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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5화 (15/196)

본격적인 해빙 무드!

"뭐라고 욕 했는지 다시 한 번 씨부려 보라고!”

“철푸덕! 철푸덕!”

덩치가 계속 차명수의 싸대기를 갈겨댔다.

“죄송합니다. 형님! 사. 사실 욕은 안했습니다.”

“에라이 개새끼.”

덩치의 솥뚜껑만한 손바닥이 어깨 뒤로 돌아갔다. 이제 그 큰 손은 돌덩이 마냥 말아 쥐어져 있었다.

이미 쌍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차명수.

이제 곧 덩치의 스트레이트가 차대리의 옥수수를 탈탈 털게 될 상황이었다.

“뭐. 뭐시여?”

풀스윙을 날리려던 덩치의 손이 허공에서 멈춘 채 꼼작 못하고 있었다.

윤재가 덩치의 손목을 허공에서 낚아 챈 것이다.

“뭐여? 너는 뭐여?”

“형씨. 이제 그만 해. 더 이러면 폭행죄로 고발할거야. 지금 당신이 저지른 폭행 정도면 전치 8주는 나올 거야. 그 정도면 벌금도 수백만원이고 재수 없으면 실형이야.”

“헛 참. 어디서 이런 존만한 놈들이.”

그랜저에서 왼손을 빼낸 덩치. 그 사이 약삭빠르게 차대리가 창문을 닫았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사람들 때문에 차를 빼도 박도 못하고 있었다.

‘으이구. 저 한심한 인간!”

윤재는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윤재가 차대리를 보느라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오른손을 못 쓰는 덩치가 왼 주먹을 날렸다.

조금 과장하면 주먹크기가 무등산 수박만 했다.

“퍽!”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덩치는 윤재의 코뼈가 부러지는 그림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허공에서 윤재의 손바닥이 덩치의 왼 주먹을 막고 있었다.

“뭐. 뭐여? 이럴 리가 없는디. 이럴 리가 없는디.”

덩치는 다시 한 번 왼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제 덩치는 양 손 모두를 윤재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아. 아야….”

순식간에 윤재가 덩치의 오른손을 뒤로 꺽은 뒤, 발로 왼 무릎을 걷어찼다.

덩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왼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있었다.

그는 갈수록 오른 팔이 꺽이는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어떡할래? 계속 하면 당신 인대 다 나가!”

“끄응. 아. 아야. 아야. 이. 이 씨발.”

“몸만 곰 같은지 알았는데 머리도 곰 같은 놈이네. 이래도 버틸거야?”

윤재는 덩치의 꺽은 팔을 잡은 손과, 덩치의 등을 누르고 있던 무릎에 동시에 힘을 가했다.

그 때 였다.

그랜저 안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차명수가 상황이 변한 걸 알아챘다.

‘오! 윤재 저 놈 대단한데. 뚱땡이 너는 디졌어!’

차명수가 그랜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보아하니 윤재가 덩치를 제압하는 동안 덩치에게 복수를 하려는 게 분명했다.

‘으이구! 저 놈의 잔머리 하고는!’

차명수가 문을 반쯤 열고 나오려는 순간!

윤재가 덩치의 힘에 밀리는 척 하며 그랜저 차문을 받아 버렸다.

“어이쿠!”

차에서 내리려던 차대리는 문짝에 밀려 차 안으로 미끌어지고 말았다.

미끄덩!

“끄아악! 내다리!”

앞문에 찍힌 정강이 때문에 차명수는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 뿐 아니었다.

“끄아악! 내손!”

차명수는 차 안으로 미끄러지며 자신의 토사물을 짚고 만 것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됐고! 슬슬 정리해 볼까?’

윤재는 일어서려던 덩치의 팔을 다시 꺽은 뒤 무릎을 꿇렸다. 엄청난 덩치가 윤재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꼴이었다.

“아. 아야. 자. 잠깐. 혀. 형씨!”

“이쯤에서 차대리님 폭행한 것과 쌤쌤한 걸로 치고 가던 길 가자고.”

“끄응. 아. 알았소. 알았으니 이 팔 좀 풀어주시오.”

윤재가 마침내 덩치를 풀어줬다.

덩치는 그대로 주저 않아 양손을 번갈아 주물렀다.

“우리 차대리님 폭행한 건은 눈감아 줄 테니 곱게 물러가라. 우리 간다!”

“끄응.”

윤재가 자신의 르망에 올라탔다.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길을 터주기 시작했다.

차명수 대리가 먼저 출발하고, 윤재도 차를 출발시켰다.

그때 일그러진 표정으로 앉아 있는 덩치에게 누군가가 깐죽대는 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목소리였다.

한 참 전에 차명수 대리에게 불법주차해서 차가 그렇게 된 거 아니냐고 깐죽거렸던 그 아저씨였다.

그는 싸움 구경하러 달려온 모양이었다.

아저씨가 덩치에게 한 마디 건넸다.

“그니까. 젊은이. 뭐 하러 일방인데 들어와서 고생을 해싸! 고생을!”

◈          ◈          ◈

내부세차가 되는 공업사에 차명수의 그랜저를 맡기고, 윤재의 차를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차명수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대리님? 제 차 또 타셨네요?”

“.....”

무거운 침묵을 깨고 차명수가 입을 열었다.

“유. 윤재야. 고. 고맙다.”

차대리는 아직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는지 목을 주물렀다.

“고맙긴요. 직장 선배님이 어려운 일을 당하는 데 당연히 도와야죠.”

“그. 그런데 윤재씨. 오. 오늘 일은 남들한테는 비밀이다. 비밀. 알았지?”

“네. 지퍼 채울게요.”

“그. 그래. 고맙다. 부탁이니까. 응. 자크 좀 채워 줘. 알았지?”

윤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안심이 됐는지 차대리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근데 말이야. 윤재 너는 원래 그렇게 싸움을 잘했어?”

“잘하긴요. 아네요.”

“아니긴 뭐가 아냐. 그 멧돼지! 아니 그 곰 같은 놈이 너한테 꼼짝 못하던데.”

“대한민국 군대 다녀온 사람은 다 이 정도는 해요.”

“정말이야?”

“그럼요.”

능력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았다 해도 좀 전의 덩치를 상대할 실력을 갖고 있던 윤재였다.

하지만 오늘처럼 압도적으로 제압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회귀라는 기연으로 스피드와 힘이 대폭 업그레이드 된 게 분명했다.

◈          ◈          ◈

씻었지만 차명수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왜 이리 늦게 왔어?”

“죄송합니다. 팀장님!”

“너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죄송합니다.”

차대리는 열중쉬어 자세로 고개를 푹 숙였다.

“대리 나부랭이가 술 쳐 마시고 신입한테 픽업이나 오라고 하고 말이야. 나도 그런 거 직원들에게 안 시키는데 니가 지금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

“게다가 지 때문에 신입까지 지각하게 만들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으면 출근해서 얘길 해야지. 나도 그렇고 다른 직원들도 그렇고 윤재까지 오해 했잖아. 엉?”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윤재 그 착한 녀석은 너 때문에 늦었다는 변명 한마디도 안하더라.”

“….”

고개를 들어 장팀장을 바라보는 차명수 대리.

그도 조금은 놀란 눈빛이었다.

만약 자신이었면 ‘누구 때문에 늦었느니’ 하면서 고자질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윤재가 고자질하지 않고 묵묵히 감내 했다는 사실은 차명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에잉. 누가 고참이고 누가 신입인지. 됐으니 나가 봐.”

“네. 팀장님.”

“철 좀 들어라. 철 좀 들어.”

“죄송합니다. 앞으로 진짜 잘 하겠습니다. 노여움을 푸세요.”

“알았어. 나가 봐. 그런데 너 얼굴은 또 왜 그 모양이야?”

“네?”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고?”

“해장하고 나오다 술이 덜 깨 넘어졌습니다.”

“다친 곳은 없고?”

“괜찮습니다. 팀장님!”

“안 괜찮은 것 같은데 병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

“아닙니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          ◈          ◈

다음날 아침!

윤재는 여느 때처럼 출근한 직원들을 위해 모닝커피와 차를 준비했다.

이쁜 구석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차명수였지만, 윤재는 그에게 메밀차를 건넸다.

“어! 윤재씨. 고마워. 나를 위해 오늘도 고생 많구나.”

왠지 오버스럽고 어색한 차대리의 과잉 반응이었다.

“어거 어때? 내 책상과 잘 어울리지?”

생일을 맞아 윤재가 그려준 차명수의 인물화였다.

그동안은 책상 서랍에 처박아 놓더니 오늘은 책상 중앙에 보란 듯이 올려놓은 것이었다.

차명수가 윤재에게 보내는 화해의 제스쳐였다.

‘이 양반이 드디어 본 궤도로 접어드는 건가?’

윤재는 내심 흐뭇했다.

한 달 넘게 몽니를 부렸던 차명수.

윤재와 관계없이 차명수 스스로 쌓아 왔던 빙벽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뭐야? 그거 차대리 그림이야?”

사무실 직원들이 갑자기 웅성거리며 몰려 들었다.

“야. 이거 차대리랑 똑 같은데.”

“김대리. 똑같긴 뭐가 똑같아. 명수보다 훨씬 잘 생기게 그려 놨구만.”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런데 이건 어디서 났어? 돈 주고 맡긴 거야?”

“아네요. 과장님! 윤재가 제 생일 선물로 그려준 거 에요.”

“정말? 윤재 그림 실력 대단한데? 몽마르뜨에 가서 그림만 그려도 먹고는 살겠다.”

“나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진짜 부럽던데!”

직원들은 진심으로 윤재의 그림 실력을 칭찬했다.

“아닙니다. 아마추어 실력입니다. 실물이 더 낫죠!”

“윤재야, 아무리 그래도 차대리 실물은 아니야! 저게 사람 얼굴이냐. 생기다 만 얼굴이지.”

“참. 과장님은 저만 미워라 하셔.”

차대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여튼 윤재 너 대단하다. 이런 재주가 있는지 몰랐어. 완전 탐나는데!”

“과장님. 탐나도 기다리셔요. 과장님 생일은 이미 지났잖아요.”

“뭐야? 그럼 나는 일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거야?”

“정 받고 싶으시면 호적을 바꾸시든가요?”

차명수가 웃으며 오과장에 말했다.

“차대리. 니가 그렸냐? 윤재가 그렸지. 짜식이 지가 생색을 내고 난리야.”

“하여튼 과장님은 저만 미워하신다니까! 내가 뭐 홍어좆도 아니고!”

“야! 홍어좆은 먹기라도 하지. 너는 대체 어따 써 먹어야 하냐?”

윤재가 그려준 차명수의 인물화!

서랍에서 책상위로 인물화 위치가 바뀌며, 길었던 차명수와의 냉전이 해빙무드로 접어 들었다.

◈          ◈          ◈

그날 오후 늦게 전임자인 조영원이 사무실을 찾았다.

근로자 위원회와 사측의 협상 결과, 상반기 보너스로 기본급 50% 지급이 결정된 모양이었다.

직원에 따라 백에서 이백만원 정도를 보너스로 받게 됐고,

협상타결 기념으로 인당 20만원씩의 상품권이 지급됐다.

8월 중간에 입사한 윤재는 상반기 근무자가 아닌 관계로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다.

윤재의 전임자였던 계약직 조영원 사원.

그녀도 상반기 성과급 수령 권한이 있었다.

상품권은 직접 수령해야 하는 관계로 조영원이 오래간만에 사무실을 찾아왔다.

“뭔가 사무실이 좀 달라 보이네요.”

그녀는 왜 사무실이 달라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첫째는 윤재가 정리정돈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조영원과 달리 윤재가 사무실에서 항상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 내 정신 좀 봐. 차 한 잔 하실래요? 커피? 녹차? 말씀만 해 보세요. 어지간한 음료는 다 있습니다.”

“윤재씨가 커피까지 타요?”

“그럼 제가 타지 누가 탑니까?”

“어머머. 그런 얘기 하면서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럼 제가 웃지! 웁니까?”

가지런한 이가 돋보이는 백만불짜리 미소였다.

“윤재씨! 아무리 계약직이라지만 너무 잘 해주면 정규직이 계약직을 계속 무시하게 됩니다.”

“그런가요?”

“당연하죠. 계약직인 것도 서러운데 커피 타라. 복사해 와라. 편의점 가서 뭐 사와라. 우리가 정규직 종입니까?”

“뭐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까?”

“윤재씨! 사회 초년생이라 모르는 모양인데 저는 오대양푸드가 세번째 직장이었습니다.”

윤재는 조용히 웃었다.

‘나 직장생활 20년 내공을 간직한 사람인데! 이 분이 지금 누구를 가르치는 거야?’

그럼에도 윤재는 조영원을 예우했다.

계약직! 그것도 여자 계약직의 비애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윤재였다.

“그러셨군요.”

“적당히 중간만 해야지. 너무 잘 해주면 그걸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구요.”

“영원씨?”

“왜요?”

윤재의 얼굴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더 없이 진지했다.

“저는 영원씨의 중간만 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뭐요? 왜요? 왜 동의를 못한다는 거죠?”

“저는 대한민국 1% 수준에 들 정도로 빡쌔다는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군대에서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뭔지 압니까?”

“제가 군대 얘기를 어떻게 압니까?”

“영원씨가 얘기한 ‘중간만 가라’ 는 것 이었습니다. 작업을 잘하면 작업할 때 불려가고. 그림을 잘 그리면 그림 그릴 때 불려가고. 노래를 잘 하면 노래 부를 일이 생기면 불려간다. 그러니 편하게 군 생활하려면 중간만 해라.”

“….”

“이런 얘길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군에 있을 때 고참들의 얘기와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도끼질이 필요하면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도끼질을 했습니다. 진지 구축 공사를 나가면 노가다 한다는 생각으로 곡괭이질을 했습니다. 진지 구축도를 그리라면 새벽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대 회식이라도 하면 노래도 목청껏 불렀습니다.”

“….”

“그랬더니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다른 전우들 보다 휴가를 나와도 한 번 더 나왔습니다. 그렇게 2년 2개월을 버텼더니 공수특전단에서 사단장 표창까지 주더군요.”

“….”

조영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래도 적당히 중간만 하는 게 맞다는 건가요?”

“그. 그야….”

“사정상 저는 지금 계약직입니다만. 두고 보십시오. 저는 계약직으로 생을 마치지 않을 겁니다.”

윤재를 만만하게 봤던 조영원.

윤재의 단호한 한마디 한마디에 당황한 조영원은 부랴부랴 상품권을 챙겨 떠났다.

‘중간만 하라고? 적당히 하라고? 그래서 영원히 계약직으로 사는 겁니다. 열심히 일 하면서도 세상과 싸우는 걸 병행할 수 있어요. 영원씨! 그걸 모르면 계속 계약직으로 살아야 할 겁니다.’

허겁지겁 사라지는 조영원을 바라보는 윤재의 마음은 무거웠다.

후다닥 사무실을 나가던 조영원.

그녀는 복도 옆 계단에서 차명수와 장동석과 마주쳤다.

그들은 한참 전에 복도에 도착했으나 사무실로 들어오지 못했다. 윤재와 조영원의 대화가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조영원은 차명수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허겁지겁 사라졌다.

“윤재 얘기 하는 거 들었지?”

“예....”

“명수야! 너 잘 해라. 저런 윤재를 왜 미워했냐?”

“팀장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윤재 미워하지 않습니다.”

“정말이냐?”

“예!”

“자식. 진작 그렇게 하지 말이야. 니가 우리 팀 허리고, 윤재가 다리다! 하체가 튼튼해야 남자가 제 구실 하듯, 팀도 마찬가지야.”

“네. 팀장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우리 팀 하체 튼튼해지는 것 기대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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