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41화 (41/196)

2주차 미션의 시작

다시 찾아온 연수원의 월요일!

경기도 가평군 O2그룹 연수원 구내식당.

식기를 반납하고 나가는데 황성호가 윤재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Egg Breaking 영향일까?

왠지 동작이 어색해 보였다.

“윤재씨! 저녁에 내 방에 모여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저를 초대하시는 건가요?”

“네. 알고 보면 우리 갑장 아닙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취지에서!”

“하하하. 갑장이니까 친하게 지내면 좋지. 그런 의미에서 말 놓고 지내자!”

윤재는 황성호가 갑자기 왜 친한척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그럴까? 그럼 9시에 보자고. 동기 중 에이스인 윤재 너를 모시려니 왠지 설레인다. 촤하하.”

황성호가 짐짓 호탕한 웃음을 지었는데, 느끼한 웃음소리는 여전히 적응이 안됐다.

‘새끼! 니가 설레발 치는 이유를 내가 모를 줄 알고?’

어제 밤 윤재와 한송이 일행은 충무로에서 저녁까지 먹고 연수원으로 돌아왔었다.

윤재가 씻고 자려고 할 때였다.

옆 방 황성호 일당은 또 술판을 벌이는 중이었다.

연수원 숙소는 회사 가족들도 사용한다.

그래서 방음이 잘 되는 편이다.

하지만 윤재의 귀는 이제 강아지의 청각처럼 발달해 있었다.

“윤재 그 새끼가 일부러 우리 맞춘 게 맞다니까!”

“에이. 성호야 말도 안 된다! 지가 무슨 족구의 신인가? 우리 셋을 모두 일부러 맞췄다는 게 말이 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니들 둘 쌍코피를 내고, 내 고ㅊ.....!”

차마 황성호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는 윤재 볼에 안 맞았는데?”

“그야 니들은 윤재 그 새끼랑 족구 안했으니까 그렇지.”

“정말 그런가?”

“내 말이 맞다니까. 내 예감은 정확해! 그 새끼가 나를 시기해서 나를 노린 게 분명하다고!”

황성호는 사타구니를 한 번 어루만지더니, 콧김을 씩씩 뿜어대며 말했다.

“아니 윤재씨가 성호 너를 시기할 게 뭐가 있냐?”

“야! 너 왜 그래? 너 자꾸 윤재 그 새끼 감쌀 거야? 우리 아부지 3선 국회의원에 나 명문대 나왔잖아. 그걸 시기하는 거지. 안 그래?”

황성호는 나사 풀린 로봇처럼 제 정신이 아니었다.

‘집착이 유난히 심하다고 했었지?’

전생에서 황성호는 1년에 한두번 얼굴을 스치듯 보는 사이였지만, 한송이는 나름 친한 동료였다. 그녀의 전남편 황성호에 대한 얘기는 좋은 얘기는 거의 없었다.

황성호도 황성호지만 옆에 있는 동기들도 한심했다.

‘황성호의 백그라운드에 영혼을 파는 머저리 같은 놈들!’

황성호는 계속 거품을 물며 얘길 했었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뭔데?”

“내일 밤 윤재 그 새끼를 우리 방에 초대하는 거야.”

“윤재씨를 초대 하자고?”

황성호의 꼬붕들이 황성호를 바라봤다.

“그래. 좋은 말로 꼬드긴 다음에, 컵라면을 준비 하는 거지.”

황성호는 음흉한 웃음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컵라면을?”

“야 이 병신들아. 컵라면이 그냥 컵라면이겠니?”

“??”

“우리 코. 침. 가래 등을 뱉어 가지고 윤재 그 놈에게 주자 이거야. 기막히지 않겠어?”

“!!”

그나마 양심에 찔렸는지 막내를 자처하고 있는 녀석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형님들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야! 내 앞에서 윤재 그 새끼 비호하면 다 내 적이야. 내 적이라고!”

“.....”

“그럼 니들도 다 동의한 거다.”

황성호는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더니 옷장을 뒤적거렸다.

“우리 같은 편 된 기념으로 하나씩 장만했다. 자 받아!”

황성호는 작은 꾸러미를 하나씩 던져 줬다.

“이거 티쏘(Tissot) 아냐?”

“얼마 안 해. 아빠 비서에게 얘기해서, 우리 독수리 5형제 거 하나씩 장만했다.”

“야. 이런 비싼 시계를! 고맙다야.”

“고맙긴. 그리고 그거 그렇게 비싼 거 아냐.”

머리를 쓸어 올리는 황성호의 왼손목에 롤렉스 시계가 번쩍거렸다.

엄청난 재력을 가진 집안.

게다가 3선 국회의원이라는 아버지.

그리고 종종 이런 식으로 건네주는 선물까지!

황성호가 자신의 수족들을 부리는 방식이었다.

윤재는 구내식당을 나오며 어제 밤의 일을 떠올렸다.

멀리 황성호가 어기적어기적 불편하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          ◈          ◈

2주차 연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송이가 입수한 족보!

2주차의 가장 큰 과제는 크게 두 가지!

바로 ‘조 편성’과 ‘상품 팔기’였다.

인사팀장이 연단으로 올라갔다.

“지난 한주 동안, 조 편성에 대해 궁금하셨죠?”

“네!”

“지금 바로 조 편성에 들어가겠습니다. 남은 5주 동안 여러분들은 철저히 한 조가 돼 팀으로 움직이게 될 겁니다.”

팀 미션 수행. 팀 평가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먼저 랜덤으로 6명을 뽑겠습니다. 퀴즈를 풀고 정답자에게 팀원 선발권을 주는 방식입니다.”

인사팀장이 아크릴 박스에서 6장의 종이를 뽑았다.

여러 겹으로 접혀 있는 종이였다.

“황성호! 정수나!....... 끝으로 김윤재!”

윤재를 포함한 6명이 제비뽑기로 당첨됐고, 호명된 사람들은 강의장 앞으로 불려 나왔다.

‘퀴즈 싹쓸이로 기선을 제압한다!’

윤재는 담담한 표정으로 인사팀장의 퀴즈에 귀를 기울였다.

25명의 동기들이 마른 침을 삼키며 6명을 주시하고 있었다.

◈          ◈          ◈

“1800년대 초반 영국에서 일어난 사회운동으로....”

“인클로저 운동!”

“땡!”

황성호가 머리를 쥐어짜내 인클로저 운동을 얘기했으나 오답이었다.

다들 인클로저 운동이라 생각했는지 멍 때리는 표정들이었다.

나머지 동기들도 마찬가지로 모르는 표정!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산업혁명 초기 영국에서 일어난 사회운동으로, 성난 직물 노동자들이 방직기 등을 파괴하며 자본가에 맞선 운동을 뭐라고 할까요?”

“정답!”

윤재가 번쩍 손을 들며 외쳤다.

인사팀장과 나머지 동기들의 시선이 윤재에게 쏠렸다.

“러다이트 운동!”

“정답입니다! 역시 윤재씨가 가볍게 선취점을 얻으시는 군요. 1호 팀원으로 누굴 꼽으시겠습니까?”

이번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송이에게 쏠렸다.

다섯 명의 추첨자에 끼지 못한 한송이.

31명 동기 중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데다 미모가 출중했다.

그래서인지 남자 동기들의 구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 한송이를 팀원으로 둔 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게 뻔했다.

“백현민 사원을 선택하겠습니다.”

윤재의 뜻밖의 말에 장내가 잠시 술렁였다.

중간 지점에 앉아 있는 한송이가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게 보였다.

‘퀴즈를 몽땅 맞혀 버리면 된다! 한송이를 다른 팀에 뺏긴다면, 그때는 선의의 경쟁을 하면 된다.’

윤재의 복안이었다.

자신감이 과한 한송이와의 사이에서 우위를 점할 필요도 있었다.

이어지는 인사팀장의 퀴즈도 윤재의 독무대였다.

“헥셔-오린 정리!”

“정답!”

“케플러 제2법칙.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정답!”

“사이클로이드 곡선!”

“정답!”

윤재가 연속해서 네 번의 정답을 맞혀 버렸다.

황성호를 포함해 제비뽑기에 나선 사람들은, 멘탈이 탈탈 털린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팀원 4명을 모두 뽑을 때 까지 ‘한송이’ 라는 이름은 윤재의 입에서 호명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윤재가 답을 맞힐 때 마다, 윤재와 한송이를 번갈아 쳐다보기 바빴다.

대부분의 동기들은 윤재를 고졸 출신이라며 은근히 무시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윤재의 풍부한 지식과 순발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부모님의 서점에서 3천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게다가 20년 회사생활의 내공이 있어!’

연속 4번의 퀴즈를 맞혔음에도 윤재의 표정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놀라운 평정심이었다.

“김윤재씨! 이제 다섯 명의 팀원을 모두 뽑았으니 한 발짝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5명 팀원이 갖춰졌으니 퀴즈에서 제외하겠다는 인사팀장.

윤재가 여유 있는 미소와 함께 한마디 했다.

“31명이라 5명씩 편성하면 한 명이 남지 않습니까? 추가로 도전할 수 있다면 한 번 더 도전하겠습니다.”

“와우!”

동기들이 웅성거렸다.

31명이라 5명씩 조를 짜면 한 명이 남긴 했다.

인사팀장이 오케이 사인을 보냈고, 다시 퀴즈를 냈다.

“다음 제시어들을 듣고 연상되는 인물을 맞추십시오. 고려 예종! 굴비!...”

“정답!”

이번에도 어김없이 윤재가 정답을 외쳤다.

채 문제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사람들이 윤재의 입만 쳐다봤다.

“이자겸!”

“정답입니다. 제가 인사팀장 5년차인데 이렇게 원 사이드하게 답을 맞힌 사람은 처음 봅니다. 자 마지막 팀원을 뽑으시겠습니까?”

윤재가 고개를 들어 한송이를 쳐다봤다.

한송이는 마치 기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송이 사원을 식스맨으로 선택하겠습니다.”

“와!”

다시 한 번 강의장이 감탄사와 술렁거림으로 가득 찼다.

한송이는 누가 눈치 챌 까 걱정하며, 낮고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윤재는 그렇게 여섯 명의 팀을 꾸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맥이 확 빠져버린 상황에서 조원들을 뽑아야 했다.

◈          ◈          ◈

“자 2주차 일정에 대해 안내 드리겠습니다.”

조 편성이 끝났기 때문에, 같은 조끼리 원형으로 자리를 잡았다.

인사팀장의 설명이 계속됐다.

회사 공장에 대한 이해, 외부 강사의 협상 스킬 등에 대한 일정이 소개됐다.

“끝으로 2주차 일정의 하이라이트! ‘신입사원 상품 팔기’ 미션이 목요일에 있습니다.”

“우~”

장내가 다시 술렁였다.

O2 그룹은 매년 신입사원들에게 물건을 팔도록 하고 있었다.

“영업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악착같은 근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사팀장의 설명과 달리, 역대 신입사원들은 이 미션을 한 결 같이 싫어했다.

20km 행군만큼 싫어하는 이벤트가 상품 팔기였다.

인사팀장은 그럴싸한 명분을 얘기하고 있었지만, 신입사원들은 모두 걱정 반 불만 반인 표정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일에 다시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이번 주 일정 안내를 마칩니다.”

인사팀장이 빔 프로젝터를 끄면서 말했다.

“점심 식사까지 30분 남았는데 각자 조원들과 얘기하는 시간 갖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30분 동안 조명을 만들고, 조장을 뽑아서 알려주십시오.”

설명을 모두 마친 인사팀장이 강단에서 내려갔다.

윤재는 팀원들을 향해 몸을 틀었다.

‘백현민. 29세! 대학원 출신으로 정밀화학을 전공했다. 한송이와 마찬가지로 연구개발 전문가 타입! 전생에서 나와 함께 상무 진급을 했었다!’

‘조남군. 26세! K대 경영학 전공. 인사계통에서 주로 근무했었고 전생에서는 팀장이었다.’

‘이영식! 강동호! 이 녀석들에 대한 기억은 없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힘은 좀 쓸 것 같으니 도움이 될 거다.’

‘끝으로 한송이! 머리 좋고, 보고서도 잘 만들고, 여러 모로 쓸모 있는 인재! 최대한 황성호 같은 쓰레기와 어울리지 못하게 만들어야 해!’

면면을 둘러보며 윤재는 속으로 조원들의 과거를 복기해 봤다.

그 사이 조원들은 서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있었다.

조남군이 불쑥 윤재에게 물었다.

“그런데 윤재씨는 왜 한송이 씨를 1픽으로 안 뽑으셨어요? 누가 봐도 에이스인데?”

다들 그게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윤재를 바라봤다.

“최종 보스가 먼저 등장하는 거 봤습니까? 항상 대미를 장식하는 게 에이스인거죠.”

조 편성이후 줄곧 시무룩했던 한송이!

그녀의 입술에 살며시 미소가 걸리는 게 보였다.

“그런데 윤재씨는 어떻게 그렇게 상식이 풍부해요? 저는 인사팀장님 내신 문제 하나도 모르겠던데!”

질문하기를 좋아하는지 조남군이 계속 물었다.

“부모님께서 서점을 하셨고, 학창시절에 부모님 서점에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아! 어쩐지....”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30분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이제 조장을 뽑아야 했다.

“저희 O2하다 팀 조장으로 김윤재씨를 추천하겠습니다.”

30분 동안 회의를 통해 조명을 정한 상태에서, 한송이가 선빵을 날렸다.

어차피 윤재에게 간택 받은 조원들.

윤재를 추천하는 것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른 동기들도 한송이의 의견에 찬성했다.

1주일간 보여준 실력! 그리고 오늘의 퀴즈쇼까지.

끝으로 한송이라는 인재를 가장 늦게 선택하는 배짱까지!

조원들이 윤재를 조장으로 뽑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모두 윤재의 계산대로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밥시간 됐는데 식사나 하러 가시죠.”

“네. 조장님!”

조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초여름의 날씨가 기막힐 정도로 따스했다.

윤재는 한송이와 다정하게 연수원 잔디밭을 걸었다.

그런 윤재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한 명의 사내가 있었다.

바로 황성호였다.

“김윤재 저 새끼 회장 낙하산이라도 되는 거 아냐? 문제 유출된 거 아니냐고?”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그렇지 않고 그 많은 문제를 어떻게 다 알고 있냐고? 그것도 고졸 출신이 말이야?”

황성호의 어금니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회사 인사팀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거라 본다.”

“어휴 꼴 보기 싫어. 한송이랑 아주 착 달라붙어 가네.”

“진정해라. 황성호!”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한송이 저 요망한 것이 엉덩이 흔들며 가는 거 안보여?”

황성호의 눈에 불꽃이 튀겼다.

“캬! 니 말대로 뒤태는 정말 좋다. 뒤태 실화냐?”

황성호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윤재와 한송이의 뒤통수만 노려보고 있었다.

한편 황성호의 질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윤재는 생각했다.

‘황성호! 너는 기저효과가 뭔지도 모르지? 니가 까불면 까불수록 내가 반사이익을 볼 거다. 니 덕에 나는 회사 신입사원 연수 역사상, 최고점을 받은 신입이 될 거야. 덤으로 실력에 인성까지 갖춘 신입으로 추앙을 받으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