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46화 (46/196)

마소는 사랑입니다 (2)

집으로 돌아온 윤재는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갔다.

“지잉! 지잉!”

옷을 벗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일본?’

발신국이 일본으로 찍힌 전화였다.

‘설마? 샤티마 아델라?’

윤재는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Hello?”

“안녕하세요? 미스터 윤재? 저 샤티마 아델라입니다.”

역시나 아델라였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왜 우리 보스 전화를 안 받은 것 입니까?”

“당신 보스?”

“그래요. 빌 게이트 회장이 전화했는데 당신이 화를 내며 끊었다고 연락 왔습니다.”

‘맙소사! 진짜 빌 게이트 였다니!’

장난 전화라고 생각했던 것이 진짜 빌 게이트였던 것.

윤재는 벗으려던 옷을 다시 고쳐 입었다.

“정말요?”

“그렇습니다. 당신이 이상한 한국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고, 보스에게 혼났습니다. 와이프와 온천욕 즐기느라 전화 늦게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또 혼났습니다.”

영어로 하는 대화지만, 아델라의 감정이 오롯이 전달됐다.

“대체 빌 게이트 회장이 왜 내게 전화를 했단 말입니까?”

“당신이 요구한 500만 달러 때문입니다!”

왠지 좋은 소식일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몰려왔다.

“보스가 당신을 직접 만나본 뒤 지급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전화를 안 받으면 어떻게 합니까?”

솔직히 놀라운 얘기였지만, 윤재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제가 교육중이라, 누구를 만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아니 지금 천하의 빌 게이트를 까는 겁니까?”

훗날 누군가의 역사에 윤재는 빌게이트에게 쌍욕을 하고, 만남을 대차게 깐 사람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빌 게이트든 빌 클린턴이든 나를 보고 싶다면, 대한민국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으로 와야 할 겁니다.”

주도권은 자신이 쥐고 있다는 확신이, 윤재에게 자신감을 부여했다.

“그 부분은 걱정 마십시오. 보스는 짜증을 내긴 했지만, 한국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사티마 아델라와 추가적인 일정에 대한 조율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윤재는 한동안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미친! 진짜 500만 달러를 줄 생각인가 본데?’

함께 어울려 사는 아파트가 아니었다면,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3주차 메인 테마는 신상품 아이디어 평가!

조 별로 신상품을 기획하고 프레젠테이션 후, 좋은 평가 순으로 칩을 챙겨가는 방식이다.

매일같이 조별 회의를 통해 신제품에 대한 컨셉을 논의했다.

최종 보고서를 완성하면, 목요일에 발표 및 평가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윤재네 팀도 활발한 토론을 진행했다.

“어때요? 건강라면을 출시하는 것?”

한송이의 지적이면서 차분한 목소리는, 제법 호소력이 있었다.

“생각해 봐요! 국내 식품기업 중 1위인 회사가 제품 포트폴리오에 라면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요?”

백현민이 송이의 말에 호응했다.

“듣고 보니 그러네. 라면이 시장도 큰데다 소비자들이 친숙하게 찾는 제품이잖아. 그런데 라면이 없다는 건 우리 회사 자존심에 걸맞지 않는 것 같긴 하다.”

1조원을 훌쩍 넘기는 제법 큰 규모의 라면시장.

설탕보다 5배 이상 큰 시장이 라면 시장이었다.

옹심, 갓뚜기, 산양 등이 라면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O2는 라면이 없었다.

“제가, 라면 이름도 생각해 왔어요.”

한송이는 득의양양한 표정이 돼 있었다.

“Well 면 어때요?”

“웰면?”

“네. 우리나라도 이제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수준은 벗어났잖아요? 잘 살기라는 이슈가 사회화 될 거에요. 그래서 웰빙에서 따 온 웰면 어때요?”

“좋다! 역시 송이씨 아이디어는 다르네!”

조원들은 웰면을 신상 아이디어로 확정할 기세였다.

‘기획력도 좋고, 목소리가 좋아서 호소력도 있고.....’

한송이와 조원들의 논의를 지켜보고 있던 윤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송이야! 식품회사 1위인 우리 회사가 그동안 라면 출시를 왜 안했지?”

청평시장에 상품을 판 이후로 급격히 친해진 조원들!

이젠 말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돼 있었다.

라면으로 기울어가던 조원들에게, 윤재의 질문은 조금은 생뚱맞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그 생각을 안했네. 윤재오빠는 알아요? 진짜 왜 라면을 안 하고 있는 건지?”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거니까!”

윤재의 대답에 조원들의 눈이 커졌다.

“네?”

“다들 생각해 보세요. 라면이 무슨 최첨단 산업도 아니고 우리가 안할 이유가 없잖아요.”

“정말 그러네?”

윤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미나실 중앙으로 나갔다.

“제일 큰 이유가 라면 회사들의 반발 때문이었어요. 우리가 라면을 출시하면, 우리 회사의 밀가루와 설탕을 사지 않겠다고 협박을 한 거죠.”

사람들이 윤재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송이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강한 호소력을 갖고 있는 게, 윤재의 딕션이었다.

그의 설명이 계속됐다.

“옹심등 라면회사 대부분은 라면뿐 아니라 과자류도 만듭니다. 그들이 우리 밀가루와 설탕을 사지 않으면 우리도 타격을 입는 거죠.”

“아하!”

한송이가 드디어 깨달았다는 듯 감탄사를 흘렸다.

곧이어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윤재는 조원들과 일일이 아이컨택을 했다.

끝으로 한송이와 눈이 마주쳤다.

조원들의 이해를 구하는 윤재만의 방식이었다.

“웰면! 이름도 좋고, 아이디어도 좋아. 하지만 목요일 발표에서 분명 내가 얘기한 질문을 똑같이 받게 될 거야!”

“.....”

“그 때 답변을 뭐라고 할 거야? 설탕과 밀가루의 손실을 무릅쓰고 웰면을 출시하자고 할 건가?”

“그건 곤란할 것 같아요.”

“옹심 등의 회사에 설탕, 밀가루 팔아서 거둬들이는 수익이, 1년에 400억 정도 된다고! 심사단은 웰면이 400억 이상의 가치가 있냐고 물을 게 분명해.”

한송이는 여전히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고,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400억이면 1,000원짜리 웰면을 매년 4,000만개를 팔아야 나오는 매출액입니다. 이익도 아니고 매출만!”

“4,000만개?”

한송이와 조원들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흘러나왔다.

윤재는 계속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라면이라는 카테고리는 이미 있는 시장이야. 신입 사원들이 좀 더 참신한 아이디어를 낼 수는 없는 거냐? 뭐 이런 질문도 받게 될 걸?”

윤재의 예상 질문 2개에 한송이의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윤재의 얘기에 줄곧 고개를 끄덕이던 백현민이 물었다.

“윤재야! 다 좋은데 그럼 우리는 뭘 출시하자고 하냐?”

“현민형! 저도 몇 가지 생각해 온 게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조원들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달아올랐다.

그동안 보여준 윤재의 활약이 그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품게 한 것이었다.

‘라면 문제는 전생에서도 우리 회사의 숙원과제였다. 라면은 신입사원들이 4일 만에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과제가 아냐. 우선은 목요일에 발표할 수 있는 소재가 중요하다.’

지난 주말 구상했던 신상품 아이디어!

라면에 대한 논의를 중단시킨 윤재의 입에서 신상품에 대한 얘기가 거침없이 튀어 나왔다.

조원들은 얘기가 거듭될수록 윤재의 발표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깨닫게 됐다.

이번에도 윤재의 아이디어와 기획이 호평을 받게 되리란 것을!

◈          ◈          ◈

3주차 수요일 밤 8시 반.

공식 일정이 끝난 시각!

윤재는 옷을 차려 입고 방을 나섰다.

교육 팀장에게 정식 외출 허가를 받고, 윤재는 연수원 밖으로 걸어 나갔다.

청평호수의 6월말 여름밤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고 적당히 따스했다.

반팔에 청바지를 입고 정문을 향하는 윤재!

멀리서 봐도 훤칠한 것이, 윤재의 실루엣임을 알 수 있었다.

“야! 저거 김윤재 아니냐?”

“어디? 어디? 김윤재 맞네!”

“근데 저 새끼 어디 나가는 거 아냐?”

황성호와 그 일행이 야외에서 술을 푸다 윤재를 발견했다.

“정말이네. 밖으로 나가는 모양인데? 어디 가는 거지?”

“어디는 어디야? 젊은 혈기에 어디 가서 빠구리나 하고 올려나 보지.”

빠구리란 말에 황성호 일당들은 자기들끼리 배를 잡고 웃었다.

3선 국회의원의 아들 치고는 입이 천박한 황성호였다.

부전자전일까?

황성호의 부친도 국회에서 입이 거칠고 상스럽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저 새끼! 분명 늙은 아줌마라도 나오는 집 가는 모양인데, 우리 한번 미행해 볼까?”

황성호가 입맛을 다셨다.

“야! 황성호! 미쳤어? 연수원장 허가 없이 나갔다가 모가지야. 모가지!”

“우리가 언제는 허가 받고 나갔냐?”

황성호의 말이 맞았다.

밤이 되면 구내식당과 연수원 내부의 편의점은 문을 닫는다.

하지만 황성호 일당은 수시로 밖에 나가, 술이며 안주를 사다 방에서 술판을 벌렸다.

모두 연수원장의 허가를 받았을 리 만무한 행동들이었다.

◈          ◈          ◈

“반갑습니다. 이분이 우리 보스 빌 게이트 회장입니다.”

“미스터 김윤재? 반갑습니다. 빌 게이트입니다.”

빌게이트는 지난 번 통화에서처럼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그래도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아델라와 비교하니, 조금은 성의가 느껴지기도 했다.

“반갑습니다. 바쁘신 분을 이역만리 한국까지 오시게 해, 정말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이곳에 와 보니 경치가 참 좋군요. 여기가 한국의 스위스인가 보죠?”

빌 게이트의 얘기처럼 청평호반의 초여름 야경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청평호를 끼고 있고 북한강이 흐르는 가평군은 한국의 스위스라 불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CEO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빌게이트.

머나먼 한국의 시골까지 찾아온 게 불쾌한 표정은 아녔다.

청평호에 비치는 달빛을 볼 수 있는 카페에서, 윤재는 빌 게이트, 사티마 아델라와 본격적인 비즈니스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대화는 주로 빌 게이트가 주도했다.

“회사 대표직을 내려놓고, 기술고문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덕분에 한국에 와서 이런 멋진 경치도 보고, 윤재씨 같은 청년도 만났으니 말입니다.”

“이 곳 경치가 맘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빌게이트가 깍지를 끼고 윤재와의 거리를 좁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 하겠습니다.”

“?”

“나는 윤재씨의 MS에 바라는 100가지 기능들에 반했습니다. 우리 회사와 나보다 우리 오피스 제품의 미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단 생각을 했소.”

“과찬입니다.”

“마치 나와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소. 그리고 김윤재 이 사람이 미래에서 온 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하게 됐소.”

“하하하.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바로 미래에서 온 사람입니다.”

“크크크. 재밌는 농담이군요.”

윤재의 진담에 빌게이트가 한 참 동안 웃었다. 정말로 재미난 친구라는 표정이었다.

“미래에 출시될 우리 오피스 3총사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젊은이가 제시한 100개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얘기를 듣기 싫었소.”

빌게이트는 잠깐 뜸을 들였다.

그의 얼굴에 자존심이 상한 듯한 표정과, 윤재를 신비롭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동시에 스쳐지나갔다.

빌게이트의 입에서 뜻밖의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래서 말인데, MS에서 일 해보면 어떻겠소?”

의외의 제안이 빌 게이트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금! 저를 스카웃 하겠다는 말인가요?”

“빙고! 윤재씨가 요구한 500만 달러를 지급하고, 매년 20만 달러를 연봉으로 지급하겠소. 인센티브는 별도로 말이요.”

500만 달러 일시금 얘기와 연봉 얘기에 샤티마 아델라가 더 놀란 눈치였다.

모르긴 몰라도 20만 달러는 아델라의 연봉보다 높은 모양이었다.

“어떻소? 내 제안이?”

“말씀은 고맙지만.....”

“?”

빌 게이트와 아델라의 동공이 동시에 확장됐다.

“저는 이 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할 일? 설탕 파는 일이 당신이 할 일이란 말이요?”

“하하하. 설탕 파는 일이라 낮추어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미안하오. 비하할 의도는 없었소.”

빌 게이트는 진심 사과한다며 두 손을 맞잡아 보였다.

“괜찮습니다. 미래에서 돌아오면서 계획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록에 MS에서 근무한다는 내용은, 아쉽게도 없군요.”

“하하하하”

빌게이트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역만리까지 오셨는데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아니오. 설탕물 충동질에 존 스컬리는 넘어 갔는데 당신은 넘어가지 않는군.”

“하하하.”

빅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펩시의 존 스컬리 농담에, 윤재와 빌 게이트는 호탕하게 웃었다.

“당신이 싫다고 하니 두 번 제안하지는 않겠소. 그리고 당신의 아이디어 100가지를 사는 금액은, 우리가 체결할 합의서에 서명을 완료하면 회사에서 송금될 겁니다.”

드디어 빌 게이트의 입에서 합의금 500만 달러에 대한 확약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미스터 윤재! 혹시 변호사 검토 후, 서명할 계획인가요?”

“아닙니다. 오늘 서명하겠어요.”

아델라에게 며칠 전 받은 합의서는, 회사 법무팀 변호사에게 검토를 받은 상태였다.

교육 때문에 필요하다는 윤재의 부탁에, 법무팀 과장은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는 피드백을 줬었다.

‘드디어 한 고비를 넘는구나!’

윤재는 탁자 밑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기치 못한 거금 500만 달러!

인생을 바꾸고도 남을 거금이었다.

윤재가 아델라가 내민 합의서에 사인을 하는데, 빌 게이트가 말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나와 당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미스터 윤재 아는 사람 아니오?”

뒤를 돌아보니 황성호와 그의 일당들이 창 밖에서 카페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은 모두 놀란 표정인데, 황성호 혼자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기 제일 우측 끝에 있는 젊은이는, 왜 저렇게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요? 설사라도 나오는 얼굴인데!”

빌 게이트의 눈빛을 따라가니 그곳에 황성호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서 있었다.

“하하하.”

윤재는 그저 호탕하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초 책을 쓸 때는 오피스 시리즈를 통해 인세를 버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델라를 만나고, 빌 게이트를 만났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목돈까지 쥐게 됐다.

멀어져가는 차 안에서 아델라도, 빌 게이트도 창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더 이상 그들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멀어지는가 싶더니, 더이상 차량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왠지,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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