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면접장에서!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이 호남 본부장 양광수 상무.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자 자신을 계약직으로 뽑아줄 사람이었다.
나머지 4명은 호남본부 소속의 팀장들이었다.
5명의 면접위원들 뒤로는 초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청주공장이구나!’
윤재는 20년 후 자신의 손으로 팔아 치운 청주공장을 보자니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리부팅한 삶은 사는 거다. 씨바! 명색이 회사 상무까지 달았는데 계약직 면접에 떨어지면 무슨 망신이냐?’
윤재는 어이없어 속으로 웃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물건! 그것은 바로 가운데 책상 위에 있는 크리스탈 재떨이였다.
‘사무실에서 재떨이를 몇 년 만에 보는 거지?’
다시 과거로 돌아왔음이 실감났다.
낭만과 야만이 공존했던 시절! 그 시절로 돌아온 것이었다.
윤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래 야만을 걷어내고 낭만을 채우는 삶을 살면 되지!’
적절한 긴장감이 윤재를 감쌌다.
‘하긴 살짝 긴장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때 면접관이 윤재보다 순번이 앞선 10번 지원자의 이름을 호명했다.
“박태식씨!”
“네. 제. 제가 바, 박태식입니다.”
‘맙소사. 저 친구는 너무 긴장했네! 어쩜 과거와 이리 똑같은지.....’
그 때 김윤재의 이름도 호명됐다.
“네. 11번 지원자 김윤재!”
“깜짝이야! 거 너무 군대처럼 그렇게 크게 얘기하지 않아도 되요.”
“하하하하.”
마치 군인처럼 차렷 자세를 취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답하자 임원실에 웃음이 흐르며 긴장감이 살짝 이완됐다.
“박태식씨는 군대 안 갔다 왔나?”
“예? 예.. 사실 상근예비역으로 다. 다녀왔습니다.”
윤재와는 너무 대비되는 작은 목소리.
마치 모기가 앵앵 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윤재의 우렁찬 답에 웃음이 터져서인지 10번 지원자는 더욱 위축돼 버렸다.
“상근예비역? 그게 뭐요?”
다섯 명 중 가운데 앉은 사람이 물었다.
그때 면접관들 좌측 끝에 앉은 사람이 대신 답했다. 눈매가 매서운 중년이었다.
“상무님! 저희 때 방위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됩니다.”
끝자리에 앉은 사람의 입에서 ‘방위’라는 말이 나오자 다시 웃음이 터졌다.
면접실 분위기는 조금 더 밝아졌지만, 10번 지원자는 밝아진 만큼 더 위축되고 말았다.
10번 지원자가 자꾸 점수를 까먹는 동안 윤재에게 다시 질문이 넘어왔다.
“김윤재씨는 사단장 표창을 받은 적이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3주짜리 분대장 교육에서 전체 1등을 해서 사단장 표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분대장 교육에서 어떻게 하면 1등을 하지?”
“두 가지를 잘 하면 1등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라고요?”
좌측 끝에 앉은 날카로운 눈매의 중년남자.
호남본부 지원팀장 최희갑!
계산이 빠르고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다.
‘최희갑! 겸손을 회사생활의 제 1 덕목으로 생각하고 살던 사람이다.’
“네 그렇습니다. 문과 무를 겸비하면 1등할 수 있습니다.”
“윤재씨는 문과 무를 겸비했다 면서 면접 답변하는 법은 잘 모르는 것 같네. 얘기를 하다 말면 어떻게 해. 끝까지 얘길 해야지.”
“아! 네. 죄송합니다. 분대장 교육생들은 모두 상병말년이나 병장들입니다. 사병들 중에서는 베테랑들 이죠. 그런 베테랑 속에서 필기시험 네 번과 실기 평가 네 번을 거쳐 사단장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랬기에 문무를 겸비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최팀장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너무 능숙하지 않게 적당히 군기든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이러는 겁니다.’
이미 전생에서 다섯 명의 면접관들과 수년간 일해 봤던 윤재였다.
윤재는 그들의 취향에 맞춰가며 답변을 하고 있었다.
‘최팀장에겐 적당히 군기든 모습과 살짝 허점을 보이는 것도 나쁘진 않지.’
윤재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어쨌거나 다섯 명의 면접관 모두 분대장 교육이 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윤재는 군기든 표정으로 계속 얘기했다.
“반복되는 고된 훈련에도 매일 잠을 쪼개가며 새벽 2시까지 필기 공부를 해서 받은 육탄용사상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이 1등 인재라는 얘기군요.”
“제가 1등 인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업에서 1등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오대양 그룹의 인재상에 맞는 직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자룡이 헌 창 쓰듯 자연스럽게 답하는 윤재.
면접관들의 눈동자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10번 지원자에 대한 형식적인 질문이 몇 가지 더 이어졌다.
하지만 면접관들의 시선은 김윤재에 고정돼 있었다.
“김윤재씨? PC는 잘 다루나요?”
“이번에는 돌아가지 않고 답하겠습니다. 대학 그만두기 전 제 별명이 엑기스였습니다.”
“허! 이 양반이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또 스무고개를 할 기세네?”
“엑셀의 기막힌 스킬러! 그걸 줄여서 친구들이 저를 엑기스라고 불렀습니다.”
이 부분은 20년 전 면접에서 윤재가 하지 못했던 답이었다.
전생에서 윤재는 실제로 엑셀의 신이라는 뜻으로 엑신이라고 불렸었다.
그걸 나름 3행시로 비틀어 엑기스라고 답한 것이었다.
“김윤재씨! 어느 정도면 엑기스 정도 되는 거요?”
“매크로로 명령어 만들어 실행할 정도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
면접관들은 사단장 표창 얘기 때 보다 더 어리둥절한 눈이 됐다. 80년대 초중반에 입사해 간부생활만 10년 넘게 한 사람들이었다.
독수리 타법도 버거운 그들에게, 엑셀은 덧셈 뺄셈도 계산기보다 어렵게 느껴질 사람들이었다.
2000년 당시 오대양 푸드에서는 기본적인 함수에 초보 수준 차트만 그려도 엑셀도사로 불렸었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 오대양 백화점에서 주차 수신호 일을 하고 있어요?”
‘역시 최팀장님이 노련하게 질문을 넘기시네! 엑셀 이야기를 더 물어봤자 자신들이 손해니까 주제를 넘기는 저 센스 보소!’
윤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질문에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근무한지 6개월 정도 됐습니다.”
“댄스 수신호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던데 그게 뭐요?”
‘됐다. 면접관들이 미끼를 덥썩 물었어. 드디어 내가 자기소개서에 댄스 수신호를 넣어둔 게 위력을 발휘할 시간이다.’
‘전생에서도 이 대목에서 면접관들이 빵 터졌었지! 20년 전에는 몰랐지만 이게 양광수 상무 취향이니까!’
윤재는 쾌재를 불렀다.
“백화점 출구에서 차량을 빼는 알바들 본적 있으실 겁니다. 그 수신호에 댄스를 가미한 게 댄스 수신호입니다. 기존 수신호에 재미를 추구한 겁니다.”
“그래요? 나는 본적 없는데 어떤 건지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네, 허락해 주신다면 한번 해 보겠습니다.”
윤재는 양손을 상하좌우로 물 흐르듯 흔들며 댄스수신호 퍼포먼스를 선 보였다.
더 없이 경쾌하면서도 군기가 가득 찬 윤재의 몸짓 면접관들을 미소짓게 했다. 특히 양광수 상무는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면접실에 세 번째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주 잘 봤어요. 그만 하셔도 될 것 같네요.”
윤재는 동작을 멈췄다. 멈추는 동작마저 칼같이 절도 있었다.
10번 지원자는 그런 윤재를 부러움 반 신기함 반으로 쳐다 볼 뿐이었다.
몇 가지 질문이 더 오가며 면접은 종착역을 향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끝으로 입사지원 포부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보십시오. 먼저 박태식씨 부터 하실까요?”
“뽀. 뽑아만 주신다면, 여.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포부를 밝힌 10번 지원자.
어정쩡한 자세로 폴더인사를 했다.
굽은 그의 등허리가 애처롭게 보였다.
면접관들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10번 지원자를 바라봤다.
이어서 그들은 기대에 부푼 눈으로 윤재를 바라봤다.
마치 당신 차례라는 듯이....
‘전생에서도 이 정도로 합격하긴 했었다. 그런데 관리팀장이 밀었던 후보와 경합으로 합격했었지....’
관리팀장 전광군. 전생에서 그와는 아주 짧게 일했지만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났다.
그의 이름은 전광군이었지만 오대양 푸드 직원들은 전광견 즉 미친개라 불렀던 사람이었다.
관건은 무난하게 합격하느냐, 확실하게 격차를 벌려 합격하느냐 였다.
자연스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면접관들에게 확실한 눈도장도 찍고 관리팀장에게도 잘 보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왕이면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자. 그게 장동석 과장에게도, 내게도 좋은 일이야.’
마침내 마음을 정리한 윤재가 말했다.
“저!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조금 조심스럽습니다만....”
“허. 김윤재씨는 면접관들 애타게 하는데 뭐 있군! 괜찮으니까 말 해 봐요.”
“허락해주신 다면 두 가지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허허허. 좋아요. 두 가지 다 말해 보세요.”
호남 본부장 양광수가 호탕한 웃음과 함께 허락했다.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놈이 이번엔 뭘 보여주려고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윤재에게 관심이 쏠렸다.
2000년 당시 팀장급 이상 오대양 간부들의 고민이 있었다. 그건 바로 뉴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한 회사이름(사명) 문제였다.
레이저 총을 쏠 거라 예상했던 최첨단 미래가 바로 21세기.
그런데 21세기가 밝았지만 회사는 오대양 식품 또는 오대양 푸드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어딘지 촌스러운 사명 변경을 고민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윤재는 그 대목을 터치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양광수 상무의 취향을 저격할 두 번째 탄환도 준비했다.
“입사 면접 준비하면서 오대양 푸드에 대해 공부를 좀 했습니다. 국내 굴지의 종합 식품회사라는 사실을 알 게 됐습니다.”
면접위원들이 기특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회사의 위상과 오대양 푸드라는 사명은 조금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뉴 밀레니엄인 21세기에 맞게 좀 더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면접관들 표정에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니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느냐는 표정들이었다.
“혹시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 본 게 있나요?”
“몇 가지 생각했습니다만, 아직은 아이디어 단계라... 나중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 때 양광수 본부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우리가 김윤재씨를 뽑을 이유가 생겨 버렸네. 허허허.”
“오대양 푸드에는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개선활동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오픈 이노베이션에 참가해 사명을 바꾸는데 일조하겠습니다.”
“오픈 이노베이션 포럼도 알고 있다니? 젊은 친구가 제법이야. 좋아. 아주 좋아.”
“회사 홈페이지에 혁신활동으로 소개돼 있더군요.”
“허허허. 좋아. 아주 좋아!”
양광수가 잇몸미소를 보이며 흡족해 했다.
“두 가지라고 했는데 다른 하나는 뭔가요?”
날카로운 지원팀장의 질문이었다. 역시 맺고 끊을 타이밍을 잘 포착하는 사람다웠다.
“조심스럽긴 한데, 너그럽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충분히 너그러운 표정의 면접위원들.
“제가 군대에서 명리학과 관상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 분을 뵈니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재가 우측 끝에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전광군 관리팀장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전광군을 바라봤다.
“입술 색깔이 살짝 파란데다 탈색현상이 보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심장질환이 있으신 것 같아 걱정됩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전생에서 관리팀장은 윤재가 입사한지 5개월 만에 심장마비로 돌연사했다.
“전팀장! 어떻게 된 거야? 저 친구 말이 맞아?”
“최. 최근.. 흉통이 조금 있긴 했습니다만.....”
“어허. 이 사람 보게. 당신 건강검진 언제 했어?”
“죄송합니다. 상무님. 그게....”
“올해도 안했어? 당신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간부가 모범을 보여야지.”
“죄송합니다.”
“그 얘기는 면접 끝나고 다시 합시다.”
“....”
윤재가 굉장히 미안하단 얼굴로 말했다.
“제가 괜한 얘길 한 건 아닌지.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니. 아니. 김윤재씨가 미안할 일 절대 아니오. 혹시 윤재씨 얘기가 맞다면 사람 하나 구한 거니까. 틀리면 틀린 대로 건강한 거니까 좋은 거고.”
“송구합니다.”
“자! 다들 수고했습니다. 면접은 이걸로 마칩시다.”
◈ ◈ ◈
면접이 끝나고 윤재와 10번 지원자가 나간 뒤의 임원실. 다섯 명의 면접위원들이 채점표 등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친구! 참 신통방통한 친굴세.”
양광수 본부장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떻게 봤어? 면접 보나마나 한 것 아니었나?”
“네, 뭐… 11번 김윤재씨가 워낙 압도적이라.....”
양광수 상무의 말에 모두 한마디씩 보태며 김윤재를 추켜세웠다.
“그런데 김윤재씨가 고졸이라는 게 좀 걸리는 군요.”
“고졸? 고졸이 어때서?”
“본부장님! 아무리 계약직이래도 전문대 학력 정도는 있어야….”
“회사 인사규정에 있는 건가?”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그럼 됐지 뭘 그래. 대학 나온 놈들보다 훨씬 낫구만!”
그 때 우측 끝에 있는 사람이 11명의 지원자에 대한 채점표를 취합해 가운데 사람에게 전달했다.
“47점! 김윤재가 1위구만.”
“그렇군요. 본부장님. 2위와도 8점 차이인 걸 보니 다들 생각이 비슷하신 모양입니다.”
“그 친구로 하자고. 내가 여기 본부장으로 온지 벌써 3년차야. 그동안 면접 본 애들 중에 김윤재가 가장 눈빛이 살아 있어. 탈도 좋고 옷걸이도 좋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최근 3년간 면접에서 47점이면 최고 기록입니다. 영업1팀 박대리가 42점으로 지금까지는 1위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정규직, 계약직 차이는 있지만요.”
“거 봐! 내가 뭐라고 했어?”
“면접을 참 잘 본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건 그렇고, 김윤재 그 친구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데! 왠지 낯익은 얼굴 아냐?”
“?”
면접관들이 본부장을 바라봤다.
“거 뭐지? 우리 회사 세탁용 세제 비트와 같은 이름의 영화에 나왔던 그 친구 있잖아. 걔 닮았는데 말이야.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정우성 말입니까? 상무님!”
“맞다. 정우성! 김윤재 그 친구 꼭 정우성 닮지 않았나?”
“말씀 듣고 보니 그런 거 같습니다.”
한동안 다섯 명의 중년들은 윤재를 두고 정우성을 닮았다느니 이정재를 닮았다느니 하는 얘길 주고받았다.
“장동석이가 추천했다고 그랬나?”
“네, 그렇습니다.”
“다들 이 사람 저사람 추천 받아 온 지원자들 아냐? 장동석이가 한 건 했구만. 앞으로 영업3팀이 볼 만 하겠어. 다들 수고 했어.”
“본부장님께서 더 수고하셨죠.”
관리팀장이 아부끼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 말야. 내일이라도 당장 건강검진 해. 알았어?”
“네. 본부장님.”
“간부는 몸도 당신께 아냐. 회사꺼지. 최대한 빨리 검진 받으라고. 9월 안에 결과표 안가지고 오면 알지?”
양광수 상무가 손날로 목을 치는 제스처를 취했다.
안그래도 푸르스름한 관리팀장의 입술이 더 시퍼렇게 변했다.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뭐로 할까?”
“….”
갑작스런 임원의 점심식사 질문!
면접실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쯧! 최팀장! 내가 이런 얘기 또 해야 하나?”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본부장님으로 불리는 사람은 최팀장을 날카롭게 쏘아봤다. 날카로운 최팀장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 멈췄다.
그 때 본부장 우측에 앉아 있던 사내가 말했다.
“본부장님! 날도 더운데 감나무집 가서 보신탕에 수육이나 한 접시 하시죠?”
“그럴까?”
본부장은 담배를 비벼 끄며 입맛을 다셨다.
“박지사? 박지사는 개 못 먹는다고 하지 않았나?”
“못 먹습니다. 본부장님!”
“정말 개를 못 한다고?”
“네. 없어서…. 없어서 못 먹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다섯 명의 중년은 다시 한 번 폭소를 터뜨렸다.
◈ ◈ ◈
개고기집으로 이동하는 현대차 다이너스티에는 두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본부장과 눈매가 날카로운 최희갑 팀장이었다.
“최팀장!”
“네, 본부장님!”
“일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 도대체 몇 번을 더 말해야 하는 거지?”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오늘은 순천지사, 목포지사도 오는 날이잖아! 그럼 면접 끝나고 점심 같이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냐?”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간만에 얼굴 보는 사람들, 취향 생각해서 점심장소를 세군데 정도는 추천하든지, 아니면 유력후보 하나를 추천 하든지 해야지. 꼭 물어보면 그 때서야 고민하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일이 다가 아냐. 자꾸 반복되면 최팀장 자네 눈치 없는 사람으로 인식된다고….”
“명심하겠습니다. 본부장님!”
“그나마 최팀장 당신 입장 생각해서 다른 팀장들 있는 자리에서는 얘기 안한 거야. 하지만 명심해라. 의전도 중상은 해야 해. 당신처럼 일만 죽어라 한다고 되는 게 회사가 아니란 말이야.”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잘하겠습니다.”
“당신은 일은 참 깔끔하게 하는데 이게 부족하단 말이야. 이게!”
임원은 최팀장이란 사람에게 손을 비벼 보이는 동작을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천박한 동작이었다.
“동문 후배라고 밀어주는데 한계가 있단 걸 알아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그놈의 명심. 명심. 자네는 무슨 명심보감인가?”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그렇지 않아도 좀 전에 순천지사장이 개고기집을 추천했을 때 아차 싶었던 최팀장이었다. 최팀장은 임원의 손동작과 짜증 섞인 표정을 보며 아뜩함을 느꼈다.
‘오늘 개고기 육질은 왠지 질길 것 만 같다!’
최팀장은 괜시리 속이 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