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102화 (102/155)

102. 혼란의 전조.

102. 혼란의 전조.

변화는 늘 그렇듯이 갑작스레 찾아온다.

그 시작은 한 늙은 여인이 조용히 벨 제국의 황도, 카다른의 방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벨 천왕 폐하님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초로의 늙은 여인은 벨 제국 수도 카다른의 민원을 처리하는 부서에 이런 민원을 제출했다.

“음?!”

작년에 에안나를 졸업하고 올해 민원부의 관리가 된 한슨은 어이가 없었다.

‘그저 민원을 하려면 나와 같은 관리에게 말해도 될 것을, 왜 천왕 폐하를 뵙고 싶어 하는 거지?’

화도 나는 한슨이었지만 한슨은 브란티아 대륙 최고 교육기관인 에안나의 졸업생. 이 여인이 지금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겠냐는 생각이 앞섰다. 한슨도 일반 평민 시절의 백성이었을 때는 무작정 최고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에 미치자 한슨은 짜증이 나는 표정을 내지 않고 친절하게 여인에게 다가간다.

“부인, 저는 민원부의 관리 한슨이라고 합니다. 부인의 억울한 심정은 알겠지만, 천왕 폐하께서는 함부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친절히 대답하는 한슨. 그리고 여인의 표정을 살폈다. 물론 이 한마디로 이해시키긴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백성은 아직도 목소리가 크면 뭐든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나 자세히 보니 이 여인은 일반적인 백성과는 다르게 기품이 있었다. 행색이 남루하지만 않았다면 귀족 부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후훗, 친절하신 분이시군요.”

여인은 자신의 손자뻘 되는 한슨의 말에도 기품 있게 대답한다. 이에 한슨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혹시, 천왕 폐하님과 관련 있으신 분이신가?’

“부인, 일단 민원상담실로 가시겠습니까? 그곳에서 무슨 일이신지 저에게 말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에 부인은 싱긋이 웃으며 한슨을 따라간다.

※ ※ ※

한편 카다른 황궁의 알현 장.

벨 제국의 천왕 아크 벨은 오늘도 대소신료들과 나라를 위한 경영을 하기 위해 대전 회의를 하였다.

“폐하! 일부 민심이 심상치 않습니다.”

새로이 정계에 진출한 넬슨 백작은 열정적으로 말하였다.

“정확히 말씀해주세요. 넬슨 백작.”

아크는 근엄하게 대답하며 말했다.

“네! 폐하. 현재 국경 지역 쪽 일부 백성들 사이에 구세주교라는 사이비 단체가 폐하의 이명인 예언의 아이보다 자신들의 진정한 구원자인 구세주가 곧 올 것이니 이를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민심을 선동하고 있나이다.”

“뭣이?!”

넬슨 백작의 말에 아크에 대한 충성심이라면 4대 수호공작 중 최고라는 드라이 라이언 공작이 발끈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천왕인 아크의 앞이라서 기운을 조절하며 화를 내었다.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폐하께서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고 있는지 어언 7년. 역대 아르드리는 물론이고 역대 군주 중에서도 이만큼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시는 분은 없거늘.”

드라이는 백성들에게 배신감까지 느꼈다.

그러나 아크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경 지역 백성들을 위해 대안을 생각하고 말하려는 입을 열려는 찰나.

“폐하. 국경 지역의 백성들은 아직 전쟁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자들이옵니다. 폐하의 선정을 미처 깨닫지 못한 우둔한 자들일 뿐이오니. 식량과 자원을 좀 더 조달해주면 민심은 곧 괜찮아질 것이옵니다.”

나부나이드 후작이 선수 쳤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수도인 카다른을 기준으로 황도령이 있고 사방위로 4대 수호공작이 지키는 4대 공작령의 국경지대엔 아크가 선정을 베풀었으나 거리가 있어 미처 중앙의 백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혜택을 덜 받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민심을 다스리는 문제 중 하나인 식량과 자원 문제만 더 해결해준다면 민심은 곧 수그러들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천왕인 아크의 입에서 나온다면 더욱 그림이 괜찮아질 것인데. 나부나이드 후작이 선수 치자 좀 그랬다.

벨 제국은 내정 중에 하는 말은 모두 기록하기에 더욱더 그러하였다. 이래서는 나부나이드 후작이 백성들을 엄청나게 아끼는 것처럼 보이기에.

4대 수호자 공작은 아크가 그런 해결책을 보일 것으로 생각했기에 가만히 있었는데. 선수를 친 나부나이드 후작이 얄미웠다.

그러나 아크는 대인이었다.

“후작의 말이 옳습니다. 당장 구휼미와 자원을 내놓을 수 있는지 재정부에서는 검토해 주세요.”

이에 대소신료들이 대답한다.

“예!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를 것이다. 변방의 사회적 문제인 구세주교를 뒤에서 부추기는 것이 나부나이드 후작임을.

그때. 한 신료가 들어와 아크를 알현하기를 청한다.

“들어오세요.”

아크가 말하자 문이 열리고 민원부의 책임자인 날슨 자작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죠?”

알현 장의 대소신료들은 날슨 자작에게 눈치를 주었다. 아크가 그런 분위기를 없애고자 했으나 기존의 귀족들은 하급 귀족인 자작이 상급 귀족인 자신들이 회의하는데 들어오자 불쾌한 기색을 주었다.

이에 주눅이 든 날슨 자작. 그러나 이 황궁의 주인은 자애로운 아크였다.

“괜찮습니다. 날슨 자작. 어서 말해주세요.”

따뜻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아크의 반응에 날슨 자작이 자신감이 차서 말하였다.

“예! 폐하. 지금 민원부에 보브 님과 니르 님을 모신 여 시종이었던 여인이 폐하를 알현하기를 청하옵니다.”

“?!”

날슨 자작의 말에 아크와 대소신료들은 놀란다.

“그 여인의 말이 거짓은 아니지요?”

아크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자신의 부모님을 아시는 분이면 아크가 비밀리에 찾고자 하는 부모님이 남긴 단서와도 관련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더라도 자신의 부모님과 아는 사이라면 당장 만나고 싶었다.

“예! 폐하. 그 여인은 니르 님의 신분 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분 패는 위조가 가능했지만, 감히 벨 제국 천왕의 부모님의 신분 패를 위조할 간 큰 자는 없기에 아크는 만나고자 한다.

“어서 데려오세요.”

“예! 폐하. 하지만 여인의 행색이 더럽고 남루하여 목욕을 시키고 의복이라도 갖춘 다음에 모시겠습니다.”

날슨 자작은 당장 여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아크의 마음을 모른 채 귀족주의적 생각을 하며 말하였다.

그때 나부나이드 후작이 이런 아크의 마음을 대변하며 말한다.

“어허! 폐하께서 당장 만나시다고 하시는데. 형식적인 것은 그만두시오.”

이에 아크와 수호자들은 놀라나 이번만큼은 나부나이드 후작이 고마웠다.

“그....... 그래도 폐하와 만나는데 의복만이라도.”

아크는 날슨 자작을 위해 타협한다.

“그럼 의복만이라도 갖춘 다음에 모시도록 하세요. 대신에 최대한 잘 모셔주세요.”

이에 날슨 자작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음에 고마움이었다.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폐하!”

날슨 자작은 아크에게 더욱 충성할 것이다.

갑자기 피로함을 느끼는 아크. 오늘 회의는 조기에 마쳐야겠다.

“오늘은 반가운 손님 때문에 회의를 여기까지 했으면 하는데. 중요한 건이 있나요?”

아크의 말에 나부나이드 후작이 대신 말한다.

“없사옵니다. 폐하. 즐거운 만남이 되시기를.”

대소신료들이 물러나고 4대 수호자 공작과 아크만이 남았다.

“폐하. 경사이옵니다. 무려 보브 님과 니르 님을 아시는 분이시니, 기쁨의 회포를 푸소서.”

은발에 비취색의 눈동자의 미소년이 아크에게 말한다. 이에 아크는 빙긋이 웃더니.

“란데르그. 우리끼리 있을 땐 편하게 말해.”

이에 란데르그는.

“어? 그럴까요? 아니, 그만 노려보시오. 제노, 드라이.”

란데르그는 편하게 있고 싶었으나, 원래부터 귀족 출신이었던 제노와 드라이는 눈치를 준다.

“란데르그. 너는 귀족의 예의범절을 배워도 아직 그러냐?”

란데르그의 천적인 크리가 실체화하며 말한다.

“흥! 됐소이다. 이때 렌 사부님이 있으시면 나의 편이 되었을 것이오.”

란데르그는 아쉽다는 듯이 표정을 지었다.

렌 사부는 며칠 전 알아볼 일이 있다면서 휴가를 내어 떠났다. 이에 아크와 다른 자들 또한 렌 사부님을 보고 싶었다.

“이만 자리로 가시도록 하세요. 언제까지 폐하를 괴롭히실 겁니까?”

벨 제국의 제2 재상인 카셀 브레스 공작이 핀잔을 주었다.

“아~ 알겠소이다.”

“폐하. 신, 이만 가보겠습니다.”

“좋은 만남이시기를, 폐하.”

란데르그와 제노, 드라이는 그리 말하고 자신의 자리로 갔다. 관리가 바쁠수록 백성들이 편하기에 말이다.

“그럼 폐하, 좋은 만남이 되시기를.”

카셀 또한 그리 말하고 일을 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후우~ 수호자들이 너무 형식을 따지는 것 같아.”

아크는 사실 예전처럼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에 크리는 잔소리를 하는데.

“아크, 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일국의 수장이 그럴 순 없는 거야. 위엄을 틈틈이 보여야 해. 그런 편에선 란데르그를 제외하곤 잘 따라주고 있는 거고.”

“그래그래, 알았어. 대신 부모님을 아시는 분과 만났을 때는 내가 편한 대로 한다.”

크리는 아크의 고집을 알기에 허락한다.

“알겠어. 그러나 너무 위엄을 떨어뜨리진 말고, 말이다.”

“알겠어. 크리.”

아크는 기대 어린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좀 시간이 지나고 들려오는 소리는 그런 아크의 마음을 철저히 농락했다.

여인이 암살당한 것이다.

※ ※ ※

“어찌 된 것이냐!”

아크는 잔뜩 흥분해서 평소의 차분한 말투가 아니었다.

이에 날슨 자작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런 날슨 자작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송구스럽사옵니다. 폐하.”

날슨 자작이 다친 이유는 갑작스럽게 민원부에 들이닥친 괴한들로부터 여인을 지키다가 다친 상처이기에 아크는 날슨 자작에게 무조건 화낼 수도 없었다.

그러나 큰 기대를 했던 아크로썬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 당장 조사에 착수해서 범인을 잡으세요.”

겨우겨우 화를 다스린 후 아크는 다시 침착하게 말하였다.

“예, 폐하.”

날슨 자작은 절뚝절뚝하며 알현 장을 물러났다.

다친 날슨 자작에게 화를 낸 자신이 미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참기에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벨 제국의 황후. 아미 셀라는 한걸음에 아크를 찾았다.

“폐하.......”

아미는 속상해하고 있는 아크를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미.”

그리고 아크를 부드럽게 안아주는 아미.

“괜찮아, 괜찮아. 아크.”

아미의 정성스러운 태도에 아크가 진정한다.

잠시 후.

“이제 괜찮아. 아미.”

아미는 아크를 위해 나서기로 하는데.

“아크, 나를 이번 사건조사의 책임자로 해줘 내가 밝혀낼게.”

“음?!”

이에 아크는 놀란다.

“하지만 아미....... 어떻게?”

아미는 사건조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그런 쪽에 달인인 란데르그를 필두로 하프 블러드 레인저들에게 조사를 명령했다.

“아크, 잊었어? 나의 틸이 무엇인지 말이야.”

아크는 아미의 뜻을 알아채고 놀라고 말한다.

“안 돼! 아미 그건 너의 생명력 일부를 쓰잖아. 절대 안 돼!”

이에 아미는 괜찮다고 말한다.

“괜찮아. 아크. 그냥 그 장소의 예전 시간만 보는 것은 힘이 안 들어. 생명력이 일부 써도 아크 네가 다시 채워줄 거잖아. 괜찮아.”

아미는 아크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이 다시 차오름을 느낀다. 그런 아미의 마음에 고마운 마음이 앞서는 아크.

“고마워, 아미. 그럼 부탁할게. 이왕이면 진범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줘.”

이에 아미는 다부지게 말한다.

“응! 알겠어. 아크, 나만 믿어.”

이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 사건으로 벨 제국이 어찌 변화될 것인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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