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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136화 (136/155)

136. 이어진 유지(1)

136. 이어진 유지(1)

때는 7년 전. 벨 제국이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봄이었다.

“아! 글쎄 왜 따라다니시오!”

이곳은 봄의 상큼한 생명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어느 깊은 숲속. 그곳에 란데르그와 어느 아리따운 여인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란데르그는 남자라면 한번 말을 걸어볼 듯한 여인을 두고도 짜증 섞인 반응이었다.

“뭬야! 나같이 멋진 여성이 따라다니는 것을 영광인 줄 모르고 그런 태도라니!”

여인의 분노어린 목소리에 란데르그가 움찔한다. 아! 여인은 외견은 아름다웠으나 눈빛이 맹수처럼 사납게 생겨 무서웠다.

“그, 그렇게 노려본다고 어머니가 남긴 흔적이 나오는 건 아니오. 백호 족의 족장이여.”

그렇다. 청순한 외모와는 반대로 맹수 같은 눈매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은 백호 족의 족장 란이었다.

란데르그와는 예전 아크와 아크의 측근에게 보낸 암살자 중 하나인 케다냐라는 하프 수인 족의 위협에서 란이 란데르그를 구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란은 란데르그를 에밀 왕국 반란 사건 때부터 유심히 조사하고 지켜보았다. 그 이유는 란데르그를 따라다니다 보면 전대 백호 족의 족장이자 란데르그의 어머니인 레이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서이다.

“레이샤 님이 백호 족에게 남긴 유지가 분명히 자기 아들을 따라가다 보면 백호 족 미래의 길이 보인다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좋든 싫든 난 너를 따라 다녀야 해!”

란데르그의 부모님인 하이 엘프 아버지와 백호 족인 어머니는 현재 시점에서는 이미 고인이 되셨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종족에게 자신의 유지를 남겼고 지금은 어머니 쪽인 백호 족이 란데르그에게 접촉하였다.

아버지 쪽인 엘프들은 워낙에 보기 힘들었지만 하이 엘프인 경우 자신들의 영역에 결계를 쳐서 범인은 하이 엘프의 영역이 근처에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기에 란데르그는 그들이 먼저 접촉해주길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란데르그가 어느 날, 정령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자 바람의 정령이 란데르그를 지금 있는 숲속으로 초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란데르그의 주위에서 흔적을 쫓던 란은 란데르그의 낌새를 눈치채고 이렇게 따라온 것이다.

“으휴~ 란셀 토벌 전 때는 우리를 도울 수 없다고 안도와 줘놓곤 너무 뻔뻔하오.”

“그건, 휴먼 세상의 일이니까 그렇지. 우리같이 강한 종족은 인간계의 존망이 걸린 일이 아니고는 집단으로 안 뛰어들어.”

란데르그의 말에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란. 한 집단의 장답게 자신의 집단을 우선시했다.

‘으휴!’

란데르그가 한숨을 쉬며 걷자, 란이 빤히 본다.

“뭣! 뭣이오!”

“으흠~ 역시 그 멋진 여 족장이었던 레이샤 님과는 하나도 안 닮았군. 강했던 레이샤 님과 다르게 약해빠진 것도 그렇고.”

그 말에 란데르그가 발끈한다.

“나도 한 실력 하오! 예전 대혼돈 때도 한 가닥 했고 지금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벨 제국의 4대 수호 공작이 되었소!”

그렇다. 란데르그는 한 공작 가문의 시조가 되어 이름이 곧 성이 되었다.

그러나 란은 란데르그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뭐, 휴먼은 약해 빠졌으니 백호 족의 피가 있는 너는 그 정도는 해야지.”

“이익!”

화는 내지 않고 손발만 버둥거리는 란데르그.

아무리 목숨을 구해 줬다고 해도 란데르그가 란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은 백호 족의 족장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바로 다른 백호 족과는 다르게 란데르그를 하프로 대하지 않고 이렇듯 백호 족의 피가 흐르는 한 명의 백호 족으로 대하기에 란데르그가 그나마 성의껏 대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여자를 멀리하는 란데르그가 란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고 연애한다고 종종 오해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큼! 잠깐 이상한 냄새가 난다!”

그때 란이 란데르그를 멈춰 세우고는 냄새를 맡는 자세를 취한다.

‘언제 보아도 수인 족은 적응이 안 되오.’

란데르그 휘하의 묘인 족도 그렇고 견 족도 그렇고 사람의 형상으로 냄새를 맡는 모습은 란데르그가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 중 하나이다.

그때 란데르그에게 정령의 목소리가 들린다.

-공격하면 곤란할 텐데?

“음?! 잠깐, 란!”

그러나 늦었다.

“거기냐!”

란이 발톱을 세우고 한 공간에 공격을 가한다.

쿠웅!

공격은 허공에서 무언가 맞은 듯이 울렁거리고 곧이어 모습을 비추는 화살을 겨누는 이들.

“그대들은?”

란데르그가 놀라고.

“귀쟁이!”

란이 으르렁거린다.

“누구냐! 여긴 어떻게 알았지?”

화살을 겨누며 말하는 이들은 귀가 뾰족하고 날렵한 체격인 엘프였다.

란과 엘프들이 대치한 이유는 란이 결계를 공격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원래 백호 족과 엘프 족은 폐쇄적인 종족이 공통점이라 낯설어서 그런 것이다.

“잠깐! 잠깐! 란, 그만하시오!”

란데르그의 외침에 잠시 주춤하는 란과 엘프 궁수들.

이어 란데르그는 말한다.

“나는 정령의 소리에 이렇게 왔소이다.”

“!”

엘프 궁수들은 란데르그의 말에 놀라고

“정령님? 그렇군. 그래서 수상한 냄새가 났던 거야.”

란은 자신이 란데르그에게 수상하게 여긴 정체를 알자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엘프들의 눈에는 보일 것이오. 내 기운에 바람의 정령이 있다는 사실 말이오.”

그제야 엘프 궁수들은 란데르그를 자세히 본다.

“음? 그렇군.”

엘프 궁수들의 대장이 대표로 란데르그의 기운을 살펴본다.

“음?! 너는 하프!”

엘프 궁수 대장은 뾰족하게 세워진 자신들의 귀와는 다르게 끝이 살짝 뭉텅한 란데르그의 귀를 보고 하프라고 확신한다.

“하프 주제에 하이 엘프님들이 거주하는 이곳에 오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

란데르그는 잊고 있었던 하프 차별주의를 다시 느꼈다.

“역시 귀쟁이! 죽여주겠어!”

란이 란데르그보다 화를 내는데.

-저 여인을 말려, 란데르그. 안 그러면 보웬이 너희를 초대한 이유가 없어져.

‘보웬?’

란데르그는 처음 듣는 이름에 살짝 당황하지만 이내 란을 진정시킨다.

“란! 그만두시오. 숲의 정령이 저를 초대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뭐? 정령님이?”

야수 족은 대대로 정령들을 모시기에 란데르그의 말에 불만이 있지만 따른다.

곧 수상하다 여긴 엘프들이 나무줄기같이 생긴 포박한 줄에 그들의 손을 묶는다.

그리고 그들의 수장인 하이 엘프들의 관처로 향하는데.

“우와.”

“흥!”

란데르그는 감탄하고 란은 콧방귀를 뀐 엘프들의 거처는 상당히 아름다웠다.

아직 쌀쌀한 감이 없지 않은 봄이지만 엘프들의 거처는 생명이 넘쳤고 하늘은 초록빛이 감도는 넝쿨이 하늘을 촘촘히 메꿨다.

그리고 곳곳에는 사슴과 토끼와 같은 동물들이 자유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엘프들의 거주지에 이방인은 처음인지 란데르그와 란이 지나가자 구경나오는 엘프들.

“하프다!”

란데르그를 보고 거북하다는 표정을 짓는 엘프들.

“이놈들이!”

란은 그런 엘프들을 보고 분노했으나.

“가만히 있어, 란.”

란데르그는 익숙하다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

그렇다. 란데르그느 어릴 적부터 하프들의 차별에 대해 몸소 겪어서 이런 것쯤은 별것 아니었다.

란데르그의 첫사랑인 애나는 그런 란데르그를 가여워하여 란데르그를 아껴주었으나 어린 란데르그는 그런 것도 동정이라며 애나에게 못되게 굴었다.

하지만 애나의 진심에 란데르그와 애나는 연인이 되었으나 결국 자식을 낳지 못하는 하프의 특성상 애나를 떠나 하운드 생활을 한 란데르그.

대혼돈도 있기 전부터 란데르그는 이름을 알렸고 그런 란데르그를 그리워하던 애나는 결국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란데르그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애나를 애도하며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렇게 수백 년이 지나갈 동안 란데르그의 멍울이 된 애나는 여전히 란데르그를 옥죄고 있었기에 란데르그는 자신을 스스로 죄인이라 여겨 스스로 바보 같은 행동을 많이 했다. 자신을 보고 웃는 사람들의 미소를 보면 애나에 대한 죄책감을 잠시는 잊을 수 있기에 말이다.

그런 란데르그에게 이 정도의 굴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 하이 엘프들이 있는 관처에 도착한 란데르그와 란.

엘프 궁수가 들어가고 잠시 후 젊은 모습의 엘프와 함께 나온다.

그 젊은 엘프가 나오자 예를 갖추는 엘프들.

아마 이자가 엘프들의 왕족인 하이 엘프일 것이다.

그리고 그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엘프들을 충격에 빠지게 하였다.

“귀인들을 어서 풀어주어라!”

“!”

엘프 주민들은 놀라고 엘프 궁수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몇몇은 입을 움찔거렸으나 감히 하이 엘프에게 반문할 수 없어 하이 엘프의 말에 따른다.

엘프 궁수들이 포박을 풀어주자 하이 엘프는 란데르그와 란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웅성웅성하지만 곧 흩어지는 엘프 주민들.

하이 엘프는 자신을 보튼이라고 이름을 밝히며 의자와 차를 내왔다. 그리고 잠시 자리를 비우는 보튼.

란데르그와 란은 잠시 차를 마시며 이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하이 엘프는 역시 다르군. 나 같이 멋진 여인을 보니 그럴만하지. 흠!”

란이 혼자 착각하자 란데르그는 표정이 섞었다.

“어! 어찌 그리 보는 것이냐! 솔직히 네가 너무 고자 같은 것이다.”

“헙!”

란데르그는 여인을 멀리한다고 자신을 그동안 고자라고 생각했다고 생각하니 기가 찼다.

곧이어 하이 엘프 보튼인 나오고 보튼은 란데르그를 빤히 쳐다본다.

“음? 내가 아닌 란데르그를 그리 보다니. 혹시 너는 게-”

“그만두시오! 란!”

란데르그가 란에게 조용히 입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보튼이 입을 여는데.

“하하하, 속세는 그리 오해하는가 보오. 가족을 그리 볼 수밖에.”

“?!”

“뭣!”

란데르그와 란은 보튼의 대답에 의아해한다.

“가족이라고 말했소?”

란데르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데.

“그렇네. 나는 전대 하이 엘프 장로인 우리 아버지의 첫째아들이지 그대는 작은 어머니인 레이샤 님의 아들, 란데르그가 맞지.”

“?!”

란데르그는 처음 만나는 다른 가족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찌 아시었소?”

“우리 아버지가 말씀해 주셨지. 지금 그대의 곁에 있는 여러 정령중 바람의 정령이 나와 그대의 아버지 보웬일세.”

“?!”

“이런, 우리들의 아버지 이름은 잊었나 보군.”

그랬다. 란데르그는 어머니인 레이샤라는 이름도 최근에 란에게 들어 기억난 것이었다. 워낙에 어릴 적이기도 했고 기억도 흐릿한 세월에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을 잊은 것이었다.

누구 하나 기억을 끄집어내 줄 주변인이 없던 란데르그이기에 그러한 것이었다.

“많이 힘들었겠군.”

보튼의 눈빛이 빛났다.

“그것이 하이 엘프의 능력이구려. 진실의 눈.”

그렇다. 보튼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란데르그의 과거를 얼핏 느꼈다.

“그리고 그대의 말이 맞는다는 것은 우리 아버지는.......”

“그래, 그대와 떨어지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정령으로 승화하시어. 나를 찾아오셨지.”

“......”

보튼은 란데르그를 위해 위로를 하였다.

“나를 찾아오시고 그대를 많이 걱정했다네. 하지만 나는 이곳의 책임자이기에 우리 동족을 놔두고 그대를 찾아 갈 순 없었지. 아버지는 정령인 채로 그대를 보호하고 있었다네. 하지만 그대는 정령의 말을 최근에야 들을 수 있게 되어 이렇게 지금 만나게 되었지.”

보튼은 비교적 상세히 란데르그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드는 궁금증.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된 것이오.”

보튼은 차를 마시며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말한다.

“솔직히 말하지만 두 분은 세상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시다가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레이샤 님이 그 ‘물건’을 가지고 여기 오셨지. 치료에 신경 썼지만,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다치셨다네.”

란데르그는 몰랐던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을 듣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여는데.

“그 물건이라는 것이 무엇이오. 어린 나를 두고 신경 써야 할 정도로 가치 있는 물건이었소?”

란데르그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지 못하며 말을 한다.

“그대의 과거에 대한 보상은 무엇으로도 못하겠지만 그 물건은 세상을 위해선 꼭 가지고 와야 했던 물건이었네.”

란데르그는 주먹을 꼭 쥐고 보튼은 다시 입을 연다.

“그 물건은 ‘하늘의 활’이라고 불리는 신기로. 선택받은 자에게 영혼의 각성을 일깨워 준다네. 디아우스들의 아스트라와 같은 물건이지.”

과연 란데르그의 부모님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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