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7화 (17/196)

안다 박사의 엑셀 강좌

이튿날 호남본부 영업3팀!

여전히 7시 30분이면 출근해 하루 일과를 준비하는 윤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같이 집 뒷동산을 오르는 사람이 있다.

전생에서도, 회귀 후에도 윤재가 그런 사람이었다.

루틴의 강자!

강철같은 의지력의 사나이!

모두 전날 과하게 마셨지만, 출근 순위는 루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평소처럼 오석진 과장이 2등으로 출근했다.

“양촌리 스타일 커피 한잔 준비했습니다.”

“역시! 윤재야 고맙다. 좋은 하루 돼라!”

어느 순간 사람들은 윤재를 더 이상 ‘윤재씨!’라 부르지 않고 ‘윤재’라 불렀다. 윤재는 편하게 불러주는 그 호칭이 더욱 맘에 들었다.

“과장님. 그리고 이거....”

윤재는 커피와 함께 큼지막한 책을 한권 건넸다.

“응? 이게 뭐야? ‘안다 박사의 엑셀 무작정 따라하기’ ? ”

“네. 제가 쓴 책입니다. 지난 주 부터 시내 서점들에 배포되기 시작한 따끈따끈한 신간입니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라고 하네요.”

“이걸 자기가 썼다고? 콜록 콜록! 진짜 이게 니 책이라고?”

오석진은 사래들려 콜록거리다 커피를 뿜을 뻔 했다.

“네. 졸작이긴 하지만 출간 기념으로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책을 뒤적거리던 오석진 과장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오과장은 엑셀로 겨우 사칙연산 정도나 하는 초보 유저. 그런 오과장이 보기에도 책의 퀄리티가 고퀄이었다.

‘가독성 높은 글씨. 깔끔한 편집.... 내가 봐도 배우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오과장은 윤재의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즉시 전력 예시 코너는 우리 회사에도 적합한 내용들 같은데? 그런데, 이런 책을 윤재가 썼다고? 이 녀석은 대체??’

윤재는 이어서 출근하는 직원들 모두에게 음료와 함께 자신의 책을 선물했다.

다들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머지 사람들 중에서는 특히, 차명수 대리의 반응이 눈에 띄었다.

“이걸 진짜 니가 썼다고?”

차명수가 책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네. 작가에 김윤재라고 적혀 있잖습니까?”

“진짜네. 저자 김윤재. 야 이거! 완전 사람을 다시 봐야겠는데.”

“하하. 감사합니다. 대리님.”

책 안쪽에는 작가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

- 김윤재. 오대양 푸드 재직. 엑셀 마스터를 꿈꾸는 평범한 직장인.

처녀작인 엑셀에 이어 [ 안다박사 ] 시리즈는 계속 됩니다.

커밍 순!

“시리즈로 나온다는 얘기, 실화냐?”

“네. 일단 출판사와 계약을 그렇게 맺었습니다. 파워포인트, 워드도 안다 박사 시리즈로 나올 겁니다.”

“정말? 진짜 대단하다. 그런데 인세는 얼마나 받은 거야?”

“얼마 안 됩니다. 출판사 직원 말로는 대략 7~8천정도 벌 것 같다고 하더군요.”

“7천~8천원?”

“하하하. 아니요. 7,000 만원이요!”

“칠. 칠천만원?! 야! 당장 한턱 쏴라. 한턱 쏴!”

차대리는 팀원들에게 ‘윤재가 인세로 8,000만원을 벌게 됐대요.’ 라며 갖은 호들갑을 떨며 돌아다녔다.

◈          ◈          ◈

“오늘 이렇게 회의실에 모이라고 한 이유는 별 게 아닙니다.”

책을 전달한 지 30분 정도 지난 뒤, 팀원 모두가 회의실에 모였다.

장동석 팀장이 회의 소집을 명했다.

부드러움 속에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점이 장동석 리더십의 특징이었다.

“오늘 모임은 사실 윤재씨 부탁으로 이뤄진 겁니다. 윤재씨. 얘기해 보세요.”

“죄송합니다. 바쁘신 선배님들 모이시게 해서. 사실은 드리고 싶은 물건이 있어 이렇게 모셨습니다.”

“아침에 책을 선물했는데 또 뭘 준다고?”

“네. 성의라 생각하고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장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윤재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박스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게 뭐야? 디지털 카메라 아냐?”

“그렇습니다. 니콘 쿨픽스 SQ라는 모델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짱이라고 하더군요.”

“그거 엄청 비싼 거 아냐? 그걸 선물로 준다고?”

“네. 팀장님께서 혁신 경진대회에서 받은 상금 100만원을 협찬하셨습니다. 나머지 100만원은 제가 협찬했구요. 엑셀 초판 인세가 나왔거든요.”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선배들은 윤재와 장동석을 번갈아 쳐다보며 스토리를 듣고 싶어 했다.

“그냥 드리는 건 아니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네!”

디지털 카메라를 실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팀 선배들은 윤재의 얘기와 동작에 완전 집중하고 있었다.

“내일부터 제가 주관해 엑셀 강좌를 시작할 겁니다. 수업료는 공짜인데, 쉬는 날 빼고 20일 교육 중 15일 이상 수강하시면 저 디카를 갖게 되실 겁니다.”

강사가 수업료를 받는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수업료 형식으로 디카를 선물한다는 해괴한 조건이었다.

“윤재야!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오석진 과장이 물었다.

“하하하. 약 파는 것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

“선배님들께서 엑셀, PPT 잘 다루게 되면 저도 편해지니까요. 그럼 저한테 이거 만들어 달라 저거 만들어 달라 하시지 않을 것 아닙니까? 하하하.”

윤재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보고서를 대신 작성해 주는 게 윤재의 일과 중 비중이 높은 일이었다.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고 탈무드에서 얘기하지 않았던가?’

윤재가 경품을 내걸고 교육을 하게 된 이유중 하나였다.

직원들 문서 대신 작업해 주지 않는 다는 것 외에도 윤재의 복안이 또 있었다.

일을 더 빛나게 만들어 주는 장동석의 스타일과, 뭐든지 자기 공으로 돌리고 싶어 하는 양광수 상무의 스타일을 알면 손쉬운 예측이었다.

‘양상무가 숟가락 올리기 위해, 내게 교육비를 지불할 가능성이 높아! 생색도 내고 얼마 안 되지만 돈도 벌고, 사람들 실력 좋아지면 나도 편해지고! 이거야 말로 일타삼피!’

윤재는 태연하게 선배들에 설명을 이어갔다.

“또 하나 있습니다. 인세로 제가 술사는 건 그냥 추억으로 잊혀질 겁니다. 하지만 수업을 받으면 형님들 실력으로 축적될 것입니다!”

“!!”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윤재의 안목에 다들 감동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미래가 불투명한 계약직에 비해, 자신들은 너무 안주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었다.

장동석 팀장이 끼어 들어 쐐기를 박았다.

“윤재씨 책 퀄리티 보셨죠? 자존심 상한다 생각 마시고 윤재씨에게 배우세요. 저도 배울 거니까. 한 달에 10만원을 주고 배워도 아깝지 않을 건데, 공짜로 알려 준다하니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성실하게 들으면 디카도 주고!”

다들 숙연해 졌다.

장팀장이 직원들 한명 한명에게 얘길 했다.

“오과장님. 팀장 진급에 오피스 3총사 시험 있는 거 아시죠? 팀장 진급 하셔야 할 거 아닙니까?”

“....”

“대리들도 마찬가지야. 보고서 수준 좀 올려서 상무님께 어필해야지! 언제까지 윤재한테 부탁하면서 살 거야? 교육 받자고! 배워서 남주냐?”

“....”

“결과적으로 우리 팀 생산성도 올라갈 거고. 이건 완전히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삼득 정도는 되는 제안이라고!”

장팀장과 윤재의 배려, 그리고 사려 깊음에 다들 감화되고 있었다.

끝으로 윤재가 선배들께 얘길 했다.

“강의나 교육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룹 학습이라 생각하고 임하겠습니다. 저도 함께 배운 다는 생각으로... 내일부터 같이 파이팅 해 보시죠?”

선배들 맘 상하지 않게, 겸손함으로 마무리하는 윤재였다.

자칫 자존심이 상할수도 있지만, 윤재의 ‘함께 배운다’는 말이 선배들에게 묘한 울림을 전달했다.

얘기가 끝난 윤재는 장동석을 따라 회의실을 나갔다.

팀 선배들은 여전히 회의실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윤재가 샘플로 개봉해 놓은 디카를 요리조리 만지작 거리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          ◈          ◈

이튿날 아침 8시 20분.

회의실에서 윤재의 엑셀 무료 강의가 시작됐다.

장동석을 포함한 팀 전원이 강의를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직원들 마다 수준차이가 있기 마련.

윤재는 초보자 눈높이에 맞춰 강의를 시작했다.

초등 교사처럼 윤재의 강의는 명쾌했고 친절했다.

보고서나 품의서에 직접 활용 가능한 사례 중심의 강의였다.

“첫 학습 하시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매일 오전 이 시간에 30분씩 수업 있습니다. 궁금하신 내용은 제게 물어봐 주세요.”

학습이 끝나고 장팀장과 윤재가 회의실을 먼저 나갔다.

직원들의 첫 강의에 대한 평가가 시작됐다.

“윤재 저 녀석 Y대 중퇴라는 말 뻥인줄 알았는데,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야! 명수야! 윤재가 너처럼 맨날 허풍만 치는 줄 알았니?”

“참! 과장님은 맨날 저만 미워해!”

“너는 강의 듣고도 모르겠냐? 회사 안 다니고 MS오피스 강의만 해도 떼 돈 벌 친구다.”

차대리와 오과장님의 티키타카에 다른 동료들도 한마디씩 덧붙였다.

“원래 Y대 다녔는데 부모님께서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했다고 하더군요.”

“에고. 불쌍한 녀석.”

“저렇게 불쌍하고 심성도 착한 윤재를, 차대리 너는 그토록 갈군 거냐?”

“참. 과장님은 제가 언제 윤재 괴롭혔다고 그래요?”

“그럼 니가 그동안 윤재를 아끼고 사랑했다는 거야?”

“칫! 앞으로는 그렇게 할 겁니다.”

차대리가 윤재를 대하는 방식이 최근 변하고 있긴 했다.

“윤재가 그랬는데 자기 책이 영어로도 출판 된다고 합니다.”

“뭐야? 그럼 영어도 잘 한다는 얘기야?”

“토익 점수가 거의 만점 수준이라고 하던 대요?”

“누가 그래?”

“팀장님이요.”

그 때 오석진 과장이 다시 차명수를 긁었다.

“야. 차대리. 너 토익 몇 점이야? 신발 밀리 수지?”

“에이. 과장님은 왜 자꾸 저를 걸고넘어지세요?”

“말해 봐. 몇 점이야? 280? 270?”

“과장님!!!!”

발끈했는지 차명수가 ‘빼액’ 하고 고함을 질렀다.

“뭐? 300점은 넘는다는 거야?”

“아니요.”

“그럼 몇 점인데?”

“과장님, 제 발 치수 생각보다 작습니다.”

그 바람에 신발 치수 언저리의 토익 점수를 갖고 있는 직원들이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렸다.

◈          ◈          ◈

급한 일처리를 끝낸 장동석이 윤재를 불렀다.

“덕분에 나도 IT 능력 좀 키우겠다야. 고맙다!”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아니긴 임마. 이게 보통 일이냐? 하여튼 너는 대단하단 말 밖에 할 게 없구나. 일도 제일 열심히 했는데 대체 책은 언제 쓴 건지! 정말 도깨비 같은 녀석이야.”

“부족한 실력이지만 교습법도 더 연구해 보겠습니다.”

“아냐. 머리에 쏙쏙 들어오더라. 안다박사 맞더라! 하하.”

전생의 기억 때문일까?

윤재는 영업에 대한 애착이 있었고, 영업조직이 회사에서 대우 받길 원했다.

‘술이나 퍼 마시고 사기나 치고 다니는 영업! 가격이나 깍아 팔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재무본부나 생산본부, 그리고 감사실에서 영업을 업신여기며 하는 얘기들이었다.

‘영업이 SMART하게 일 하는 조직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그룹재편과 사업 구조조정에 영업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전생의 아픈 기억!

전생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윤재는 10년지 대계를 품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녀석. 마음 씀씀이 하고는....”

“부족한 제게 그룹학습의 장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장동석은 일처리의 궁상각치우를 아는 사람.

작품이다 싶으면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광파는 법을 아는 사람이 장동석이었다.

모든 일이라는 게, 단순히 잘 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광을 잘 팔면 작품이 더 빛나는 법이니까!

“광주 사무실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 보는 건 어떠냐?”

역시 윤재의 예측과 비슷하게 반응하는 장팀장이었다.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요?”

“그래. 어차피 한번 강의 하는 것 다 같이 들으면 좋잖아.”

“당연히 좋죠.”

“상무님께는 내가 건의할게. 잘 되면 성공사례로 연말에 사보에도 나오게 한번 해 보자. 그리고 상무님께 니 수고비 지급도 건의해 볼게. 현금 가지급 받고, 영수증 처리하면 교육비 지급도 가능할 거다!”

“팀장님! 배려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역시 장동석이었다.

“이거 나만 좋자고 하는 일 아니다.”

장동석의 얘기는 진심이었다.

‘상대적으로 변방인 광주에서 직원들이 엑셀 교육을 자발적으로 받는다? 그것도 전 직원이!’

장팀장의 생각에, 이번 사안은 포장하기에 따라 양광수 상무, 장동석 팀장! 그리고 윤재까지 모두 회사에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소재였다.

“저는 오케이입니다.”

“녀석. 웃으니까 보기 좋네.”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침 교육시간에는 깍듯하게 스승님으로 모시마! 다른 애들도 그렇게 하라고 할게!”

“하하하. 아닙니다. 괜히 부담되니까 편하게 대해 주세요!”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윤재는 아프리카 속담을 떠 올렸다.

‘조금 느려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함께 간다! 먼 미래의 거센 파도도 함께 라면 너끈히 넘을 수 있다!’

윤재의 눈동자가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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