 여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신 건, 다들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한송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나운서 뺨치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설명하는, 그녀의 발표에 사람들의 눈동자에 하트 표시가 왔다 갔다 했다.

한송이의 뒤를 이어, 용기 디자인과 용기의 재료에 대해 백현민이, 특허와 상표권에 대한 설명은 나머지 팀원들이 진행했다.

다른 조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30분을 활용한 윤재팀.

하지만 그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첫 번째 시음료라는 프로토타입을 들고 나왔다는 것.

퀄리티 떨어지는 파워포인트에 이름만 갖다 붙인 신상품 아이디어와 격이 달랐다.

시음료가 맛까지 좋아 호평을 샀다.

두 번째, 홀로 발표하고 Q&A를 진행한 다른 팀과 달리, 조원 모두가 발표에 참여했다는 점!

세 번째는 피저빌리티에 대한 근거를 설명했고, 상표권과 특허에 대해서도 검토를 했다는 점이었다.

보통 회사들은 신제품 출시를 위해 몇 달을 고생한다.

그에 비하면 윤재팀의 발표는 부족했지만, 신상품 기획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발표였다.

자문교수를 포함한 인사부문 직원들, 그리고 동기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프레젠테이션이 끝났다.

‘이로서 신제품 기획에 대한, 내 실력은 검증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광주에서 영업의 정점을 찍은 다음, 윤재는 신제품 기획 업무를 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었다.

윤재가 박수갈채를 받는 동안, 어느새 5명의 조원들이 윤재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윤재와 나란히 섰다.

‘O2하다!’ 조원들은 6명이 함께, 90도로 허리를 숙여 청중들에게 인사를 했다.

“하하하. 발표 잘 하는 조가 예의도 좋다니까!”

“잘했다! 멋지다! O2하다 팀!”

동기들도 심사위원들도 모두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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