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우연이 쌓이면 운명이다.
91. 우연이 쌓이면 운명이다.
아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금은 유이라고 이름 붙인 예전 엔키의 요새 에리두로 향한다.
저벅저벅
아크가 향하는 곳은 예전에는 엔키의 연구실이었으나. 지금은 아크의 마법사 카셀의 연구하는 곳이었다.
“카셀.”
아크는 카셀을 불렀고 카셀은 자신의 수하들과 의논을 하다가 아크가 부르자 아크에게로 갔다.
“주군, 오셨습니까.”
“그래, 아미는 잘 있나.”
“네, 주군.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크와 카셀은 연구실에서 가장 큰 유리관이 있는 곳에 나란히 섰다. 그곳에는 투명한 액체와 함께 환자복을 입은 아미가 호흡기를 입에 쓴 채 있었다.
“이 방법이 확실한 것이지?”
“예, 주군 엔키가 남긴 자료들과 저와 저의 수하들이 며칠 동안 밤새 연구한 결과로 지금 아미 님에겐 반로회동이 답입니다. 그것을 위해선 아누투의 힘과 메긴의 힘. 그리고 ‘창조주 안의 파편’이 필요합니다.”
아미는 유리관 안에 의식이 없는 채로 있는 아미를 보며 말한다.
“그것을 다 가진 사람은 나뿐이군.”
“네, 그렇습니다. 엔키의 일지에 따르면 이 기술로 자신의 반로회동을 꿈꾸었으나, 엔릴에게 추방당할 때 없어진 아누투와 ‘창조주 안의 파편’만큼은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군이 아미 님의 목숨을 구하는 것입니다.”
아크는 그저 씁쓸하게 웃는다.
‘아미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없을 목숨이지.’
-이 순간만을 위해 태극사신무의 극의인 황룡의 기운을 마스터했지.
크리가 아크에게 말한다.
그렇다. 창조주 안의 파편이란 창조주 안이라 불리는 이 세상의 법칙에서 얻어온 힘을 의미한다. 예전 창조주 안의 감응 자가 아누투의 힘으로 만든 힘. 즉, 태극사신무였다.
“그럼 시작하지.”
아크는 카셀과 수하들이 준비한 의자에 앉아 여러 가지 선으로 된 장치들을 자신의 몸에 붙였다.
그리고 잠깐의 준비 시간 후. 카셀이 말한다.
“주군. 제가 말할 때. 각각의 기운을 방출해내시면 됩니다.”
아크는 살짝 긴장했다. 자신이 잘못하면 아미가 잘못될까 봐 오는 불안이었다.
“알겠다.”
아크는 그리 짧게 말하고는 기다리고.
카셀이 말했다.
“일단 메긴의 힘부터 메긴 1단계부터 방출하십시오.”
“흐읍!”
아크는 힘 조절을 하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후우웅.
잔잔히 울려지는 메긴의 기운.
“이제 계속 올리세요.”
카셀은 수치화된 계기판을 보며 말한다.
후우웅.
서서히 올라가는 메긴을 나타내는 계기판의 수치. 카셀은 이 상황이 만족스러웠다. 아크와 아미를 돕는 것도 만족스러웠으나. 연구자로서의 호기심이 충족되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어느 정도 수치가 올라가자 카셀이 말한다.
“이제 메긴을 그 정도 올린 상태에서 아누투를 사용하십시오.”
아크는 아누투를 사용하자 급격히 아누투의 기운이 빠져나감을 느꼈다.
“?!”
아크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카셀이 말한다.
“아누투의 기운을 가장 많이 잡아먹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크는 그 말을 믿고 계속 기운을 방출한다. 아크는 카셀을 믿었으나 사실 다른 신료들은 카셀을 못마땅해 하고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가 카다른을 습격한 사람은 카셀의 친형. 란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크는 이번 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카셀과 의논하여 벌인 작업이었다. 카셀에게는 지난 며칠이 아크 진영에 들어오고 가장 고독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카셀은 그런 자신을 믿어준 아크를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절대 실패 따윈 없을 각오로 준비했다.
그때 아미의 유리관의 투명한 액체가 굳어졌다. 이에 아크는 카셀에게 급히 물어본다.
“카셀, 어찌 된 것이지?”
카셀은 엔키의 연구 자료에서 본 현상이라서 차분히 이야기한다.
“이제 작업의 막바지 지점입니다. 이제 주군, 창조주 안의 파편을 쓰십시오.”
아크는 카셀의 말을 듣고 진정한 뒤 기운을 올린다.
화아악.
황룡의 기운이 아크의 몸 주위를 넘칠 듯이 흐른다.
그때 갑자기 아미의 유리관에 금이 가는데.
쩌저정.
“!”
이에 아크와 카셀은 당황한다.
쨍그랑!
결국은 깨지는 유리관.
아크는 자신의 몸에 붙은 장치들을 거칠게 풀며 아미에게 향한다.
“아미!”
반투명한 액체가 굳어져서 덩어리 채로 있는 아미에게 향하는 아크. 카셀과 수하들 또한 황급히 아미와 아크에게로 향한다.
“주군, 저, 저는.”
카셀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낀다. 자신의 연구가 실패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아무 말도 없이 투명한 덩어리 속에 있는 아미를 향해 손을 뻗는다.
‘제발. 아미.’
아크는 간절한 기도를 한 뒤 기운을 아미에게로 보낸다.
후우웅.
잔잔하고 강한 기운이 아크의 손에서 아미에게로 향하는데.
‘주군의 눈이.’
카셀은 아크의 눈의 변화를 보았다. 동공은 붉고 홍채가 불타는 황금빛으로 변하는 특이한 눈을 말이다. 그 눈은 순간적으로 생겼다가 이내 없어지고 다시금 아크의 눈은 본래의 황금색이 되었다.
쩌저적!
그때 반투명한 덩어리가 갈라지며 아미가 나왔다.
“아미!”
아크는 아미를 바라보았고 아미의 외견은 허물을 벗은 것처럼 외모가 어려져 있었다.
“으으음.”
아미가 서서히 정신을 차렸고. 아크가 아미에게 다가갔다.
“아미!”
아크는 다시 한번 아미를 불렀고 조금씩 눈을 뜨는 아미. 눈을 뜨니 예전과 같이 흑진주 같은 눈이었지만 동공과 홍채 사이에 불타는 황금빛 원이 있었다.
“......아크?”
아미가 정신을 차렸다.
※ ※ ※
카다른에 오래간만에 즐거운 분위기가 생겼다.
바로 카다른의 주군 아크의 여자 아미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기 때문이다. 아미의 존재는 병사들에게 아크가 엄격한 아버지라면 아미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기에 군 사기에도 더욱이 좋았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에게도 선의를 베풀어서 인기는 아이돌 급이었기에 아미의 회복은 더욱이 좋은 소식이었다.
한편 아크는 다른 신료들에게 잔소리 폭격을 받는다.
“주군! 어찌하여 그런 중요한 일을 저희에게 말해주시지 않은 겁니까!”
“주군! 카셀 그자를 너무 믿어서는 안 됩니다.”
“너무 위험했습니다.”
아크는 신료들을 살살 달래주어 겨우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렌 사부와 드라이 란데르그를 제외한 다른 자들을 돌려보낸 뒤 한숨을 쉬었다.
“휴우~ 잔소리 폭격이네. 정말.”
아크는 진저리를 쳤다.
“허허허, 아크야. 원래 정치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처음에 아크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는 없었던 자들이 언제부턴가 하나둘씩 생기더니 지금은 아크에게 열렬히 충성표현을 하였다. 정치할 때 있으면 좋은 자들이었지만 아크는 그들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박쥐들처럼 아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언제 그랬듯이 등을 돌릴 자들이기에. 아크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도와주는 이들을 신뢰하였다. 란데르그네들처럼 말이다.
“주군, 지금은 성과가 좋기에 그냥 넘어갔지만, 언젠가는 카셀을 내쫓으려고 궁리 중일 것입니다.”
드라이가 말했다. 사실 아크도 그런 한 걱정을 하였다. 그들이 보기엔 카셀은 위험했다. 정치적으로 말이다. 아크의 세력이 어느 정도 커짐에 따라 자연스레 벌어진 구도이지만 말이다. 란데르그나 드라이도 이런 구도에 골머리를 쓰고 있었다.
그때 아크의 머리에 생기는 묘안이 있었다.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지!”
아크는 바로 크리와 상담을 한다.
※ ※ ※
그날 저녁 아직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미의 방에 아크가 방문한다.
똑, 똑, 똑
시종들에게 조용히 하라 하고 아크가 방문을 두드리며 말한다.
“아미, 들어가도 돼?”
아미는 책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며 아크에게 답한다.
“응, 아크. 들어와.”
끼이익.
아크는 아미의 방에 들어오고 아미를 바라본다.
“아미....... 그건.”
“응, 아크. 이거 기억나? 이거 예전에 카다른의 시장에서 유이와 나에게 아크가 선물한 거잖아.”
아미는 예전 아크가 카다른의 시장에서 아미와 유이에게 선물한 머리핀을 두 개를 같이 착용한 아미를 바라보았다.
“유이를 잊지 않으려고 같이 썼어.”
아미가 혼수상태일 때 아크는 유이의 장례식을 했지만 차마 유이의 물품은 정리하지 못했다. 아미는 그런 유이의 방에서 몇 가지 물품들을 챙겼다.
“나를 볼 때 유이도 같이 생각해줘. 그래야 할 것 같아. 나 혼자만 행복해지면 유이가 화내려나......?”
아미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아크는 아미에게 다가가고 아미의 눈물을 닦아준 뒤 살포시 안는다.
“아크.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유이를 잊지 않았으면 해.”
아미가 조용히 말하고.
“유이를 사랑한 몫만큼 아미, 너를 더 아끼고 사랑할게. 그게 유이가 바란 일 일 거야.”
아크 또한 나긋하게 말하였다.
아크와 아미는 조용히 유이를 생각하며 추억에 잠겼다.
※ ※ ※
다음날.
아크는 신료들에게 하나의 통보를 하였다.
“카셀을 나의 현무의 수호자로 삼겠다.”
“!”
그 말을 들은 신료들은 난리가 났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가을 전란을 뒤에서 조종하던 자였고 지금은 적대세력의 수장 란셀의 친동생을 그들이 모시는 주군의 최측근으로 삼겠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난리가 날만 한 상황이었다.
란데르그나 드라이는 아크의 수호자로 있으면서 그들은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마어마한 특권과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것이기에 이번 카셀을 수호자로 삼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충격 그 자체였다.
“안됩니다! 그자는......”
“그만!”
그러나 실세는 아크였다. 아크의 말 한마디에 입을 다무는 반대파 신료는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수호자는 이미 내가 결정한 사항이다. 다른 의견은 일절 받지 않겠다. 반대한다면 나에게 도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쿠궁.
아크가 그리 세게 나오자 더는 말 못 하는 신료들. 그리고 사전 이야기를 못 들어서 조용히 있던 카셀은 아크가 이리오라는 손짓에 나온다.
“나. 천왕의 계승자 아크는 나의 현무의 수호자로 카셀, 너로 정하였다.”
아크의 근엄한 말에 카셀 또한 진지하게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신, 카셀. 주군의 의지를 받듭니다.”
아크는 그리 말하고는 예전 수호자를 임명했던 란데르그와 드라이처럼 영력을 불어 넣었다.
파아앗!
검은색 기운이 흘러나오고 카셀의 몸으로 들어갔다.
-나는 우사인 현무. 그대 천왕의 수호자가 되겠는가.
현무가 카셀의 무의식에서 말하고 카셀은.
“기꺼이.”
후아앙!
그렇게 카셀과 우사인 현무의 영혼은 하나가 되었다.
신료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이 나간 채로 회의장을 나가였다.
“주군.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카셀이 아크에게 다시 한번 충성맹세를 한다.
“그래 카셀. 앞으로도 기대하고,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카셀은 아크의 믿음에 감격하며 회의장을 나간다. 그리고 반대했던 신료들에게로 향하는데.
“으흠~ 살기가 대단하군.”
아크는 카셀이 순간적으로 내뱉는 살기를 느낀다. 그리고 어찌 된 것인지 그 이후로 그 신료들은 카셀의 말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무리가 되었다.
-아크 잘했어.
“그래 크리, 다행히도 카셀이 쓰는 기운이 현무의 기운과 잘 맞아서 다행이야.”
아크는 아무도 없는 회의장에서 크리와 대화한다.
-그래 그리고 이럼으로써 카셀의 입지가 흔들리지는 않겠지.
“우연히 잘 맞아서 떨어졌어.”
-우연이 자꾸자꾸 모여서 쌓이면 그게 운명이 되는 거란다.
“흐음~ 말 되네.”
서서히 회복기에 들어가는 아크 진영이었다.