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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2화 (2/196)

회귀해도 알바라니

1시간 근무, 1시간 휴식이 기본인 백화점 주차 수신호 알바.

휴게실에서 눈을 뜬 윤재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켜 나갔다.

‘영화 속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내게 일어나다니!’

‘.....’

‘과거로 보내줄 거면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으로 보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윤재는 한숨을 내 쉬었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먼저 흘렀다.

‘대기업 임원에 오르기만 하면 내 삶은 나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오대양 그룹의 임원까지 올랐지만, 스스로도 성공한 인생이란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돌아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윤재는 임원이 되며 느꼈던 기쁨과 비애를 동시에 떠올렸다.

‘30평대 아파트에 준하는 사택! 기사가 딸린 K10 자동차! 연간 헬스클럽 이용권과 골프장 회원권! 그리고 연봉의 50%에 달하는 성과급까지….’

‘다양한 혜택을 누렸던 임원의 삶이었다. 그럼에도 과거로 돌아온 이유가 뭘까?’

20대 중반으로 돌아온 자신의 얼굴과 몸을 보며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불연 듯 어제까지 자신을 수행했던 민재홍팀장과, 퇴근 때 자신을 배웅했던 부하들의 얼굴이 떠 올랐다.

‘내가 임원에 오를 때까지 도와준 수많은 선후배 동료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라는 계시다!’

‘그리고 전생에서 앞만 보고 달렸던 내 삶을 되돌아보라는 것이 분명해!’

윤재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이었다.

워라밸! 2015년 이후에 유행한 단어로 Work&Life Balance 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직원들의 워라밸 정착을 위해 애썼지만, 정작 내 워라밸은 없었어!’

결혼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던 회사생활.

20년 가까웠던 회사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새로운 삶은 전생보다는 좀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일할 때는 미친 듯이 일하고 쉴 때는 편하게 쉬는 삶을 살아보자! 일말의 후회도 남지 않게!”

윤재의 목소리가 5평 남짓한 휴게실을 울렸다.

그는 근무 교대를 위해 흰 장갑을 끼고 휴게실을 나섰다.

◈          ◈          ◈

회귀 첫날! 오대양그룹 광주 백화점 사무실.

장동석 과장은 윤재를 기다리다 습관처럼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찾았다. 사무실에서 흡연이 공공연하던 시절! 장동석 과장은 담배를 피워 물려다 멈칫했다.

윤재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장님 찾으셨습니까?”

길쭉한 모자를 손에든 채 장과장을 찾아온 윤재!

“응. 왔어? 잠깐 나갈래?”

“예?”

“잠깐 나가서 얘기하자고. 담배도 좀 피워야 하고….”

“예, 알겠습니다.”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니나 그렇다고 사무적인 것도 아닌 장과장이었다.

윤재의 어깨를 감싸며 그를 밖으로 유도했다.

둘은 조금은 어색한 침묵을 유지하며 백화점 옥상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계단을 하나 더 올라가니 옥상이었다.

“잠깐만! 한 모금 빨고 얘기하자. 한대 피울래?”

“아닙니다.”

“맞다. 담배 안 피운다고 했지?”

“네!”

“원래 담배를 안 피웠다고 그랬던가?”

“예. 여태껏 핀 담배가 한 갑이 안 될 겁니다.”

윤재는 장과장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여전히 담배 피우는 모습은 멋있군!’

전생에서 윤재가 그리워했던 사람을 꼽으라면 부모님 다음이 장동석일 것이었다.

그에게는 회귀해 20년 전의 장동석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소중했다.

담배를 맛있게 피우던 장동석이 입을 뗐다.

“소문 들었지?”

“네?”

“수신호, 주차팀 모두 외주업체로 넘어간다는 소문 들었을 거 아냐?”

“….”

“대답이 없는걸 보니 들었네. 들었어.”

“….”

“윤재 너! 나 따라서 오대양 푸드 가서 한번 일해 볼래?”

“오대양 푸드요?”

“그래. 오대양 푸드!”

“갑자기 왜 제게?….”

윤재는 말끝을 흐렸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런 척을 했다.

20년 전과 비슷한 전개였다.

“백화점 주차장 관리 일을 외주로 전환하는 바람에 오대양 푸드로 발령 났다.”

“예. 그러셨군요.”

“거기 가도 일개 과장이야. 나도 어차피 월급쟁인데 너 합격시켜 준다고 보장은 못해.”

“….”

“그 쪽 팀 사정을 들어보니 계약직 한명 충원해야 할 상황이라 더라. 어쩔래? 한번 시도해 볼래? 그냥 여기 있을래?”

윤재는 장과장의 손가락 사이로 타들어 가는 담뱃불을 바라봤다.

마치 저 담뱃불이 타들어가기 전에 결정해야 할 것만 같았다.

전생에서도 윤재는 장과장을 따라 오대양 푸드로 넘어갔었다.

물론 계약직이었지만.

윤재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장과장이 말했다.

“서류는 내가 갖다 줄 거고, 면접은 니 실력으로 넘어야 할 거다. 서류야 요식행위고, 면접 확정되면 하루 휴가 줄 테니 한번 해 봐! 밑져야 본전이잖아?”

“예,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과장님! 한번 해 보겠습니다.”

윤재는 힘주어 대답했다.

‘과거 회귀라는 진귀한 경험에도 다시 계약직이라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조금 더 젊은 날의 나로 돌아왔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하지만 이번 생에는 훨씬 더 잘 할 자신이 있었다. 전생의 기억이라는 치트키를 손에 들고 있으니까!

“자식. 웃으니까 보기 좋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임마! 다시 말하지만 합격시켜 줄 힘은 없어.”

“그, 그래도….”

“합격하면 짬뽕이나 한 그릇 사라.”

“네, 과장님! 감사합니다.”

“애들 교대도 해줘야 하고 너도 쉬는 시간일 테니 그만 가 봐!”

“네, 알겠습니다.”

윤재는 휴게실로 가려다 장과장을 돌아봤다. 장과장은 허공을 주시하며 담배를 빨아 대고 있었다.

장동석 과장! 그는 그런 사람이다.

알바보다 훨씬 좋은 조건인 오대양 푸드 계약직을 천거하면서 짬뽕 한 그릇이면 족하다는 사람!

취업사기나 특혜가 만연해 있던 2000년대!

그에 비하면 장과장은 낭만의 끝자락이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장과장이 있어 IMF 이후라는 위기에서도 즐겁게 회사 생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윤재는 20년 전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런데, 과장님! 다른 조원들은 어떻게 되나요?”

“누구? 수신호 애들?”

“네.”

“걔들은 용역회사 소속으로 전환해서 계속 수신호 하든지, 다니기 싫으면 관두거나 해야지….”

“그럼, 저만 기회를 주신 거 에요?”

“왜? 그럼 다른 애들도 다 데리고 갈 줄 알았어?”

“….”

“내가 그룹 오너 2세면 한두 명 데리고 가겠지만, 여기가 내 회사냐? 나도 봉급쟁이야!”

“그런데 조장 형도 있고 한데, 왜 저만….?”

“이유가 궁금해?”

“네.... 아니 뭐... 솔직히 궁금하긴 합니다.”

“너만 수신호 할 때 웃잖아. 그래서 너를 데리고 가고 싶은 거야.”

“….”

“억지로라도 웃으면 엔돌핀이 나오고, 자꾸 웃으면 고객들도 좋고 니들도 좋다고 조회 때 마다 내가 얘기했잖아. 다른 놈들은 다 복지부동인데 너는 항상 웃었잖아. 그래서 너랑 좀 더 일해보고 싶은 거야.”

“….”

“비가와도 웃고, 눈이 와도 웃고, 고객들이 컴플레인 걸어도 웃고…. 그래서 누이 좋고 매부도 좋자고 너를 한번 데려가 보고 싶은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나는 서류통과까지야. 면접은 니 실력이다.”

“….”

“다른 애들한테 얘기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어지간하면 얘기하지 마라.”

“네, 과장님!”

“더 궁금한 거 있어?”

“아. 아니요.”

“급여는 여기보다 많을 거야. 이거저거 합치면 연봉 천팔백은 될 거다. 자세한 건 합격하고 나서 얘기하자. 이제 가봐라. 나도 들어가서 일 하련다.”

“예! 과장님. 감사합니다.”

이미 전생에서 겪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감동적이란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전생에서도 부모님과 몇 분의 가족을 빼고, 내게 한결같이 잘해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목이 아파왔다.

윤재는 수신호 휴게실로 돌아가는 내내 헛기침을 해야 했다.

◈          ◈          ◈

“형님! 교대 시간 됐습니다.”

“응. 윤재야! 벌써 1시간 됐냐? 그나저나 오늘 날씨 장난 아니다 씨바.”

“폭염 주의보 발동 중이니까요!”

“그래 좀 있다 다시 보자. 아이고 죽겠다. 맥주나 한잔 뽈았으면 원이 없겠네 씨바.”

맥주를 뽈자고 사투리로 얘기하는 조장의 마초다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 때 백화점 주차 수신호 요원에 의해 막혀 있던 차량들에서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빵빵빵! 빵빵빵!”

“야! 차 좀 빼! 차 안 빼? 차 좀 빼!”

“죄송합니다. 갑니다요~ 가요!”

윤재는 능수능란하게 백화점 진출차량을 막은 뒤 통행 차량들을 통과시키기 시작했다.

오후4시지만 8월초의 땡볕과 하루 종일 달궈진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제복을 갖춰 입고 흰 장갑을 낀 김윤재!

마치 이소룡이 쌍절곤 휘두르듯 유도봉을 이리 저리 돌려가며 능숙하게 차량을 유도했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한다더니! 아직도 몸에 수신호 일이 배어있을 줄이야!’

윤재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하지만 과거의 추억을 즐기는 시간은 몇 초도 되지 않았다.

“야! 여기가 오대양 땅이야? 여기가 오대양 땅이냐고? 니들 차만 빼면 어떡해?”

중간 중간 분을 참지 못하고 수신호들에 불길을 토해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

“고객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 보이며 순진한 웃음을 짓는 윤재. 세상 천진난만한 얼굴이다.

“너 지금 쪼개냐? 지금 웃음이 나와?”

“고객님!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가 우는 것보단 좋잖아요.”

윤재는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생뚱맞은 대답을 하거나 같이 짜증을 내기라도 한다면 열 받은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멱살잡이라도 할 상황!

하지만 능숙한 응대와, 차마 침을 뱉을 수 없는 웃는 얼굴에 사내는 헛웃음을 짓더니 차를 몰아 사라졌다. 뒤차들이 빵빵댔기 때문이었다.

물 흐르듯 차량을 막고 빼기를 반복하는 윤재!

그 손짓에 어느새 차량들의 흐름이 안정을 찾았다.

1시간 가까이 차를 빼고 있을 때 장동석 과장이 최주임과 함께 주차, 출차 점검을 하러 왔다.

“최주임! 쟤 봐바라.”

“누구요? 혜진이요?”

“야. 최주임. 니 대가리 속에는 오로지 여자 애들 꼬셔서 어찌 해볼 생각 밖에 없냐?”

“에이. 과장님! 제가 언제 여자 애들 꼬셨다고 그래요.”

“됐고, 내가 다시 말하지만 함부로 놀리다가 큰 코 다친다. 명심해!”

“에이. 과장님! 제가 뭘 함부로 놀렸다고 그러세요.”

“뭘 놀리긴 뭘 놀려! 니 거시기 끝이지.”

최주임은 아니꼬운 눈으로 장동석을 째려 본 후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는 쭉쭉빵빵 몸매 덕분에 백화점 제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여성 수신호가 들어왔다.

“혜진이 말고, 윤재를 보라고! 너 또 혜진이 봤지?”

“아네요. 과장님! 저도 윤재 보고 있었어요.”

“그래? 윤재 보고 뭔 생각했는데?”

“예? 그…. 그냥. 야광봉을 참 기가 막히게 잘 돌린다. 뭐 그 그런 생각 했죠.”

“새끼. 까는 소리 하고 있네. 그래서 너는 아직도 대리 진급을 못하는 거야.”

최주임은 다시 티꺼운 표정으로 장과장을 바라봤다.

“쟤 봐라. 이 뜨거운 날에. 저렇게 웃으면서 차량 안내하는 수신호. 우리 백화점에 윤재 말고 또 누가 있냐?”

“그야, 쟤는 항상 웃으니까….”

“허허허.”

장동석은 말귀를 못 알아먹는 최주임 때문에 맥이 빠졌다.

“그래 니 말이 맞다. 니 말이 맞아. 니 팔뚝 굵다! 니 팔뚝 굵어! 잘 났다 정말!”

장동석은 답답한 최주임을 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눈은 윤재를 향했다.

윤재를 보는 장과장의 눈에 경외심이 가득했다.

‘잘 되면 오대양으로 전직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열심히 일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냐! 나라고 해도 그렇게 못하고. 젊은 녀석이 참 대견한 구석이 있단 말이지!’

어느새 오후 5시가 됐다. 매일 오후 5시는 광주 오대양 백화점의 사소한 이벤트가 열렸다.

남자 수신호들이 펼치는 댄스 수신호 타임!

차량들이 가장 많이 출차 하는 시간에 메인 수신호가 차를 통제하는 동안 좌우에서 한명씩 메인에 맞춰 댄스 수신호를 하는 것이었다.

“삑! 삐빅! 삑!”

호루라기를 불며 윤재가 수신호를 하는 동안, 양쪽의 동료들이 경쾌한 댄스 수신호를 펼쳤다.

“아따 그놈들 참 잘한다.”

“보는 내가 다 시원하게 춤을 잘 추네.”

“더운데 젊은 친구들이 고생이 많네 그랴.”

지나가는 고객들과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백화점 수신호 3인조가 펼치는 무쌍난무를 구경하곤 했다.

경우에는 흐르는 음악에 박수를 치며 그들의 댄스타임을 지켜보기도 했다.

“최주임!”

“예, 과장님!”

“나 가고 용역회사로 주차팀 넘어가도 댄스 수신호는 그만두지 마라.”

“당연히 그래야죠. 저희 광주만의 자랑 아닙니까?”

“그래. 내가 가도 너는 남으니까 용역사에 얘기 잘 해서 꼭 계속하게 해. 별도 수당도 승계하라 하고.”

“네.”

‘석달 전인가? 당돌한 얼굴로 댄스 수신호를 제안한 것도 윤재 저 놈이었지!’

장동석 과장은 무쌍난무를 펼치는 윤재를 보며 당시를 회상했다.

눈앞에 보이는 윤재의 동작이 총검술 같기도 하고 아이돌의 군무 같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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