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8화 (8/196)

SMART work!

호남 부문장 양광수상무와 영업3팀의 점심 약속 날이 도래했다.

윤재는 차명수 대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뒷자리에는 지사 고참 오과장이 동석해 있었다.

몇 일전 회의 때 윤재가 주무 담당이 되며 팀내에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차대리가 영업 업무 중 가장 어렵다는 신규개발 일을 하게 된 것!

식품 업계1~2위를 다투는 오대양 푸드.

그래서 현장 영업 업무는 자연스레 갑과 을이 공존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신규개발 업무는 완전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일!

직속 팀장님께 화를 낼 수 없는 처지인 차명수 대리.

그래서 그는 애꿎은 윤재에게 심통을 부리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는 괜히 윤재에게 시비를 걸었다.

“근데 윤재 너 팀장님과는 무슨 관계냐?”

회의 했던 날 이후 말투를 하대로 바꾼 차대리가 반말로 윤재를 도발했다.

“저요? 직속 팀장님과 계약직 사원의 관계죠.”

“내가 그 얘길 하는 게 아니고. 혹시 장팀장님 낙하산 아니냐?”

어이없는 소리였다.

‘이 사람 보게? 전생에서도 나를 괴롭히더니 지 버릇 못 고쳤네.’

윤재는 웃는 얼굴로 답했다.

“대리님! 무슨 낙하산이 계약직으로 옵니까?”

“아니. 내가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정규직 약속을 받았다거나!”

더 들어줄 가치도 없는 얘기였다.

그 때 오석진 과장이 역정을 내며 끼어 들었다.

“야! 차대리!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과장님!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뭐? 이 새끼가 디질라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차대리가 황급히 꼬랑지를 내렸다. 차명수는 원래 그런 스타일!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뭐 그런 사람이었다.

“죄송합니다.”

“입사한지 한 달도 안 된 윤재씨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적당히 해라.”

“끄응. 예 알았습니다.”

윤재는 오과장님께 고마움을 느꼈다.

반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차대리를 보고 있자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저 인간 언제 고쳐 써 먹어 보나?’

윤재가 혼자 한숨을 내쉬는 사이 자동차는 식당 앞에 도착했다.

◈          ◈          ◈

“장팀장이 오더니 뭐가 좀 다르긴 다르네. 어디서 이런 맛집을 찾았지?”

양광수 상무는 흡족한 표정으로 굴비를 뜯었다.

보리굴비 정식!

광주에서 영광으로 빠져나가는 길에 위치한 장흥식당!

‘이 식당은 수년 안에 광주 굴비정식의 메카가 될 정도로 유명해진다. 아직은 나 밖에 모르는 일이지만!’

테이블 위의 마른 굴비가 어느새 대가리만 남겨놓고 있었다.

“장팀장이 추천했나? 아니면 주무담당이 추천했나?”

“사실은 이번에 입사한 김윤재씨가 추천한 집입니다.”

순간 양광수 상무의 눈이 커졌다.

“김윤재씨가 추천했어? 언제 이런 맛집을 다 알아냈대?”

‘어떻게 알긴요? 상무님이 보리굴비를 무지 좋아하신다는 것은 회사에서 유명한 일입니다. 그래서 추천한 거죠!’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윤재. 어지간한 직원들의 식성은 꿰차고 있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

윤재는 양상무의 질문에 조심스레 답했다.

“무릇 회사 생활 하려면 시군구별 대표 맛집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허허. 그걸 대체 누구에게 배웠단 말인가?”

“상무님 앞에 계신 장팀장과 오석진 과장을 포함한 선배들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새우 눈 같던 양상무의 눈이 동태눈깔처럼 커졌다.

“콜록 콜록 콜록!”

옆에 있던 지원팀장은 기침을 해댔다.

항상 의전 문제로 지적을 당하고 사는 지원팀장 최희갑.

자신보다 윤재가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최팀장! 갑자기 왜 그래?”

“아. 아닙니다. 콜록 콜록. 사레가 좀 들렸습니다. 콜록 콜록. 으음. 콜록 콜록!”

상무4년차 양광수 상무!

눈치 백단이 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윤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윤재의 대답은 양상무를 만족스럽게 했다.

‘요놈 봐라?’

면접 때부터 보통 녀석은 아니라 생각했던 그다.

‘생각 보다 대물이 될 수 있겠어!’

“그래! 김윤재씨가 주무담당을 맡게 됐단 얘긴 들었지. 오늘 식사 장소 섭외하는 것 보니 기대해도 되겠어.”

“상무님! 우려도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호남본부와 영업3팀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한다!]

이 말은 양광수 상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였다.

그걸 윤재가 모를 리 없다.

양상무에게 미끼를 던진 것이다.

그런데 그 미끼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었다.

임원과의 식사자리는 대부분의 팀원들에게 불편한 자리. 차명수 대리를 포함해 절반 가까운 직원들은 이번에도 테이블 양쪽 끝에 사이좋게 앉아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밥만 먹고 있다.

윤재가 말한 ‘최선을 다한다.’ 는 말에 갑자기 표정이 변한 양상무.

눈치 밥 먹고 있는 팀원들을 향해 불쑥 질문을 건넸다.

“영업3팀?”

“네. 상무님!”

호명에 놀라서 양상무에게 시선이 쏠렸다.

“내가 항상 말했지? 최선을 다하지 말고 SMART하게 일하라고. 기억하지?”

“네.”

왠지 자신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대답.

“차명수 대리?”

“네. 넵. 상무님!”

차명수 대리가 앉은 자세에서 차렷 동작을 취했다. 그는 눈알을 이리 저리 굴리며 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모색했다.

“영업3팀 혁신활동 코디가 차대리 아닌가?”

“네. 맞습니다. 상무님!”

“그럼 차대리가 한번 SMART Work에 대해 말해봐.”

“그. 그것이. 그러니까. 스페시피크. 메주어래블….”

“뭐라고?”

“스페시피크, 메. 메주어래블....”

“뭐? 메주어래브으으을? 메주어래브으으을? 차대리 자네 대학 전공이 뭐야?”

양광수가 말꼬리를 길게 끌어올리며 물었다.

“네? 그것이. 그러니까. 영문학 전공했습니다.”

“영어 전공했다는 사람이 메주어래브으으을? 메주어래브으으을? 이것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네.”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 졌다. 마치 얼음물에 밥을 말아 먹는 눈앞의 굴비 밥처럼.

“팀장들 빼고 누가 SMART 얘기할 사람 없어?”

“….”

다들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쳐다보는 사이 몇 초가 흘렀다.

어색한 침묵을 깨트린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다.

윤재였다.

“제가 감히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윤재씨가 얘길 한다고요?”

지원팀장이 우려 섞인 눈으로 윤재를 쳐다봤다.

그는 윤재가 SMART 즉, 똑똑하게 일하라는 것이라 대답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최희갑의 기우일 뿐이었다.

“Specific, Measurable, Attainable, Relevant, Time bound 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순간 별실에 있던 10명의 시선이 모두 윤재에게 쏠렸다. 차대리가 어벙하게 입을 벌린 채 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상무님께서 올해 시무식 때 직원들에 공유한 게시판을 찾아 봤습니다. 그래서 알게 됐습니다.”

“허허~”

양상무, 지원팀장, 장팀장이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무슨 뜻인지도 알고 있겠지?”

양상무가 기대 섞인 눈으로 윤재를 바라봤다.

“막연하게 일하지 말고 구체적 목표를 갖고 일하라는 의미라 생각합니다(S). 막연한 감이 아닌 측정 가능한 데이터에 기반 해 일하라는 의미라 생각합니다(M) 블라블라....”

윤재가 스마트 워크의 의미에 대해 스펠링 순서대로 나름의 해석을 했다. 완벽한 답변이었다.

갑자기 양상무가 박수를 쳤다.

“퍼펙트! 브라보! 브라보오! 스마트 워크의 의미를 완벽하게 체화했어. 원더풀!”

“상무님! 게다가 말하는 것도 막힘없이 술술 흘러나옵니다. 마치 녹음기를 튼 것 같았습니다.”

지원팀장 최희갑도 덩달아 윤재를 추켜세웠다.

팀원들도, 장동석도 놀란 토끼 눈으로 윤재를 바라봤다.

‘저 녀석이 저기서 왜 나와?’

차대리는 ‘망했다’는 표정으로 윤재를 노려봤다.

나머지 팀원들은 양상무의 신년사를 교장선생님 훈화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클릭해서 ‘읽음’으로 바꿨을 뿐 내용은 보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그렇게 살 듯이….

“작년부터 올해까지 최선을 다하지 말고 SMART하게 일하라고 내가 50번은 얘기했을 텐데.”

“….”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팀원들.

혼을 내다가 양상무는 중간에 멈췄다. 부하들을 의식한 행보였다.

하지만 양상무가 이대로 끝낼 사람은 아니다. 누구보다 뒤끝이 있는 스타일의 리더가 양광수였다.

양상무는 윤재에게서 흡족할 만한 답을 들었기에, 화제를 전환해 분위기를 바꿨다.

“자! 다들 밥 먹읍시다. 이 집 굴비가 예술이구만. 밥들 맛있게 먹고 SMART하게 일 할 생각 합시다.”

“네. 상무님!”

“영업3팀을 김윤재가 살리네. 김윤재가 살려!”

양상무가 굴비를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식사는 무사히 끝났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서빙 보는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차는 뭘로 올릴까요?”

“매실 있죠? 매실 5잔과 커피 5잔 부탁드립니다.”

윤재는 묻지도 않고 매실 반, 봉지 커피 반을 시켰다. 그런데 묘하게 딱 맞춤으로 배식이 됐다.

“너무 시지도 않고 너무 달지도 않고 매실차가 죽이네요.”

“네, 사모님께서 매년 직접 매실을 사다가 담그시는 겁니다.”

“어쩐지 맛이 다르더라.”

양상무가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에 만족을 표했다.

그가 흡족했으면 된 거다.

다른 8명이 불만족했다 하더라도 대장이 만족하면 밑에 사람들은 자연히 만족하는 게 회사다.

이게 말이 되냐고?

반대를 생각해 보면 된다.

팀장을 포함한 9명이 만족하면 뭐할 건가?

상무가 불만이라는데….

“장팀장! 덕분에 점심 잘 먹었네. 다음엔 저녁자리에서 보자고. 3팀이랑 같이!”

“네! 상무님!”

“김윤재씨?”

“네. 상무님!”

“당신에게 기대가 좀 커질 거 같아. 잘 해봐!”

“네. 상무님!”

지원팀장이 가져온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양상무가 만족스레 식당을 나섰다.

◈          ◈          ◈

“장팀장 보기에 어때?”

“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양상무의 차안. 장동석과 지원팀장이 함께 타고 이동중이었다.

“김윤재 말이야. 장팀이 추천했잖아.”

“제가 보기엔 진국입니다.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할 겁니다.”

“한 사람 몫?”

“네?”

“과장 2명. 대리3명. 정규직 사원이 한 놈 있는데 그놈들 중 ‘SMART’ 아는 놈이 하나도 없어. 그런데 김윤재가 한 사람 몫뿐이라고?”

“죄송합니다. 상무님!”

“당신이 죄송할 거 뭐 있어? 부임한지 얼마나 됐다고!”

“죄송합니다.”

“면접 볼 때 김윤재 걔가 떡잎이 다른 놈이란 건 알았지만 기대 이상이야. 기대 이상!”

“네, 요즘 젊은 친구들과 조금 다르긴 합니다.”

장동석은 백화점 근무 당시 윤재와의 일화를 들려줬다.

그런 장팀장의 얘기를 양상무는 흐뭇하게 들었다.

“하여튼 잘 키워 봐!”

“예! 상무님!”

양상무가 이번에는 지원팀장에게 화살을 돌렸다.

“장팀장이 최팀장 보다 1년 선배던가?”

“네, 그렇습니다. 상무님!”

“최팀장은 오늘 장팀장 보면서 뭐 느낀 거 없어?”

“….”

“윗사람 모시는 건 장팀장처럼 하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최팀장은 하루에 명심을 몇 번 하는지 알아? 자네가 무슨 명심보감이야?”

“죄송합니다.”

“이건 우스개 소리인데, 오늘 점심 먹고 커피나 매실 선택권을 최팀장에 줬으면?”

“….”

“내 보기에 한 사람 한 사람 뭐 마실지 물어 보느라 5분은 흘려 보냈을 거다.”

“죄송합니다.”

“내가 백만 번 째 얘기한다. 다른 거 다 잘해도 윗사람 모시는 거 못하면 별 못 달아. 명심해.”

“네. 상무님! 명심하겠습니다.”

“오늘만 벌써 명심하겠다고 두 번 얘기했다. 허허!”

양상무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 지 혼자 웃고 있었다.

◈          ◈          ◈

“여! 김윤재씨 대단하대?”

말에 가시가 느껴진다.

차명수 대리는 운전을 하면서 곁눈질로 윤재를 쏘아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아니긴! 벌써 식당예약도 척척하고 부문장님 강조사항도 척척 나오고.”

“….”

차대리가 치졸한 구석이 있는 걸 20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시 겪어도 짜증나는 일이었다.

“선배들 물 먹이려는 것도 아니고. 응? 윤재씨가….”

그 때 오석진 과장이 다시 발끈했다.

“야. 차대리 그만 해라. 지금 애 앞에서 뭐하는 거야?”

“예? 제가 뭘!”

“됐어. 조용히 운전이나 해.”

“과. 과장님!”

“닥치고 운전해라. 디지기 싫으면….”

회사든 공무원이든 정치인이든 세상사 마찬가지.

조직생활 하면서 적을 만들지 말라는 얘길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을까?

‘나 역시 적을 만들지 말라는 얘길 전생에서 수백번도 넘게 들었다. 그렇지만 넘어서야 할 산은 넘어야 한다. 백만대군의 적을 양산하더라도.....’

차안의 공기가 싸늘해졌고, 어색한 침묵이 계속됐다.

차대리는 울그락 불그락 해진 얼굴로 운전만 했다.

오석진 과장도 조용히 점심을 일을 복기했다.

오과장은 마음 같아서는 자기 가슴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기랄. 내가 왜 SMART 얘길 못했을까? 솔직히 SMART하게 일 하라는 걸 나도 수십번은 들었다. 그런데도 그거 하나 숙지하지 못하다니.... 오석진 이 멍청한 놈아!’

입사 1년 후배인 최팀장도 팀장을 단지 벌써 2년차 였다.

심지어 백화점에서 굴러온 장동석도 팀장으로 왔다. 답답한 상황. 하지만 오과장은 차대리 처럼 윤재 탓을 하지는 않았다. 오과장은 그 정도 인품은 되는 사람이었다.

반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차명수는 오과장과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벤댕이 소갈머리에 치졸한 스타일.

윤재는 차명수의 옆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차명수 대리뿐만 아니다. 전생에서 고졸 계약직이란 이유로 나를 업신여긴 많은 사람들. 두고 봐라! 이번 생에는 분명 다를 것이다.’

‘눈에는 눈깔. 이에는 강냉이! 전생의 내가 호구 송양지인이었다면 이번 생에는 함무라비가 될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