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아홉 개의 삶을 살지?
“상무님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가야지. 가자!”
2020년 8월4일! 김윤재 상무는 지원팀장을 대동해 충북 청주에 있는 회사 공장을 찾았다.
민태홍 지원팀장.
자신이 모시는 상무의 일이 대략 끝나갈 기미가 보이자, 15분 전에 운전기사에게 카톡을 보냈다.
[조주임! 차량 준비해 주십시오. 에어컨 중으로 해주세요!]
[네. 팀장님!]
김상무 밑에서 일을 배운 민팀장은 업무처리부터 의전까지 모두 완벽해서 상하 모두에게 칭찬을 받았다.
“민팀장이 입사 몇 년 됐다고 했지?”
“올해 17년차 입니다.”
“애들은?”
“중1 딸내미 하나, 초등학교 5학년 아들놈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은 아빠 품에 있을 때 아닌가?”
“아닙니다. 상무님! 사춘기인지 왠지 서먹합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네. 뭐. 어쩌다 보니.”
“한참 클 나이들인데….”
김윤재 상무가 말끝을 흐리자 민팀장도 입을 닫았다.
오늘 두 사람은 회사의 캐시카우였던 청주1공장을 경쟁사에 매각하고 복귀하는 중이다.
O2 F&B!
식품업계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투는 제품을 여러 개 갖고 있었지만, 청주공장을 포함해 벌써 3개의 주력 공장을 경쟁사에 팔아야 할 정도로 몰락하는 중이었다.
‘경쟁자로 생각지도 말라고 했던 태원식품에 공장을 팔게 되다니!’
‘내 피땀이 배어있는 곳 중의 하나가 청주공장인데.....’
김상무는 들리지 않을 만큼 신음을 토했다.
그는 2~3분이면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복도를 걸으며 3~4시간은 흐른 것처럼 느꼈다.
“민팀장! 미안하다.”
“아닙니다. 상무님!”
“아니긴…. 우리 같은 선배들이 잘못해 한참 성장해 나갈 니들 입지가 자꾸 좁아지고 있으니 선배로서 면목이 없다.”
“아닙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상무님께서 다른 누구보다 열심히 사시고, 회사를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저희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민팀장 정도면 임원후보군에도 오르고 부사장님 코치도 받고 외부교수들 면접도 봤을 텐데....”
“아닙니다. 저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과분하죠.”
“자네는 다 좋은데 그 겸손함이 문제야.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면 투쟁심도 있어야 한다.”
“넵, 명심하겠습니다.”
공장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나오자 기사가 K10 승용차 옆에 대기하고 있었다.
김상무가 임원석에 앉을 때까지 팀장도, 기사도 뒷문을 열어주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같은 회사 다른 임원들이었다면 기사가 깨박살이 날지도 모를 일!
하지만 허례허식에 가까운 의전들을 꺼려하는 김상무의 지시에 따른 결과였다.
“그래도 차가 제일 시원하구만.”
“조주임이 10분정도 전부터 에어컨을 틀어놓은 모양입니다. 맞죠? 조주임?”
“네, 민팀장께서 연락주셔서 10분정도 에어컨을 틀어 놓았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니까. 여름이 더운 맛도 있어야지. 에어컨 틀고 그런 게 지구에도 좋지 않고 말이야.”
“….”
“이런 내가 또 꼰대 소리를 했나? 내 생각하고 미리 고생한 사람들한테.... 미안하다. 미안해. 그저 나이 먹으면 잔소리가 많아져서....”
“아닙니다. 상무님!”
민팀장과 조주임이 동시에 답했다.
“조주임! 사무실로 갑시다.”
“네, 팀장님!”
“조주임! 이거 얼마 안 되는 데 좀 담았다.”
“상무님! 이게 뭡니까?”
“그동안 나 따라 다니면서 고생했는데…. 얼마 안 돼! 늦둥이 옷이라도 사주라고.”
“상무님! 감사합니다.”
김상무를 진심으로 모셨던 운전기사의 목소리에 습기가 배어 있었다.
“뭐야? 갑자기 분위기 왜 이래? 얼마 안 되는데 그러면 내가 손 부끄럽잖아!”
“죄송합니다.”
“앞길이 구만리인데 다들 힘들 내자고.”
조주임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애꿎은 와이퍼만 닦아댔고, 민팀장은 김상무의 시선을 일부러 외면했다.
공장에 들어올 때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추적추적 비를 뿌리고 있었다.
◈ ◈ ◈
사무실로 돌아온 김윤재 상무는 민팀장이 작성해온 청주1공장 매각완료 보고서를 검토하고 퇴근 준비를 했다.
며칠째 그의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일은 손도 대지 못했다.
7개 팀에 100명 가까운 부문원들.
그 중 팀장3명과 팀원 30명을 권고사직 명단에 올려야 했다. 그 일이 끝나는 대로 자신의 모가지가 날아갈 것이었다.
이미 본부장이 소속 임원 살생부를 작성했다는 루머였다.
그는 컴퓨터를 접었다. 공장 매각에 따른 상실감때문일까? 쉬고 싶었다.
그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퇴근길에 올랐다.
김윤재 상무가 퇴근한 후. 직속 부문원들은 사무실에 남아 잔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우리 상무님 같으신 분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참 회사 생활이 뭔지! 에휴~”
“21세기인데도 우리 회사는 여전히 손바닥 잘 비비는 사람들만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과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우리 김상무님을 보시자구요. 임원이라고 위세를 부리길 하시나, 항상 소탈하시고, 일 잘하시고, 머리도 샤프하시잖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사장님, 부회장님이 헛발질해서 회사가 이 모양 이 꼴이 됐지. 김상무님께서 그동안 회사에 벌어준 돈이 얼마인데….”
“제 말이요….”
“에이 짜증나!”
“진짜 세상 더럽습니다. 명문대 안 나오면 사람도 아닌가요? 우리 상무님이 아무리 고졸출신이라지만, 요즘 세상에 학벌이 뭐 얼마나 중요하다고 이러는지?”
“박대리! 우리 상무님이 왜 고졸이야? K대 EMBA를 최우수 성적으로 이수하셨는데 왜 고졸이냐고?”
“제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고.... 세상이 그렇다는 거죠.”
“진짜 좆같은 세상! 회사일 하면서 어렵게 야간대학 마치고 MBA까지 되셨어도 여전히 고졸타령이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간신배들은 미꾸라지처럼 살아남고, 김상무님 같은 충신이 어디 있다고 쳐 내냔 말이야? 진짜 회사가 어찌 되려고? 참 짜증난다. 짜증나!”
남들이 들리지 않게 수군거리고들 있었지만 충청호남사업부문의 거의 모든 직원들은 대체로 비슷한 생각이었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온 김윤재 상무는 직접 차를 몰아 퇴근길에 올랐다. 마트에 들러 장도 봐야했고 박스도 구해야 해서 조주임을 먼저 퇴근 시킨 것이었다.
‘날씨 한번 요상스럽네!’
김상무가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올해 여름은 비도 오지게 많이 오네!’
김상무는 와이퍼를 최고 속도로 올리고 마트로 향했다. 회사에서 제공해준 사택과 회사의 중간 사이에 마트가 있었다.
‘어디 보자! 살 것 좀 추가해야 하는데….’
김상무는 스마트폰에 터치펜으로 적어 놓은 메모장을 곁눈질 하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와! 깜짝이야! 간 떨어질 뻔 했네.”
거칠게 비를 닦아내는 와이퍼 너머로 뭔가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고양이 같은데….”
김윤재 상무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차에서 내렸다. 그가 급정거를 한 바람에 차량들이 정체되며 여기저기서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비를 맞으며 다가가 보니 고양이 한마리가 차에 치였는지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채 쓰러져 있었다.
“야옹아! 많이 아팠겠구나!”
김상무는 쓰러져 있던 고양이를 안아서 조수석에 태웠다.
‘이거 내일 조주임이 보면 난리나겠구만.’
그때 김상무의 차를 피해 차량들이 옆을 지나쳐갔다. 운전자들이 모두 짜증난 표정으로 쳐다보며 지나쳐갔다.
‘가까운 동물 병원이 어디더라?’
김상무는 빵빵대는 경적 소리를 의식해 재빠르게 스마트폰을 검색했다. 50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스마트폰 검색하고 타이핑 하는 게 능수능란했다.
◈ ◈ ◈
오피스텔로 돌아온 김상무는 샤워를 하고 나왔다.
‘고양이 녀석은 무사하려나?’
김상무는 30분 전에 자신의 차에 태워 근처 동물병원에 데려다 준 고양이를 생각했다.
‘무슨 눈빛이 그렇게 생겼는지? 참 묘한 녀석이야!’
김상무는 에메랄드 빛 같기도 하고 코발트 색깔 같기도 한 고양이의 괴상한 눈빛을 떠올렸다. 그리고 동물병원 수의사로 보이는 여자를 떠올렸다.
“이 폭우에 본인 고양이도 아닌데 데리고 오셨다구요?”
“네, 뭐. 그대로 뒀다간 로드킬이라도 당할 것 같아서요.”
“보기 드문 의인이시네요.”
“하하. 의인은요.”
김상무는 멋 적은 웃음을 지었다. 보조개가 멋지게 파인 꽃 중년의 얼굴.
동물병원 여의사의 얼굴이 분홍빛이 됐다.
“그나저나 치료 끝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선생님 고양이도 아니라면서요….”
“하하하. 뭐 제가 데려다 키우죠. 뭐!”
김상무는 그렇지 않아도 동물병원에 가는 동안 고양이의 향후 거취를 고민했었다.
‘자식도 없는데 늘그막에 자식하나 얻었다 생각하고 키우지 뭐!’
나이 45!
중견 대기업 임원이 되도록 미혼인데다, 이제 곧 회사도 잘릴 판이었으니 고양이나 키우며 후일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냉장고에서 4캔에 만원하는 맥주를 꺼내 소파에 걸터앉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창밖을 보며 맥주를 마시는데 돌연 고양이와 예쁘장한 수의사 얼굴이 떠올랐다.
‘무슨 큰일 한다고...일에 미쳐서 결혼도 못하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우르릉꽝꽝!
흘러가 버린 지난날을 후회하며 청승을 떨고 있을 때 천둥 번개가 천지를 뒤 흔들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단 말인가? 맥캔지 컨설팅을 받지 못하게 했어야 했어….’
번쩍! 번쩍! 창 밖에는 마치 세상을 두동강 낼 것처럼 번개가 쳤다.
‘아냐! 그 보다는 회장님 사모님께서 돌아가시지 않도록 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테지….’
우르릉 꽝꽝! 마치 핵폭탄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천둥소리였다. 김윤재 상무가 평생 들어본 천둥소리 중 가장 큰 천둥소리였다.
‘오진탁 부회장 라인에 들어가지 않은 게 실수였단 말인가?’
‘알짜배기 식품회사 중심에서 바이오 회사로 환골탈태 시킨다더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나야 회사를 20년 넘게 다녔지만, 이제 막 입사한 친구들이나 앞길이 구만리인 친구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김윤재 상무는 안타까움과 분노,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며 맥주를 들이켰다.
‘15년 전, 아니 10년 전으로만 돌아가도 회사를 다시 세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가진 신입사원들과 이제 막 역량을 꽃피우고 있는 민팀장 같은 친구들!’
폭우에도 갈증이 느껴져 맥주가 술술 넘어갔다.
‘그 친구들이 10년 20년을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었는데....’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단 말인가!’
넘어가는 맥주를 따라, 그와 20년 가까이 함께 했던 숱한 선배들과 동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저런 상념들로 뒤척이던 김윤재 상무는 침실로 향했다.
부문이 통째로 사라질 형편!
대기업 임원이래 봐야 어차피 계약직 아닌가?
임원인사까지 3개월 조금 넘게 남아 있었지만 자신의 자리는 이미 없는 거나 마찬가지!
‘그래도 내일 웃는 얼굴로 출근 해야지!’
◈ ◈ ◈
“삐비비빅! 삐비비빅!”
‘벌써 일어날 시간인가? 그런데 내 스마트폰 알람 소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촌스러웠지?’
김윤재 상무는 알람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뭐야? 왜 이렇게 허리가 뻐근하지?”
김윤재는 침대에서 일어나다 깜작 놀랐다.
“여기가 어디야?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주량이 소주 4~5병정도 되는 김윤재가 고작 맥주 4캔을 마시고 취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대전 오피스텔 침대가 아녔다.
1인용 소파 두개를 이어 붙여 누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좁디 좁은 공간!
‘뭐야 이 낯익은 곳은?’
그곳은 분명 그가 20년 전에 일했던 광주 오대양 백화점의 주차 수신호 휴게실이었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윤재는 깜짝 놀랐다.
반백이었던 자신의 머리카락!
거울 속에는 흰머리 하나 없는 검정색 머리칼의 청년이 있었다.
탑 모자를 주로 썼기 때문에 항상 떡이 져 있던 젊은 날의 자신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조화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오대양 백화점 수신호 알바팀 휴게실에 항상 놓여 있던 내일 경제 신문을 펼쳐 들었다.
2000년 8월1일 화요일!
“왓더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